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구두당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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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형제의 잔혹동화를 읽어보자고 생각했으면서도 여태 읽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바라보면 참 한심하기도 하지.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내용의 동화들이 사실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말이 상당히 매혹적이었는데.... 원래는 잔혹했던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화로 순화되어졌다는 것인데 그러다보니 결말 역시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을거라는 말이다. 책표지의 그림이나 제목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던 이 책이 바로 그런 동화의 또다른 모습이라는 말때문인지 기대감이 컸다. 책속에 실린 원작만 해도 무려 열여섯편이나 된다.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를 시작으로 <성냥팔이 소녀> 도 보이고 < 개구리왕자>, <황금 거위와 웃지않는 공주님> 과 같은 그림형제의 동화가 있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다만 새로워질 뿐이다... 책표지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글쓴이는 어쩌다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 잔뜩 비틀린 이야기들.. 읽으면서도, 읽고 나서도 뭔가 찜찜하다. 동화가 아름다워야 한다는 편견 따위는 아예 잊어버리라고 하는 것처럼 어디선가 많이 들었음직한 이야기속에 우리의 현실이 담겨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그러니 책속의 이야기들이 밝고 예쁘게 그려지지 않은 건 당연지사다. 자신의 색깔 혹은 정체성 따위는 잃어버린지 오랜 작금의 우리 모습이 <빨간구두당>이란 이야기속에 담겨져 있다. 무채색의 세상속에 불현듯이 나타난 빨간 색. 그 빨강에 현혹되어져 대책없이 따라하기만 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속에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투영되어진다. 스스로 올가미를 만들어 자신의 목을 그 안에 집어넣고 끌려다니는 사람들이 끝내는 빨간구두당을 자처하며 휩쓸려 다니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목적의식도, 목표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러시아 민담이라는 <커다란 순무> 속에서 느껴지는 뒷맛은 씁쓸하다. 지금의 우리에게 보여지는 관료층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동화를 빌려와 이렇게 우리의 현실을 비틀고 있다는 게 어찌보면 속시원할 수도 있겠지만 영 개운치않은 느낌 탓인지 입맛이 쓰다.

 

동화를 각색했으니 읽기 편할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면 착각이다. 은유의 세상이라는 게 그렇다. 쉬운 듯 쉽지 않은, 뭔가 잡힐 듯 하면서도 쉽게 잡히지 않는 그런 세계가 은유의 세상이다. 개인적으로는 편하게 읽혔던 책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동화인 듯 하지만 동화가 아니고, 그렇다고 이미 알고 있는 동화내용을 제쳐두고 그저 어른들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엔 좀 억지스러운 맛도 느껴진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둡고 칙칙하다. <성냥팔이 소녀>를 읽으면서도, <빨간구두당>을 읽으면서도 내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빤히 보여지는 진실을 외면하는 작금의 현실속에서 핑크빛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에게 밝은 미래가 있기는 있는 것일까? 문득, 동화는 그냥 동화로 남아있어주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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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경주 오늘은 시리즈
이종숙.박성호 지음 / 얘기꾼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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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는 나라 자체가 박물관이란 말이 있다. 우리에게 경주는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 어느 곳이든 파기만해도 유물이 나온다는 경주. 경주를 생각하면 항상 아쉬움이 먼저였다. 아주 오래전 학창시절에 수학여행으로 가 본 경주에 대한 기억이 전부였던 까닭이다. 그러다가 몇 년전에 부푼 기대감을 안고 경주를 찾았었다. 하지만 짧은 일정으로 많은 곳을 보지 못했기에 역시 또다른 아쉬움만 남기고 말았다. 하얀 카라와 까만 치마를 펄럭이며 달려오신 분들이 첨성대 앞에서 옛날과 똑같은 자세로 소녀처럼 까르르 웃으며 사진을 찍던 모습이 생각난다. 족히 50대 후반에서 60대 중반으로 보이던 분들은 학창시절 수학여행을 기억하며 당시의 교복을 모두 입고 오셨다는 말씀에 거기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 부러움의 눈길을 받았었다. 경주는 그런 곳이다. 나이 든 사람에게는 잊을 수 없는, 그러나 꼭 한번은 다시 찾아가고 싶은 그런 곳. 그런 경주가 지금의 우리 아이들에게는 우리의 문화를 바라보는 창구가 되었다는 건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천불천탑이란 말을 앞세우는 운주사를 처음 찾았을 때 벅차 오르던 감정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유물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느라 발길이 늦어지는 나를 보고 그렇게 보다가는 오늘 하루 왼종일 봐도 다 못본다며 재촉하던 일행에게 미안해 마음을 추스리기도 했었는데, 경주와 다시 만나는 날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빠르게 걷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경주와 다시 만날 기회만 엿보고 있으니.... 경주. 말만 들어도 이렇게 나를 설레게 하는 곳. 그런 경주를 가잔다.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이끌어주는 이의 발길이 예사롭지가 않다. 각 구간별로 요소요소 들여다보는 눈길도 예리하다. 이런 고수를 따라다닌다면 저절로 공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경주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보고 싶어서 나름 공부를 하고 답사를 떠났다는 글쓴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진리다.

 

경주에 다시 간다면 남산을 꼭 올라보리라!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글쓴이를 따라 오르던 경주 남산길은 황홀했다.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보여주는 사진들조차 너무 소중하게 다가왔다. 경주를 가게 된다면 이 책도 분명 나와 동행하게 될 것 같다. 삼릉의 아름다운 소나무숲에서부터 할매부처라고 불리워진다는 불곡마애여래좌상까지... 내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하는 칠불암마애불상군, 동서탑의 모양이 서로 다른 남산동동서삼층석탑, 황룡사 탑과 같은 신라의 목탑을 연구하는 데 귀한 자료가 된다는 부처바위의 9층동탑과 7층서탑의 모습은 아무래도 직접 가서 봐야 할 것 같다. 부처바위는 탑곡마애불상군을 부르는 또다른 이름이라고 하는데 커다란 바위에 동서남북 어떤 방향에서 보든 다양한 그림이 조각되어 여래상은 물론 보살상, 비천상, 사자와 탑등 무려 34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바위에 탑까지 새겼다니 신라를 불교의 나라라 할 만하지 않은가 말이다. ' 이 편지를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는 신라 소지왕의 일화가 담겨있는 서출지와 이요당의 고즈넉한 풍경이 담긴 한장의 사진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커다란 바위에 부처님의 머리를 덩그러니 올려놓은 모습의 굴불사지석조사면불상 또한 너무 보고싶은 문화재중의 하나다.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었던 순간들이었다. 숙제가 너무 많아지고 말았다!

 

책표지에서 보이는 탑은 감은사지삼층석탑이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에게는 동해안으로 침입하는 왜구의 침략이 고민이었다고 한다. 그것을 알고 있던 문무왕은 자신이 죽은 후에 시신을 화장해 동해바다에 묻어주면 해룡이 되어서 왜구들을 물리치겠다고 유언을 했다. 그 유언을 받들어 문무왕을 안치한 곳이 바로 대왕암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는 가장 높고 우람하다는 감은사지탑은 복잡한 목탑 구조를 단순화시킨 석탑 양식의 시작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탑의 정점을 찍었다는 석가탑보다 다보탑을 더 좋아한다. 맨날 봐도 그게 그거 같다고 생각했었던 탑을 보면서 내 마음과 눈길을 사로잡았던 부여 장하리 3층석탑과 익산 왕궁리 5층석탑이 떠오른다. 신라를 이야기하면서 웬 백제탑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저 생각이 나서 하는 말이다. 경주, 역시 멋진 곳이다. 글쓴이가 책을 시작하며 했던 말을 되뇌어본다.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먼저 생각한 것은 생활의 환기나 치유가 아닌 학습을 위행 여행이었다는 말.. 그러나 어찌 학습뿐이었을까? 분명 치유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여행안내서가 아니라 개인의 경험을 담은 아주 사소한 보고서라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지만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는 말처럼 다음을 기약하는 글쓴이의 다짐이 부럽다. 가본 곳보다는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은 경주. 그 경주와 하루빨리 만나고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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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태안 오늘은 시리즈
김미정.전현서 지음 / 얘기꾼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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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올레길부터였을 것이다. 그 후로 ㅇㅇ 길, ㅇㅇ 길, ㅇㅇ 길... 경쟁이라도 하듯 저마다 예쁜 이름표를 달고 길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이름들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ㅇㅇ스트리트', 'ㅇㅇ가' 가 아니라 오롯이 자연속에서 이름을 얻어 온, 거기다 하나 더 보태면 우리말이라는 포장이 너무 좋았다는 말이다. 지방선비들이 과거를 보러가기 위해 다녔다는 옛길을 걸어 본 적이 있다. 혹시나 현대인들이 다니기 불편할까봐 잘 닦여진 길이면 어쩌지? 걱정반 기대반으로 찾아갔던 옛길. 뭐, 옛날 그대로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그 길에 담겨진 많은 이의 흔적과 마음이 있어서인지 걷는 내내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이상하게도 그런 길을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천천히 걷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서두르지 않고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꽃 한송이와 눈을 맞추며 걷는다. 언뜻 언뜻 불어오는 바람과도 손을 잡는다. 하늘과 웃음을 주고 받는다. 그래서 자연속에 머무는 순간이 행복한가 보다. 가끔은 주저앉아 다리쉼을 하기도 하고, 기어다니는 벌레와 눈싸움을 하기도 한다. 자연은 그렇게 우리에게 느리게 가라고 하는데....

 

오늘은 태안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태안... 무엇부터 생각날까? 역시 기억은 아름다운 것보다 아팠던 것을 먼저 선택한다. 기름유출사고... 많은 이들이 찾아가 조약돌 하나와 모래톱 사이에 끼어 든 기름을 닦아 냈었다. 그렇게 기름을 먹은 바다는 다시 살아나지 못할 거라고 누군가는 말했다지만 많은 이의 정성과 안타까움은 기어코 그 바다를 살려냈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무작정 떠났던 길 끝에 안면도가 있었다. 꽃지 해변의 할미바위와 할아버지 바위는 안녕하신지... 그렇게 다시 태안. 누구나 한번쯤은 꿈꾼다던 바다여행을 내가 꿈꾸었던 적이 있었던가? 있다. 겨울바다를 유난히 좋아했던 내게 하얗게 포말로 부서지던 밤바다의 기억이 남아 있다. 참 바보같은 걸 친구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해돋이가 좋아, 해넘이가 좋아? 해돋이는 해돋이대로, 해넘이는 해넘이대로 다 좋지! 빙고!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다. 나? 나는 아무래도 해넘이쪽에 더 마음이 간다. 불끈거리며 솟아오르는 붉음보다 여유롭게 하늘을 물들이며 서서히 번지는 해넘이의 붉음이 더 매혹적이다. 그러니 오늘은 태안을 가자고 내민 손길을 거부하지 못하고 덥썩 잡을 수 밖에. 그런데 태안이 이런 곳이었어? 책을 읽으면서, 책을 덮으면서 내가 물었던 말이다. 태안이 이런 곳이었구나, 나만 모르고 있었구나 싶었다. 무엇을 하든 늘 생각하게 된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을.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의 단면을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을 나의 우매함에 대해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태안에도 역시 예쁜 이름표를 달고 맞이해주는 길이 많았다. 바라길, 소원길, 파도길, 솔모래길, 노을길, 샛별길, 바람길... 저렇게 이름을 지을 때는 그 길이 품고 있을 분위기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을 오롯이 느끼며 걸어가는 여행자의 발길에 동참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난다. 일정과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다. 걷다가 날 저물면 동네 이장님을 찾아가 잠자리를 얻기도 하고, 마을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에서 서글서글한 눈매의 어르신들과 만나 잠시 이야기도 나눈다. 그러다가 감자 한 알, 옥수수 하나 얻어 먹기도 하고, 지나가는 경운기를 얻어 타기도 하면서 맛있는 여행의 맛을 음미한다. 딱, 그런 여행이다. 굳이 몇 시간이 걸렸는지, 이 곳만큼은 꼭 찾아가 보세요, 말하지 않고도 그곳에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여행서다. 그 곰솔길을 걸어 원시의 바다 달산포에 가보고 싶다. 밀물이 숨겨놓았다는 쌀 썩은 여의 속살을 나도 한번 만져보고 싶다. 아무래도 서해안의 또다른 매력은 밀물과 썰물이 공존하다는 것일게다. 같은 얼굴로 다른 표정을 짓는 사람처럼 미리보기를 할 수 없는 게 서해안이 품고 있는 또하나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말, 그러니 인간은 이 땅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한다는 말을 기억해야만 한다. 내일은 어디로 갈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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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정벌 - 기획에서 병탄, 패전까지 1854~1945
이상각 지음 / 유리창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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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는 친척은 이웃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자주 보는 탓에 생겨나는 정이 있는 까닭일 것이다. 그런가하면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는 말도 있다. 가까이 살아서 자주 봐야 하는데 소 닭보듯 하거나 견원지간처럼 지낸다는 게 영 껄끄럽다. 마치 지금의 한국과 일본처럼. 관계라는 게 참 묘해서 잘 지낼때는 간이라도 빼줄것 처럼 이것도 저것도 나눠주고 나눠받지만, 문제가 생겨 틀어지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는 분노와 미움이 그 관계속에 둥지를 튼다.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고 있는 한일관계를 생각한다. 단순히 과거사 때문일까? 경쟁심에서 생겨나는 일종의 자존심 싸움처럼 보이기도 한다. 책을 펼치면 그들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라는 머릿말이 보인다. 뭐가 변하지 않았다는 말이지? 우리는 뭔가 마땅치 않은 일이 생기면 우선 남탓을 하는 못난 습성을 가지고 있다. 남이 변하길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변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게 정석이다. 상대방을 내게 맞추려고 하기 보다는 그 문제의 근원을 찾아 내가 변하면 된다는 말이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말이 있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 殆 : 적과 아군의 실정을 잘 비교 검토한 후 승산이 있을 때 싸운다면 백 번을 싸워도 결코 위태롭지 아니하다" 라는 말이다. 거기에 덧붙인 말을 한번 더 살펴보자면 이렇다. " 負 : 적의 실정은 모른 채 아군의 실정만 알고 싸운다면 승패의 확률은 반반이다. 敗 : 적의 실정은 물론 아군의 실정까지 모르고 싸운다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한다.” 우리는 흔히 克日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선적인 것은 知日이다. 적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과거사를 생각하며 분노하기 보다는 그들을 속속들이 아는 게 먼저라는 말이다.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출발했을 것이다. 그런 까닭인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일본인의 이름들은 다시봐도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다.

 

제국주의에 의해 아시아 침략에 앞장섰던 이토 히로부미. 조선에 을사늑약을 강요하고 헤이그밀사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가 안중근에게 저격당하여 죽은 인물이다. 명성황후시해사건의 조종자였던 이노우에 가오루. 헌병과 경찰을 동원하여 공포분위기를 만들었던 식민지 무단통치의 주역, 데라우치 마사타케. 고종 독살의 배후인물이면서 3·1운동 당시 잔혹한 탄압으로 수많은 한국인을 학살했던 하세가와 요시미치. 그는 영친왕과 일본여인 이방자의 혼인을 적극 추진시켰던 인물이기도 하다. 內鮮一體라는 말을 내세웠던 미나미 지로. ''라 함은 일본 본토를 가리키는 ''의 첫자이며, ''이란 조선을 가리키는 말로, 일본과 조선이 일체라는 뜻이다. 창씨개명이나 조선어 사용금지, 징병제도와 같은 민족 말살 정책을 강행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조선인도 내지인과 똑같은 대접을 받게 하겠다는 감언이설로 문화정치를 내세웠던 사이토 마코토. 그의 통치하에 식민사관이 비롯되었다. 어용학자와 친일 학자가 이 시기에 많이 양산되었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그에게 수류탄을 던졌던 강우규 의사를 우리는 기억한다. 징용과 징병으로 조선의 젊은이들을 산업시설과 전쟁터로 내몰았던 이소 구니아키.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이름들이다. 그런가하면 조선의 막사발을 극찬했던 야나기 무네요시 같은 사람도 있었다.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경시하는 조선의 풍조를 안타까워 했다던 그로 인해 우리문화의 진정한 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구한 것은 또 있다. 우리의 광화문이다. 일제에 의해 사라질뻔 했던 광화문을 이전하고 복원한 것이 그의 공이기도 하다. 그에 대해 이런 저런 주장이 많이 나오고는 있다 하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중의 하나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조선의 남자 박열을 사랑했던 일본여인 가네코 후미코도 있었으며, 법정에 선 조선인을 위해 힘을 썼던 인권변호사 후세 다쓰지도 있었다. 조선의 모든 것을 사랑했으며 조선의 전통과 문화를 온 몸으로 지켜냈다던, 죽어서도 조선에 남고 싶으니 조선식으로 장사를 지내달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던 이사카와 다쿠미라는 사람도 있었다.

 

만약에 우리에게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일본처럼 서구근대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쇄국정책을 쓰지 않았어도 기존의 체제가 무너질까 전전긍긍했을 조선의 관료들 모습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까닭이다. 아시아 최초로 입헌 군주제와 의회제 민주주의 국가로 탄생하게 되었다는 일본의 역사를 보면서 부국강병, 식산흥업, 문명 개화의 3대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는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명칭만 따왔다는 우리의 10월유신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과연 '정한론'이나 '임나일본부설'에 대해 정확히 알고나 있는 것일까? 이 책의 주제는 무겁다. 무겁지만 들 수 밖에 없는 주제다.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1854~ 1945 조선정벌을 하기 위한 기획에서 병탄까지의 상황을 깊게 다루고 있다. 책 표지에 나와 있는 말처럼 아베 신조 총리로 대표되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다시 패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작금의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노뿐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해야 할일이 무엇인지는 어쩌면 우리가 더 잘알고 있을 것이다. 더디게 책장이 넘어갔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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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파운드의 슬픔
이시다 이라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문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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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집,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말이다. 저 말을 보았다면 나는 아마도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그런 실수 아닌 실수가 괜찮은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다. 이 책이 그렇다. 단편을 모아놓은 한 권의 책은 내게 매력적이지 않은 소재임에 분명한데 그럼에도 잘 읽혔다. 아니 잘 읽혔다기보다는 편한 느낌으로 다가왔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열 가지의 이야기속에서 작가는 사랑의 여러가지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특이한 점이라면 모두 서른의 사랑이야기라는 것, 그리고 그리 특별하지 않은 사랑이야기라는 것이다. 작가의 말이나 책 표지의 글속에서도 이미 말하고 있듯이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사랑이야기다. 솔직히 20대의 젊은이들만 뜨겁게 불타는 사랑을 하는 건 아닐텐데, 그런 사랑 한번쯤은 다 겪어보았음직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많았다.

 

만약 어딘가에서 저를 만난다면 당신만의 '평범한 연애' 이야기를 들려주시지 않겠습니까? 라던 작가의 말을 보면서 만약 정말로 내가 그를 만난다면 주저하지 않고 내게도 있었던 '나의 평범한 연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만큼 특별하지 않은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이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만큼 특별한 이야기도 없다. 모두에게 자신의 이야기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거나, 남아 있거나 둘 중의 하나일테니까. 별 것도 아니라고 말은 하면서도 꺼내놓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 속에는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에 미치고, 사랑에 아파하는 모든 과정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까닭이다. 유행가의 가사가 모두 내 이야기처럼 들려온다는 그 사랑의 감정에 이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

 

1파운드, 460g 정도의 무게다. 한 근이 600g이니 대충 짐작해보면 어느정도의 무게인지 알 수 있겠다. 그런데 1파운드의 슬픔이라고? 문득, 어린시절에 읽었던 <베니스의 상인> 이야기가 떠올랐는데 역시 책속에서도 그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다소 상징적인 말일수도 있겠지만 <베니스의 상인> 에서 말했던 '심장 가까운 곳에서 피는 나오지 않게 딱 1파운드의 살만 떼어가시오' 라고 했던 말을 떠올려보면 그 말이 주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평범했으나 아름다웠던, 평범했으나 고통스러웠던 사랑과 이별의 순간들... 동거를 하지만 모든 물건에 이니셜을 쓰며 각자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커플도 있고, 꽃집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주부에게 매주 꽃을 사러오는 젊은 남자는 알 수 없는 설레임을 안겨주기도 한다. 남의 결혼을 도와주는 웨딩플래너와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하게 된 남자의 우연한 만남도 있고, 한 달에 한번밖에 만나지 못하는 애틋한 남녀의 화끈한 사랑이야기도 있다. 책을 읽는 사람과 책을 읽지 않는 사람으로 세상 사람을 구분하는 남녀의 특별한 서점 데이트도 보인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 보았음직한 너무도 흔한 이야기인데도 그 나름대로 멋진 사랑으로 다가온다. 작가의 그럴싸한 문체때문일까?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평범한 것이 위대한 것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특별한 것만을 바라보려 한다. 영화나 드라마의 허구가 현실속에서 재현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볼 때 그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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