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안의 낯선 자들 버티고 시리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건 무슨 느낌일까? 책을 덮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뭔지는 알 수 없는데 남겨진 느낌이 상당히 복잡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명쾌하게 말할 수 있는 주제를 찾지 못했다는 말이다. 언뜻 생각해보면 죄책감에 관한 이야기같기도 하고, 또 어떤 면에서 보면 가족이나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자 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깔아놓은 밑밥이 많아서 어느 걸 물어야 할지 헷갈린다. 우연히 열차안에서 만난 두 남자, 가이와 브루노. 어쩌다보니 서로가 미워하는 대상을 죽여주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느 한쪽만의 주장으로 일이 진행되어져버리고 말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어차피 내 삶속에서 사라져주길 바라던 존재가 없어졌다는 게 나쁘지 않았던 탓에 묵인해버리기로 한다. 그렇다면 묵인해버린 사람에게는 어떤 감정이 생겨나게 될까? 더구나 일의 진행상 서로가 미워하는 사람을 죽여줘야 한다는 교환의 의미가 담겨있었으니 단순히 한사람만의 감정으로 일어난 일이라해도 뭔가 찜찜하다는 결론이 나버린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첫번째 살인은 일어났다. 이제 남은 한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가이와 브루노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은 어쩌면 그럴수도 있겠구나 싶은 공감대를 살짝 불러오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과 얽히는 감정선을 따라가다보면 순간 순간 욱, 하고 올라오는 뭔가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쯤에서 묻고 싶어진다. 사람들은 어째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할까? 자기자신조차도 속이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 문득 서글퍼지기도 한다. 자신의 감정을 교묘하게 밖으로 드러내는 사람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안으로 숨긴채 속을 끓이는 사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브루노가 전자였다면 가이는 후자였을 것이다. 놀이공원에서 가이의 아내 미리엄이 변사체로 발견되고, 그 소식을 듣고 불길함을 느끼던 가이에게 "자, 이제 네 차례야" 라고 밀어부치는 브루노의 비열함을 보면서 악마가 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상상하게 된다. 철저하게 계획된 브루노의 살인과정대로 가이는 움직여줄까?

 

흥미롭기는 하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사람의 감정을 들여다본다는 게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빠져들게 되는 분위기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어떤 상황이든 사람들은 자신이 처하게 될 위기를 가장 먼저 파악하게 되는 것 같다. 자신이 잃게 될 것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현실부정, 혹은 외면이다. 현실을 부정함으로써 그 난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현실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또 하나의 자기자신을 만나게 되지. 사이코패스적인 브루노의 모습보다는 끝없이 부인하고 외면하던 가이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내몰리듯이 브루노의 살인계획에 동참하게 되지만 어찌된 일인지 자신이 저지른 살인보다도 아내 미리엄의 죽음에 관한 일들을 모른 척 외면했다는 죄책감이 더 크게 작용한다. 결국 그 죄책감으로 인해 가이의 일상은 망가져버리고, 누군가에게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말함으로써 자신의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가이의 몸부림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 모든 것에 양면성이 있다는 말인가요?"

" 아니요, 그렇게 말하면 지나치게 간단하죠. 사람들, 감정들, 모든 것이 이중적이라는 거죠. 개개인의 마음속에 두 사람이 있는 거죠. 보이지 않는 당신의 일부처럼 당신과 정반대인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있고, 숨어서 기다리고 있죠" (-323쪽)​

결국 가이와 브루노는 하나였다는 말일까? 인간의 감정에 대해 철저하게 까발리는 작가의 문체에서 잔인함이 느껴진다. '교환살인'이라는 동기를 내세워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인간의 감정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뒷맛이 개운치않은 소설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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