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의 우리 사람
그레이엄 그린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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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는 19C 말까지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독립운동을 여러 차례 시도하였지만 번번히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미국이 세력 확대를 위해서 쿠바의 독립을 노골적으로 지원했고,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스페인은 쿠바와 필리핀, 푸에르토리코를 미국에 넘겨 주게 되었다. 독립은 했지만 경제적으로 미국의 실질적인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고 토지가 미국 자본과 쿠바인 대지주들에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은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독재정권의 부패가 심했다. 급격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빈부격차도 심해졌다. 여기에 쿠바 수출의 80%를 차지하던 설탕의 가격이 1950년대 내내 요동치면서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으며 이러한 요인들은 자연스레 혁명을 일으키게 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역자 해설을 보면 이 책을 읽기 전에 쿠바 혁명을 먼저 알게 되면 훨씬 더 이해하기 좋을 거라는 말이 보인다. 쿠바,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체 게바라나 피델 카스트로라는 이름이다. 쿠바 혁명은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알베르트 바요등의 혁명가들이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전복시키고 사회주의를 수립한 것을 말한다. 그 덕분에 쿠바의 역사를 새롭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쿠바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이 책의 배경이 그 어수선한 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영역을 차지하기 위한 강대국들의 검은 그림자가 스멀거린다. 주인공 워몰드는 영국인으로 아바나에서 진공청소기를 팔고 있다. 주체성도 없고 소극적인 사람인 듯 하다. 그에게는 예쁘게 생긴 딸 밀리가 있다. 잘 풀리지 않는 아버지의 사업과는 무관하게 밀리는 사치를 즐긴다. 그러니 늘 빚에 허덕인다. 어느 날 불쑥 자신을 찾아온 한 남자에 의해 느닷없이 비밀정보요원이 되어버린 워몰드. '우리 사람'을 만들라는 지시를 받음과 동시에 그에게 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망설이던 워몰드였지만 딸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했던 워몰드. 딸의 승마 클럽 회원들을 살펴보던 그는 그럴싸한 거짓 요원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이름하여 '아바나의 우리 사람'들을. 하지만 소설같은 일들이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마치 현실의 일처럼.

국내 초역이라는 책의 소개글이 시선을 끌었다.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나라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벌어지는 강대국들의 정보 전쟁을 소재로 하는 스릴러.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스릴러적인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풍자적인 요소가 더 짙게 다가왔다. 그 시대가 안고 있는 갈등,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등이 훨씬 더 강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사람 가죽으로 만든 지갑을 들고 다니는 세구라는 경찰이자 고문기술자다. 자신에게는 고문을 할 수 있는 사람과 고문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나뉜다는 그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미국이나 영국, 독일 등 강대국 사람들과 정치인이나 지주층들은 고문을 할 수 없는 부류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고문을 할 수 있는 부류라는 그 말에서 시대적인 배경이 읽힌다. 가짜 정보를 서로 주고 받으며 얽히고 설키는 과정에서 워몰드는 여러번 고민을 하지만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을 제어하지 못한 채 그 일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조금은 이채로운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책날개에 적혀있던 저자의 이력을 보았더니 격변의 20세기를 살면서 소설가, 극작가, 평론가로 시대와 인간을 기록했던 영국의 문인이라고 한다. 학창 시절 힘든 일을 겪으면서 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글쓰기를 권유받았다고 하는데 결국 글쓰기는 자기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한때 공산주의에 빠져들기도 했고, 세계대전 중에 비밀정보부에서 첩보원으로 활동했으며, 국교회가 지배적인 나라에서 가톨릭교로 개종하는 등 독특한 행보를 보였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인지 이 책에서도 사상이나 이념, 종교에 관한 이야기가 배경으로 깔린다. 자신은 무교이지만 딸아이만큼은 절실한 가톨릭신자로 키우는 주인공의 모습이나, 딸의 미래를 위해 어설픈 정보요원을 마다하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저자의 독특한 이력을 떠올리게 된다. 게다가 고문기술자 세구라가 실존 인물이었다고 하니 왠지 서늘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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