아Q정전.광인일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5
루쉰 지음, 정석원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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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이라는 작가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이며 혁명가라고 소개되어지고 있었지만 진즉부터 읽고 싶었던 《아Q정전》을 이제사 읽게 되었다. 한번쯤은  지극히 현실적인 중국작가의 책을 읽어보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던 까닭은 간단하다. 우리의 전통이 이미 중국으로부터 유래되어져 지금까지 우리의 정신세계를 떠받들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럴진데 과연 중국의 작가가 바라보는 중국의 모습은 어떨까?  한편으로는 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역사속에서 느껴야 했던 실망감을 다시 느끼게 될까봐 내심 조바심도 났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역시, 하는 마음을 갖는다. 先覺者라 불리워지던 수많은 사람들이 선택해야 했던 爲民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힘겨웠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있었기에 아주 조금씩은 우리의 모습이 변해갈 수 있었다는 진실이 커다란 나무처럼  확연하게 보여지고 있었다는 거다.

이 책속의 아큐는 단지 아큐 한사람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중국인 나아가서는 깨이지 못한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름이다. 머리에 든 것도 없으면서 강자에게는 굽실거리고 약자에게는 큰소리치는 아주 전형적인 우리들의 모습이다. 강자에게 업수임을 당하고나면 저보다 못한자에게 화풀이를 하는 아큐의 모습은 어느 누구랄 것도 없다. 그것도 안되면 스스로에게 최면처럼 가식적인 자기위안을 걸어 그것으로써 자기 만족을 얻어내는 꼴이라니...  강자의 꼬리에 빌붙어 어찌어찌해보려던 아큐가 끝내는 그들의 속죄양이 되어버리는 그리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모습속에는 배우지 못하고 깨치지 못한 우매함의 극치를 마주 바라보는 것만 같아 가슴 한쪽이 시리기까지 했다.

의학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던 루쉰이 일본의 의학교에서 유학하던 시절 강의시간에 일본 군인들이 포로로 잡힌 중국인의 목을 베는 것을  재미삼아 구경하던  중국 동포들의 모습이 담긴 시사영화를 보고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는 루쉰..  그 이후로 육체적 질병을 고치기보다는 정신적 개혁과 무기력을 고치는 것이 급선무하고 생각한 그가 의학을 포기하고 문학으로 돌아설 때의 용기는 가히 대단하다. 자신의 평안과 안위보다도 내 조국 내 동포를 먼저 생각함은 先覺者로써의  문이 열렸다는 말일게다. 그래서일까? 내가 처음 루쉰의 작품속에서 느꼈던 것처럼 아주 지극히 현실적인 문체를 많이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아큐정전》도 마찬가지지만 《광인일기》에서 보여주었던 그 은밀한 은유의 속삭임은 참으로 놀라웠다. 봉건적인 유교사상에 대한 반감과 정치 현실에 대한 반감은 그 당시로써는 상당히 어려운 선택이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흘러가게 마련이다. 그 흐름속에 一步前進이 있어 우리에게는 변화가 찾아왔을테고 또다른 역사가 시작되었을테다.

이 책속에는 루쉰의 열한편의 단편과 루쉰의 일생이 실려 있다. 어찌보면 무슨 일기나 산문처럼 쓰여진 짧은 글이지만 그 속에 내포되어져 있는 현실은 냉혹하다.  어떤 상황과 마주쳤을 때의 사람 심리가 속깊이 잘 표현되어져 있는 것 같다. 흔들림과 방황, 그리고 어느쪽도 선택하지 못한채 자기 주장도 없이 살아가는 어정쩡한 삶의 모습들이 잘 그려져 있음이다. 그리고 그 시대의 중국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또한 읽어낼 수가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글로써 누군가를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을테지만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이며 사상가로 칭송되고 있다는 걸 보면 그가 실패한 先覺者는 아니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도 글로써 우리를 깨우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先覺者는 많았을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爲民으로의 길을 갔던 그들이 있었기에 어쩌면 지금의 우리가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열한편의 단편을 읽으면서 한편 한편에 담겨졌을 작가의 마음.. 그 글들을 쓰면서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를 한번 생각해 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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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철학자 50
夢 프로젝트 지음, 박시진 옮김, 배일영 감수 / 삼양미디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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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깊이 괴로워하느냐 하는 것이 인간의 위치를 결정한다 - 니체
철학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것을 생각하는 자체도 철학의 일부분이 아닐까? 철학이라는 게 무슨 학문이니 교양이니를 떠나서 '생각한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복잡미묘하게 얽히고 설킨 듯이 보여지지만 다분히 주관적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얼핏 보기에는 상당히 객관적인 듯한 뉘앙스가 풍겨나오기는 하지만 말이다. 말장난을 하는 것처럼 끝없는 메타포의 늪에 빠진 세계가 바로 철학이라는 가면을 쓰고 돌아다닌 것만 같다.  책속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내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시대적으로 혹은 그 시대적인 배경에 따라 변해가는 그들의 생각과 고집스러운 외침만큼은 제대로 들을 수 있던 시간이기도 했다.

모든 철학적 문제들은 언어가 휴가 갔을 때만 생겨난다 - 비트겐슈타인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이 딱 이러한 것이다! 하고 정해져 있지는 않다. 그 때 그 때 상황마다 거기에 맞춰 혹은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며 달라지게 마련이니... 가장 우선적인 것은 자신의 감정이입이다. 그리고 거기에 대응할만한 기존의 어떤 주제가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따르던지 이의를 제기하던지 할 테니까 말이다.  '구조주의'의 선구자로 책 중에서 소개되었던 소쉬르는 언어가 정말 '의미'를 표현하고 있을까? 되묻고 있었다. 인간이 많은 것들을 언어로써 식별한다는 말은 약간 생뚱맞게도 보여졌지만 나름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던 대목이기도 했다. 감각이 아닌 오로지 언어에 의해 대상을 식별하고 있다는 말에는 왠지 서글픔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tree' 와 'wood' 의 차이만 보더라도 우리가 그저 '나무'라고만 말하고 있는 것과는 정말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커피와 담배를 즐기다 80살의 생을 마감했던 사람, "결혼으로 여자는 자유로워지고, 남자는 자유를 잃는다" 고 말한 칸트를 보더라도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의 성장과정이나 그가 처해있는 현실속, 혹은 그가 처해있던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만날 수 있었던 철학자들의 면모가 그랬던 것 같다.  어찌보면 상당히 현실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이해하기 어려운 저 먼곳의 '이상'을 바라보며 꿈꾸는 것처럼 보여지던 철학의 의미가 이쯤부터는 너무나 가까이 내려와 곁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구나, 철학 역시도 내가 처해있는 현실로부터 출발하고 있었구나...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왜 사는가?  행복은 또 무엇이며 어디에서부터 괴로움은 시작되는가?  따위의 어려운 말부터 시작하여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도 일종의 철학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은 죽었다고 열심히 외쳐댔던 말 뒤에는 종교적인 의미가 숨겨져 있는것과 같이  한마디 말속에 하나의 과학이 숨겨져 있으며  정치적인 의미도 숨겨져 있는 걸 보면 철학이라는 것도 역시 현실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이미 오래전에 살았던 철학자 셸링의 말, "평등이 아니라 불평등이 평준화가 아니라 개개인의 다름이 이 세상 발전의 척도이다" 라는 말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교육의 현실을 아프도록 서글프게 생각했다면 억지일까?  "잠재된 불만이 사소한 기회에 폭발한다" 는 프로이드의 말속에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았다면 그것도 역시 억지이리라.. 세월이 많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사람사는 모습만큼은 변하지 않는가 보다.

"사람에게 가장 슬픈 일은 자기가 마음 속에 의지하고 있는 세계를 잃어 버렸을 때이다" - 헤겔
"내 마음이 이 세상의 근본이다" - 원효대사
아마도 동서양의 대표급 철학자들을 다 모아놓은 것 같다. 한번쯤은 들어봤을, 그리고 한번쯤은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 있는 그런 이름들이 많이 보였다.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철학자들의 일화도 군데군데 숨겨져 있어 재미를 전해주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철학자 원효대사의 말처럼 내 마음이 곧 이 세상의 근본인 것이다. 내 마음이 느끼는데로, 내 마음이 엉켜드는데로 생각은 달려가게 되어있고 거기에 따른 주장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말도 될 것 같다. "습관은 인간 생활의 위대한 안내자이다", "농부처럼 일하고 철학자처럼 사색하라".. 등등 철학자들이 했던 말처럼 특별히 어려울 것도, 특별히 난해할 것도 없는 게 철학이라는 말처럼 보여지기도 하니 말이다.

책장을 덮기전 나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이야기하던 대목을 생각했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주장했던 베이컨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無知'에 대한 깨달음을 알게 해주고자 끝없는 산파술로써 대화를 나누었다는 소크라테스.. 수많은 질문을 던지면서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 남보다 낫다고 생각했다는 소크라테스.. 그야말로 선문답같은 상황이었겠지만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고 또 그것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철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삼양미디어에서 말많은 것들을 다독이며  보여주고자 하는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시리즈물'이 일단은 참 괜찮게 느껴졌기에 놓쳐버린 것들일랑은 차후로 미루더라도 이 책만큼은 다시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역시 철학은 어렵다?  쉽게 생각하면 될 것처럼 부드럽게 넘어가다가  뒤로 갈수록 뻑뻑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생각자체만으로 끝나지 못한 채 복잡한 우리의 현실과 맞물려 들어가기 때문일것이다. 그러고보면 철학이라는 게 '생각한다'는 그 개념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듯도 하고.... 다시 머리속이 시끄럽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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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스트리트
산드라 시스네로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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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에 아저씨가 뮤직박스를 작동시키자 순식간에 온갖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아저씨가 먼지 쌓인 가구들 위로, 굽어 있는 우리들의 그림자 위로,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속으로 수백만 마리의 나비들을 갑자기 날려보내는 듯했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같기도 했다.

아름답다는 건 무엇일까? 아니 아름답다고 표현되어질 수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 잠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아름답다는 것은 단지 우리가 느끼는 어떤 감정일 뿐일까? 아니면 정말 아름다운 것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까?  참 복잡하다. 아니 내 생각이 복잡할 뿐이다. 이 책의 소개글처럼 한편 한편의 이야기들이 정말 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산문시같다는 소개글도 딱 들어맞는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들임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그려내는 삶속에는 분명 아름다움이 머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까닭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잘 살고 있거나 아니면 지지리도 못살고 있거나 간에 아름다운 삶을 꿈꾼다. 수백만 마리의 나비가 날아오르듯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같은 아름다운 삶을 꿈꾼다. 그런 꿈이 있기에 절망도 힘겨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일수도 있겠지..한다.


하늘은 아무리 오래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다. 하늘에선 포근히 잠들 수도 있고 행복에 겨워 깨어날 수도 있다. 하늘은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감싸준다. 하지만 망고 스트리트에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슬픔이 많지만 그것을 감싸줄 하늘은 충분치 않다.

절망으로 시작되어지는 책의 시작에 당혹스러웠다. 없는 사람들의 삶이라는 게 지구촌 어디를 찾아간다한들 변할리 없겠지만 그래도 가슴속에 안아들었던 꿈을 포기한 채 현실속의 삶으로 쫓기듯 내몰리는 話者 가족의 이야기가 약간은 서글프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속에서 만났던 힘겨운 사람들의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게 삶일테니까. 그리고 그게 현실일테니까.  그 현실속에는 아무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거부할 수도 없는 빈한함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있다. 현실에게 당하는 아이들의 처량한 동심이 있다. 정원이 있는 언덕위의 집을 꿈꾸던 話者의 가족.. 복권이 맞기만 한다면 틀림없이 이루어졌을 그들의 꿈은 그저 꿈일 뿐일까?  '진짜 우리의 집'을 갖고 싶었던 그녀의 부모,  끝내는 '나만의 집'을 갖고 싶었던 주인공 에스페란자.. 그녀를 보면서 내 머리속에는 입센의 작품 <인형의 집>이 떠올랐다. 물론 두 작품속의 집이 의미하는 것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어내고 자신의 의미를 찾기 위한 그 어떤 것을 품어주기에는 그 '집'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경이롭게 다가온다.  어느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자신만의 삶을 위해서라면 꼭 필요할 것 같은...
 

어쩌면 이모가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던 그 날 그 순간을 하늘에서는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하느님이 바쁘셨을 수도 있으니깐.

처해진 현실을 탓하며 살아가기에는 그 아픔을 느낄만한 시간조차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한탄만 하며 살기에도 너무 지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그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것이 자신을 위한 일이 되었든 아니면 자신을 더 힘겹게 하는 결과를 잉태하고 있든간에..  책속에서 만나지는 여인들의 이야기는 정말 서글프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짓밟히고 억압받아야 하는 구속되어진 삶을 살아야 하는 모습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선택의 기회마져도 빼앗겨버린 채 그저 텅 빈 시선으로 자신의 시간속에 갇혀버린 그녀들의 모습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자신이 소유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들속에 파묻혀 살아가야 하는 그녀들에게 과연 희망이라는 것은 있을까?


그 언덕위의 집, 별과 가까운 곳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은,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다. 그들은 도무지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는다. 그저 언덕위의 삶에 흡족해 할 뿐이다. ---  언젠가는 나만의 집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어디 출신의 사람인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는 정말이지 가난한 동네였었다. 오죽하면 달동네라고 불렸을까 싶을 정도로. 그런데 지금은 개발의 힘을 빌어 아주 잘사는 동네가 되었다. 얼마전 거기 사는 사람들이 동네이름을 바꿔달라고 구청에 진정을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이유는 창피하다는 거였다. 그만큼 사람들은 힘겨웠던 시절을 잊고 싶어하는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니 나만큼은 그런 세월을 살지 않았었노라고 그렇게 자위하고 싶은건지도 모른다. 우리의 주인공 에스페란자 역시도 그럴 것이다. 나만큼은 절대로 그러지 않을거라고 다짐을 한다해도.. 아무리 지나간 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추억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한들 현재의 내 이미지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에스페란자처럼  내가 누구인지 어디 출신의 사람인지 절대 잊지 않겠다고 백번 다짐을 한다해도 그것만큼은 지나고 볼 일이라는 생각도 한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은 소중할테니까.. 좀 더 아름답게 보여지고 싶다는 욕심을 버릴 수 없을테니까..


깊은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나, 힘겨운 삶을 놓아 버리고 싶을 때, 수많은 장애물 앞에서 한없이 왜소해질 때, 나는 그들을 바라본다. 이 거리에는 더 이상 의미 있는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에도... 콘크리트 바닥에서도 삶을 키우는 나무 네 그루. 언제나 발돋움을 하며 어딘가에 도달하기를 잊지 않는 네 그루 나무. 살아내는 것만이 유일한 존재 이유가 되는 나무 네 그루...

그 절박한 절망속에서도 작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아니 희망을 버리면 안되는거라고 말한다. 콘크리트 바닥에서도 삶을 키우는 나무 네 그루를 바라보는 에스페란자의 마음을 통해서 작가는 살아내야 할 존재 이유를 묻고 있다. 과연 내가 이 세상을 살아내야 할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삶의 모티브가 되어줄 그 무엇에 대해 생각한다. 에스페란자.. 결혼이라는 속박에 얽매이기엔 너무 강했던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강제로 끌려와 자신의 모든 꿈을 짓밟혀버린 채 날마다 창가에 턱을 괴고 앉은채 살아왔던 할머니의 이름.. 에스페란자는 그런 할머니의 삶만큼은 닮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할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았지만, 창가의 자리만은 물려받지 않겠다"고.

산드라 시스네로스의 이력을 보면서 그녀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본다. 그녀에게 어린 시절의 삶은 너무도 많은 것을 주고 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집을 지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경이로움을 표한다. 그리고 잊지않고 다시 돌아갈 수 있었던 그녀의 용기에 감탄한다. 정말 섬세한 그녀의 마음 씀씀이를 볼 수 있어 참 좋았다.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풀어보지 못한 하나의 선물보따리처럼 그렇게 다가왔을 그녀의 삶속에서 어쩌면 아름답게 자리매김했을 그녀의 또다른 삶의 이야기가 한편의 童話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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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살 인생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위기철 지음 / 청년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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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수라는 말이 있다. 아홉, 열아홉, 스물아홉, 서른아홉, 마흔 아홉.... 그런데 그 아홉이라는 숫자가 갖고 있는 느낌은 참 묘하다. 그 아홉을 넘기면 새로운 숫자의 의미가 따라오기 때문일까?  아홉에서 열로, 열아홉에서 스물로,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서른 아홉에서 마흔으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말에 그렇구나 고개 끄덕이며 진정으로 수긍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본다. 숫자에 불과하다고 그렇게 느끼고 싶을 뿐일게다. 아무래도 스물아홉과 서른 아홉의 차이는 확실하게 다를테니 말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아홉수라는 게 일상적으로 씌여지는 의미가 그리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이제 다른 숫자의 인생을 살게 될테니 좀 더 열심히 살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자전적인 소설인 듯 보여진다. 자신이 지나왔던 길을 반추해보며 다시 한번 글로 옮긴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텐데 이 책은 정말이지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나는 아홉살에 뭘 했지? 내가 지나쳐 온 아홉살적의 기억을 나는 온전히 갖고 있기나 한가?  어느 순간에 나는 이렇게 묻고 있다. 작가가 살아온 아홉살 인생은 정말이지 파란만장하다. 아이가 아이다울 때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생활이라는 가면속에서는 아이가 어른처럼 살아가야 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 "지나치게 행복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아홉 살은 세상을 느낄 만한 나이이다"... 이 말에 나 역시도 공감한다. 지나치게 행복했던 사람이 아니었던 까닭에.. 그리고 삶이 나에게 아이처럼 살지 말아야 한다고 끝도 없이 속삭였던 까닭에..

작가가 살아냈던 책속의 세상은 지금의 아이들이 이해하기에 조금은 역부족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앞선다.  지금의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그 시절의 아홉살 아이가 겪어야 했던 세상은 너무도 다른 까닭이다.  여러 갈래의 길로 나를 인도해 주는 작가의 아홉살적 삶은 나에게도 한편의 영화처럼 그렇게 다가왔다.  자식들 손에 흙안묻게 한다고 도시로 올라오셨다는 우리 부모님.. 그 때부터 우리도 산꼭대기 집을 오르락 내리락거렸다. 눈이라도 올라치면 그 비탈길을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아 집에서부터 연탄재 한장을 들고 나와 그것을 깨뜨리고 부수며 길을 내려 갔었는데 단지 우리뿐만이 아니라 그 산동네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그때가 연탄재를 치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었다.  여름이면 그 언덕길을 한번 올라갈 때마다 땀으로 목욕을 했었고 흔하지 않았던 물때문에 속시원히 샤워조차도 하지 못했었다.

"얘야, 너도 어른이 되어 보면 세상에 화가 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이해하게 될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 화를내게 되는 일이 있어도 그건 결국 자신한테 화를 내는 거란다. 자신이 밉기 때문이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이 미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108쪽)

가난은 죄가 아니란다. 하지만 아홉살 인생을 거쳐 마흔 아홉의 인생을 바라보는 이만큼의 세월을 살아보니 가난은 역시 죄다. 좀 서글픈 얘기지만 가난했기에 내가 겪어야 했던 그 많은 일들을 돌이켜보아도 역시 가난은 죄였다. 살다보면 이해할 수 있는 일들도 많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아니 이해할 수 없는 일, 이해하기 싫은 일들도 참 많다.  비록 어린나이였다 할지라도.. 엄청 화가 나서 이세상이 한번쯤 뒤집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여러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내가 생각했었던 것은 작가의 말처럼 내 자신이 미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거였다. 어른이 되면 달라지겠지 했던 그 마음들이 어느순간 눈처럼 녹아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채고나면 그때부터 온전하게 다가오던 내 몫의 인생이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그렇게 내 앞에 놓여진다.

- 여러분, 검은제비는 잘 있습니까?
슬픔과 외로움과 가난과 불행의 정체를 알아보려 하지도 않은 채, 제 피붙이와 제 자신을 향해 애꿎은 저주를 퍼붓고 뾰족한 송곳을 던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도저히 용서해선 안될 적들은 쉽사리 용서하면서, 제 피붙이와 제 자신의 가슴엔 쉽사리 칼질을 해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검은제비는 잘 있습니까? 혹시, 당신이 검은제비 아닙니까? (183쪽)

참 많이 아프다. 어찌 저리도 날카로운 칼끝을 들이대는지... 제 자신의 삶을 어쩌지 못한 채 가족들을 못살게 굴며 제 자신의 인생을 원망하던 검은제비의 아버지는 어느날 싸늘한 죽음으로 길가에서 발견되지만 그 아들 검은제비에게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원망과 고통만을 안겨주었었다. 장남이니까 이제는 돈벌러 가야한다고 말하던 동네 대빵 검은 제비는 그 나이에 애어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홉살 인생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저마다에게 주어진 몫만큼만 살아냈던 것 같다. 아프도록 자신을 원망하면서... 하지만 작가는 그 처절함속에서조차 희망은 있다고 말한다. 혹시 당신이 검은제비가 아니냐고 물으면서 결코 그래서는 안되는거라고 되새김질 해 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절망이 내 안에서 시작되었듯이 희망 또한 내 안에서 비롯되어지는 거라고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살았던 아홉살 인생길에서 나는 내 지난날의 환영을 만났다. 이제는 아파하면 안되는거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떠난 내 아홉살 인생... 이 책을 쓴 작가의 아홉살 인생때문에 한동안 아플 것 같다. 그리고 그 아픔이 다시 내게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찾아 올 것을 믿어보려 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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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선인장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사사키 아츠코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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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에쿠니 가오리하면 《냉정과 열정사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수채화같았던 그 사랑이야기를 얼마나 가슴 졸이며 읽었었는지.. 읽고 난 책에 대해서는 영화를 보지 않는다는 나만의 규칙을 깨면서까지 그 소설에 매료되어서 결국 영화까지 보고야 말았지만 두번의 선택 모두 나에게는 참으로 멋지게 다가왔었다. 꿈같지만 결코 꿈같지 않은 이야기로 느껴지던 그 매력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 《호텔 선인장》을 선택하면서도 에쿠니 가오리라는 이름 하나때문에 망설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계절은 아름답게 돌아오고, 재미있고 즐거운 날들은 조금 슬프게 지나간다... 는 한줄의 글귀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호텔 선인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아하! 한다.  이름이 '호텔 선인장'인 낡은 아파트안에서 생겨나는 이야기들을 나에게 들려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바로 알아버리기 때문이다.  그 낡은 아파트의 3층 구석방에는 '모자'가 살고, 2층 구석방에는 '오이'가 살며, 1층 구석방에는 숫자'2'가 산다. 그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친구가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책속의 세 주인공들 역시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웃과 친해진다는 그 절차를 무리없이 밟게 된다.  윗층에서 들려오는 소음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1층의 숫자 '2'는 결국 '오이'가 살고 있는 2층의 구석방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게 된다. 그 소음때문에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오이'를 이끌고 숫자 '2'는 다시 3층의 '모자'를 찾아 나선다. 그 이유는 딱 한가지다. 아래층의 내가 이렇게 시끄러우니 바로 윗층의 너 역시도 시끄럽지 않느냐는 동의를 얻어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3층의 '모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상관없다고..  그렇게해서 아래윗층의 세사람은 친구가 된다. 서로 다른 성격과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던  세사람이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이해와 사랑을 나누어가게 되는 그 시간속에는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지만 살풋 나의 마음속에 비릿하게 전해져오는 서글픔도 있었다.  어찌 삶이 즐겁기만 하겠는가!

혼자일 때는 몰랐던 많은 감정들이 물결처럼 밀려들어올 때 그들이 대처하는 방식 또한 눈물겹다. 생각의 차이가 있고 직업조차도 서로 달랐던 이들이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며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정한 이치대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그 속에서 볼 수 있는 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분히 평범하게 보여지는 일상속에서 다분히 평범하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책을 읽다보면 내가 동화를 읽고 있는 것인지, 우화를 읽고 있는것인지, 성인용 소설을 읽고 있는것인지 조금 난해할 때가 있다.  경마장에 가던 날, 소심한 성격의 숫자 '2'만이 겨우 차비를 남겼을 뿐인채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 운동을 좋아하던 '오이'는 아파트까지 천천히 달려서 돌아오게 되지만, 차비가 없어 난처해진 '모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숫자 '2'가 할 수 없이 '모자'를 쓰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보면서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해서 한사람 몫의 요금만으로 둘이 함께 돌아올 수 있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였지만 나는 뭔가 한방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우습게도 나는 이때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가며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의인화 소설같기도 하면서 또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니 참 묘하다. 세사람의 일상속에 숨겨져 있는 아주 솔직한 우리의 모습 또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숫자 '2'의 생일날 '2'가 태어나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장면은 묘하게도 한참을 머물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2의 아버지는 숫자 '14'이며, 어머니는 숫자 '7'이었습니다. 두사람이 나눗셈을 하였기에 2가 태어난 것입니다. 덧셈을 했다면 21이, 곱셈을 했다면 98이 태어났을 테죠. 그렇지만 2의 부모님은 나눗셈이 좋았던 모양인지, 2의 누나도 형도, 두 여동생도 모두 '2'입니다... 덧셈도, 곱셈도 아닌 나눗셈이라는 말에 나는 왠지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왜 그랬는지는 묻지 말자. 왠지 저 짧은 문장속에 숨겨진 무언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을 뿐이니... 우리가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그 무언가가 저 짧은 문장속에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을 뿐이니... 세사람이 모두같이 '오이'의 고향으로 여행을 떠나던 날의 설레임은 우리의 삶속에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일탈처럼 보여지기도 했다.  길들여진 것에 대한 소홀함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늘 곁에 있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내 생활의 배경쯤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 길들여진 것들에 대한 의미... 그들의 여행길을 따라나섰던 나에게는 그 의미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 주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도시생활이 좋아 도시로 떠났던 '오이'에게는 그 고향에서의 시간들이 특별할 게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돌아온다. 일탈은 그저 일탈일 뿐이다.

낡은 아파트를 철거해야 한다는 말에 세사람의 의견은 엇갈리지만 그러면서도  제각각 살아가야 할 곳을 찾아 하나씩 준비를 해 나간다. 호텔 선인장을 떠나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다. 그들은 이제 다시 각자의 길을 가야한다는 것이 당혹스러웠고, 이미 서로가 서로를 만나고 알게 되어버린 그 순간에는 그들에게 서로가 없는 장소와 있는 장소의 의미가 어쩔 수 없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만남이 있었으니 헤어짐이 있다는 규칙은 철저하다. 그 아쉬움에 '어쩐지 수상쩍어서' 혹은 '위험스러워서' 다가가지 않겠다고 마음 먹고 있는 부근의 술집으로 몰려가던 날 '2'가 말했었다.  "희한한 일이야.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아무도 방해가 되지 않아"...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아무도 방해가 되지 않는 우리의 일상... 참으로 서글픈 느낌을 자아내는 단 한줄의 글귀앞에서 나는 잠시 호흡을 멈춰야 했다. 무심함일게다. 처절하리만치 개인적인 우리의 삶을 저토록 힘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숫자 '2'와 '오이'와 '모자'.. 이들 세사람이 안고 있는 특성속에는 우리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이치와 이웃과 이웃이 함께 맺어져 살아가는 삶의 고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멀리 떠나왔어도 늘 마음속에 깊은 사랑으로 자리하는 가족에 대한 의미등... 특별하지 않은 문체로 아주 특별하게 그려주고 있는 에쿠니 가오리만의 매력이 듬뿍 묻어나는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 선인장', 이것이 이  아파트의 이름이었습니다. 호텔이 아니라 아파트인데도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호텔 선인장에는 일찍이, '모자'와 '오이'와 숫자 '2'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당에는 검은 고양이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그리운 아파트는 이제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편의 전설이 되어버린 그들의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전설처럼 그렇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와 지금의 우리들에게 전해져 내려왔듯이 우리의 이야기 또한 그렇게 전설처럼 기억되어지리라... 그들 세사람의 이야기처럼. 평범했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그들의 이야기처럼. 

책을 읽는 동안 볼 수 있었던 몇 편의 삽화가  나에게는 참으로 멋진 상상의 날개를 선물로 준 것 같다. 사실적인 묘사가 이 책속의 문체와 어쩌면 그리도 찰떡 궁합인지.. 그림조차도 이 책의 이야기처럼 그리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 그림이 안고 있는 느낌들이 너무 포근하고 좋았다. 어디로든 시선만 돌리면 언제든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은 그림들은 이 책속의 주인공들과 좀 더 친근해질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준 것 같기도 하고... 우리 가슴속에, 가족 이상으로 소중한 이웃사촌과 친구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어수선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역자 후기처럼 나 역시도 이 책을 읽으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아이비생각

  책속의 삽화하나.. 사사키아츠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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