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을 망친 자본주의 - 역사학자가 파헤친 환경 파괴의 시작과 끝
마크 스톨 지음, 이은정 옮김 / 선순환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의 경솔함이나 악의에 의해 황폐해진 땅”을 되돌리고 “이전 거주자들의 부주의나 무절제함으로 인해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자연을 되살리기 위해, 인간은 자연의 이용자가 아닌 자연의 동료가 되어야 한다.” (-190쪽)

역사학자가 파헤친 환경 파괴의 시작과 끝, 이라는 표지의 글이 시선을 끌었다. 요즘은 마치 유행처럼 환경 파괴에 대한 주제가 떠다닌다. 그런 까닭인지 특별히 이렇다 할 경각심을 주지 못하는 듯 하다. 이 책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문명이 오래전부터 환경을 파괴해 왔음을 알려준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발전은 자연을 파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인간이 소비자본주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환경 파괴는 날로 더 심각해 질거라는 경고도 담겨 있다. 브라질의 삼림이 소를 기르기 위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바다. 인간이 육식을 선호할수록 자연은 파괴되어지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인간은 변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책은 오래전의 역사부터 시작한다.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이익'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필요한 만큼이 아니라 쌓아두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늘어났다. 거기에 산업혁명을 이루면서 그 속도는 가속화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소비자본주의는 오랜 역사를 지닌 소비주의와는 다르다고. 역사상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원해서 물건을 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사람들은 오래 가고 가치 있는 물건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을 사기를 원했다고. 책을 읽으면서 단순한 소비주의와 소비자본주의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에 공감하게 된다. 산업자본주의가 손을 대는 거의 모든 것은 죽었다.(-184쪽) 산업자본주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도 악착같이 살아 남았다. 그 후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생산보다는 소비를 조장하며 위협적인 환경 문제를 일으키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탄생했다. 지금의 소비자본주의다. 소비를 조장하는 까닭에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배출되었다. 만약 소비자본주의가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 소비자본주의는 폰지 사기와 닮았다. 생존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성장이 필요하다. 소비가 멈추거나 둔화되면 세계 경제 시스템은 휘청거리고 흔들린다.(-252쪽) 폰지사기란 실제로는 이윤을 거의 창출하지 않으면서도 단지 수익을 기대하는 신규 투자자를 모은 뒤, 그들의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자행되는 다단계 금융 사기 수법을 말한다. 1997년 초 폰지사기 때문에 알바니아 국민의 대부분이 재산을 잃어버린 사건으로 반 년 넘게 유혈사태로 이어졌다고 한다. 책을 읽다가 일회용 자본주의라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제는 옛날처럼 오래 쓰고 싶어하는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는 말이 씁쓸하다. 싼값에 곧 버려지게 끔 만든다는 의미다. 낮은 생산 비용과 판매 가격으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높은 수익을 창출하고 자연은 희생된다는 것이다. 미국인이 1980년보다 다섯 배 더 많은 옷을 사고 평균 일곱 번을 입는다는 말이 놀라울 뿐이다. 팔리지 않은 것들의 대부분은 매립되거나 파쇄되거나 소각 되어진다. 결국 모든 것이 환경과 맞물려 있음을 우리는 잊고 있는 것이다. 이상기후현상에 시달리고 있는 작금의 세계를 보더라도 지구는 이미 시한부 판정을 받은 듯 하다. 환경보호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고 하지만 어쩌면 늦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비생각

자본주의는 자연과 긴밀히 엮여 있다. 경제 활동은 늘 환경을 파괴했다. 경제 발전의 매 단계에서 인간은 천연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이 과정은 생태계를 해치고 지형을 바꿨다. 오늘날의 소비자본주의 아래에서 인간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여러 동식물이 멸종했고, 생태계는 교란되었으며, 습지는 말랐고, 댐이 세워지면서 강의 흐름이 바뀌었고, 숲은 벌거숭이가 되었으며, 토양은 고갈되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자원을 채굴하여 써먹은 다음 무서운 속도로 버린다. 지구의 모든 대륙과 바다에, 어느 곳 하나 빼놓지 않고 화학물질을 퍼뜨린다. 대기의 구성을 바꾸고 지구를 뜨겁게 달군다. 인간 행위와 활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 장소나 생물 종은 거의 없다. 심지어 가장 깊은 해구 바닥에서도 위험한 독성 화학물질이 생물들을 중독시키고 있으며, 창백한 얼굴의 유령처럼 비닐봉지가 둥둥 떠다니고 있다.(-17쪽 들어가며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금비율의 인연 - 얼굴이 최고의 스펙
이시다 가호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끝도 없이 스펙 쌓기를 하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과연 그들이 원하는 직장인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기업의 인사부팀들은 신입 사원을 채용할 때 가장 먼저 무엇을 볼까? 늘 궁금했다. 간혹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기업의 인사팀에서 이제 스펙은 보지 않고 인성을 본다고. 인성을 본다고? 그저 몇 번의 질문과 대답만으로 그 사람의 인성을 알 수 있다는 건 비논리적이다. 그렇다면 보통의 사람들은 무엇으로 평가를 할까? 단언컨대 1순위가 외모일 것이다. 외모가 어느정도 충족된다면 그 다음이 스펙이겠지. 겪어보지도 않고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일테니 말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가면을 쓰고 산다. 겉으로 보여지는 면과 그 사람의 실제가 다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사회는 불공정과 불평등과 불합리적이다. 아마 그런 것들이 없다면 이 사회는 굴러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무 깨끗한 물에서는 물고기가 살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재미있게 읽혔다. 일본의 사회상을 빗대고 있지만 대한민국도 만만치않다. 채용의 비리는 이미 일상화 되어 있다. 밑바닥 사람들은 더 길고 불안한 동아줄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는 것 쯤은 어린애들도 다 안다. 여기 이 소설속의 주인공은 그야말로 열심히? 노력해서 원하던 회사에 입사했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엉뚱한 부서인 인사부로 좌천 되어버린다. 일종의 희생양이다. 로봇이 아닌 우리에게 '공정하고 객관적'은 생각보다 멀리 있다.(-42쪽) 그래서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 회사를 망하게 하는 사람들을 뽑을 거야. 그녀의 평가 기준은 아무것도 보지 않고 일단 외모가 예쁜, 잘생긴 지원자였다. 대놓고 얼굴 비율을 먼저 따진다는 얘기다. 그녀의 말대로 회사에서 잘나고 괜찮은 사람들의 이직률은 높을 것이다. 어쩌면 대체적으로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들이 스펙도 더 좋지 않을까? 그게 현시대의 사회상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회사는 그녀의 계획대로 채용률은 늘어나지만 3,4년 후의 퇴사율도 늘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은근히 그녀의 계획에 응원을 보내게 된다. 그만큼 이 사회가 공정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채용 담당자는 온갖 평가 기준을 세우고 '종합적'이고 '다각적'이라고 외친다. 그러나 실제로는 애매한 평가 기준이 늘어날수록 '공정하고 객관적'과 당연히 멀어진다. 그야말로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는 콘플레이크 상자에나 있을 뿐이다.(-69쪽) 사실 콘플레이크 상자에도 '공정과 객관적'은 없다. /아이비생각

우리는 어려서부터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배워왔다. 그런 배움의 영향으로 외모라는 평가 기준은 처음부터 뇌에서 지워버렸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그러나 안 그러는 사람이 있나.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면 우리는 왜 그토록 표정에 집착할까. 사람을 표정으로 판단하는 일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표정도 어차피 외모라고.(-5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은 어제가 있어 빛난다 - 과거를 끌어안고 행복으로 나아가는 법
샤를 페팽 지음, 이세진 옮김 / 푸른숲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 찾아볼 때가 있다. 기억과 추억의 차이는 뭘까?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을 기억이라 하고,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을 추억이라고 사전은 알려준다. 그런데 그 기억이라는 것은 믿을 게 못 된다는 말도 있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것이 뇌의 기능이기도 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까닭이다. 기억의 오류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억이라는 것이 우리가 이미 지나쳤던 시간들의 집합체라고 한다면 말의 의미가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 이 책은 우리를 지나쳐간 시간들, 즉 과거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과거는 그렇게 쉽게 잊혀지는 게 아니라고. 그 과거가 지금의 나에 대한 정체성이 되었다고. 이쯤에서 앞에 이야기했던 '추억'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아마도 좋지 않았던 기억을 추억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추억은 돌이켜 꺼내보았을 때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일들이다. 나쁜 추억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하는 말이다. 책을 읽다 보니 우리의 기억, 즉 과거를 생각하며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된다. 우리가 모색해야 할 것은 과거와 더불어 사는 법, 무거운 짐을 가벼운 마음으로 지는 법이다.(-24쪽) 심리학 책에서도 그런 말을 하곤 한다. 과거의 자신을 안아주어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왔던 일들이 단순히 우리만의 기억일까? 부모들이 경험에서 끌어낸 판단, 교훈, 해석은 일부분 사회적 맥락에 의해 정해진 것으로, 암묵적 의미기억의 핵심을 이루어 대대로 전달된다.(-42쪽) 는 저자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를 외면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어차피 과거의 고통이나 트라우마로 남은 기억을 회피하기에는 얼마나 많은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까닭이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아픈 과거와 화해를 하기 위해 심리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외면하고 싶었던 과거가 눈물 흘리게 했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 인지를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고 많은 치유를 받게 되었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다르지 않다. 과거는 모두 현재였으며 현재는 또 모두 미래가 된다. 지금의 현재가 어떤 미래를 만들지 알 수 없는 일이니 저자의 말처럼 과거를 버팀목 삼아 현재를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하다. 자신의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며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이 모르는 진짜 농업 경제 이야기 - 기아와 미식 사이, 급변하는 세계 식량의 미래
이주량 지음 / 세이지(世利知)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아와 미식 사이, 급변하는 세계 식량의 미래' 라는 부제를 보면서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그야말로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온통 전쟁중이다. 이토록 풍요로운 세상에서 왜 누구는 굶어죽고 누구나 너무 많이 먹어서 죽는가. TV화면에서는 먹지 못하고 병들어 죽어가는 아이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야말로 삶의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책을 덮으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 세상은 저자가 꿈꾸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거라는 거였다. 너무 많은 인간을 먹여 살리기에는 먹을 것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는 말에 공감한다. 저자의 말처럼 세상의 모든 산업은 농업에서 시작되었지만 작금의 우리는 농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돌아보면 금새 알 수 있는 일이다. 농업, 혹은 농촌을 그저 도시의 팍팍함에서 벗어나 잠시 머물러 쉬어갈 수 있는 곳 쯤으로 해석되어지는 우리의 현실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이 많은 인간을 먹여살리기에는 역부족일테니. 아무리 GMO가 어떻고, 대체육이 어떻고, 식용곤충이 어떻고 떠들어댄다해도 한번 편리함과 안일함에 젖은 인간은 쉽게 변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이익만을 창출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극심한 자본주의 시대에? 이 책은 격변하는 시대에 맞춰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다. 농업이 우리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농업이 근본이 되어야 모든 것을 받쳐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이, 우리의 사회가 과연 얼마나 변할 수 있을런지는 의문이다. 현재 인류는 역사상 유일하게 가장 많이 먹고, 가장 싸게 먹고, 가장 멀리에서 가져다 먹는 짧은 행운 타임을 누리고 있다, 는 말은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이든 너무 흔한 세상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산업화는 인류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지만 그것을 위해 희생되어진 것들이 너무 많은 듯 하다. 대자연이 언제 그 대가를 요구할지 지금은 알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지만 이미 청구서는 날아오기 시작한 것 같다. 현재의 지구가 겪고 있는 이상현상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음이다. 어찌되었든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듯 하다. 유기농에 관한 어설픈 지식이 부끄러웠지만 여러 방면으로 배울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아이비생각

여러 요인들이 겹쳐서 이미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곡물을 가장 비싸게 수입하는 나라가 되었다. 원인 중 하나는 곡물 엘리베이터처럼 곡물 수입에 필요한 인프라를 대부분 빌려쓰고 있기 때문이다. --- 식량 사정이 나쁠 때는 생산과 운송의 리스크 프리미엄까지 붙은 가격으로 살 수밖에 없고 그외 별다른 대안도 없다. 에너지는 해외 개발을 통해 리스크를 줄이고 있지만 식량은 상대의 조건을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92쪽)

스타 품종들이 써내려온 영광의 역사 뒤에는 생물 다양성 급감이라는 반대급부가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1900년대 미국 전역에서 재배되던 종자의 다양성이 100이라고 한다면 지금 미국에서 재배되는 종자의 다양성은 4에 불과하다. (-227쪽)

과학자들은 지구인들이 지금과 같은 농업과 삶의 방식을 지속하려면 지구가 1.6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미국인들처럼 살려면 다섯 개의 지구가 필요하고, 한국인처럼 살려고 해도 최소 세 개의 지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 28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픈 카페의 노래 열림원 세계문학 6
카슨 매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열림원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은 느낌이 좀 이채롭다. 등장인물들도 특이하지만 그들의 사랑법 역시 특이하다. 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사람을 어떻게 변하게 하는지 한번 보라는 듯 거침없이 써내려간다. 이것이 일반적인 사랑의 속성일까? 솔직하게 말한다면 몰입도가 좋은 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혀지는 속도감은 있다. 그것처럼 소설속의 세월도 빠르게 바뀌는 까닭이다. 다시 말하자면 군더더기가 없다는 말도 될 터다. 쓸쓸하고 적막한 마을에 카페가 하나 있었다. 지금은 이미 폐허가 되었지만. 그 카페의 여주인 어밀리어의 생김새가 독특하다. 키가 180으로 남자못지 않은 골격을 가졌다. 게다가 힘도 세다. 성격은 또 인색하고 야비하다. 오로지 돈을 위해라면 그녀는 무엇이든 만들고 팔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를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 것 같다. 마을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그녀에 의해 뚝딱 만들어지기도 하고 아픈 곳을 치료해주기도 한다. 그녀에게 한가지 흠이 있다면 한번 결혼을 했었다는 것인데 그 결혼생활이라는 것이 고작 열흘동안이었다는 것이다. 그녀와 결혼했던 메이시는 성격이 비뚤어진 직조공이었으나 어밀리어를 짝사랑하게 되면서부터 사람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착실한 사람으로 변한 메이시는 어밀리어에게 청혼을 하고 마침내 둘은 결혼식을 올린다. 하지만 메이시는 어밀리어와 단 한번도 잠자리를 하지 못한 채 쫓겨나고 말았다. 그리고 떠도는 말로 들려오던 소식은 그가 예전의 망나니 생활로 돌아갔다가 결국 교도소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어느날 어밀리어의 카페에 꼽추 한명이 찾아온다. 자신이 어밀리어의 먼 친척이라고 말하며. 라이먼이라 불리우는 그 꼽추는 어찌된 일인지 어밀리어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잘 지내고 있다. 그 와중에 메이시가 교도소를 나와 마을로 돌아오게 된다. 어밀리어와 메이시, 그리고 라이먼...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저들의 관계를 삼각관계라고 표현되어졌지만 그리 단순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상한 점은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그 어떠한 이유도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메이시가 왜 어밀리어를 사랑했는지, 그리고 어밀리어는 결혼까지 했으면서도 왜 그에게 곁을 허락하지 않았는지, 게다가 어밀리어가 꼽추인 라이먼을 사랑하게 된 연유까지 그 어떤 것도 작가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사랑하게 된 사람의 마음만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무슨 까닭일까? 이 글을 쓰면서도 궁금하다. /아이비생각

미국 남부에서 태어나 뇌출혈로 사망할 때까지 온갖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해온 카슨 매컬러스는 이처럼 일반적인지 않은 신체나 독특한 성격을 가진 소외된 이들을 작품의 주요 인물로 무대에 세웠다. 범상치 않은 열망을 가진 이 인물들은 작품 속에서 ‘비정상적인 광기’의 캐릭터로 읽히기보다 우리 자신의 분신처럼 다가온다. 매컬러스는 그들의 사랑을 조금도 ‘이상하지’ 않게 그려내며 인간의 열망과 고독을 이야기한다. ‘아픈 자’가 ‘아픈 자’들의 드라마를 형상화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아픈 자’임을 환기시킨다. (-책의 소개글에서)

그래서 우리들은 대부분 사랑핟기보다는 사랑하기를 원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간단명료하게 말한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힘들고 불편하게 느낀다. 사랑받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증오하게 되는데,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연인을 속속들이 파헤쳐 알려고 들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는 아무리 고통을 수반할지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가능한 한 모든 관계를 맺기를 갈망한다.(-5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