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 스트리트
산드라 시스네로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잠시 후에 아저씨가 뮤직박스를 작동시키자 순식간에 온갖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아저씨가 먼지 쌓인 가구들 위로, 굽어 있는 우리들의 그림자 위로,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속으로 수백만 마리의 나비들을 갑자기 날려보내는 듯했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같기도 했다.

아름답다는 건 무엇일까? 아니 아름답다고 표현되어질 수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 잠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아름답다는 것은 단지 우리가 느끼는 어떤 감정일 뿐일까? 아니면 정말 아름다운 것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까?  참 복잡하다. 아니 내 생각이 복잡할 뿐이다. 이 책의 소개글처럼 한편 한편의 이야기들이 정말 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산문시같다는 소개글도 딱 들어맞는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들임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그려내는 삶속에는 분명 아름다움이 머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까닭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잘 살고 있거나 아니면 지지리도 못살고 있거나 간에 아름다운 삶을 꿈꾼다. 수백만 마리의 나비가 날아오르듯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같은 아름다운 삶을 꿈꾼다. 그런 꿈이 있기에 절망도 힘겨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일수도 있겠지..한다.


하늘은 아무리 오래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다. 하늘에선 포근히 잠들 수도 있고 행복에 겨워 깨어날 수도 있다. 하늘은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감싸준다. 하지만 망고 스트리트에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슬픔이 많지만 그것을 감싸줄 하늘은 충분치 않다.

절망으로 시작되어지는 책의 시작에 당혹스러웠다. 없는 사람들의 삶이라는 게 지구촌 어디를 찾아간다한들 변할리 없겠지만 그래도 가슴속에 안아들었던 꿈을 포기한 채 현실속의 삶으로 쫓기듯 내몰리는 話者 가족의 이야기가 약간은 서글프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속에서 만났던 힘겨운 사람들의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게 삶일테니까. 그리고 그게 현실일테니까.  그 현실속에는 아무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거부할 수도 없는 빈한함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있다. 현실에게 당하는 아이들의 처량한 동심이 있다. 정원이 있는 언덕위의 집을 꿈꾸던 話者의 가족.. 복권이 맞기만 한다면 틀림없이 이루어졌을 그들의 꿈은 그저 꿈일 뿐일까?  '진짜 우리의 집'을 갖고 싶었던 그녀의 부모,  끝내는 '나만의 집'을 갖고 싶었던 주인공 에스페란자.. 그녀를 보면서 내 머리속에는 입센의 작품 <인형의 집>이 떠올랐다. 물론 두 작품속의 집이 의미하는 것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어내고 자신의 의미를 찾기 위한 그 어떤 것을 품어주기에는 그 '집'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경이롭게 다가온다.  어느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자신만의 삶을 위해서라면 꼭 필요할 것 같은...
 

어쩌면 이모가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던 그 날 그 순간을 하늘에서는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하느님이 바쁘셨을 수도 있으니깐.

처해진 현실을 탓하며 살아가기에는 그 아픔을 느낄만한 시간조차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한탄만 하며 살기에도 너무 지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그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것이 자신을 위한 일이 되었든 아니면 자신을 더 힘겹게 하는 결과를 잉태하고 있든간에..  책속에서 만나지는 여인들의 이야기는 정말 서글프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짓밟히고 억압받아야 하는 구속되어진 삶을 살아야 하는 모습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선택의 기회마져도 빼앗겨버린 채 그저 텅 빈 시선으로 자신의 시간속에 갇혀버린 그녀들의 모습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자신이 소유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들속에 파묻혀 살아가야 하는 그녀들에게 과연 희망이라는 것은 있을까?


그 언덕위의 집, 별과 가까운 곳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은,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다. 그들은 도무지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는다. 그저 언덕위의 삶에 흡족해 할 뿐이다. ---  언젠가는 나만의 집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어디 출신의 사람인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는 정말이지 가난한 동네였었다. 오죽하면 달동네라고 불렸을까 싶을 정도로. 그런데 지금은 개발의 힘을 빌어 아주 잘사는 동네가 되었다. 얼마전 거기 사는 사람들이 동네이름을 바꿔달라고 구청에 진정을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이유는 창피하다는 거였다. 그만큼 사람들은 힘겨웠던 시절을 잊고 싶어하는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니 나만큼은 그런 세월을 살지 않았었노라고 그렇게 자위하고 싶은건지도 모른다. 우리의 주인공 에스페란자 역시도 그럴 것이다. 나만큼은 절대로 그러지 않을거라고 다짐을 한다해도.. 아무리 지나간 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추억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한들 현재의 내 이미지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에스페란자처럼  내가 누구인지 어디 출신의 사람인지 절대 잊지 않겠다고 백번 다짐을 한다해도 그것만큼은 지나고 볼 일이라는 생각도 한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은 소중할테니까.. 좀 더 아름답게 보여지고 싶다는 욕심을 버릴 수 없을테니까..


깊은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나, 힘겨운 삶을 놓아 버리고 싶을 때, 수많은 장애물 앞에서 한없이 왜소해질 때, 나는 그들을 바라본다. 이 거리에는 더 이상 의미 있는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에도... 콘크리트 바닥에서도 삶을 키우는 나무 네 그루. 언제나 발돋움을 하며 어딘가에 도달하기를 잊지 않는 네 그루 나무. 살아내는 것만이 유일한 존재 이유가 되는 나무 네 그루...

그 절박한 절망속에서도 작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아니 희망을 버리면 안되는거라고 말한다. 콘크리트 바닥에서도 삶을 키우는 나무 네 그루를 바라보는 에스페란자의 마음을 통해서 작가는 살아내야 할 존재 이유를 묻고 있다. 과연 내가 이 세상을 살아내야 할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삶의 모티브가 되어줄 그 무엇에 대해 생각한다. 에스페란자.. 결혼이라는 속박에 얽매이기엔 너무 강했던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강제로 끌려와 자신의 모든 꿈을 짓밟혀버린 채 날마다 창가에 턱을 괴고 앉은채 살아왔던 할머니의 이름.. 에스페란자는 그런 할머니의 삶만큼은 닮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할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았지만, 창가의 자리만은 물려받지 않겠다"고.

산드라 시스네로스의 이력을 보면서 그녀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본다. 그녀에게 어린 시절의 삶은 너무도 많은 것을 주고 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집을 지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경이로움을 표한다. 그리고 잊지않고 다시 돌아갈 수 있었던 그녀의 용기에 감탄한다. 정말 섬세한 그녀의 마음 씀씀이를 볼 수 있어 참 좋았다.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풀어보지 못한 하나의 선물보따리처럼 그렇게 다가왔을 그녀의 삶속에서 어쩌면 아름답게 자리매김했을 그녀의 또다른 삶의 이야기가 한편의 童話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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