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의 생각
이이화 지음 / 교유서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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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이란 이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홍길동전>이고, 그 다음이 그의 누이 허난설헌이다. 고려와는 달리 조선은 여성의 삶을 위축시켰다. 성리학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오로지 글재주만으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씁쓸하게도 그녀의 글재주는 조선보다 중국과 일본에서 더 많이 추앙을 받았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남편으로 인해 그녀의 삶이 고달팠을수도 있겠으나 시절을 잘못 만난 탓이 더 클 것이다. 그런 그녀였으니 동생 허균의 사상이야 어떠했을지.... 허균을 시대의 이단아라 하는 이유는 뭘까?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으나 굴곡진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일생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보게 된다.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는 허균, 파격적인 학문과 정치를 추구했다던 허균. 책을 통해 들여다 본 그의 삶은 끝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천하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오직 민중뿐이다" 로 시작하는 호민론. 놀라웠다! 민중을 '호민', '怨民', '恒民' 으로 나누어 나름대로 그들의 성향을 분석했다. 항민은 자기의 권리나 이익을 주장할 의식이나 지식이 없어 가장 좋은 수탈의 대상이 된다. 원민은 수탈당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스스로의 처지가 부당하다는 것을 깨닫는 무리다. 그러나 그런 의지를 밖으로 표현하지 않으니 지금의 소시민이나 자기의 안일만을 찾는 나약한 지식인에 견주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호민은 어떤 존재일까? 한마디로 말해 혁명가다. 부당한 대우나 사회의 부조리에 도전하는 무리. 사회개조를 지향하는 무리. 결정적인 때가 오면 혁명의지를 실현코자 하는 무리.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호민이 들고 일어났을 때 좋은 협조자가 될 수 있는 원민과 항민으로 보인다. 그러니 올바른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나라를 생각함에 있어 이이와 허균을 비교분석한 점이 흥미롭다. 임진왜란을 예견했던 이이와 병자호란을 예견했던 허균. 굳이 차이점을 들라면 이이는 벼슬자리에 있었고 허균은 벼슬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점이요, 군정의 어지러움을 보고 추상적으로 예견한 것이 이이라면 허균은 구체적으로 누가 침략해 올것인지를 가리켰다는 점이요, 이이가 나라안의 사정만 보고 이론을 세웠다면 허균은 나라 안팎의 사정을 살펴보고 적의 침입 경로까지 예견했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도 이이보다 허균의 이름이 높지 않음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의 자유분방한 삶과 파격적인 학문때문이었다.

 

허균이 말한 학문은 두가지다. '자기 몸을 위한 공부(爲己之學)'와 '남을 위한 공부(爲人之學)'로 저 혼자만의 안위를 위한 공부가 '爲己之學'이요, 후세에 남김이 있게 한다는 것이 '爲人之學'이다. 허균은 세상에 쓰이지 못할 학문을 하지 말라는 '爲人之學'을 중시했다. 허균이 추구했던 학문은 인과 덕을 배경으로 했던 요순시대에 배경을 두었다. 이이나 조광조처럼 도학정치와 이상정치를 추구했으나 그들과는 달리 현실에 뿌리를 두었다. 또한 유교뿐만 아니라 불교나 도교같은 학문도 깊이있게 받아들였다. 당시에 허균이 불교와 도교에 빠졌다는 것은 유교로 인한 폐단이 두드러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허균은 소승불교보다 대승불교에 뜻을 두었다. 그것은 남을 위한 공부를 중시했던 그의 학문과 일맥상통하는 듯 하다. 부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을 즐겨보았을 뿐이라던 그의 말속에서 불교를 하나의 학문으로 보았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 때 그의 나이가 불혹이었으나 세상의 비난쯤은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복불교를 나무랐고 참진리를 강조했다. 자기를 이롭게 하기보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중시했다. 그것으로 인해 관직에서 물러나야 했음에도 불교를 향한 그의 관심은 꺾을 수 없었다. 다른 종교에 비해 포괄적인 성격을 보였다던 도교를 종교로써보다는 생활의 방법으로 받아들인 점이 많았다고 하니 도교 역시 하나의 학문으로 받아들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현실이 각박할수록 사람들은 신선사상에 물들었다고 한다. 그런 흐름을 간파한 불교가 칠성각이나 산신각을 지어 도교를 포용한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귀거래사를 남긴 도연명이나 물속의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은 이태백, 그리고 귀천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사귀었다는 소동파를 마음의 벗으로 삼았다는 허균은 은둔의 삶을 갈망했으나 그렇게 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제명을 다 살지 못했다. 문득 김시습을 떠올리게 된다. 한사람은 최초의 한글소설을 쓴 사람이요, 한사람은 최초의 한문소설을 쓴 사람이라는 점이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천주교에 관한 책을 가장 먼저 들여온 사람이 허균이라는 사실을 이제사 알게 된다. 중국사신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고 두번이나 중국을 다녀왔으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누이 허난설헌의 작품을 중국 사신 주지번에게 건네준 것도 그 무렵이다.

 

그가 생각하는 문학은 어땠을까? 여러 방면으로 사람들의 지탄을 많이 받았음에도 그의 글재주만은 인정했다는 말이 보인다. 시를 통해 현실의 모순에 저항했으며 제도 따위는 인간의 참모습을 막을 수 없다며 그런 것에는 전혀 얽매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나약함을 어쩌지 못하고 시를 통해 세상을 비웃기도 했다니 그것은 어쩌면 현실도피였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원망했기에 은둔을 꿈꿨을 것이다. 형식이나 수사에 얽매이지 않고 표절이나 답습은 삼가야 한다는 말로 독창성을 강조했다는 그의 문학정신을 보니 <홍길동전>이 태어나게 되는 배경을 익히 짐작하겠다. 문장은 알기 쉽게 상용어를 써야 한다는 주장을 폈듯이 그는 어쩌면 자신의 본성과 감성에 충실한 삶을 살았던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홍길동이 되어 멋지게 펼쳐본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허균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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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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寸鐵殺人... 한 치밖에 안 되는 칼로 사람을 죽인다는 뜻이다. 이외수라는 이름을 들으면 생각나는 말 중의 하나다. 한 치밖에 안 되는 칼로 사람을 죽인다는 뜻이지만 짧은 말 한마디나 한줄의 문장만으로도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그를 추종하는 이들은 많다. 어쩌면 어렵지 않은 말로 다가오는 그의 감성에 공감하는 바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가끔 이런 생각도 해본다. 너무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도 보기에 좀 껄끄럽다고. 존버... 책을 읽으면서 계속 부딪히는 이 말때문에 곤혹스러웠다. 존버? 존버가 뭐지? 생각하다가 요즘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는 말줄임의 한 예가 아닐까 싶어 짐작해 보았다. 존재하며 버티기? 존재하기에 버틴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넘어갔다. 그런데 또 나오는 존버. 결국 책을 읽다말고 존버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존나게 버티기, 조낸 버티기... 존나게? 아이들이 하도 많이 써서 어쩌면 표준어로 오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그 존나? 깜짝이야~~ 내가 내 맘대로 끄적거리는데 뭔 상관이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그런 유행어 안만들어도 충분히 인기있는 분이지 않나? 이외수님의 말처럼 그 말속에 담긴 의미를 몰라서도 아니고 어쭙잖은 애국심으로 그러는 것도 아니다. 가뜩이나 정도를 넘어서고 있는 말줄임의 세상인데 굳이 이런 말을 만들어야만 했는지 안타까운 마음에 딴지 한번 걸어보았다.

 

각설하고, 나는 이외수라는 이름보다 그가 보여주는 글이 좋다. 책을 펼치면 보여지는 공백, 그 공백을 볼 때마다 거기에 내 나름의 무언가를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심한 듯 끄적거린 글 속에서 세상을 향한 일침을 들을 수 있어 좋다. 최근에 보았던 <아불류 시불류>나 <하악하악> 부터 <외뿔>,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 내 잠속에 비 내리는데> 등등 정말 많은 책이 있지만 오래전에 보았던 <사부님 싸부님>의 여운은 지금까지도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 그 올챙이의 팬이 된 것도 꽤나 오래된 일이지 싶다. 짧은 문장속에 어쩌면 그리도 많은 것을 담아낼 수 있는지 볼 때마다 놀라울 뿐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듯 하면서도 나름대로의 법칙을 고수한 느낌이 좋다. 지면을 꽉 채우지 않아 좋다.

 

나만 다양성에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은 버리자.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도 다양성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어째서 나만 정당하고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은 부당한가. 나만 옳다는 견해를 굳히고 내미는 다양성. 웃긴다.(-38쪽) 멋진 한방이다. 개성시대라고 말은 하면서도 천편일률적인 얼굴과 복장을 한 모습처럼 어쩌면 우리의 사고도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었다. 이렇게 시원할 수가! 자신이 올바른 삶을 살고 있는가를 알고 싶다면 자연과 견주어보면 된다. 자연과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다면 올바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이고 자연과 잘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면 잘못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손대지 말라. 자연은 아무 문제가 없다. 오직 인간이 문제일 뿐. (-107쪽) 백퍼센트, 아니 이만퍼센트 공감한다. 자연스럽게 사는 게 순리다. 그 순리를 거스르며 억지로 꾸며대는 자연을, 인간의 편리에 짜 맞춘 자연을 자연이라 말하는 건 분명 억지다. 자연은 그대로 두고 거기에 인간이 맞춰 살면 되는 것이다. 말은 자연사랑인데 행동은 자연파괴인 사회현상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니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는 게 아닐까? 재미있는 이야기가 보인다. 늙은 침팬지가 젊은 침팬지의 손금을 봐주면서 근심스럽게 말한다. 최악의 손금이야. 말년에 너는 인간으로 진화할지도 몰라. (-122쪽) 인간으로 진화할지도 모를 최악의 손금이란 말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부끄러운 일이다.

 

창문을 흔들고 있는 태풍에게 나한테 볼일 있냐고 묻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자기를 배반했다고 말하는 독자에게 그럼 나는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란 말이냐고 들이대는, 방충망에 붙어 있는 나방들에게 전생에 나이트 죽순이 죽돌이로 살았다고 말하는 그의 감성을 사랑한다. 그리움이 석쇠에 꽁치 굽는 냄새처럼 번지는 시간(작가의 표현) 에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지나가던 개가 전봇대에 오줌을 누며 꽃도 피지 않고 열매도 열리지 않는 이 쓸모없는 것을 인간들은 왜 뽑아버리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는 말속에 숨겨둔 그의 일침이 서늘하다. /아이비생각

 

똥이 더러워서 당신이 피했다 하더라도, 당신의 아들, 당신의 아내, 당신의 친구나 이웃이 밟을 수도 있다. 똥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똥밭의 면적은 늘어난다. 결국 온 세상이 똥밭이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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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코치 K 1 - 진짜 얼굴, 가짜 얼굴
이진 지음, 재수 그림, 조벽 외 감수 / 해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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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이다. 그저 만화책일 뿐이다. 그런데 주제가 너무 무겁다. 무거운 주제라서 가벼운 만화로 다가간 것일까? 주제가 무겁다는 게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나는 이 주제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한숨소리를 듣게 된다. 나는 고3 아이를 둔 엄마다. 다행히 무탈하게 학창시절을 보내준 아들녀석 덕분에 맘고생 심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간혹, 아니 자주 아이들 소식을 들려주던 언론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미안했다. 그래놓고는 아픈 게 청춘이라고 빨간 약을 발라주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어른들의 세계가 싫었다. 나도 어른인데.... 청년도 아닌 청소년, 어쩌면 그들이 지니고 있는 아픔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심할지도 모를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잣대로만 아이들을 평가하고, 분석하고, 다그치는 행정이 나는 싫었다. 자주 대안학교를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대안학교조차 세상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이를 안고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친정엄마가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잘 키워봐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人倫之大事 중에 자식농사가 가장 어렵다고 했던가? 과연 우리는 얼만큼이나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아이들의 잘못은 어른의 책임이다. 이 책을 보면서도 내내 인정해야만 했던 사실이다. 책을 덮고 당장이라도 달려가 교육부 장관에게, 교육감에게, 교육을 책임지는 행정가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당신들은 이런 현실을 알고 있느냐고. 작금의 교육현실은 정말로 한심하다. 아이들을 실험실의 쥐처럼 생각하는 건 아닌지 묻고 싶을 때가 많았다. 바뀌는 교육정책마다 어쩌면 그리도 기가 막힌지.... 스펙이란 말을 만들어낸 것도 우리의 교육현실이다. 저들이 그렇게 아이들을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본심은 밑바닥에 슬쩍 깔아놓고 그럴듯하게 포장된 말로만 열심히 떠들어대는 꼴이라니...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 더 무책임하게 흘러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비참하다. 너무 어려운 교육과정도 그렇지만 오로지 입시만을 위해 펼쳐지는 온갖 행정들은 역겹기까지 하다.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마치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떠들어대더니 대학 나온 사람들을 저들은 얼만큼이나 책임지고 있는가 말이다. 나 어릴적에는 그래도 저마다의 소질에 대한 배려가 조금은 있었다.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열심히 공부해서 행정가가 되었고, 기술을 배우고 싶은 사람은 장인이 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장인을 우습게 알던 조선시대 관료들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은 듯 하다. 그런 길을 누가 만들어주는가? 인간은 누구나 저마다의 소질이 있고 그것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다. 소질 따위는 개나 줘버린 작금의 교육현실에 화가 나는 건 단지 나혼자만에 국한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감정코치 K를 아이들이 있는 모든 곳에 파견하고 싶어진다. 아이들에게 마음으로 다가서는 법을 아는 사람이 필요할테니. 감정코치 K처럼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손을 잡아주는 이가 더 많이 필요할테니. 아이들의 표정과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어른이 더 필요할테니. 책을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생각해보게 된다. 저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의 세상을. 그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일까? 단언컨데 어른들이 각성하지 않는 한 저 아이들에게 밝은 미래는 없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 한, 작금의 교육현실이 변하지 않는 한, 지금 아이들의 고통을 들여다보지 않는 한.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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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 중 98명이 헷갈리는 우리 말 우리 문장
김남미 지음 / 나무의철학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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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정말 어렵다. 진짜로 어렵다. 100명중 98명이 헷갈린다는 말은 대부분의 사람이 모두 잘못 알고 있다는 말일터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토록이나 많은 사람이 틀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태어나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히며 살아가는데 왜 그러는 걸까? 말과 글의 차이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쓰다보니 어느틈엔가 습관처럼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말일까? 책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면서도 자주 사전을 들춰보는 내 자신을 생각해봐도 우리말이 결코 쉬운 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우리 주변을 떠도는 말중에 제대로 된 말과 문장은 얼마나 될까? 작정한 듯 우리 말을 파괴하는 요즈음에는 부쩍 씁쓸함이 느껴지곤 한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왜 우리말에 대한 자긍심이 없는 것일까? 이제 우리도 겉보기에만 그럴싸한 것들로부터 벗어날 때가 되었다.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하는 부류를 생각해본다. 두말할 것 없이 언론사다. 누가 뭐래도 바른 말을 써야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길을 가야 할 언론사가 세상의 인기만을 쫓고 있는 걸 보면 한심한 마음까지 든다. 인터넷이나 TV의 오염정도는 이미 정도를 넘어섰다. 신문마저도 가관이다. 어쩌자고 그렇게 말도 안되는 말줄임을 하는지, 그옆에 원래의 말을 다시 쓸거면서 무엇하러 말을 줄이는 것인지... 이건 활자를 줄여 지면을 확보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우리도 유행어를 쓸 줄 안다는 시위를 하는 것도 아닐테고. 도무지 그 속내를 알 수 없다. 책을 펼치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렇군! 아하, 이런 거였군! 공감을 하면서도 나도 그랬었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책을 읽고 난 뒤 정확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해야 한다는 나만의 결론을 내려본다. 일단 글을 쓰고 난 뒤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라는 말이 반가웠다. 나 역시 수정하는 과정의 중요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 볼 것이 한두개가 아니다. 함부로 빼거나 덧붙이면 안되는 것들, 한문을 쓸 때 그 뜻을 명확하게 알고 써야 한다는 것, 짧다고 좋은 것도 아니니 무리하게 생략하려 하지 말 것, 한자어든 고유어든 남발하면 안된다는 것, 중복되는 의미인줄 모르고 겹쳐 쓴 말은 없는지.... 입 속의 칼이라거나,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우리에게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고 있다. 글도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썼다가 지울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내 손을 떠나는 순간부터 그 글의 파급효과는 정말 대단할 것이다.

 

세종대왕께서 광화문으로 오시던 날 주위를 둘러 보시고 깜짝 놀라 " 여기가 어느 나라인고?" 하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웃자고 하는 말일텐데도 오죽했으면 이런 이야기가 생겼을까 싶어 부끄러웠었다. 당장 내가 사는 동네만 해도 시장이 바뀌더니 문화회관이라는 말을 아트센터로 고치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ㅇㅇ아트홀, ㅇㅇ아트센터라고 바꾼다고 시의 품격이 높아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생각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생각하는 거라는 글쓴이의 말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세상에 없는 세가지가 있단다. 정답, 공짜 영원한 것... 틀리다와 다르다를 설명하면서 나온 말인데 우리 사회가 다시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주제가 아닌가 싶다. /아이비생각

 

 

깜짝 퀴즈 : 아래 문장 중에서 틀린 것을 찾아보시오.

 

① 잊혀진 계절

② 소리없는 발자국

③​ 너 때문에 찢겨진 내 마음

④ 피로회복제

⑤ 좋은 하루 되세요


정답 : 전부 틀렸다!

① '잊혀진'을 '잊힌'이나 '잊어진'으로 바꿔야 맞다.

발자국은 원래 소리가 없으니 '발자국 소리가 크다'거나 '발걸음 소리가 크다'로 바꿔야 한다.

③​ '찢겨진'을 '찢어진'으로 바꿔야 맞다.

④ '이전의 피로로 돌아간다'는 뜻이 되니 잘못된 말이다. '상처가 재생된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⑤ '좋은 하루 보내세요'가 맞는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을 것이다.

책을 통해 우리 말에 대해 다시한번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재미삼아 혹은 남이 쓰니까, 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짜장면'이 '자장면'으로 되었지만 '짜장면'도 함께 쓸 수 있게 된 과정을 생각해보면

무심코 쓰는 한마디가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키는가는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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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의 비밀
자현 스님 지음 / 담앤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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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목차를 살펴보았다. 1장 산문이 열리고 이름이 생기다, 2장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3장 전각의 배치와 장엄, 4장 안에서 본 법당, 5장 수행과 의식의 상징물... 이 정도면 이 책속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대충은 짐작할 수 있을 듯 하다. 에이,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왔던 책과 별다른 내용은 없겠군! 하고 미리 생각했다면 틀렸다. 지금까지 나온 책들이 불교 교리에 맞춰 설명했다면 이 책의 경우에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더불어 설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사찰이기에 어쩌면 사찰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바라보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식으로 사찰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인도 불교가 중국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졌다. 그렇다면 분명히 그 속에 인도의 문화와 중국의 문화가 함께 들어있었을 거라는 분명한 진리를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우습게도 나는 지금에 와서야 그 안에 담긴 인도문화를 찾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도의 불교가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신선사상이나 민속신앙까지 끌어안으며 정착했던 과정은 흥미로웠다. 부분부분 알고 있었던 사실에 전체적인 배경이 깔리니 이제사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불교적인 것들이 유교문화속에 녹아들었던 것도 있었고, 유교적인 것들이 불교문화에 녹아든 것도 있었다. 그것뿐일까? 저자는 그리스로마 신화나 기독교의 상황에 맞춰 설명하기까지 한다.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책을 덮으니 뒷표지에 한 권으로 읽는 불교문화와 사찰에 대한 종합 안내서라는 말이 보인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 절은 왜 산속에 있나요? 하고 묻던 목소리가 생각났다. 단순히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그렇게 되었을 거라고 설명했었는데 그보다 더 깊은 속사정을 알게 되었다. 새삼스럽게 부끄러워진다. 절은 왜 산으로 갔을까? 그렇게 깊은 뜻이 담겨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법당의 부처님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법당마다 모셔지는 불상이 다르다. 어떤 곳에는 세 분의 부처가 모셔지기도 하고, 어떤 곳에는 달랑 한 분만 모셔지기도 한다. 또 어떤 부처는 협시불을 두기도 하는데 어떤 부처는 협시불이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깊이 알고자 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팠었는데 이 책을 통해 명쾌하게 정리되었다.

 

우리가 보는 부처님은 왜 비만일까? 예수님은 공양물을 받지 않고 공자님은 1년에 두번 공양을 받는데 부처님은 매일 공양을 받으시기 때문에 그런 거란다.^_____^ 그냥 한번 웃자고 하는 말인데 정말 웃음이 났다. 답을 한다면 그것은 중국문화의 영향이다. 인도는 우측문화였는데 비해 중국은 좌측문화였다는 말을 보면서 우리 문화속에 남겨진 인도문화의 흔적으로 무엇이 있었는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중국불교에서 지장보살의 현신으로 추앙되며 중국불교에 크게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는 김교각 스님의 이야기나, 염라대왕을 설명하던 부분은 이채로웠다. 그 밖에도 사찰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여러 동물이나 기호등 숨겨진 많은 이야기의 비밀을 알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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