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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태안 ㅣ 오늘은 시리즈
김미정.전현서 지음 / 얘기꾼 / 2015년 7월
평점 :
아마 올레길부터였을 것이다. 그 후로 ㅇㅇ 길, ㅇㅇ 길, ㅇㅇ 길... 경쟁이라도
하듯 저마다 예쁜 이름표를 달고 길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이름들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ㅇㅇ스트리트', 'ㅇㅇ가' 가 아니라
오롯이 자연속에서 이름을 얻어 온, 거기다 하나 더 보태면 우리말이라는 포장이 너무 좋았다는 말이다. 지방선비들이 과거를 보러가기 위해
다녔다는 옛길을 걸어 본 적이 있다. 혹시나 현대인들이 다니기 불편할까봐 잘 닦여진 길이면 어쩌지? 걱정반 기대반으로 찾아갔던 옛길. 뭐, 옛날
그대로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그 길에 담겨진 많은 이의 흔적과 마음이 있어서인지 걷는 내내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이상하게도 그런 길을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천천히 걷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서두르지 않고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꽃 한송이와 눈을 맞추며 걷는다. 언뜻 언뜻
불어오는 바람과도 손을 잡는다. 하늘과 웃음을 주고 받는다. 그래서 자연속에 머무는 순간이 행복한가 보다. 가끔은 주저앉아 다리쉼을 하기도
하고, 기어다니는 벌레와 눈싸움을 하기도 한다. 자연은 그렇게 우리에게 느리게 가라고 하는데....
오늘은 태안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태안... 무엇부터 생각날까? 역시 기억은 아름다운 것보다 아팠던 것을 먼저 선택한다. 기름유출사고... 많은 이들이 찾아가
조약돌 하나와 모래톱 사이에 끼어 든 기름을 닦아 냈었다. 그렇게 기름을 먹은 바다는 다시 살아나지 못할 거라고 누군가는 말했다지만 많은 이의
정성과 안타까움은 기어코 그 바다를 살려냈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무작정 떠났던 길 끝에 안면도가 있었다. 꽃지 해변의 할미바위와 할아버지 바위는
안녕하신지... 그렇게 다시 태안. 누구나 한번쯤은 꿈꾼다던 바다여행을 내가
꿈꾸었던 적이 있었던가? 있다. 겨울바다를 유난히 좋아했던 내게 하얗게 포말로
부서지던 밤바다의 기억이 남아 있다. 참 바보같은 걸 친구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해돋이가 좋아, 해넘이가 좋아? 해돋이는 해돋이대로, 해넘이는 해넘이대로 다 좋지! 빙고!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다. 나? 나는 아무래도 해넘이쪽에 더 마음이 간다. 불끈거리며 솟아오르는 붉음보다 여유롭게 하늘을 물들이며 서서히 번지는 해넘이의
붉음이 더 매혹적이다. 그러니 오늘은 태안을 가자고 내민 손길을 거부하지 못하고 덥썩 잡을 수 밖에. 그런데 태안이 이런 곳이었어? 책을 읽으면서, 책을 덮으면서 내가 물었던 말이다. 태안이 이런
곳이었구나, 나만 모르고 있었구나 싶었다. 무엇을 하든 늘 생각하게 된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을.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의 단면을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을 나의 우매함에 대해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태안에도 역시 예쁜 이름표를 달고 맞이해주는 길이 많았다. 바라길, 소원길, 파도길, 솔모래길, 노을길, 샛별길, 바람길... 저렇게 이름을 지을 때는 그 길이
품고 있을 분위기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을 오롯이 느끼며 걸어가는 여행자의 발길에 동참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난다. 일정과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다. 걷다가 날 저물면 동네 이장님을 찾아가
잠자리를 얻기도 하고, 마을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에서 서글서글한 눈매의 어르신들과 만나 잠시 이야기도
나눈다. 그러다가 감자 한 알, 옥수수 하나 얻어 먹기도 하고, 지나가는 경운기를 얻어 타기도 하면서 맛있는 여행의 맛을 음미한다. 딱, 그런 여행이다. 굳이 몇 시간이 걸렸는지, 이 곳만큼은 꼭 찾아가 보세요, 말하지 않고도 그곳에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여행서다. 그 곰솔길을 걸어 원시의
바다 달산포에 가보고 싶다. 밀물이 숨겨놓았다는 쌀 썩은 여의 속살을 나도 한번
만져보고 싶다. 아무래도 서해안의 또다른 매력은 밀물과 썰물이 공존하다는 것일게다. 같은 얼굴로 다른 표정을 짓는 사람처럼 미리보기를 할 수
없는 게 서해안이 품고 있는 또하나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말, 그러니 인간은 이 땅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한다는 말을 기억해야만 한다. 내일은 어디로
갈까?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