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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를 날려줘 ㅣ 어른을 위한 동화 20
이윤학 지음, 엄택수 그림 / 문학동네 / 2005년 12월
평점 :
<내 새를 날려줘>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왜 그렇게 가슴이 먹먹해졌는지 알수가 없었다.
아마도 신문지상의 도서란 카피에서 이 책을 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오랜동안을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끝내는 그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故 정채봉님의 글을 엄청나게 사랑하고 있는 까닭에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후루룩 넘기며 훑어본 책장속의 그림들이 참 좋았다.
어느 것 하나 형식적으로 보여지지 않는 책속 세상이 왠지 아름다울 것 같아 보였다.
몇 날 며칠 바닷가 민박집에 머물면서 문을 열어놓고 파도 소리를 들었다...
이 어른을 위한 동화는 스물네 해를 살아온 어느 소녀가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였다...
그 소녀에게 이 책을 어서 보여주고 싶다...
책을 펴들고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나는 책장을 덮고 싶었다.
문을 열어놓고 들어야 했던 파도 소리는 아마도 그 소녀의 아픔을 이야기 하고 있었을 게다.
또래의 아이들보다 작아서 콩새라고 불렸던 소녀.
하지만 그 아이는 그 별명을 좋아했다.
별명을 갖는다는 건 사랑을 받는다는 말이라던 외할머니의 말씀이 아니라 해도.
그 맑고 순수한 아이의 마음속에 어른스러움을 심어주어야 했던 사람들이 미웠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는 나의 지론이 무참하게 짓밟히고 있는 듯한 착각이 생겨났다.
"모든 것은 슬픔을 가지고 산단다. 슬픔은 부메랑과 같은 것이야.
멀리 던져버려도 언젠가 다시 돌아오게 된단다. 넌 지금껏 슬픔이 주는 고통만 봐왔어.
하지만 네 슬픔은 언젠가,네게 귀한 선물을 안겨줄 거야"
"네 슬픔을 감싸안으렴. 네 안의 슬픔이 너를 크게 할거야. 항상 좋은 일을 생각하려무나.
좋은 일을 생각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기게 된단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말이야"
그랬을까? 그래서 콩새의 슬픔은 콩새를 키웠고 또한 좋은 일이 생겨나게 해 주었을까?
초입부분에서 플라타너스가 콩새에게 해주었던 말속에 시작과 끝의 여운이 함께 묻어났다.
어쩌면 너무나도 평범하고 흔한 주변의 이야기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한 가정의 이야기일런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른들이 살아내야 할 삶의 파고가 콩새에게까지 달려들어 아프게 해야 한다는 것이
나는 정말 싫었다. 한껏 부풀려진 풍선이 언제 터질까 몰라 가슴이 조여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우리의 콩새는 잘 이겨낸다.
먼저 학교를 간 친구들에게 혹은 큰이모집의 지숙이 언니에게, 혹은 이복삼촌의 엉터리같은
삶의 언저리에서조차도 콩새는 절대로 자신을 내려놓지 않는다.
버스차창으로 보여지는 엄마의 눈물앞에서 가슴 아팠을 외할머니의 마음부터 생각할 줄 아는 콩새는
어쩌면 우리가 외면한체로 살아가고 있는 또하나의 情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짐짝처럼 이리 맡겨지고 저리 맡겨져야 하는 삶을 살지만 그래도 콩새는 씩씩하기만 하다.
난 누군가로부터 늘 사랑받고 싶어.
사랑이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외할머니가 날 껴안아줄 때 난 그게 사랑이라고 느껴져.
한없이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 누군가 나를 지켜주는 느낌. 그런 게 사랑이 아닐까?
엄마, 사랑은 그런건가봐. 같이 아프고 같이 슬픈 건가봐.
이제 난 어디서든 사랑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엄마를 생각할 때면 마음이 아픈데, 이건 내가 엄마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일거야. <-95쪽>
난 오빠보다 어리니까 엄마가 더 필요한데 엄마는 왜 날 두고 오빠를 데려갔느냐고 묻고 싶었다던
우리의 콩새가 들려주던 사랑에 대한 정의에 새삼 내가 서러웠다.
보고 또 보고 다시 보았다. 사랑은 정말 저런게 아닐까 싶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채워넣어야 할 답안지를 콩새는 벌써 알아내어 채워넣고 있었던 거다.
내가 엄마 마음을 다 이해하려면 몇 밤을 더 자야 할까.
엄마를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건 슬픈 일이야.
난 엄마를 사랑하는 만큼 엄마를 다 이해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돼. (-97쪽)
누가 누구를 이해해야 하는 건지... 누가 누구를 위로해주어야 하는건지 묻고 싶었다.
그 작은 콩새가 엄마에게 편지를 쓰면서 아팠을 걸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심장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돈이 없어서 수술을 하지 못하던 재환이를 보면서
그동안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한 아이라고 생각했었던 콩새의 마음이 열리고
내가 키우던 새를 네가 대신 날려달라던 재환이의 부탁을 안고 다시 죽변으로 가는 콩새.
"할무니, 나는 새가 될거야. 아주 높이 나는 새가 될 거야"
"그래. 우리 콩새는 아주 높이 나는 새가 되거라"
"할무니, 나는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는 새가 될 거야"
"그럼, 할무니가 안 보일 텐데 어쩌지?"
"아니, 내 눈엔 할무니가 보일 거야. 아주 커다랗게"
"......."
"하늘 끝까지 갔다가 금방 돌아올게, 할무니. 아무 걱정도 하지 마. 알았지?"
"하늘 끝까지 가면 돌아오지 마라. 돌아올거면 뭐하러 힘들여 거기까지 가?"
"아니야, 할무니랑 외삼촌 보고 싶어서 올 거야. 기다려 줄거지, 할무니?
금방 돌아올 테니까 꼭 기다려 줄거지?" -마지막부분에서-
콩새는 마음속에서 키우던 새를 어디로 날려 보냈을까?
마음속에 사랑으로 남겨진 외할머니와 외삼촌이 보고 싶어지면 아마도 다시 새를 부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나는 끝내 눈물 한점을 떨구어냈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