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속에 숨은 인문학 - 옛시의 상상력 코드를 풀다
이상국 지음 / 슬로래빗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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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는지 방송에서 '중국한시기행' 이라는 프로를 본 적이 있다. 발길 닿는 곳마다 그 경치의 아름다움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지만 사이사이에 낭송해주던 소식의 싯구절들이 참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소식은 아버지 소순, 동생 소철과 함께 당송8대가에 속하는 사람인데 아마도 그 소식의 흔적을 따가갔던 일정이 아니었나 싶다. 文人이라하면 시와 글, 그림에 모두 능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을 터다. 그러니 3부자가 나란히 시대를 대표하는 文人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일 것이다. 소식의 호가 동파거사이니 우리 귀에 익숙한 소동파가 바로 소식이다. 재주정이나 서련정과 어울어지던 소식의 일화들이 재미있었다. 載酒亭, 소식이 술을 싣고와서 즐겼다는 곳으로 그곳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었다. 瑞蓮亭은 두 아들을 시험장에 보내놓고 애를 태우던 아버지 소순이 이 곳을 지날 때 한가지에 연꽃이 두개가 피어서 두 아들 모두 합격할거라고 기뻐했다는 곳으로 상서로운 연꽃이 피었던 곳이라하여 그 이름을 붙였다 한다. 보면서 문득 담양의 息影亭 이 떠올랐다.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았을 당시의 풍경을 떠올리며 그곳에서 잠시 머물렀었는데, 좋다는 중국의 풍경속을 주유하며 보고 듣고 느꼈던 모든 것들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을 것이니 어찌 좋지 않겠는가 이말이다.

 

까놓고 말해 '詩'라는 건 참 어렵다. 은유적인 표현때문에 그 뜻을 헤아리기가 만만찮은 글도 꽤나 많다. 그래서인지 나는 너무 어려운 자신만의 말로 쓰여진 글이나 詩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거기다가 옛시라니.. 당연히 더 어려울밖에. 우선 한자를 알아야 하고 같은 한자라도 그 글자가 품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하니 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단 한줄의 문구에도 수많은 뜻이 담겨있을 수 있다. 그 몇구절의 시구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때로는 역사의 현장을 담기도 하고, 자신만의 철학을 담기도 하며, 그때그때의 감정을 담기도 한다. 때로는 넓게, 때로는 깊게, 때로는 크게, 때로는 소심하게 숨겨져 있다는 말이다. 그것뿐일까? 한편의 옛시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 사람이 처했던 당시의 상황을 알아야하는 경우도 있고, 그때에 그가 머물렀던 곳이 어디였는가를 알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시를 지은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니 옛시의 풍미를 제대로 느낀다는 게 나같은 사람에게는 녹녹치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그 안타까움으로 이렇게 옛시를 소개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으리라.

 

틈새마다 끼워넣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찬란함'이란 부제가 눈길을 잡는다. 어라? 읽다가 다시 꼼꼼하게 읽게 된다. 이런! 그러다가 실소를 터트리기도 한다. 일단 재미있다. 이렇게 해석할수도 있구나 싶어 지금까지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던 짧은 지식과 비교하며 읽게 된다. 가시리, 처용가, 쌍화점, 만전춘... 단 네개뿐인 이야기가 상당히 큰 여운을 남긴다. 처용가만 신라향가이고 가시리, 쌍화점, 만전춘은 고려가요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슬프디 슬픈 이야기였는데 그저 글로만 익혀놓고 치기어린 마음으로 옛가요를 외웠던 순간들이 부끄러워진다. 쌍화점의 끝부분에서 지은이의 촌철살인같은 글을 보게 된다. 신라의 사랑은 처용가에서 치명적으로 무르익었고, 고려의 사랑은 쌍화점에서 뼈와 살이 타들어 갔다. 조선은 처용가와 쌍화점을 두려워하여 그것을 가리고 욕하고 바꿨지만, 틈날 때마다 욕정과 불륜의 이 노래들은 튀어나왔다. 처용가를 유교의 관습 속에 끌어들이고 쌍화점을 통제 가능한 욕망으로 조절해 나간 것이, 조선의 관기 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189쪽) '詩' 라는 짧은 문구속에 담아내지 못할 것이 없구나!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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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 북멘토 그래픽노블 톡 2
박건웅 지음, 최용탁 원작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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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을 다루었던 <지슬>이란 영화를 보았을 때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걸 보면서도 멍하니 앉아 있던 기억이 난다. 영화가 끝났는데도 한동안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슴 한켠에 싸한 바람이 불어왔었던 그 순간을 어쩌면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이 나를 또 그렇게 만들어버릴 것만 같아 두려워진다. 우리는 어쩌다가 저리도 아픈 역사를 품고 살아야만 하는지, 우리는 어쩌다가 한하늘을 이고 살았던 사람들의 가슴에 저토록이나 모진 기억을 심어주어야 했는지.... 여기저기 들쑤셔보면 저렇게 아픈 가슴 부여잡고 살아가는 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흔이 너무나도 많을 것이기에...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천번에 가까운 전쟁을 치루었다. 같은 민족끼리 니편 내편 갈라 서로 싸움질 한게 한두번은 아니지만 있어서는 안되었을 전쟁 중의 하나가 6.25였다. 그 6.25를 배경으로 둔 사건이 바로 국민보도연맹사건이니.


1949년 10월 좌익 전향자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것이 국민보도연맹인데 좌익세력을 색출할 목적도 있었겠지만 그들을 통제하거나 회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조직이기도 하다. 하지만 썪어빠진 실적주의 때문에 사상범이 아닌 민간인들까지 등록되기에 이르렀고, 6.25가 일어나자 위험요소를 제거한다는 목적으로 그들 모두를 학살했다. 그것도 우리의 군과 경찰의 손으로. 자신들이 왜 죽어야하는지도 모른채 그렇게 죽어간 것이다. 주검마저도 제대로 처리해주지 않아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그들의 유골이 그 때의 그 사건을 증언해주었다. 한쪽만 그렇게 했으면 그나마도 덜했을 것을 남쪽으로 내려온 의용군들조차도 보복이라는 이유로 또다시 많은 사람을 학살했다. 그 처절함과 처참함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어 물푸레나무의 기억을 빌려 이야기해야만 했던 저자의 속내가 절절하게 전해져온다.


투박한 목판화 형식으로 그려서인지 이야기의 무게가 녹녹치않다. 그림일뿐인데도 그 장면장면을 바라보기가 쉽진 않았다. 그 한컷속에 담긴 의미가 너무나도 크고 깊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사건이 어디 이것뿐일까? 그 들춰지는 민낯이 부끄러워 외면했었을지도 모를 역사의 단면은 많다. 그 전쟁을 치루어냈던 나의 엄마는 지금도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신다. 그 때는 정말 너무했었다고. 어떻게 된게 우리쪽 사람들이 더 지독하게 굴었었다고. 거친 그림만큼이나 거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껄끄러운, 그러나 외면할 수 없는 그런.... 손목을 묶이고, 발목을 묶이고 철사줄에 엮여 끌려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하다. 죽음의 순간에서도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던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2009년 11월 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국가기관에 의해 민간이 희생되었다는 걸 확인했다고는 하지만 그 사건에 대한 조사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너무 늦지 않게 그들의 영혼을 달래주어야만 한다. 오죽했으면 그림을 저렇게 그렸을까? 수많은 짐승들을 산채로 매장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오래되지 않은 그 일과 묘하게 겹쳐진 만화속 그들의 죽음이 서늘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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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피시 - 제23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오사키 요시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문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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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모두 슬프거든. 아무리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우쭐거리며 사치미 뚝 떼고 걸어가는 사람도 누구나 채워지지 않는 빈틈 같은 걸 갖고 사니까. 다들 외로워...(-171쪽)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이나 인연을 갈구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은 어떻게 구분되어질까? 그 모호한 기준앞에서 잠시 망설인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수많은 인연과 맺어진다. 그 인연이 오래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을 것이고, 그 인연이 좋은 인연이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물론 있을 것이다. 우연한 만남... 그 우연한 만남이 아주 소중한 인연으로 자리잡게 되기도 하고 필연적으로 만나야만 할 인연도 있을터다. 만약 이 사랑이 정말 진심이었다면, 이 세상 어딘가에서 반드시 재회하게 될거라고 유키코는 말했지만 십구년만에 다시 만난 유키코와 마지막으로 나눈 말은 '안녕'이었다. 십구년동안이나 미루어두었던 그 말... 길을 헤매다가 정말 우연히 만났던 유키코와 그토록이나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며 아픔을 나눠가지려 했었던 그 마음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유키코의 말대로 사람들은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은 달라진다. 그렇게 유키코와 야마자키가 헤어지게 되었던 것처럼. 누구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선택의 기로에 서게되지만 선택의 기준은 항상 자기자신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게 된다.


파일럿 피쉬.. 물속에 미리 넣어두면 수조의 상태를 물고기가 살아가기 좋은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준다는 물고기. 그런 물고기가 정말 있을까? 물고기를 길러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속에도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곁에 두고도 모른채 살아간다면 왠지 아쉽고 또 억울할 것 같다. 이 책은 에로잡지를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는 야마자키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있다. 묘하게도 과거와 현재가 겹치며 하나의 이야기로 엉키는 상황에 마음을 빼앗긴다. 굳이 야마자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투명막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 남자의 일상이 낯설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모습, 그 자체일 뿐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상황에 처하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가 어떤 모습인지.


나이를 먹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그렇게 쌓여만 가는 그러면서도 두 번 다시 손이 닿지 않는 것들이 늘어가는 게 두렵다. 분명 지금 이 순간처럼 잊을 수 없는 행복하고 조용한 시간 하나하나가...(-189쪽)


한번 맺어진 인연은 헤어질 수 없다는 말이 여운을 남긴다. 끊을 수 없는 인연의 고리... 곁에 없는데도 꺼지지않는 불꽃처럼 그렇게 나의 시간속에서, 나의 기억속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좋은 일일까? 좋든 싫든 어떻게도 할 수 없는 현상이니 어쩔 수 없다. 삶의 언저리에서 언제고 내 삶속으로 파고들수 있는 것이 기억인 까닭이다. 글자를 통해 눈으로만 느껴지는 이 책의 깊이는 얕다. 그러나 그 글자밑에 숨겨둔 의미는 한없이 깊다. 십년만에 다시 읽은 책인데 그 때나 지금이나 그 깊이를 알 수 없음에 허를 찔린다. 내가 느끼는 일본소설의 매력이다. 그때와는 또다른 어떤 여운이 내게 남는다. 색다른 경험이다. 문득, 가슴 한켠으로 싸늘한 바람 한점이 지나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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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박물관 산책 - 문화인류학자 이희수 교수와 함께하는
이희수 지음 / 푸른숲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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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했다는 신화속의 미다스왕이 실제 인물이었다고? <벌거벗은 임금님>과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모델이었다고? 그런데 나는 왜 그저 신화속의 인물로만 생각했었던 거지? 여자들이 요란한 옷을 입고 현란하게 흔들어대는 belly dance 가 단순히 다이어트용이 아니라 하렘의 여인들이 술탄을 유혹하기 위해 추었던 춤이었다고? 그런 역사가 있는 춤일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세계최초의 카페가 터키에서 시작되었단다. 바로 이스탄불이 카페 기원의 도시였다는 말이다. 수도사들이 밤새 기도하고 명상하면서 마시던 음료가 커피였는데, 모카 원두를 끓여 귀족과 지식인에게 파는 일반 카페가 1534년에 문을 열었다고 하니 유럽보다도 훨씬 빨랐다는 말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이 충돌할 때, 지금의 레바논 지중해 해변에 페니키아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다. 그런데 거대 제국들이 사용했다는 수많은 문자들을 제쳐두고 이 작은 나라의 문자가 오늘날 알파벳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일부 권력층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제국들의 문자와는 달리 먹고 살기 위해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문자체계를 만든 까닭이었다.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니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고자 했다는 세종대왕과 우리의 한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이슬람문화권인 터키의 여기저기에서 불교문화의 상징인 연꽃문양 장식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거였다. 진흙탕 속에서도 맑게 피어나는 꽃송이하며, 다른 꽃과는 달리 한 줄기에서 꽃이 지면 또 다른 줄기에서 꽃이 피어나는 까닭에 '영원'의 상징성을 갖는다는 꽃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무리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결국 내세를 상징한다던 연꽃문양의 시작이 불교하면 생각나는 인도도, 중국도 아닌 이집트였다는 것이 놀라웠다. 실제로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을 살펴보면 벽면이 온통 연꽃으로 장식되어 있다고 하니 아무래도 죽기전에 가보고 싶은 곳 목록에 이집트를 포함시켜야 할 것 같다.

 

아라베스크... 낯선 말은 아니다. 꽃이나 나무, 덩굴과 같은 식물형상에 기하학적인 아랍어 글꼴의 장식성을 더해 완성한 문양을 아라베스크라고 한다. 그런데 이 단순해보였던 말속에 참으로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물론 같은 것을 두고도 서로의 문화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긴 하지만 그 의미를 각자의 문화에 맞게 해석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재미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종교적인 금기때문에 사람이나 동물을 형상화한 문양을 쓰지 않는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서로 다른 의미에 대해 따져 물을 필요도 없다. 화려한 색의 단순한 문양이 반복성과 대칭 구도를 보여주고 있는 아라베스크 문양... 어디서부터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무늬의 반복과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내는 무한의 세계속에 신의 위대함을 담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뿐. 그런데 그 아라베스크 문양이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널리 쓰였단다. 궁궐이나 사찰의 화려한 단청문양으로, 청자나 백자같은 도자기에 그려지기도 했고, 전통 가옥의 문살에 쓰이기도 했던 '당초문'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그 원형이 바로 아라베스크라는 말이다. 놀랍지 않은가! 영원불변해야 하는 신의 의지를 표현했다는 아라베스크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가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는 터키. 터키의 역사를 짚어보면 터키인의 조상이 훈족과 투르크족으로 우리의 역사책속에서 만나는 흉노와 돌궐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와는 이웃으로 지냈던 사이였다는 말인데 결국 중국에 밀려 아나톨리아 반도로 이주했다. 우리나라처럼 반도의 형상을 하고 있어 흑해, 에게해, 지중해에 둘러싸여 있으니 살기에 아주 적합한 땅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리적 여건으로 볼 때 여러 문화의 충돌을 짐작할 만 하지 않겠는가. 터키의 정식 국명은 터키 공화국이다. 공화국이란 말이 보여주는 것처럼 여러 민족과 문화가 융합된 나라일 것이다. 앙카라, 이스탄불, 콘스탄티노플, 비잔틴제국, 파묵칼레, 카파도키아... 터키, 하면 떠오르는 말이 참 많다. 꼭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나라, 터키. 터키를 생각하면 공연스레 흐뭇해지는 감정이 인다. 첫째는 동서양의 문화가 함께 공존한다는 말 때문이고, 둘째는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여 서로의 종교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는 문화적인 특성때문이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의미들이 공존하는 그곳, 그런 곳이라면 아무런 편견없이 둘러볼 만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터키는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놓았다고 한다. 책의 여정을 따라 여러 박물관을 들러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어쩌면 나라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만 같은 터키. 책의 여정을 따라 가본 곳이 무려 17곳이나 된다. 성 소피아 박물관, 톱카프 궁전 박물관, 이스탄불 거리 박물관, 안탈리아 고고학 박물관, 괴레메 야외 박물관, 히타이트 현장 박물관, 이슬람 예술 박물관 등등...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궁전 박물관, 거리 박물관, 고고학 박물관, 현장 박물관, 야외 박물관처럼 이름이 저마다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얼마전 네팔을 강타한 지진으로 오랜 세월을 버텨낸 인류문화의 유산이 한순간에 붕괴된 모습을 보면서 무척이나 안타까웠었는데, 터키 역시 가는 곳마다 인류문명의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으니 터키인들의 자긍심은 정말 대단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모든 문명은 터키에 빚을 지고 있다!.. 책표지에 써있는 말이다. 그만큼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유산이 가득하기도 할 것이다. 해도해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이야기들... 섞임과 공존이 함께 머무는 곳, 터키. 제대로 책을 낸다면 아마 시리즈물로 나와야 할지도 모르겠다. 책속에 실린 사진을 통해 간접적인 답사를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황홀한 순간이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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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그림자놀이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박소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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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조때 문체반정이 있었다. 새로운 문체를 패관잡문이라 하여 배척하고 그 옛날의 글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쳤던 사건이다. 그런데 그 문체반정의 주된 인물이 왕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 일로 인하여 규장각이 생겨나고 그곳에서 옛 경전을 논하게 했다. 가만히 그 속을 들여다보면 왕권에 도전하지 말라는 암묵적인 경고가 들어있었다. 사실 당시의 패관소설이라는 것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하잘 것 없는 내용처럼 보여도 그 속에 담겨진 의미들은 꽤나 묵직했다. 현재의 잘못된 것을 타파하여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한다고 외치기도 했고, 뜻은 있으나 짜여진 틀에 맞춰지지 않아 그 뜻을 펼져볼 수 없었던 이들의 욕망이 그 속에서 꿈틀대기도 했다. 죽어지내야 했던 여인들의 속울음을 토해내기도 했고, 신분낮은 사람들의 신분상승 욕구가 은근슬쩍 그 패관잡문을 통해 세상으로 풀어져 나갔다. 그러니 왕으로써는 당연히 금지시킬 수 밖에... 어쩌면 세상의 변화를 이미 감지한 왕의 두려움이 그렇게 표현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세상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소설들을 만나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세상속으로 나오지 못한 이야기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낯익은 이야기들이 많다. 구전소설, 혹은 전래동화, 그것도 아니면 민담이나 설화라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책을 읽으면서 이건 뭐지? 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야기들이 하나 둘씩 튀어나와 내 앞에 줄을 서는 모양새가 왠지 껄끄럽기도 했다. 그 절절한 사랑을 만들어냈던 도미부인설화도 보이고, 북유럽신화와 살짝 섞어놓은 듯한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가 보인다. 어렸을 적 한번쯤은 갖고 싶어했던 도깨비감투 이야기도 보이고, 은근슬쩍 지나쳐가는 수로부인의 <헌화가>도 보인다. 무엇을 말하고자 함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어찌보면 주인공 조인서라는 날줄과 여러 설화들이 씨줄처럼 얽혀있는 것처럼도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 주인공 조인서는 조인서대로,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따로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고 있음이다. 많은 이야기와 같이 주인공 조인서가 쫓아가는 사건 역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져 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결론이 없다.

 

꽃그림자놀이... 이 제목이 주는 느낌은 참으로 묘하다. 어렸을 적에 실뜨기만큼이나 재미있었던 손가락 그림자놀이가 있었다. 불빛에 비춰진 손가락의 그림자가 여러가지 모습으로 벽에서 다시 태어나 이야기를 만들곤 했었다. 다시 묻게 된다.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그러다가 문득 짧은 생각이 스친다. 말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글로 태어날 수도 있다고.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혹은 말로 할 수 없어서 글로 다시 태어나야만 했던 그 절절함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이 시대 소설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는 책표지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정조에게 변해가는 세상을 말하고 싶어했던 그들의 소리없는 외침처럼 우리가 드러내지 못한 이 시대의 수많은 고통과 아픔들이 소설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아직은 미약하다. 자신의 목소리를 찾지 못하고 그저 시대의 흐름에만 발맞춘다면 주인공 조인서와 이야기들이 서로 얽히지 못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테니... 왠지 알 수 없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아이비생각

 

소설은 일종의 그림자놀이예요. 현실이 실체를 드러낼 수 없으니, 대시 그림자로 보여주는 거지요. 실체가 없으면 그림자도 존재하지 않지만, 그림자는 실체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아요...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비추면서도, 때로는 의도하지 않았던 그림자만의 재미있는 세계가 펼쳐지니 말이에요. (-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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