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 - 세상에서 가장 쉬운 주역 공부 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
김승호 지음 / 다산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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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쉬운 주역 공부... 라는 말에 넘어갔다. 주역... 뭘까? 이 단어를 듣게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8괘나 64괘라는 말이고, 연이어 그 이상한 도표가 떠오른다. 우리문화를 공부하게 되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이 陰陽五行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기본적으로 陰과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인데, 이 음양사상이 우리문화에 끼친 영향의 깊이는 알 수 없을 정도다. 의식주는 물론 사상까지 지배했으니 그것을 빼고나면 뭐가 남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거기에서 파생되어진 五行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가장 기본적인 오방색은 오행을 색으로 나타낸 것으로 동쪽은 청색, 서쪽은 백색, 남쪽은 적색, 북쪽은 흑색, 중앙은 황색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울성곽 동서남북의 문이름도 나왔다. 동쪽은 仁, 서쪽은 義, 남쪽은 禮, 북쪽은 智, 중앙은 信이다. 그렇게 음양오행을 알다보면 자연스럽게 주역의 괘로 넘어가게 되는데 도대체 이 주역이라는 게 뭔지 궁금했다.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이해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쉬운 주역 공부란다. 그러니 어찌 넘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국기를 태극기라 부른다. 太極이 뭘까? 우주 만물의 근원이 되는 실체라고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하늘과 땅이 분리되기 이전의 원시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혼돈의 상태인데 거기에서 음양이 비롯되어진다. 태극은 불교가 아니라 성리학에 뿌리는 둔 사상이다. 그런데 이미 그 태극의 도상이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되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陽이 하늘이니 위에 자리하고, 陰이 땅이니 아래에 자리한다. 태극이 있고 거기에서 陰陽과 四象이 나왔으며 또한 八卦가 나왔다는 말인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도상을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말이다. 퇴계선생이 기대승과 수년동안 편지로 주고 받으며 논했다는 <四端七情> 역시 우주 만물의 존재와 그 움직임을 '理' 와 '氣'라는 개념을 써서 설명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 역시 마주할 때마다 머리가 아픈 건 사실이다. 아는 사람 입장에서야 이렇게까지 설명하는데 그것도 모르냐고 한다면 뭐, 할 말은 없다.

 

너무 무거워서 넘어가지 않는 책장을 간신히 넘겨가며 열심히 보았다. 그럼에도 결국 도리질을 하고 말았다. 하루 아침에 어찌 우주 만물의 원리와 이치를 깨우칠까? 어찌되었든 하늘, 땅, 연못, 불, 바람, 물, 산등을 상징한다는 기본구성 八卦만큼은 한번 더 보자 싶었다. 우리가 볼 때 하나의 선으로 그려진 것과 같은 길이지만 반으로 잘라진 선이 기본적인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어진 것은 양이요, 둘로 갈라진 것은 음이라는 말이다. 이것을 양효와 음효라 부르는데 그 양효와 음효가 세 개씩 겹쳐질 때 나타날 수 있는 경우가 모두 8가지인 까닭으로 八卦가 성립된다는 말이다. 그 생겨나는 도상마다 제 각각의 이름이 있으며 그것이 품고 있는 의미 또한 모두 다르다. 태극기를 보자. 태극무늬를 사방에서 감싸고 있는 것을 4괘라고 하는데 이 4괘가 뜻하는 것이 하늘, 땅, 물, 불이다. 경복궁에서 왕비가 머무는 곳의 이름이 교태전인데, 이 이름 역시 주역의 64괘중 하나인 태괘에서 온 것이다. 도상으로 보면 이렇다. ... 곤괘와 건괘가 거듭된 괘로 하늘과 땅이 서로 사귀고 음양이 화합하여 하나로 됨을 상징함이니, 서로 통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을 대표하는 괘라고 하니 그 의미가 정말 멋지지 않은가!

 

64괘를 다 알면 만물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 책속에서 64괘의 뜻과 이름을 볼 수 있다. 또한 괘상속에 어떤 뜻이 숨겨져 있는지도 말하고 있다. 노자가 말하기를 " 만물은 음을 등에 지고 양을 끌어안으며 충기로써 화합한다" 라고 했다는데, 이는 과거의 흐름이 미래의 씨앗이 되고 새로운 현상 즉 양을 맞이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주역은 곧 시간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며 미래를 계산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아무리 열심히 설명을 해도 어쩔 수 없이 머리만 무거워지니 그냥 여기까지만 하자. 과학의 발달로 주역의 의미가 밝혀지고 있다고 하니 그 때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어찌되었든 음양오행설에서 八卦를 이리저리 맞추어 만든 64가지의 괘를 우리는 64괘라고 부르고 있으니 그 이름이나 한번 살펴보기로 한다.

건(), 곤(), 둔(), 몽(), 수(), 송(), 사(), 비(), 소축(), 리(), 태(), 비(), 동인(), 대유(), 겸(), 예(), 수(), 고(), 림(), 관(), 서합(), 비(), 박(), 복 (), 무망(), 대축(), 이(), 대과(), 감(), 리(), 함(), 항(), 둔(), 대장(), 진(), 명이(), 가인(), 규(), 건(), 해(), 손(), 익(), 쾌(), 구(), 췌(), 승(), 곤(), 정(), 혁(), 정(), 진(), 간 (), 점(), 귀매(), 풍(), 려(), 손(), 태(), 환(), 절(), 중부(), 소과(), 기제(), 미제().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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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의 아들
에셀 릴리언 보이니치 지음, 김준수 옮김 / 마마미소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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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ADFLY... gadfly가 뭘까? 책속에서는 쇠파리로 나오는데... 한번 찾아보자. 잔소리꾼, 쇠가죽파리, ~을 귀찮게 따라다니는 사람, 어떤 문제에 대해 시끄럽게 따지다, 등에, 쇠파리... 책을 덮으면서 생각한다. 참 무서운 이야기라고. 속세의 복음서로 불리는 반기독교 문학의 걸작이라는 말이 보인다. 물론 그냥 소설일터이지만 그럼에도 상당히 큰 울림이 있을거라고... 추기경, 교황을 제외하면 최고 높은 직책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성직자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추기경의 아들이라고? 제목부터가 상당히 도발적인 느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책, 참 묘하다. 반기독교 문학이라고 하는데 밑바닥에 흥건하게 깔린 기독교적인 맛은 또 뭐란 말인가! 반기독교라고 말은 하면서 은근슬쩍 파고 드는 무례함이라니!

 

성경의 자세한 부분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모세가 모진 고난과 핍박속에서 유대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했던 출애굽에 관한 이야기는 세상에 많이 회자되어진다. 하나님이 저들을 도와 여러차례의 재앙을 보였는데 그 중의 네번째 재앙이 쇠파리떼의 출연이었다고 한다. 그 유명한 홍해의 기적도 그 사건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책속에서 추기경의 아들이라는 존재가 자신을 쇠파리라고 칭한다는 건 상당히 깊고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총 3부로 나뉘어진 내용을 살짝 살펴보자면 1부의 소제목이 부러진 십자가, 2부의 소제목이 13년 뒤, 3부의 소제목은 아버지와 아들이다. 보여지는 제목속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미리 짐작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흔한 소재라는 말과 통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 뻔한 소재를 어떻게 그렸을까? 쇠파리... 가축이나 사람의 살갗에 알을 낳고 기생하며 피를 빨아 몸의 기관을 파괴하는 무서운 곤충. 성직자의 위선과 거짓이 어디 하루이틀만의 일일까? 가까운 사람의 배신이 우리 삶속에서 어디 한두번뿐일까? 종교적인 색채가 짙게 배어있는 이 책은 결코 반기독교 문학은 아니라고 본다.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겹쳐지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하나는 며칠전에 보았던 영화 <思悼>이고, 또 하나는 7080세대가 겪어야 했던 민주화의 열망이었다. 성직자로써의 아버지와 그의 사생아로 태어난 아들의 갈등 상황속에는 추기경으로써의 마음과 아버지로써의 마음을 각각의 색채로 보여주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놓여 있던 이탈리아의 지하조직 <청년이탈리아당>의 비밀스러운 활약상이 오래전 민주화를 향했던 우리의 젊은 청년들을 생각나게 했었다. 추기경의 아들과 묘하게 겹쳐지던 예수의 고난... 거기에서 그만 실소를 금치 못했다. 종교를 부정하고 혁명을 지향했다고? 그렇게 나는 반기독교문학이라는 뻔한 손짓에 또한번 낚이고 말았음을 인정해야 했다. 나? 아직은 무신론자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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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첫 번째 태양, 스페인 - 처음 만나는 스페인의 역사와 전설
서희석.호세 안토니오 팔마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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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가 맞냐? 스페인이 맞냐? 한동안 어느쪽이 맞는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둘 다 맞다. 에스파냐를 영어식으로 스페인이라 한다니. 그런데 그 스페인이 유럽의 첫번째 태양이란다. 보통은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하는데. 스페인의 역사와 전설을 알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은근 기대했다. 여행서처럼 풍부한 사진과 함께 읽혀질 스페인의 역사를. 그런데 책장을 넘기기가 그리 쉽진 않았다. 무슨 인명사전도 아니고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식의 나열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시대를 나열하며 그 시대의 인물 이름만 잔뜩 보여주는 형식인데, 이건 같은 이름에 숫자만 바꿔 ㅇㅇ1세, ㅇㅇ2세 식으로 나열이 되니 재미를 느끼기에는 좀 무리였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눈과 귀에 익었던 지명들이 언제 나올까 기다렸다. 투우의 고장이라는 스페인... 플라멩고의 도시,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세비야, 알함브라궁전의 그라나다 등등.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해 준 곳은 세비야의 알카사르였다. 성곽궁전이란 뜻을 가진 알카사르는 이슬람 세력의 지배 흔적이라고 한다. 기독교와 이슬람 양식을 모두 보여주고 있는데, 7세기에 무어인들이 요새를 지었는데 9세기에 요새를 궁전으로 개조했다고 한다. 아마도 많은 이야기를 안고 있는 곳이 아닐까 싶어 한번쯤은 가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스페인의 도시중에서 마드리드나 툴레도는 가톨릭의 중심지이며, 세비야가 속해있는 안달루시아 지역은 이슬람교도의 지배가 가장 길었던 지방으로 아랍 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세빌리아의 이발사'나 '카르멘'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 바로 세비야다. 우리가 재미있게 보았던 '돈키호테' 를 쓴 세르반테스도 스페인 사람이다. 책을 읽다보니 세비야의 역사와 전설이 주는 무게감이 상당하다. 고대 이베리아 시대부터 이민족의 침략을 가장 많았다는 도시. 카이사르에게 정복되어 로마의 속주가 되기도 했고, 서고트 왕국의 수도가 되기도 했던 곳. 그후의 시대에도 수도 역할을 했으며 히랄다 탑으로도 유명하다는 도시가 바로 세비야였다. 히스팔리스라는 옛이름도 왠지 멋져 보인다. 상당히 비옥했던 과달키비르 강 연안에 있다보니 아마도 풍요의 땅이었을 것이다. 15세기 말, 최고의 전성기때에는 스페인 최대의 성당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17세기에는 카디스에 밀려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지만 역사적인 도시가 되었으니 그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듯하다.

 

스페인은 우리나라처럼 반도지역이다. 가끔 다큐프로를 통해 여러 민족이 모인 스페인에서는 민족간의 갈등이 상당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잘은 모르겠지만 축구를 매개로 똘똘 뭉친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만 봐도 그렇게 보인다. 하여 반도의 특성을 가진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그들에게는 신기하게 들리기도 한다는데 뭐, 솔직하게 말해 우리도 그렇게 단일민족이라는 말을 크게 외칠만한 정도는 아니라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스페인은 상당히 개방적인 성격을 가졌던 듯 하다. 콜럼버스의 항해를 도와준 것도 스페인의 이사벨여왕이었으니. 그렇게해서 스페인의 식민지가 수도없이 늘어갔을테고, 거기서 나오는 교역물품 또한 대단했을 것이다. 멕시코와 페루를 통해 스페인으로 유입되었던 은의 양은 정말 대단했던 모양이다. 더구나 아메리카의 식민지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모직공업의 수익도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그러니 첫번째 태양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언어의 사용도도 단연 일등을 달린다. 그렇게 깊고 긴 스페인의 역사를 짧은 시간안에 이해한다는 건 역시 무리다.

 

그야말로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로써의 스페인이 되었던 때는 이사벨여왕과 페르난도 왕을 외조부모로 하는 합스부르크가의 카를소스1세때부터였다. 그의 통치하에서 스페인 본국과 많은 식민지를 통합하여 절대주의를 완성시켰다. 같은 반도지역의 나라로써 우리의 쇄국정책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도 저들처럼 모든 민족의 문화와 융합되어지는 상황이 되었더라면 아마도 스페인보다 더 크고 멋진 역사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모든 문화는 다른 것을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색채를 띠는 것으로 재탄생되며 정체성을 부여받게 된다. 우리에게도 충분히 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아깝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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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상식에 딴지걸다 - 지적인 사람은 절대 참을 수 없는, 황당하고 뻔뻔한 역사의 착각
안드레아 배럼 지음, 장은재 옮김 / 라의눈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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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원형경기장인 콜로세움에서 기독교도들이 사자에게 던져졌다는 건 거짓말이다. 왜냐고? 네로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 할 당시에는 원형격기장을 짓는 중이었다! 16세기의 교황 피우스 5세가 성물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콜로세움의 모래를 가져가라고 했는데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콜로세움과 순교자라는 이미지가 연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바이런이란 시인에 의해 스파르타인들은 유명해졌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테르모필레 전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스파르타, 테스피에, 테베, 미케네 사람들까지 포함해 6천~7천명의 사람들이 전투에 임했다. 300이란 숫자는 그저 시인의 상징적인 숫자에 불과했을 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말위에 올라 동네를 한바퀴 돌아야했던 여인 고디바. 마을 사람들을 세금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 위해 그토록이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는데 속을 들여다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그녀의 남편 레오프릭 백작에게는 세금을 철폐할 권한이 없었다고 한다. 거기에 맞춰 'Peeping Tom'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그녀의 알몸을 훔쳐본 톰이란 남자의 눈이 멀었다는 이야기로 '엿보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 역시 한 장의 그림때문에 생겨난 웃지 못할 이야기에 불과하다. 인디언 처녀 포카혼타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탐험가 존 스미스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 그저 음식이나 선물, 혹은 중요한 메세지를 주고 받는 일의 중개인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 실제로 1614년 포카혼타스는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이름을 레베카로 바꿨고 영국계 존 롤프와 결혼했다. 그것뿐일까? 그저 평범했던 무희 마르가레타. 그녀는 어쩌다가 이중간첩의 누명을 쓰고 총살형을 당해야 했을까? 네덜란드에서 태어났던 그녀는 프랑스 파리에서 마타하리라는 예명으로 춤을 추었을 뿐이었다! 그녀가 비밀요원이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하는데,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고 하는데, 그녀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 평온한 모습으로 죽어갔다던 그녀의 이야기는 왜, 어떻게,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우리가 지금까지 천사라는 별칭으로 불러주는 나이팅게일 역시 전장속을 누비며 간호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녀는 단지 병원괸라자였을 뿐이었다. 피부가 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간호사로 채용되지 못했으나 자비를 털어 크림 반도로 향했던 여인이 있었다. 크림전쟁에서 나이팅게일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전선에서 헌신했던 메리 시콜이란 간호사였는데 우리는 어째서 이 여인의 이름은 기억하지 않는 것일까?

 

스코틀랜드에서 남자들이 입는 치마 모양의 전통의상인 킬트. 클랜 타탄 무늬가 고대로부터 전승되어 왔다는 이야기는 진실이 아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만들어진 전통>이란 책속에서도 이미 밝힌 바가 있는 이야기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는 만들어진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이 존재한다. 누군가가, 필요에 의해서, 혹은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때문에... 등등의 이유로 이야기는 만들어진다. 이미 있었던 이야기가 다시 각색되어지거나, 편집되어져 새롭게 태어나기도 하고, 부풀려지거나 왜곡되어지기도 한다. 진실은 그 이야기의 뒷면에 숨겨진채로. 조작과 의도에 의해 숨겨진 진실이 서글플 뿐이다. 사람의 뇌는 신기하게도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한다. 이미 믿었던 것에 대한 오류를 수정하는 데에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린다. 더구나 거기에 자신에게 이로운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다면 어쩌면 그 오류가 수정될거라는 기대는 버리는 게 더 현명한 일일지도 모른다. 숱한 세상의 거짓말을 바로잡는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바로잡을 수는 없어도 우리가 무엇을 잘못 알고 살아가는지, 왜 그런 착각을 해야 했는지 그 진실만큼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이렇게 상식에 딴지 거는 책은 많다. 그럼에도 이런 책을 환영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이유때문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알아야 한다는 것, 그 이면에 감춰진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분명하게 밝혀져야만 하는 것들... 궁금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책을 펼쳐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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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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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에쿠니 가오리 책 맞아? 일단 의심부터 한다. 책의 두께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중에서 이렇게 두꺼운 게 있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끌었던 책. 그건 솔직하게 말해 에쿠니 가오리라는 이름때문이다.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이란 제목을 보면서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포옹을 하거나 밥에 소금을 치거나... 그러나, 평범한 줄 알았던 우리의 일상속에서 찾아낸 이야기라는 말은 상당히 매혹적이었다. 커다란 서양식 주택에서 살고 있는 야나기시마 일가의 일상을 거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하나둘씩 보여주고 있다. 3대에 걸친 가족사다. 거기다가 우리식으로 말한다면 다문화가정이다. 거기까지라면 그래도... 하겠지만 이건 또 무슨? 네명이나 되는 아이들마저 서로 다른 어머니나 아버지를 가지고 있다. 독특한 설정! 그러나 몰입도는 괜찮았다.

 

책장을 덮으면서 묻는다. 그래서 뭐? 이 사람들이 행복했던거냐고 묻고 싶은거라면 단연코 행복했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핑게없는 무덤없고, 사연없는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가슴속에 사연 하나씩은 품고 산다는 말일터다. 각각의 사연을 나의 시선으로 혹은 가족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절대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많은 사람중에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 몇이나 될까? 자신의 선택에 혹은 자신의 판단에 그것이 옳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 몇이나 될까? 누구나 가지않은 길에 대한 욕망을 꿈꾸지만 혼자사는 세상이 아닌 까닭으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맞추며 살아가거나 주변인들과 어울어지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욕망대로만 움직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야나기시마 일가의 사람들은 그래도 행복했었던 거라고 나는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마다 기막힌 사연 하나씩을 들춰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불행한 일이었다거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 보인다. 채워지지 못한 자신의 한쪽 가슴을 적당하게 채워가며 살아가고자 했던 것일 뿐. 저마다의 사연들은 묘하게도 모두의 삶에 동화되어진다. 어쩌면 그런 일들이 표시나지 않게 박혀버린 가시같은 것이라해도 덧나지 않게 받아들일 줄 아는 야나기시마 일가의 유연함이 놀라울 뿐이다. 저 가족을 통해 받아들이며 사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한번쯤은 벗어나고 싶은 일상의 굴레는 결코 나를 옭아매는 올무가 아니라는 말이다. 문득 나도 책속으로 들어가 야나기시마의 가족으로 한번 살아봤으면 싶어진다. 평범한 것이 위대한 것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들속에 어색함과 어긋남도 존재하는 것이다. "가엾은 알렉세이에프", "비참한 니진스키", "라이스에는 소금을" 과 같은 말들은 그들만의 주문이다. 가슴속에 뭔가가 차오를 때 그것을 다독이기 위한 하나의 주문.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일들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며 견뎌내기 위해 만들어진 그들만의 주문인 것이다.

 

'언뜻 보면 행복한' 가족 이야기라는 말이 책의 뒷표지에 보인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겉으로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지만 속으로 곪아가는 가정, 꽤 많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런 걸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지는 않다.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의 관심밖으로 밀려난 채 살아가고 있는 나이외의 가족 구성원에 관한 이야기다. 어찌보면 상당히 이기적인 모습으로 비춰질지도 모를 야나기시마 일가의 삶속에서 우리의 현살울 보게 되었다면 억지일까?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일 것이다. 특별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는 야나기사마 일가와의 만남은 나쁘지 않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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