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풍경, 근대를 만나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엮음 / 채륜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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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라는 말을 듣게 되면 무심결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모던보이'나 '모던걸'이란 말이다. 아마 영화제목도 있을 것이다. 'modern' 이란 단어를 찾아보니 '현대의, 근대의, 현대적인' 과 같은 의미로 나온다. 당시의 시각으로 본다면 그야말로 최신식을 좇던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 터다. 전통의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것에 심취되고자 했던 젊은이들의 바램은 시대가 아무리 바뀐다해도 변할 수 없는 욕망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전통이란 것이 그저 구태의연한 어떤 것으로 정의된다면 그것도 곤란한 일이다. 모든 지나난 것들은 역사가 된다고 했다. 그 역사를 쓰는 것이 바로 우리일테니 막연하게나마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근대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나라에 신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던 대한제국의 시기다. 마치 옛날이야기 하듯 들려오는 그 시대의 이야기들이 사실은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세상이 아니었던 까닭에 당시 신문물에 대한 의식은 상당히 놀랍고도 괴이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급변하는 역사의 흐름을 겪어냈다는 말일 터다. 어쩌면 수면 아래 잠겨있던 격동기의 폐해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 낡은 관습을 척결해야 한다고 일어났던 중국의 '문화대혁명'만큼은 아니었지만 분명 우리도 격동기를 거쳐왔음이다.

 

책의 서문을 보니 전통문화가 변화하여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 과정, 그 장면을 포착한 것이 이 책의 내용이라는 말이 보인다. 첫번째로는 서양식 의복과 화장술의 유입으로 외모에 대한 기준이 달라지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두번째로 아이들의 놀이문화와 더불어 어른들의 놀이문화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준다. 세번째로 지금 우리에게 당연시되는 일상의 문화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재미있는 사진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만들어진 전통>이란 책이 생각났다.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며 받아들여왔던 그 '전통'이라는 의미가 얼마나 커다란 허상이었는지를 밝혀냈던 책이었는데, 현재의 필요를 위해 과거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말이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었었다. 집단적으로 행하는 기념 행위가 국민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말은 정말 놀라웠었다. 상당히 두꺼운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의 풍속 중에서 애나 어른이나 모두 같이 즐겼던 연날리기를 통해 당시 아이들의 모습과 지금의 아이들 모습을 비교하는 부분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가족끼리 혹은 친구와 연을 만들고, 아무리 추워도 동네 언덕에 모여 함께 웃고 떠들며 연을 날리던 아이들이 자연과 함께 하며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소통의 부재'라는 말따위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어떤가. 방안에 틀어 박혀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놀이문화속에 빠져 있다. 바깥 세상과의 소통보다는 자신만의 생활을 선호하는 지금의 아이들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 것이 옳은지 다시한번 돌아보게 된다. 근본적인 문제부터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제대로 이름을 찾았지만 일제 강점기에 동물원으로 격이 추락했던 창경궁의 역사를 보게 된다. 나 어릴적에도 '창경원 밤벚꽃놀이'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던 것 같다. 한때 벚나무를 일제의 잔재라 하여 닥치는대로 베어내기도 했지만,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왕벚나무였다는 게 밝혀지면서 진해에 심어진 벚나무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밖에도 우리나라에서 신혼여행이 보편화된 시기가 1970년대 이후라는 말이 이채롭다. 1960년대까지만해도 혼례식을 마치면 남산을 한 바퀴 돌거나 가까운 곳에 가서 1박 하는 정도가 전부였단다. 1970년대에 예식장에서의 결혼이 일반화되면서 경주나 설악산, 혹은 제주도등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의 전통 혼례에는 없는 의식이 신혼여행이었다는 말이다. 19세기 이전까지는 서구에서도 신혼여행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는 말도 놀라웠는데, 일본을 통해 우리에게 유입된 문화의 한 단면이 신혼여행이었다는 말은 더 놀랍다. 여기저기에서 일제 식민 정책에 의해 생겨난 문화의 흔적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 유쾌한 느낌은 아니었어도 우리 근대문화를 다시한번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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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래보고서 2045 - 더 이상 예측 가능한 미래는 없다
박영숙.제롬 글렌.테드 고든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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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이면 나이지리아의 열대우림 소멸하고 2020년이면 생각만으로 문자메세지를 전송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특정상황에서 스스로 형태를 바꾸는 4D 프린팅 기술도 등장한다. 2023년에는 잃어버린 기억을 복원해주는 뇌 신경보철 이식이 실현되고, 아울러 보르네오의 열대우림이 소멸하면서 많은 생물종이 멸종.. 2027년, 절단된 사지를 재생하는 기술 완성.. 2030년이면 인도의 인구가 15억명으로 세계 최대에 이른다. 2036년이면 인공 안구가 인간의 시각을 능가하게 되고, 10년 뒤면 해수면 상승으로 우리의 서해안 지방과 제주도 등에 수몰 지역이 생긴다. 드디어 2045년이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린다. 일상 생활속에 로봇이 보편화되는 시기는 2049년이고, 2053년이면 부모가 성별이나 외부적인 신체조건등을 원하는대로 결정해서 만들어지는 아기가 등장한다. 2059년이면 화성에 사람이 살게 되고, 2060년이면 냉동인간을 되살리는 기술이 완성됨.. 그것뿐만이 아니다. 투명망토가 등장하고 인간의 두뇌나 마음을 사이보그 등으로 옮기는 기술이 완성되면서 2130년이면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휴머노이드가 등장한다. 이때가 되면 인간의 수명이 평균 200세에 이르게 된다..... 놀랍지 않은가! 이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보여주는 미래 연대표의 이야기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저런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 결국 21세기가 되면 인간이 200년동안이나 살게 된다는 말인데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물론 현재 인간의 오만과 욕심이 앞으로 어떤 세상을 만들어내게 될 것인지 유추해 본 것이긴 하지만 왠지 저런 세상이 올 것만 같아서 하는 말이다.

 

나 어렸을 적에 재미있게 보았던 미국 드라마 두 편이 있었다. 제목이 < 600만불의 사나이>와 <소머즈> 였던가? 그 600만불의 사나이는 뚜두두두두 소리를 내며 달리는 속도가 완전 빛의 속도였던 것으로 기억되고, 소머즈는 집중해서 듣자고 하면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속삭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여자였다. 모두 사고로 인해 인공적으로 인체를 이식한 결과물이었는데 그 드라마와 같은 상황을 앞서 말했던 미래 연대표에서 망설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거기에 보태고 싶은 영화 세 편이 있다. 첫번째로 '인간복제' 를 다루었던 영화 <아이랜드 The Island>다. 철저하게 규격화되어진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바깥 세상에서 자신과 똑같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삶을 마감하게 되어있는 만들어진 인간들이었다. 다시말해 신체부위를 제공해야 할 복제인간이라는 말이다. 두번째가 상당한 인기를 얻었던 <터미네이터 The Terminator>.. 이 영화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마지막으로 <A.I. Artificial Intelligence>.. 불치병에 걸려 냉동되어 있는 상태의 아들을 대신하여 입양된 인공지능 로봇이 주인공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로봇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아들의 병이 나아 집으로 돌아오자 숲속에 버려지고 마는 어린아이 로봇을 그린 영화였지만 영화가 끝나고도 상당히 크고도 묘한 울림을 주었던 영화였다. 그 영화의 배경이 빙하가 녹아 바다의 수면이 상승되자 많은 해안도시들이 바다에 잠겨버린 후의 세상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 했다. 어쩌면 그다지 멀지 않는 미래에 우리에게 닥쳐올 현실일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말이다. 영화속의 배경이 보여주고 있는 미래의 현실은 끔찍했다. 자원을 소모하지 않는 '로봇'이 필요불가결한 존재로 등장했다는 씁쓸함 역시 앞서 말했던 미래 연대표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입맛이 쓰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시베리아의 얼음이 녹으면서 러시아가 세계 식량강국이 된다는 2038년도, 아마존의 열대우림이 절반이상 소멸한다는 2050년도 따지고 보면 그리 먼 미래가 아니다. 그만큼 작금의 이상기온현상이 심각하다는 말일터다. 지구본 속에 표시되어있는 모든 국가에서 지구를 살려야 한다고 마음과 뜻을 모으지 않는 한 지구는 다시한번 RESET 되어지지 않을까? 그 옛날 빙하시대와 홍수처럼 말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새롭게 다시 시작되어지는 지구로 거듭났으면 좋겠다는 게 나 한사람만의 생각일 뿐일까? 문명의 발전만이 능사는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조화로움을 인정할 때 안정되어진다.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이 보여주고 있는 유엔미래보고서는 그저 유추해 본 이론에 불과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서 파생되어진 미래의 모습일 것이기에 가슴 한 켠이 싸아해진다.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에 한계점이 있기는 한 것인지.... 얼마나 더 많은 것을 가져야 이제 되었다고 손을 놓게 되려는지... 알 수 없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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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정신분석
이창재 지음 / 아카넷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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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먼저 만났던 신화는 아마도 그리스로마신화가 아닐까 싶다. 어릴 때 신비로운 이미지로 다가왔던 건 두말 할 필요도 없이 공룡이야기와 신들의 전쟁이야기였다. 학창시절 이윤기님의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었을 때의 짜릿함으로 지금까지도 신화에 빠져있는 내 자신을 보게 된다. 신들끼리의 싸움도 싸움이지만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중간계의 인물들이 펼치는 무용담이 주는 재미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속에 내재된 정신적인 의미를 한번 분석해보자고 한다. 철저히 학문적인 입장이다. 자신의 무의식에 잠재된 '아이의 마음'과 '원시인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자고 한다. 그런데 그 두가지의 주제가 상당히 흥미롭다. 심리적인 면에서 자신을 말할 때 누구나 자신안에 또하나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말을 한다. 그것뿐인가, 거기에 하나 더 보태 원시적인 마음 또한 숨겨두고 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렇다면 아주 먼 시절부터 우리에게 각인된 인류의 근원적인 심리상태를 파헤쳐보자는 말일까? 어쩌면 우리가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는 그 어떤 것을 찾아나서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속에는 세계의 여러 신화가 담겨 있다. 한국신화부터 중국, 일본, 수메르, 이집트, 북유럽, 그리스... 덕분에 다시한번 세계의 신화와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책속의 신화들을 만나다보니 왠지 정형화되어진 느낌이 든다.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가르는 것처럼 글자로 표현할 수 있는 시기에 신화의 틀이 만들어졌다고는 해도 어떤 이유에서인가 무언가를 위해 혹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흔적을 지울 수 없는 까닭이다. 우리의 신화 역시 조선시대에 이르러 어떠한 형태를 갖추었다는 말이 보인다. 대표적으로 바리데기 신화를 들었다. 그저 흥미롭게 읽었던 내용속에서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내면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게 되니 왠지 신비로움이 가셔지는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그럴수도 있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한다. 일곱째 공주로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고 알 수 없는 곳에서 키워진 바리데기가 자라서 자신을 버린 부모를 살리기 위해 서천서역국으로 떠난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거기에 여러 주인공의 심리적인 상태를 저 밑바닥부터 보여주자고 작정한 저자의 목소리가 상당히 크게 들리기도 한다.

 

신화에는 그 민족의 고유한 정신성이 담겨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신화 혹은 설화의 주인공들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파헤치며 그 이야기가 만들어내고 있는 부분들을 속속들이 살펴보는 시선이 이채롭다. 신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각 민족마다의 창세신화가 재미있다. 카오스 상태였던 우주로부터 비롯되어지는 세상의 모든 틀. 그 틀이 만들어지기 위한 과정이 각 민족마다 다르게 표현되었긴해도 가만히 살펴보면 어느 정도의 공통점도 보여진다. 수많은 영웅신화부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같은 가족간의 엉킴을 정신분석으로 풀어내는 저자의 말을 듣다보니 은근히 몰입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반복적인 표현들이 많이 보여 약간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는게 흠이라면 흠일까?

 

신화에서 볼 수 있는 샤머니즘이나 종교적인 내용은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특징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건국신화보다는 창세신화가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박제상의 '부도지'에서 말했던 마고할미처럼 거대한 존재가 어느날 산을 만들고, 강을 만들고, 바다를 만들고 아울러 비를 내리고 바람이 불게 하는 것과 같은 자연의 법칙을 지배하는 여러 신을 만들었다. 일본의 창세신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도, 중국의 거인 반고도, 이집트의 오시리스와 이시스도, 북유럽의 오딘과 프리그도, 그리스의 제우스도... 반가웠다. 이집트 태양의 신 호루스를 만나는 시간도, 북유럽 광명의 신 발데르를 만나는 시간도... 정말 오랜만에 다시 읽게 된 신화였는데 역시 재미있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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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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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네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좋아하지않는 형식이지만 그렇다고 소설집이라고 붙이기에도 애매했던 모양이다. 큰 틀에서 보면 죽음과 관련된 것들을 주제로 삼은 듯 하다. 죽음이란 건 무엇일까? 특정 종교에 대입해보면 죽음과 삶은 하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만도 않다. 말처럼 죽음과 삶이 하나라면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의식 또한 바뀌어야 옳다. '죽음'을 다룬 네 편의 이야기속에는 그 '죽음'이 불러오는 과거가 보인다. 먼 과거와 현재의 죽음은 지금의 나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인지 한편으로는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우리는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고 있을까? 문득 어느 시인의 시구절이 생각난다. 죽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잊혀지는 것이 두려울 뿐이라던. 누군가의 기억속에서,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사라져갈 자신의 모습이 두려운 것은 영원히 사랑을 꿈꾼다는 말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그만큼이나 작은 존재일런지도 모르겠다. 혼자서는 온전히 설 수 없는 미완성의 존재로 하냥 살아가기엔 이 세상이 너무 버겁다.

 

<환상의 빛>이라는 책제목을 보면서 두개의 장면이 떠올랐다. 하나는 오래전의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 보았던 장면이고 하나는 터널 저편으로 보이던 작은 점 하나였다. 어둠속에서 그 빛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의 움직임처럼 우리는 알 수 없는 어떤 것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기도 하고, 수없이 좌절하기도 한다. 먼저 떠나버린 남편을 가슴에 품은 채 그 풀리지 않는 죽음의 미스터리를 놓을 수 없었던 유미코에게 있어 남편은 어떤 의미였을까? 지난했던 어린 시절의 삶을 함께 공유했기에 그것만으로도 서로를 향해 위안의 눈빛을 주고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사도 없이 훌쩍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남편때문에 힘겨워하던 유미코가 새남편을 찾아 오랜 시간을 달려왔던 그 곳에는 바다가 있었다. 그 바다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보여지기도 하지만 어느날에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의 존재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현실을 이겨내지 못한채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유미코에게 새남편은 말했지. 혼이 빠져나가는 병이 들었던 거라고.

 

예고도 없이 폭풍이 불어왔던 그날 새벽녘에 배를 타고 게를 잡으러 나갔던 동네 아낙의 말을 빌어 그 환상의 세계를 보여주던 장면은 은근히 호기심을 자극한다. " 아, 그때는 왜 그렇게 바다가 고요하고 아름다운지 정신줄을 놓칠뻔 했다니까.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아차 싶었어.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 거기서 빠져나왔지. 조금만 늦었어도 나는 돌아오지 못했을거야." 남편도 그랬을거라고, 위험을 코앞에 두고도 꿈처럼 느껴지던 그 환상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거라고... 다시 터널 저편의 작은 빛이 보인다. 아무리 버거운 현실이라해도 그것은 잠시 머무는 터널안의 어둠일 뿐이라고. 환상... 너무 멀리있는 무엇, 결코 가질 수 없는 그 무엇, 그러나 신기루처럼 누구나에게 보여지는 아름다운... 다시 생각한다. 죽음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죽고 싶어서 죽는 것일까? 살기 싫어서 죽는 것일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남편의 자살로 인한 상실감은 유미코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영화속에서는 유미코의 방황과 바다가 어떻게 그려졌을까? 햇빛을 받으며 출렁거리는 그 바다의 아름다움이 유미코의 무뎌져버린 감정을 다시 깨어나게 할 수 있을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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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기장 이야기
송영애 지음 / 채륜서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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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나 제삿날이 다가오면 놋그릇을 꺼내 모래나 연탄재로 닦으시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엄마를 거든다고 옆에서 엄마를 따라하던 기억도 있다. 그러면서 엄마는 말씀하셨었다. 딸들만큼은 맏이에게 보내지 않겠다고. 아주 오래도록 그렇게나 많이 이사를 다니면서도 목기는 버리지 않았었다. 지금에야 사기나 목기보다 더 편한 스테인레스 제기가 있어 편하긴 하지만 말이다. 식기장 이야기는 오롯이 여자들만의 이야기다. 옛날에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면 큰일나는 줄 알았다고 하니 하는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집에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물품들이 꽤나 많았었던 것 같다. 가마니부터 멍석이나 절구, 쌀뒤주나 제기, 채반, 광주리, 조리나 옹기 정도는 아마도 기본적인 생활용품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새우젓 독이나 돌확, 맷돌이나 가마솥은 내 기억속에 없다. 곳간 열쇠를 누가 가졌는가에 따라 그 집의 실세가 정해졌다는 말속에서 고된 시집살이를 보게 된다.

 

식기장이 안고있는 우리 문화의 여러 면을 보게 된다. 신선로나 구절판과 같은 식기장보다는 고리나 소쿠리 광주리에 더 정이 가는 건 무슨 까닭인지....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얘진다는 옛이야기처럼 도깨비가 와서 신발을 가져가지 못하게 체를 걸어놓았다는 야광귀이야기는 많이 들어왔던 것이다. 지금이야 많이 볼 수 없는 풍속이지만 조리를 사서 걸어두었던 기억도 있다. 복조리다. 그런데 그걸 거는데도 어떤 규칙이 있었다는 게 재미있다. 소쿠리나 광주리는 지금도 많이 사용하지만 옛날과 같은 재료는 아니다. 시장에 나가보면 플라스틱 소쿠리나 광주리들은 넘쳐난다. 한때 죽공예를 배워보겠다고 이것저것 만들기도 했었는데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만들어진 작품을 보면서 스스로 대견함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쌀뒤주를 이야기하면서 운조루와 경주 최부잣집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아무나 퍼갈 수 있도록 행랑채 곁에 두었다던 운조루의 뒤주와 최부잣집의 여섯가지 가르침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처음 답사를 하면서 양반집 부엌에 엄청나게 걸려있던 소반을 보면서도 그 의미를 이해하기까지 한참 걸렸었다는 생각을 하니 살풋 웃음이 나기도 한다. 다시 생각해보니 단순한 식기장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우리의 삶이요, 역사의 한 단면이었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전통적 도량형 자·되·저울을 소개했던 부분과 주령구 이야기는 이채로웠다. 도량형의 '度'는 길이를 재는 단위이고, '量'은 부피를, '衡'은 저울로 무게를 다는 것이다. 성인 남자가 한 손에 담을 수 있는 한 줌 곡물의 양이 한 '홉'이고, 양손에 담을 수 있는 한웅큼이 한 '되', 그 열 배면 한 '말'이다. 한 사람 키만큼의 거리가 '장'이고, 반걸음은 '규', 한걸음은 '보'다. 한뼘과 한아름의 차이야 누구나 다 알 것이고.... 우리가 사용하던 것은 중국에서 들여온 척관법이었다. 길이는 '자', 무게는 '관', 넓이는 '평', 부피는 '되'로 사용했다. 그렇다면 미터법은 언제 들어왔을까? 1902년에 처음 도입되었다고 하지만 일본 도량형제와 미터법을 절충해서 썼다고 한다. 그렇다고 척관법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다. 한번 뿌리박힌 것은 한번에 뽑아내기 힘든 까딹이다. 아파트 크기를 미터법보다는 평수로 이야기하는 게 더 이해하기 편한 게 솔직한 말이니... 안압지에서 발견되었다는 주령구는 일종의 주사위로 술자리에서 썼던 놀이도구라고 한다. 각 면마다 각기 다른 벌칙이 적혀 있다는데 그게 참 재미있다. 그 열네가지의 벌칙으로 신라인들의 음주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고해서 찾아보았다. 금성작무 (禁聲作舞)- 노래없이 춤 추기(무반주 댄스), 중인타비 (衆人打鼻)- 여러 사람 코 때리기, 음진대소 (飮盡大笑)- 술잔 비우고 크게 웃기(원샷), 삼잔일거 (三盞一去)- 술 석잔을 한번에 마시기, 유범공과 (有犯空過)- 덤벼드는 사람이 있어도 참고 가만 있기, 자창자음 (自唱自飮)- 스스로 노래 부르고 마시기, 곡비즉진 (曲臂則盡)- 팔을 구부려 다 마시기(러브샷), 농면공과 (弄面孔過)- 얼굴 간지러움을 태워도(놀려도) 참기, 임의청가 (任意請歌)- 마음대로 노래 청하기, 월경일곡 (月鏡一曲)- 월경 노래 한 곡 부르기, 공영시과 (空詠詩過)- 시 한수 읊기, 양잔즉방 (兩盞則放)- 두잔이 있으면 즉시 비우기, 추물막방 (醜物莫放)- 더러운 것 버리지 않기, 자창괴래만 (自唱怪來晩)- 스스로 괴래만을 부르기(도깨비 부르기) 가만히 살펴보면 지금 우리의 술문화속에서 볼 수 있는 것들도 꽤 보인다.

 

찬장과 찬탁 이야기를 보면서 어린시절을 떠올린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지금처럼 군것질거리가 그다지 많지 않았었다. 연탄불에 밥을 하던 시절이었지만 오래도록 뜸을 들이면 먹음직스런 누룽지가 솥단지 모양으로 생겨 그걸 간식거리로 먹었었다. 밥을 뜸들이던 시간동안 밥위에 얹어 익혔던 계란찜도 그렇고, 되직한 전분을 밥위에 올려 찌면 감자떡이 되기도 했었는데.... 보리밥과 분식을 장려하던 시절이었다. 지나쳐간 것은 모두 추억이 되고 역사가 된다. 생활사 박물관에 가고 싶어진다. 오늘 저녁에는 어린 시절에 많이 먹었던 청태김이나 구워 먹어볼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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