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매스컴에서 그토록 뜨거운 공방전을 한다해도 나에게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아이구, 한국영화가 다 그렇고 그렇지 뭐...
단지 서로간의 느낌 차이일뿐인 것을 왜 저토록이나 목소리를 키우며 얘기를 하는 건지,
지금은 무조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시대가 아니잖아?
D-WAR 를 보고 싶다는 아들녀석을 달래서 나는 트랜스포머를 보게 했었다.
그랬던 내가 오늘 그야말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D-WAR 를 보았다.
그럼 한번 보지 뭐, 인심쓰듯이 표를 구입했고 인심쓰듯이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래, 어떻게 만들어서 그렇게들 말이 많은지 한번 보기나 하자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왠걸!!! 도입부분부터 나를 긴장하게 했다. 어라? 시작이 괜찮은데!  그리고 영화는 시작되었다. 예고편으로 혹은 이런저런 지면을 통해 많이 보아왔던 그 CG 부분만 빼면 별 거 없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던 그 장면들은 정말 놀라웠다. 영화속에서 보여지던 조선시대의 모습은 왠지 색다른 느낌을 불러 오기도 했었다. 막힐 듯 하면서도 막히지 않고 이끌어가는 스토리라인도 꽤나 공들인 느낌을 받았고 CG 로 보여지는 부분도 그리 어설프게 보이지 않았다. (단, 그 하마같은 괴물만 뺀다면 ㅎㅎ)
 
영화라는게 그렇다. 보는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고 또한 받아들이는 이의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 다가오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전문적으로 영화를 평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전문적인 평가만을 그들에게 맡기면 되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다 자신의 느낌을 말 할수 있는 자유가 있는 곳에 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사람들만을 위해서 영화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까닭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 역시 영화에 대해 많은 생각과 지론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옹졸한 혹은 졸렬한 애국심이라는 말을 배제시킨다 해도 이 영화는 그렇게 형편없는 영화로 보여지지 않았다.
누구나가 전문가적인 평가를 하기 위해서 영화를 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영화 자체만을 보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또한 거기에 심형래라는 사람의 인간승리를 더하여 그 영화를 평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기에 자신만의 주관적인 느낌 표현에 충실하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심형래가 만들었기에 마이너스적인 효과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말하며 눈물 짓던 그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렇지 않다. 심형래가 만들었기에 더 좋은 영화로 보여질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잘된 것은 아니란 얘기다. 사실 조연으로 나왔던 외국배우들의 연기력도 썩 잘했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리 나쁘지는 않다. 그의 불끈 쥔 주먹을 보며 화이팅을 외쳐본다.
 
우리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진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전설.
처음엔 과연 될까? 싶은 생각에 우려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곧 나의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흔히 영화속에서 보아왔던 중국의 모습과는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 우리의 도사들도 축지법을 쓸 줄 알았고 물위를 걸을 줄 알았으며 장풍을 쓸 줄 알았다. 웃음이 나올 것 같은가? 전혀 그렇지 않다. 단지 우리는 중국의 것에 습관처럼 기준을 맞추고 있을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국인임을 느끼게 해 주었던 앤딩장면의 감동은 너무 벅찼다. 가슴 저릿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그 아리랑의 곡조.. 지금의 젊은이들이 그 아리랑의 곡조속에서 가슴 아린 느낌을 찾아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웃기는 사람중의 하나이다.
미국 비디오 대여점에 꽂혀있던 용가리를 보면서 다시한번 용기를 내게 되었다.
우리의 기술로 만들어진 디워가 너무 자랑스럽다.
올라가던 자막이 멈추었는데도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없다고 본다. 끝내는 용이 되어 승천하던 이무기처럼 심형래 감독에게도 그런 멋진 날이 올 수 있을거란 기대를 해 본다. 마지막 클라이막스 장면이 아직도 눈에 보이는 듯 하다. 멋지다. 우리의 영화였기에 더욱 더 대견스럽다. 우리의 영화도 저렇듯 멋지게 폼을 잡을수 있구나 싶었다. 모든 편견과 선입견을 떨쳐버리고서
오직 나만을 앞세워 영화를 한번 봐도 괜찮을 것 같다.... /아이비생각


심형래라는 이름을 생각합니다. 자신의 일을 끊임없이 개선·개발·혁신해 부가가치를 올리는 지식을 소유한 사람...신지식인이란 말은 바로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무서워... 내가 처음 이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무섭다는거였다. 정말로 이 세상이 눈먼 자들의 세상이 되어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진즉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던 사람과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던 사람이 온통 검은색의 세상을 만나게 되는 느낌은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가만히 앉아 눈을 감아 본다. 세상이 온통 먹빛이다. 그러다가 알 수 없는 소용돌이를 본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그런데 이 책속에서 만나지는 것은 온통 먹빛인 세상이 아니라 하얀 어둠이다. 온통 하얀 세상... 그러나 아무것도 바라볼 수 없는 세상... 거기에는 두려움과 절망과 포기만이 있을 뿐이다.

어느날 운전을 하며 집으로 가던 한 남자는 신호등 아래서 그만 눈이 멀어버린다. 신호등이 바뀌고 뒤에 있는 차들은 경적을 울려댄다. 하지만 그 남자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왁자지껄하게 한마디씩 거드는 틈을 타서 착한 남자가 말한다. 내가 당신을 집까지 데려다 주겠소.. 하지만 그 남자 역시 실명을 하게 되고 그 실명은 전염병이 되어 실명을 한 남자를 치료를 해 주었던 병원의 의사나 간호사, 그 착한 남자를 거쳐 갔던 경찰관이나 모든 사람들이 마치도 줄에 꿰인 듯 하나씩 하나씩 실명을 당한다. 놀란 정부에서는 그들을 격리시키게 된다. 하지만 그곳은 일상적인 병원이 아니다. 버려진 정신병원... 너무나 황폐한, 그리고 너무나 을씨년스러운 곳.. 그리고 그곳의 사정은 넘쳐나는 실명자의 숫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나는 하나의 희망을 본다. 단지 남편을 보호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수용소에 갇힌 아직,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 아니 어쩌면 그녀는 이 글이 끝날때까지 눈이 멀지 않을 것이다. 가장 처음 수용소내의 같은 병실로 수감되게 된 일곱사람.. 처음 눈을 멀게 된 남자와 그 남자의 아내, 안과의사와 그의 아내, 그리고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와 엄마를 잃은 소년, 검은 안대를 한 노인, 이렇게 일곱 사람은 눈 뜬 의사의 아내에게 너무도 무거운 책임과 과제로 남겨진다. 차라리 눈이 멀고 싶다던 그녀의 마음, 나는 눈이 멀지 않았다고, 나는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던 그녀에게 남편은 말한다. 아니, 차라리 말하지 않는게 나아. 당신이 이 많은 사람들의 노예가 되는 것은 싫어... 지옥같은 수용소의 생활속에서도 착취하는 계급이 생겨나고 약탈과 강간등 말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묶여진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과 봉사를 하는 의사의 아내는 불의에 맞서 결국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불이 난 수용소를 탈출하게 되지만 그들 앞에 놓인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그 여자는 도대체 어디 있는거야. 나 여기 있어요..내가 그애 손을 꼭잡고 있어요, 아이를 떼어내려면 내 팔부터 잘라야 할거예요, 다른 손으로는 남편손을 잡고 있어요, 그리고 내 뒤에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가 오고 있어요, 그 다음에는 검은 안대를 한 노인이, 그 다음에는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가, 그 다음에는 그 사람 아내가 와요, 모두 함께 있어요, 솔방울처럼 꼭 붙어 있어요, 이 열기속에서도 솔방울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 지옥같은 수용소내에서 똑같이 실명이란 불행을 겪으면서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인간의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는 정말 역겨웠다. 역겹다 못해 허무했다. 자기자신의 존재의식마져 상실한 채 그저 동물적인 욕구와 본능에만 충실하기 위한 그들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동물이 아니고 무엇이랴 싶었다. 눈이 있으나 보고 싶지 않았을 의사의 아내가 더 참담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내가 들어가서 그녀의 팔에 매달린 것들을 떼어내주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일곱사람과 함께 하며 일곱사람의 희망으로 남아준다. 굳이 여기서 일곱사람이라고 말을 하는 것은 어쩌면 그녀 자신에게도 그녀의 눈은 희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까닭이다.

자기 자신을 잃지 마시오, 자기 자신이 사라지도록 내버려두지 마시오...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의 집에 찾아갔을 때 그곳에 머물러 있던 작가는 이렇게 말했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이 사람으로써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책을 읽던 도중에 나는 그만 손에서 책을 내려놓고 싶었다. 너무나 묵직하고 답답한 알 수 없는 무엇이 계속해서 나를 짓눌러대고 있는 것 같은 느낌때문이었다.  내 목소리가 바로 나요.. 라고 말하던 사람의 가슴속은 어떠했을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저 하얀세상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는다는 건 또 얼마나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가?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의 일곱사람 모두는 나 외의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던 것 같다. 가슴속에 기억해 두었던 관계의 사슬을 끊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랬기에 마지막까지 사람다움을 잃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직이 있어야지, 인간의 몸 역시 조직된 체계야, 몸도 조직되어 있어야 살 수 있지, 죽음이란 조직 해체의 결과일 뿐이야.  눈먼 사람들의 사회가 어떻게 조직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겠어요. 스스로를 조직해야지, 자신을 조직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눈을 갖기 시작하는 거야.... 각 거리마다, 각 지역마다 각 건물마다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 의사가 말했을 때 나는 문득 인간이란 것은 틀에 묶여진채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모양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떤 규칙과 룰이 없다면 제멋대로일 뿐인,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하나일 뿐인 존재, 그것이 바로 인간이 아닐까 싶었다. 스스로를 조직해야 한다는 말을 앞에 두고서 나는 둔중한 무엇인가로 한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구나, 세상의 조직이라는 것도 결국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지는 것을... 죽음보다도 눈이 멀것을 걱정하던 의사의 아내는 아마도 희망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를일이다.

다른 사람들과 사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거지... 한시간, 하루를 살면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이해와 배려의 깊이는 얼만큼이나 될까? 또한 이해와 배려를 받는만큼 나는 그들을 이해하고 배려해주고 있는가? 이해하고 배려해주지 못한다면, 이해하려는 마음이나 배려해 주고 싶어하는 마음의 깊이는 얼마나 되겠는가 말이다. 책속에서 만나졌던 화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과 잃어버리면 안되는 것들이 아닐까 싶었다. 너무나도 무겁게 다가왔던 그 느낌들이 아마도 그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지금 내가 잊고 사는 것은 무엇이며  잃어버린채 살아가고 있는 것들은 또 무엇인가?  나 자신을 되짚어 하나둘 헤아려 보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마침내 그들에게서 하얀 장막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을까? 하나 둘씩 장막이 벗겨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주인공들은 그냥 그렇게 당분간은 살아가자고 말한다. 어쩌면 또다른 두려움일런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함께였다는 것을 떠난다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눈멀었던 시간속에서 존재했던 그들의 일상과  다시 눈을 뜨게 된 시간속에서 그들에게 다시 찾아온 일상의 모든 것들은 과연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눈을 뜨는 공간속에서 의사와 그의 아내가 하는 문답이 참으로 아팠다. 야성으로 변하지 않았던 눈물을 핥아주는 개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이미 눈 멀어버린 세상속에서 찾아낸 한사람의 눈동자속에서 그 개는 생각했었다. 굳이 시체더미와 쓰레기더미속에서 헤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눈이 멀었던 세상과 다시 눈을 뜨게 된 세상속에서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검은 색안경의 여자의 마음속에 담겨져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사랑이라는 피상적인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사랑도 때때로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므로...그것조차 사람의 일이므로... /아이비생각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winpix 2007-08-13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섭기도 하고, 가슴 아프기도 하고, 섬뜩한 작품이었습니다. 사람의 본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들고 사람이 사람이게 하는 것,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유대. 사랑. 등등.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 소설이었죠.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부모의 습관이 아이를 망친다
정경옥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아이가 있는 집의 부모라면 그것도 아이의 상태가 부모의 기대와는 약간씩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부모라면 한번쯤은 육아상식이나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혹은 아이와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를 물으며 서점을 들러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쪽에 속하는 엄마가 분명하니 말이다.  아이가 어렸을 적에 맞벌이를 했던 까닭에 주변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나 들리는 이야기 하나하나마다 촉각을 곤두세웠던 경험이 있다.  지금 시절이야 나 어렸을 적의 세상과는 너무 다르고 또한 나 어렸을 적의 내 부모세계와는 판이하게 다르니 처음에는 육아라는 의미자체에 겁부터 먹었던 것 같다.

결혼이 늦은 관계로 인하여 당연스럽게 늦어진 아이를 보면서 남편과 함께 다른 건 몰라도 예의를 아는 사람으로 키워보자고 다짐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하다보니 아이가 늦은 부모치고는 아이 중심이 아닌 부부 중심의 생활을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일수도 있겠지만 맞벌이를 하는 나에게 육아라는 짐은 상당히 큰 무게로 느껴졌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유아원이나 유치원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보자는 거였다. 아무래도 엄마인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말이다. 거기다가 너무 일찍 시작되어진 아이의 사회생활에 도우미로써 나선 사람들이니 믿고 달려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었던 까닭이다. 아마도 나처럼 아이문제로 상담하기 위해 자주 들렀던 엄마는 드물 것이다.  오죽했으면 감사장까지 받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 대한 나의 불안감은 지울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엄마의 정을 받아 보지 않은 아들녀석은 커갈수록 말썽꾸러기가 되어갔고, 그에 따라 나의 힘겨움도 커져 갔으니 말이다.  솔직히 나는 자기계발서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때는 거기에 푹빠져 지낸 적도 있었다. 이론과 정보만 가득해져가는 나의 모습이 싫었던 이유도 있겠지만 이론과 실제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생각에 그만 접어야 했다. 모든 것은 내가 얼만큼 받아들이고 실천하느냐가 관건이겠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온갖 좋은 말들은 다 모아 놓은 것 같이 보여진다.
사랑받는 아이가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행복한 가정에서 아이는 바르게 성장한다, 칭찬받는 아이가 크게 발전한다,  때로는 현명하게 야단쳐야 한다,  자신감을 가진 당당한 아이로 키워라,  관계 맺는 법은 일찍 배울수록 좋다,  건강한 식습관은 평생을 좌우한다,  아이의 눈을 열어 창의력을 길러주어라,  소질과 잠재력에 힘을 실어주어라,  독서하는 습관이 성공을 부른다,  즐겁게 공부해야 잘할 수 있다...등등등, 어느 것 하나 빠뜨려서는 안될 좋은 정보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솔직한 이야기로 이런것 모르는 엄마가 몇명이나 있을까? 아이를 저렇게 키우고 싶지 않은 부모도 있을까?  굳이 이렇게 책을 보지 않아도 이런류의 이야기라면 여기저기에서 주워듣는 말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은 이렇게 제목만 이야기해주는 정보가 아니라 이럴 땐 이렇게 해 보자라거나, 이렇게 저렇게 해 보아도 안되는 경우라면 또다른 방법도 있다는 등의 실질적인 경험사례와 쉽게 받아들이며 실제 생활과 접목시킬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이상하게도 저렇게 거창한 제목들만이 난무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야단을 안 쳐본 줄 아세요? 아무리 말해봤자 쇠귀에 경 읽기예요. 말귀를 못 알아듣는데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프지. 대체 뭐가 될지, 벌써 틀려먹었어요"
"처음보는 단어 아니지? 그런데 왜 틀린거야?"
"얘가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머리가 나쁜 거야. 절반도 못 풀었잖아. 왜 좀 더 노력하지 않는거니?"
"너는 어떻게 된 애가 구구단 하나도 제대로 못 외우니? 남들보다 잘하는 건 바라지도 않아. 그래도 남들만큼은 해야지. 학원비는 땅 파서 나오는 줄 알아? 바보 아니니?"
자, 이런 말 한마디쯤 안해본 부모가 있으면 자신있게 손들고 나와보시라... 모든 부모의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아이들의 마음처럼.. 이런 책을 읽다보면 선생님 앞에 불려나가 한시간 이상 야단맞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부모를 책망하는 듯한 책보다는 부모와 아이가 어떻게 하면 함께 공감하며 지낼 수 있는가 하는 방법에 목마르다. 요즘도 나는 아들녀석과 전쟁중이다. 이 전쟁은 사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일테지만 전쟁중인 당사자들은 힘에 겹다. 그래서 자꾸만 오아시스를 찾듯이 책을 찾아 헤매이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떻게 하면 서로에게 상처를 덜주는 전쟁을 할 수 있을까 하면서.. 세월이 가면, 시간이 가면 왠만한 것은 다 해결된다고들 말하지만 당사자들의 마음은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지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아직 어린 아이를 둔 부모의 지침서같다. 유아기 시절에 해야할 부모의 역할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 듯 보여진다.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들 말하는 그때에 나는 무엇을 했었는가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이의 옆에는 부모가 있어주어야 한다는 것과 아이의 가장 좋은 선생님 역시 부모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 같다. 30초간 내뱉은 부모의 말 한마디가 아이의 30년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75쪽>는 말한마디를 가슴 깊숙히 새겨 넣으며 책장을 덮었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인트 1 - 그랜드 얼라인먼트의 아이들
박정호 지음 / 피스토스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그랜드 얼라인먼트(행성 직렬 현상)가 지구에 비춰지던 시각, 선과 악의 대결은 시작된다. 신이 예언했던 인간의 종말과 신을 이기기 위해 생명연장을 꿈꾸는 인간의 두뇌싸움.. 인간의 속성은 이미 태고적부터 두가지로 분류되어진다. 선과 악을 대결구도로 삼아서.. 하지만 이미 알고 있듯이 악이란 존재 역시 선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선이 있는 곳에 악도 분명히 존재한다. 신을 이기기 위해 인간의 종말을 재촉하는 악의 무리는 결국 적그리스도를 만들어내고...

사실 성서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나 종교적인 세부사항을 빌려왔던 책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우리의 작가라는 점이었다. 그것도 젊은...
그가 그려내는 이야기구도는 어떤 형식일까? 그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고 말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형편없는 기대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 책은 이미 첫장부터 나의 마음을 빼앗아가기 시작했다. 10년 이상의 구상을 거쳤다는 점 또한 나의 마음을 빼앗아가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도대체 그 무엇이 그토록 오랜시간동안 한사람의 가슴속에서 살아 숨쉬었던 것일까?  그저 그렇게 흔하게 보여지던 성경이야기는 아닐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 책속에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CIA, 유럽의 EU 등 세계적인 존재들이 거침없이 등장하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성경의 구절들을 빌려와 그것으로 모티브를 엮어가는 점 또한 시작부터 거친 숨을 쉬게 만들어 주고 있음이다. 도대체 신의 약점을 거머쥔 인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책속의 세상은 참으로 방대하다. 과학과 종교의 싸움인듯 보여지면서도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거칠 것 없어 보이는 강대국들의 정보싸움이라거나,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불멸의 존재들을 앞세운 그야말로 무적의 최강팀을 거리낌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고 최첨단의 과학세상속에서 느닷없는 과거의 신화나 설화속으로 나를 데려가기도 한다.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책속의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생동감 있다. 가상의 인물들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을만큼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우주의 빅쇼, 그랜드 얼라인먼트... 예수가 탄생할 때 존재했다던 그 큰 별은 사실 그랜드 얼라인먼트였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지금의 과학기술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큰 별이 있었다고만 기록을 했었죠... 정말 기가막힌 상상이 아닌가? 성경의 구절을 통한 신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을 보여주는 대목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또 종교인들이 들고 일어나겠군,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중간중간 몇구절씩 인용되어지던 성경의 말씀들은 이 책의 무게와 깊이를 더하게 한다. 그랜드 얼라인먼트의 정기를 받아 태어나는 153명의 아이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153이란 숫자의 의미에 대해서. 아주 작은 소재까지도 성경속의 일화에서 따왔다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게 보여지기도 했다.

아니, 인류는 발전하지 않아. 복잡해지고 있을 뿐이지. 인류는 옛날에도 지금과 같았어. 단지 주변이 복잡해졌을 뿐이야. 인류가 진정 발전시켜야 할 것은 문명이 아니라 인간애의 회복이야. 인간애의 회복은 몇 개의 구호단체로 해소되는 게 아니야. 인류가 목숨을 걸고 매달려야만 가능하지...<266쪽> 차라리 과학을 신봉하는 인간의 말이었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한마디였다. 그런데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불멸의 존재, 신의 재림을 기다리며 2천년을 살아왔다던, 죽음을 꿈꾸는 자의 입을 빌어 나에게 다가왔던 그 말은 그저 최첨단이란 테두리안에서 살고 싶어하는, 어쩌면 그렇게 살아가는 것만이 최선의 길인것처럼 세뇌를 당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야말로 혹시나 하는 의문부호를 남기게 해주었다.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대목이었다. 그 불멸의 존재는 또 이렇게 말한다. 지식이란 건 단지 남보다 먼저 아는 것일 뿐이라고...

문득 일전에 보았던 <아일랜드>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부터 몸 상태를 점검 받고, 먹는 음식과 인간관계까지 격리된 상태속에서 사는 그들모두의 희망은 지구에서 유일하게 오염되지 않은 희망의 땅 ‘아일랜드’에 추첨되어 뽑혀 가는 것이었다. 자신들을 지구 종말의 최후 생존자라 믿으면서. 하지만 그들은 알게 된다. 자신들이 단순히 복제되어진 인간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들을 만들게 한 주인의 상태에 따라 운명이 좌우되었던 것을. 끝도 없는 인간의 욕망,영원한 삶을 꿈꾸는 인간의 욕심, 아마도 종말이 온다면 인간의 그러한 욕심때문이 아닐까?

아이들을 살려내기 위해 체르노빌로 가는 중에 우리의 건국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마늘과 쑥에 얽힌 이야기를 체르노빌이라는 지명을 빌어 역사적인 흐름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별 것 아닌 듯 보여지면서도 혹시? 하는 마음에 다시한번 읽어보게 된다. 단지 상상으로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말하기에는 무언가 더 있을 것만 같은.... 그야말로 가공할 위력을 가진 무적의  특수부대가 나오는 대목은 긴장감을 더하게 한다. 그들의 국적은 한국이다. 미국의 조직보다도 더 치밀하고 더 강한 우리의 특수부대 요원들이 미국의 지배하에 놓여져 있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그래서 우리가 아닌 그들을 위한 목숨이라는 것과 그들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것 또한 우리의 현실 같아 보여서 아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무조건적인 복종으로 보여져서. 힘없는 나라의 서러움이다. 그것은.

단숨에 읽었다. 숨도 쉬지않고 읽은 것 같다. 그만큼 스토리전개가 빠르다. 그러면서도 빠져드는 마력이 있다. 오랜만에 멋진 책을 만난 것 같다. 마지막 장을 읽어가면서 다시 읽을 2편이 기대되는 책이었다. 그랜드 얼라인먼트, 별의 정기를 받아 위인들을 태어나게 했던 그들의 이야기.  알렉산더 대왕, 징기스칸, 나폴레옹과 같이 별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위인들처럼  별의 정기를 받아 만들어지게 되었던 그 153명의 아이들중에서 대한민국에서 태어날 아이도 한명 있었다는 것... 앞으로 전개되어질 다음 이야기를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다음 이야기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의 실크로드를 찾아서
심형철 지음 / 포스트휴먼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가끔 우스개소리로 복권 맞으면 뭐할거냐고 묻는 때가 있다. 복권이라는 게 생각지도 않았던 돈이 굴러들어오는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아마 평소에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것들을 물어보는 저의도 깔려 있을게다. 집을 살거야, 차를 살거야, 여행을 갈거야 등등등... 많은 대답들을 하지만 그때마다 내 대답은 한결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딱 두가지야.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 전문적인 가이드를 하나 고용해서 유럽여행을 꼼꼼하게 다녀오는 것 그리고 돌아와서는 우리나라의 섬일주를 하고 싶어... 그러고나서 나는 다시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서 살거야... 내가 그런 꿈을 꾸어온지도 꽤 오래됐다. 오죽했으면 남편의 꿈이 아내의 꿈을 이루어주고 싶은 걸로 바뀌었을까? 

마야문명의 흔적을 더듬으며 답사를 하고 싶다는 거와 잉카문명의 유적지인 마추피추를 다녀오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실크로드에 관한 나의 관심도는 적었었다. 
실크로드... 단순히 내륙 아시아를 횡단하는 고대 통상로로써 비단길이라고 불리워진다는 것과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은 동방에서 서방으로 간 대표적 상품이 중국산의 비단이었던 데에서 유래했다는 것, 또한 그길을 따라서 서방으로부터 보석이나 직물 등 불교, 이슬람교등이 동아시아에 전해졌다는 것.. 이런 정도외에는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과연 실크로드에 담긴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나름대로 기대를 하면서 책장을 펼쳐들었다. 이런 기행문의 글을 읽다보면 곁들여진 사진을 통해 함께 보여지는 간접적인 체험이 참 좋다. 역시 사진으로 다가오는 현장의 느낌들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한편으로는 조금 낯선 느낌을 떨쳐내지 못했다. 낯선 언어를 통해 쉽게 다가오지 않는 지명이라거나 일정에 쫓기는 듯한 긴박함이 느껴져 공연스레 내마음이 바빠지곤 했다. 실크로드의 출발지인 시안의 안정문에서부터 황하를 기반으로 조성되어져 있는 문명의 흔적들, 문화재를 도굴해 간 도굴꾼들의 이야기라거나 열강들의 문화재 빼앗아가기를 보면서 약소 국가의 서러움을 보기도 했다. 둔황의 막고굴이나 자오허 고성은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미꽈와 같이 이국땅에서 맛보는 별미의 음식들 또한 나를 자극하기도 하고 기후조건을 잘 몰라 고생하는 대목에서는 안타까움이 일기도 했다.

막막한   모래 구릉들이 파도처럼 끝없이 뻗어나간 사막의 중심에 섰다.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면 시간마저 정지한 듯하지만 발가락을 간질이는 모래의 움직임은 제법 빠르다. 그제야 발밑을 보면 죽은 듯, 숨을 멈춘 듯한 사막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치 정지한 듯 하지만 언제나 빠르게 흐르고 있는 인생같다. 혹시 먼 곳만을 보고 달려가다 문득 어딘가를 간질이는 느낌이 있어 돌아보면 황혼이 저만큼 와 있지는 않을까? <138쪽>
여행을 하면서 어떤 여행이 되었든간에 이런 상념에 한번쯤 젖어보지 않을 수 있을까? 한번쯤은 되돌아 보며 자기자신에 대해 회한을 느껴보기도 할 것이다. 그만큼 여행이라는 것이 주는 의미가 너무도 넓고 깊은 까닭이리라. 군데 군데 녹아들어 있는 저자의 마음이 속깊이 다가왔다. 그 황량한 사막길에서조차 반갑게 만나질 수 있는 맑은 호수들처럼 우리네 인생길에서도 그와같은 쉼터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혼자만의 생각에 젖어보기도 했다.

전설적인 길 실크로드를 따라나선 길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많았다. 그 길을 따라 펼쳐지는 사람들의 생활상이라거나 그들의 풍습 혹은 그들이 겪어내야 했던 모든 일들을 이 책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 사람사는 것은 어디나 똑같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어찌 똑같을 수가 있으랴 싶을 정도로 세세하게 소개해주고 가는 저자의 마음이 참 고마웠다. 그들을 만나 그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함께 웃어주며 함께 힘겨워했을 저자의 길이 어쩌면 행복하기도 했을거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면서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우러나는 부러움을 어쩌지 못했다. 언젠가 자신이 가진 전재산을 처분하여 가족을 데리고 세계여행을 다녀왔다던 사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제 정신이야? 그때는 그렇게 말했었지만 그것은 아마도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과감하게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투루판 동남쪽 지점에 높이 서 있다던 원추형 탑, 쑤꿍타의 모습은 너무나 매혹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벽돌로 쌓는 방법을 발전시켜 탑신을 마름모무늬, 물결무늬, 비스듬한 격자무늬, 꽃잎이 6장인 꽃무늬등 15종류의 기하학 무늬로 장식하였다는 쑤꿍타. 쑤꿍타의 기원과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재미있기도 했지만 왠지 씁쓸한 뒷맛을 남겨주었다. 우루무치에서 만나게 되는 깐스(마른 시신)이야기는 정말 신비로웠다. 시체전시관이라던 우루무치 박물관.. 미라와 비슷하긴 하지만 미라처럼 인공이 가미된 것이 아니라 완전 자연 상태에서 건조된 사람의 시체 깐스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느껴졌던 신비로움이라니...

너무 어렵고 생소하게 다가왔던 실크로드의 주변상황들.. 책의 말미에 있었던 부록을 통해  소수민족이라거나 그들의 생활상을 조금이나마 쉽게 알 수 있도록 다시한번 확인해 준 저자의 마음씀씀를 볼 수 있었다. 참으로 힘든 여정을 다녀온 저자에게 부러움과 감사의 마음을 전해본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