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 1
송은일 지음 / 문이당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우선 정리부터 해보자.

반야.... 이미 무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여인. 어릴적 철모르던 예닐곱살때부터 예지능력을 보여준다.
그토록이나 커다란 예지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라거나 맞닥뜨려야 할 힘겨운 상황까지는 볼 수 없었기에
그 작은 어깨위에 그리도 커다란 짐을 짊어지고 가야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외모는 아마도 경국지색쯤으로 치부될듯 하다.
물론 그 미모로 인하여 벌어질 애정행각은 예정되어져 있는 일이었을거란 말이다.
그러므로 그녀 곁에는 늘 남자들이 머물고 있음이다.
자신의 예지능력을 미처 컨트롤하지 못하던 어린시절부터 사람과 세상을 제몸으로 부딪혀가며 배우는
걸판진 삶의 굿판속에서 점점 변해가는 그녀의 모습은 또하나의 우리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를 위한 사랑은 두가지가 아닐까 싶다. 헌신적인 사랑으로 그려지는 동마로나 현무부령,
무영의 모습속에서 읽혀지게 되는 욕망의 순간들은 어찌보면 안타까울 수도 있겠다 싶지만
차라리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덤벼드는 허울뿐인 또하나의 사랑이 더 솔직해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결국 자신보다는 타인들을 위하여 살아가야 할 혹은 살아내야 할 그녀의 운명이 참으로 가혹하다.
스물 몇살 꽃다운 나이에 자신의 운명을 매듭짓게 되는 반야..
그녀를 앞세워 보여주고 싶어하는 세상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너무 깊고 너무 먼 까닭이다.

사신계... 귀천이 없고 남녀의 차이도 따지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속에서는 모든 이들은 똑같다고.
사람마다 동등하고 자유로울 권리가 있으니 내 마음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꾼다.
얼핏 듣기에는 정말 비현실적인 세상이다. 그야말로 꿈일수도 있는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꿈꾼다. 왜?
그런 꿈을 꾼다는 것이 우리들의 희망인 까닭이다. 그래야만 버텨낼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들 스스로 답을 내려준다.
그런 비현실적인 것 같은 세상이 현실에 있나이까 물으니
현실 안일 수도 있고 현실 밖일 수도 있으나
그런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또하나의 다른 세상이라고.
그야말로 현실적인 답변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이쯤에서 혼란이 내게 온다.
허구인듯 하나 허구가 아닌, 꿈인듯 하나 꿈이 아닌 그런 느낌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시대적인 배경이 언제쯤일까 궁금증을 갖게 될 무렵부터 등장하기 시작하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그들이 만들어내는 배경은 이 소설속에 다시한번 빠져들게 되는 매력이 아닐수가 없다.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글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니
그야말로 읽는 이의 판단에 맡겨지는 것이다.
사신계를 논하는 부분에서 내가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동학과 유토피아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人乃天 사상을 가졌던 동학, 사람 보기를 하늘과 같이 여겨야 한다는 동학의 사상과
거의 비슷하게 맞물리고 있는 듯 했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또 어떤가? 어느곳에도 없는 세상, 공상 사회소설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이상향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똑같은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던 것은 암담하다는 거였다.
반야를 통하여 다가올 세상에 대한 미리보기가 실행되어지고
그 결과를 보여주고 있으니 그것 또한 아이러니하다.
사신계의 등급을 따져볼 때 반야가 앉아 있었던 칠요라는 자리는 꽤나 묵직한 자리가 아닐 수가 없다.
반야를 칠요에 앉힘으로 인하여 그들은 이미 스스로의 선택권을 포기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가올 것을 미리 알고 정해진 수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자들이 할 짓은 아닌듯 싶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동학이란 체제가 한수 위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야를 마음속에서 내치지 못하는 것은
그녀가 대표적인 서민들의 삶속에 머무르는 까닭일 것이다.
힘겨워하는 서민들의 마음을 어우르며 만져주는 까닭일 것이다.
그녀를 통해 아픔 하나씩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는 까닭일 것이다.
하나의 위안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 미리보기를 하던 반야에게서 육안을 빼앗고 심안을 빼앗는 작가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기왕에 앞세웠으니 멋진 세상속에서 한바탕 승리를 위한 푸닥거리를 했어도 괜찮치 않았을까?
반야는... 우리곁에 늘 머물러 존재해야만하는 꿈이었을거란 생각이 든다.
끝없이 타오를 성적인 욕망,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떠는,
자신의 안위를 먼저 앞세우는 우리의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삶의 모습,
내 성공을 위한 도구로 쓰일수만 있다면 어떤 사람이라 해도 괜찮을것처럼 행동하는 우리들의 모습,
누군가 나를 위하여 희생해주기를 바라는 우리의 속내를
반야속에 모두 숨겨두고 있지는 않았는가 되돌아 생각하게 된다.
그럴수는 없는거라고 말해주고 싶어 그녀의 눈을 빼앗았고 마음의 눈 또한 멀어지게 했던건 아니었을까?

모든 인간은 동등하고 자유로우며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가꿀 권리가 있다.
귀천이 없고 남녀유별도 없는 세상이지요. 그 세상에서는 모든 사람의 목숨 값이 같습니다.
동등하고 자유롭지요. 사람마다 그럴 권리가 있고요.
내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나를 보낼 수 있고, 내가 남을 아프게 하지 않으려 애쓰고,
억울한 사람이 없게 두루 살피며 사는 그런 세상, 들어 보신 적 있으십니까?
불법처럼 듣기 좋으나 무릉도원만큼이나 비현실 같나이다.
그런 세상이 현실에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현실 안일 수도  있고 현실 밖일 수도 있지요. 덧붙이자면 무릉도원 같은 세상이 아니라
그런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또하나의 다른 세상이라 보아야겠지요.
<228쪽>

그야말로 이상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고 무엇이랴.
상당한 마력을 지닌 책이 아니었나 싶다. 나도 모르는 새 사신계라는 유혹속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정말로 그런 세상은 올까? 아니 있기나 한 것일까?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세상이.
평등... 과연 평등이란 말속에 숨겨진 구체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어쩌면 꿈일런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깨지 못할 꿈. 그래서 그런 세상에 대한 미련이 많은건지도 모르겠다.
반야라는 여인의 향기속에 묻혀버린 사상하나가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여인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들이 너무 커져버린 여인의 존재때문에 안개속처럼 희미해지고 말았다.
어쩌면 우리가 꿈꾸는 세상 또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반야의 예지능력이 그리 허황하게 보여지지 않았던 것은 그토록 커다란 신통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묻지 않으면 답하지 않았던, 묻는 말에만 답해주었던 그녀의 마음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름대로의 삶을 받아들이며 살아갈 일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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