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정벌 - 기획에서 병탄, 패전까지 1854~1945
이상각 지음 / 유리창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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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는 친척은 이웃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자주 보는 탓에 생겨나는 정이 있는 까닭일 것이다. 그런가하면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는 말도 있다. 가까이 살아서 자주 봐야 하는데 소 닭보듯 하거나 견원지간처럼 지낸다는 게 영 껄끄럽다. 마치 지금의 한국과 일본처럼. 관계라는 게 참 묘해서 잘 지낼때는 간이라도 빼줄것 처럼 이것도 저것도 나눠주고 나눠받지만, 문제가 생겨 틀어지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는 분노와 미움이 그 관계속에 둥지를 튼다.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고 있는 한일관계를 생각한다. 단순히 과거사 때문일까? 경쟁심에서 생겨나는 일종의 자존심 싸움처럼 보이기도 한다. 책을 펼치면 그들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라는 머릿말이 보인다. 뭐가 변하지 않았다는 말이지? 우리는 뭔가 마땅치 않은 일이 생기면 우선 남탓을 하는 못난 습성을 가지고 있다. 남이 변하길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변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게 정석이다. 상대방을 내게 맞추려고 하기 보다는 그 문제의 근원을 찾아 내가 변하면 된다는 말이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말이 있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 殆 : 적과 아군의 실정을 잘 비교 검토한 후 승산이 있을 때 싸운다면 백 번을 싸워도 결코 위태롭지 아니하다" 라는 말이다. 거기에 덧붙인 말을 한번 더 살펴보자면 이렇다. " 負 : 적의 실정은 모른 채 아군의 실정만 알고 싸운다면 승패의 확률은 반반이다. 敗 : 적의 실정은 물론 아군의 실정까지 모르고 싸운다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한다.” 우리는 흔히 克日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선적인 것은 知日이다. 적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과거사를 생각하며 분노하기 보다는 그들을 속속들이 아는 게 먼저라는 말이다.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출발했을 것이다. 그런 까닭인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일본인의 이름들은 다시봐도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다.

 

제국주의에 의해 아시아 침략에 앞장섰던 이토 히로부미. 조선에 을사늑약을 강요하고 헤이그밀사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가 안중근에게 저격당하여 죽은 인물이다. 명성황후시해사건의 조종자였던 이노우에 가오루. 헌병과 경찰을 동원하여 공포분위기를 만들었던 식민지 무단통치의 주역, 데라우치 마사타케. 고종 독살의 배후인물이면서 3·1운동 당시 잔혹한 탄압으로 수많은 한국인을 학살했던 하세가와 요시미치. 그는 영친왕과 일본여인 이방자의 혼인을 적극 추진시켰던 인물이기도 하다. 內鮮一體라는 말을 내세웠던 미나미 지로. ''라 함은 일본 본토를 가리키는 ''의 첫자이며, ''이란 조선을 가리키는 말로, 일본과 조선이 일체라는 뜻이다. 창씨개명이나 조선어 사용금지, 징병제도와 같은 민족 말살 정책을 강행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조선인도 내지인과 똑같은 대접을 받게 하겠다는 감언이설로 문화정치를 내세웠던 사이토 마코토. 그의 통치하에 식민사관이 비롯되었다. 어용학자와 친일 학자가 이 시기에 많이 양산되었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그에게 수류탄을 던졌던 강우규 의사를 우리는 기억한다. 징용과 징병으로 조선의 젊은이들을 산업시설과 전쟁터로 내몰았던 이소 구니아키.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이름들이다. 그런가하면 조선의 막사발을 극찬했던 야나기 무네요시 같은 사람도 있었다.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경시하는 조선의 풍조를 안타까워 했다던 그로 인해 우리문화의 진정한 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구한 것은 또 있다. 우리의 광화문이다. 일제에 의해 사라질뻔 했던 광화문을 이전하고 복원한 것이 그의 공이기도 하다. 그에 대해 이런 저런 주장이 많이 나오고는 있다 하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중의 하나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조선의 남자 박열을 사랑했던 일본여인 가네코 후미코도 있었으며, 법정에 선 조선인을 위해 힘을 썼던 인권변호사 후세 다쓰지도 있었다. 조선의 모든 것을 사랑했으며 조선의 전통과 문화를 온 몸으로 지켜냈다던, 죽어서도 조선에 남고 싶으니 조선식으로 장사를 지내달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던 이사카와 다쿠미라는 사람도 있었다.

 

만약에 우리에게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일본처럼 서구근대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쇄국정책을 쓰지 않았어도 기존의 체제가 무너질까 전전긍긍했을 조선의 관료들 모습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까닭이다. 아시아 최초로 입헌 군주제와 의회제 민주주의 국가로 탄생하게 되었다는 일본의 역사를 보면서 부국강병, 식산흥업, 문명 개화의 3대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는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명칭만 따왔다는 우리의 10월유신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과연 '정한론'이나 '임나일본부설'에 대해 정확히 알고나 있는 것일까? 이 책의 주제는 무겁다. 무겁지만 들 수 밖에 없는 주제다.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1854~ 1945 조선정벌을 하기 위한 기획에서 병탄까지의 상황을 깊게 다루고 있다. 책 표지에 나와 있는 말처럼 아베 신조 총리로 대표되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다시 패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작금의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노뿐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해야 할일이 무엇인지는 어쩌면 우리가 더 잘알고 있을 것이다. 더디게 책장이 넘어갔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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