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 인생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위기철 지음 / 청년사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홉수라는 말이 있다. 아홉, 열아홉, 스물아홉, 서른아홉, 마흔 아홉.... 그런데 그 아홉이라는 숫자가 갖고 있는 느낌은 참 묘하다. 그 아홉을 넘기면 새로운 숫자의 의미가 따라오기 때문일까?  아홉에서 열로, 열아홉에서 스물로,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서른 아홉에서 마흔으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말에 그렇구나 고개 끄덕이며 진정으로 수긍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본다. 숫자에 불과하다고 그렇게 느끼고 싶을 뿐일게다. 아무래도 스물아홉과 서른 아홉의 차이는 확실하게 다를테니 말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아홉수라는 게 일상적으로 씌여지는 의미가 그리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이제 다른 숫자의 인생을 살게 될테니 좀 더 열심히 살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자전적인 소설인 듯 보여진다. 자신이 지나왔던 길을 반추해보며 다시 한번 글로 옮긴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텐데 이 책은 정말이지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나는 아홉살에 뭘 했지? 내가 지나쳐 온 아홉살적의 기억을 나는 온전히 갖고 있기나 한가?  어느 순간에 나는 이렇게 묻고 있다. 작가가 살아온 아홉살 인생은 정말이지 파란만장하다. 아이가 아이다울 때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생활이라는 가면속에서는 아이가 어른처럼 살아가야 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 "지나치게 행복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아홉 살은 세상을 느낄 만한 나이이다"... 이 말에 나 역시도 공감한다. 지나치게 행복했던 사람이 아니었던 까닭에.. 그리고 삶이 나에게 아이처럼 살지 말아야 한다고 끝도 없이 속삭였던 까닭에..

작가가 살아냈던 책속의 세상은 지금의 아이들이 이해하기에 조금은 역부족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앞선다.  지금의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그 시절의 아홉살 아이가 겪어야 했던 세상은 너무도 다른 까닭이다.  여러 갈래의 길로 나를 인도해 주는 작가의 아홉살적 삶은 나에게도 한편의 영화처럼 그렇게 다가왔다.  자식들 손에 흙안묻게 한다고 도시로 올라오셨다는 우리 부모님.. 그 때부터 우리도 산꼭대기 집을 오르락 내리락거렸다. 눈이라도 올라치면 그 비탈길을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아 집에서부터 연탄재 한장을 들고 나와 그것을 깨뜨리고 부수며 길을 내려 갔었는데 단지 우리뿐만이 아니라 그 산동네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그때가 연탄재를 치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었다.  여름이면 그 언덕길을 한번 올라갈 때마다 땀으로 목욕을 했었고 흔하지 않았던 물때문에 속시원히 샤워조차도 하지 못했었다.

"얘야, 너도 어른이 되어 보면 세상에 화가 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이해하게 될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 화를내게 되는 일이 있어도 그건 결국 자신한테 화를 내는 거란다. 자신이 밉기 때문이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이 미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108쪽)

가난은 죄가 아니란다. 하지만 아홉살 인생을 거쳐 마흔 아홉의 인생을 바라보는 이만큼의 세월을 살아보니 가난은 역시 죄다. 좀 서글픈 얘기지만 가난했기에 내가 겪어야 했던 그 많은 일들을 돌이켜보아도 역시 가난은 죄였다. 살다보면 이해할 수 있는 일들도 많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아니 이해할 수 없는 일, 이해하기 싫은 일들도 참 많다.  비록 어린나이였다 할지라도.. 엄청 화가 나서 이세상이 한번쯤 뒤집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여러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내가 생각했었던 것은 작가의 말처럼 내 자신이 미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거였다. 어른이 되면 달라지겠지 했던 그 마음들이 어느순간 눈처럼 녹아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채고나면 그때부터 온전하게 다가오던 내 몫의 인생이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그렇게 내 앞에 놓여진다.

- 여러분, 검은제비는 잘 있습니까?
슬픔과 외로움과 가난과 불행의 정체를 알아보려 하지도 않은 채, 제 피붙이와 제 자신을 향해 애꿎은 저주를 퍼붓고 뾰족한 송곳을 던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도저히 용서해선 안될 적들은 쉽사리 용서하면서, 제 피붙이와 제 자신의 가슴엔 쉽사리 칼질을 해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검은제비는 잘 있습니까? 혹시, 당신이 검은제비 아닙니까? (183쪽)

참 많이 아프다. 어찌 저리도 날카로운 칼끝을 들이대는지... 제 자신의 삶을 어쩌지 못한 채 가족들을 못살게 굴며 제 자신의 인생을 원망하던 검은제비의 아버지는 어느날 싸늘한 죽음으로 길가에서 발견되지만 그 아들 검은제비에게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원망과 고통만을 안겨주었었다. 장남이니까 이제는 돈벌러 가야한다고 말하던 동네 대빵 검은 제비는 그 나이에 애어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홉살 인생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저마다에게 주어진 몫만큼만 살아냈던 것 같다. 아프도록 자신을 원망하면서... 하지만 작가는 그 처절함속에서조차 희망은 있다고 말한다. 혹시 당신이 검은제비가 아니냐고 물으면서 결코 그래서는 안되는거라고 되새김질 해 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절망이 내 안에서 시작되었듯이 희망 또한 내 안에서 비롯되어지는 거라고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살았던 아홉살 인생길에서 나는 내 지난날의 환영을 만났다. 이제는 아파하면 안되는거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떠난 내 아홉살 인생... 이 책을 쓴 작가의 아홉살 인생때문에 한동안 아플 것 같다. 그리고 그 아픔이 다시 내게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찾아 올 것을 믿어보려 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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