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성서 이야기
이경윤 엮음 / 삼양미디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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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한다면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라해도 성서속의 이야기 몇편쯤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속에서 만나지는 기독교인들의 입을 통하여 전해지는 그런 이야기들이 어느정도는 강압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까닭이다. 어린 시절엔 무슨 날만 되면 교회에 가는 것으로 알았고 나름 커뮤니티의 형성을 원하는 나이때에는 나도 열심히 교회문턱을 드나들었던 기억도 있다. 그러면서 성경읽기에 도전해 본 적도 있었지만 사실 너무 지루하고 짜증나 얼마못가 때려치기도 했다. 창세기부터 시작하자고 들면 첫째날부터 시작되어지는 몇째날, 몇째날 이란 수식과 누가 누구를 낳고 누구를 낳고 하는 식의 이야기를 거부감없이 받아들인다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황당한 이야기들을 이해하기엔 나의 믿음과 몰입이 부족했다. 어린 나이에 목사와 전도사를 찾아다니며 진위를 캐묻곤 하던 당찬 모습의 나를 떠올리며 피식 웃어보기도 한다. 그럴때마다 나에게 돌아왔던 답은 그냥 믿어라, 였다. 무조건적으로 믿고 따르라는 말은 상당히 어패가 있어 보였고 그 뒤 나는 아마도 교회로 향하는 발걸음을 놓았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 성경은 하나의 문학처럼 내게 다가왔다. 도대체 무엇이 사람들을 이토록이나 이기적이게 하는가 궁금하기도 했다. 종교에 관한 서적들은 참으로 많다. 종교적인 사고에 내게 가장 큰 이슈를 던져주었던 책은 <세명의 사기꾼-스피노자정신지음> 이다. 그 책을 통하여 내가 얻고 싶었던 것은 단하나, 객관적인 시선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책속에서도 그런 객관적인 시선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랬다.

The Passion of The Christ 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예수의 모습을 인간적인 면에서 그렸다던 영화. 하지만 그 영화를 만든 멜 깁슨이란 배우역시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과 역시 그의 시선속에서도 다분히 신격화시키고 싶어하는 마음을 바라볼 수가 있다. 종교는 필요학이라고 한다. 세상이 힘겹고 험난할 수록 종교에 의지하고 싶어하는 마음 또한 커진다고 한다. 그만큼 마음의 공황이 심해진다는 말일테다. 이 책속에는 성서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구구절절 성서속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게 아니라 하나의 줄기를 만들어 그 줄기를 따라내려오며 성서적 배경을 설명해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어느정도 기독교에 관심을 가져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에 관한 과학적인, 혹은 역사적,사회적인 배경의 진위 여부에 대하여 '성서만화경'이란 코너를 빌어 말해주고 있다. 역사도 승리한 자의 몫이라고 했던가?  성서 역시 뒤에 남는 자들의 몫이었기에 어느정도는 꾸며진 이야기들일 것이란 생각을 버릴수가 없다.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들 앞에서는 왠지 거부감마져 일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속에서 문자만큼이나 커다란 목소리를 내고 있는 명화들을 바라보는 재미는 정말 쏠쏠하다. 마치 미술관에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책속의 내용에 대하여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아니 감초가 아니라 어쩌면 동행자의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나에게는 그림이 주는 이미지가 너무 크게 다가왔음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는 성경.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집에 예닐곱권씩은 구비해 두고 있다는 성경. 하긴 기독교인이 아닌 나의 책꽂이에도 성경은 두권이나 꽂혀있다. 책장을 펼쳐 작자의 머리말을 읽다보면 베스트셀러라는 의미가 무색해지기도 한다. 책속에서 내가 궁금했던 것은 성서외전에 관한 이야기들이 가끔 보여지는 대목들이었다. 성서의 진위여부를 밝혀낼 수 있다던 성서외경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지만 나는 왠지 그런 책들이 빨리 세상속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게 된다. 그럼으로해서 좀 더 진실된 종교의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하는.. 어떤 형식과 겉치레에 치우지지 않고 진정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믿음이란 의미를 알 게 해줄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자신의 욕심으로 타인을 힘겹게 하지 않는...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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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해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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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주제 사라마구라는 작가의 책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정말 놀라웠다. 어쩌면 그리도 한사람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미량의 인색함마져 허락하지 않을수가 있는지,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 같은 일종의 경고성까지... 그랬기에 그의 세번째 작품을 보면서 가슴이 뛰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니다. <눈 먼 자들의 도시>를 본 후 <눈 뜬 자들의 도시>를 보았을 때 도저히 피해갈 수 없었던 그 유혹의 끈끈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지극히 당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그 도시의 삶은 정말이지 서럽도록 처절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책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를 읽으면서도 앞의 두 작품과 연결고리가 있을거라고 내심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이 빗나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속에서 한없이 헤맸다는 것을 또한 인정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주제씨는 중앙호적등기소의 말단직원이다. 그것도 나이가 꽉 찬 혼자사는 남자. 그의 집은 중앙호적 등기소의 건물과 붙어있다. 그의 취미는 유명인들의 기사나 사진을 수집하여 나름대로 그것을 정리해 놓는 것.. 그런데 어느날 유명인들의 자료에 섞여 모르는 여자의 기록이 함께 따라온다. 아주 평범할 것 같은 그 모르는 여자에 대해 호기심을 느낀 주제씨. 결국 그 모르는 여자의 행적을 추적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하여 자신에게 다가올 그 어떤 일들도 예측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 되었든 그것을 자신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처음엔 모르는 그 여자의 사망확인을 하지 못한채 그녀의 삶에 접근을 하게 되고 그러다가 문득 그녀의 기록부에서 '사망'이란 두 글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곤 당연히 그녀의 죽음에 접근을 하게 되는 주제씨. 하지만 나는 여기서 그가 왜 모르는 여자의 삶과 죽음의 연결고리에 집착해야만 했는가에 대해 너무도 궁금했다. 어쩌면 너무나 단조로운 일상속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갈망하던 일탈은 아니었을까? 매일처럼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출근을 해야 하고 일년 삼백육십오일을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시간이 되면 윗사람들의 뒤를 따라서 퇴근을 하는 반복적인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은 아마도 누구나 다 안고 지내는 딜레마가 아닐까 싶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게만 본다면 주제씨의 일탈은 아주 성공적이긴 하다. 하지만 모르는 그녀의 삶의 행적속에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다. 존재의식.. 존재의 가치.. 누구나가 가지고 있을 그들만의 정체성.. 책의 소개글처럼 그렇게 단지 이름만으로 불려지는 그런 의미가 아닌 그 이름이 안고 있는 진정한 또하나의 의미를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너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제씨를 통해 혹여라도 너무 주관적이게 보일수도 있는 타인의 삶에 대한 통찰을 여러명의 제3자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시선을 통하여 어느정도의 객관성마져 부여해주고 있음이다.

모르는 여자의 삶의 여정을 따라가는 주제씨의 발걸음속에는 매순간마다 변해가는 순간적인 감정들, 그리고 상황마다 부딪히는 선택의 기로들, 그것으로 인하여 육체가 겪어야 할 고통들이 동반되어진다. 도둑처럼 아니 도둑이 되어 학교의 창문을 깨는가하면 비를 흠뻑 맞고 돌아와 독한 감기에 시달리기도 한다. 직원들의 눈총을 받으며 조퇴와 결근을 하기도 하고 때론 주체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앞에서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는 생각한다. 이제는 그만두어야겠다고. 그랬음에도 그는 다시 현재진행형이다. 한 여자의 일생을 따라가고 있는 주제씨의 행로속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혹은 살아가야 할 삶의 여정이 담겨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시한번 말하지만 너무 어렵다. 모르는 여자의 죽음을 쫓아 공동묘지에서 밤을 새운 주제씨가 안개속에서 만났던 늙은 양치기의 말을 통하여 단지 불리워지는 이름보다 그 이름이 담고 있을 많은 것들을, 진정한 의미들로 기억해야 하고 그리워해야 하는 거라고 우리를 향해 말하고 있는것만 같았다.

<눈 먼 자들의 도시>나 <눈 뜬 자들의 도시> 그리고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까지 본 주제 사라마구의 '도시시리즈'(내가 붙인 이름이다)에는 특이하게도 느낌표나 물음표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충분히 느끼고 충분히 묻고 있다. 굳이 문장부호를 쓰지 않고도 전해질 수 있는 감정효과를 보면 문장이 담고 있는 호소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현실을 다루고 있는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의 두 작품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다시한번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 아직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미완의 감정이 내 가슴속에 떠돌고 있음이다. 책속에서 주제씨의 행로를 쫓아오던 시선 하나 (나는 사실 그 시선을 눈치채면서부터 왠지 오싹한 느낌이 들었었다), 호적 등기소 소장의 존재는 무엇을 말하고자 함이었을까? 그는 말하고 있다. 그 모르는 여자의 기록부를 다시 만들라고. 그리고 그녀의 사망진단서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여자는 죽게 될거라고.. 그녀의 사망일을 없애버리고 다시 산사람들의 기록속에 섞어놓는다해서 과연 그녀는 다시 산사람이 되는 것일까? 모르긴해도 소장의 말속에 숨겨진 그 깊은 뜻을 찾아 다시한번 책읽기를 해야 할것만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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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명저
김소연 지음 / 삼양미디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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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면서 상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참 많기도 하다. 그만큼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는 말도 될게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그 많은 명작들을 어찌 단시간내에 다 말할 수 있을까 싶었다. 만약에 정말 그렇게 많은 작품을 간단하게 소개할 수 있다면 아마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들을 다 보여줄수는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를일이지만 역시 이 책으로 만날 수 있는 45편의 명작들은 요점만을 간단하게  보여주고 있음이다. 하지만 마지막 작품까지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이랬다. 정말 잘 생각한 책이라고.. 책표지에 써 있던 것처럼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좀처럼 읽지 못한 세계 명작 문학에 대한 나의 생각을 콕 집어낸 것 처럼 그렇게 시원한 느낌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이 책을 읽고난 후 줄거리 정도만 간단하게 이야기 해 줄수 있으리란 생각을 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물론 짧은 줄거리를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만든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부분들이 너무도 많았다. 작가에 대한 프로필을 함께 실었으며 그 작가가 활동을 하던 시대적 배경을 함께 설명해 놓아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 작품이 만들어지게 된 동기라거나 간단한 일화들도 함께 소개해 주었으며 꼼꼼하게 챙겨주었던 삽화나 사진을 통한 독자의 이해를 배려함도 잊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그 작품으로 인하여 일어났던 사건이라거나  그 작품이 사회적 현상을 불러오게 되는 경위, 혹은 유행처럼 번져갔던 일들을 예로 보여주었던 것에서 나는 상식밖의 상식을 또하나 알게 되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했다.

학창시절에 한번은 읽었고 읽었을거라고 생각되어졌던 책들에 대해 재도전하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작정한 뒤에 내가 선택해야 할  책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에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책부터 만나야 하는지 한참을 고민하기도 했었지만 선택단계에서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싫었던 탓에 일단은 생각나는 책, 그리고 눈에 띄는 책부터 도전해 보기로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도전했던 책들이 이 책을 만든이가 소개해 준 책의 목록에서 겨우 반이나 되었을까? 내심 부끄럽기도 했지만 읽고 싶었던 책에 대한 궁금증이나 이미 읽은 책에 대한 또다른 견해를 대했을 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기도 했다.  특히 작가와 그 작품을 함께 묶어 설명해주는 배경지식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저마다의 작품을 이해하기 쉽도록 인도해 주고 있다는 말도 되겠다.

이미 읽었지만 까마득한 날의 기억속에서 되살아난 작품이 있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가 바로 그 작품이다. 총 4부작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일반적으로 '소인국'과 '거인국'이야기만이 아동문학으로 분류되어져 소개되어 왔다는 말은 내가 알고 있었던 <걸리버 여행기>와는 달랐다. 그 두가지 이야기외에 섬나라와 말나라 이야기가 있으며 섬나라이야기를 매개체로 '천공의 성, 라퓨타'가 탄생되었다는 말은 나를 또한번 놀라게 만들었다. 또한 말나라 이야기속의 말들이 기르고 있던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동물의 이름이 야후였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웹사이트 야후Yahoo 가 바로 그 야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하니 이 또한 나를 유혹하기에 충분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라면 죽고 못사는 내가 그냥 지나쳐 갈 수는 없는 일이니 <걸리버 여행기>의 완역본을 꼭 한번은 읽어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듯 싶다.  

45편의 작품중에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었던 작품은 다니엘 키스의 <앨저넌에게 꽃을>이다. 왠지 짧은 줄거리만으로 그 작품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않은 그런 느낌이 들어 도서관에 들르게 되면 꼭 한번을 찾아볼 요량이다.  세계의 명저를 CHAPTER 별로 나누어 놓아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책을 읽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핑게로 손을 대지 못하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 책을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든이의 정성과 뜻이 보여지는 책이기도 하며 단순하게 작품의 줄거리만을 만날 수 있는 책이 아닌 까닭이기도 하다. 책장을 덮으면서  작은 욕심을 부려보자면  오래전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짙은 여운을 남겨주었던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 >를 만날 수 없다는거였다. 물론 이건 나만의 욕심일 뿐이겠지만 왠지모를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지폐에 애니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세계에서 가장 예쁘게 디자인 된 화폐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지폐에 어린왕자의 모습이 인쇄되어져 있는 것을 보니, 그만큼 자부심을 느끼며 문학을 사랑할 줄 안다는 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심 부럽기도 했다. 물론 어린왕자의 아버지 생텍쥐페리의 초상화도 당연히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였다면 어땠을까?  일찌감찌 꿈 깨라고 하지 않을까? 아마 꿈도 못꿀 일이었을 게다. 각설하고 내게는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던 책이었다. 이토록 많은 작품을 짧은 시간내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을 어쩌면 행운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이 책은 겁없는 스파이였으며 뻔뻔한 스포일러의 역할을 했다고...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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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마지막 의식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엮음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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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책장을 덮고서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무릎위에 올려놓았던 책을 왠지 다시 만지기가 싫었다는 게 아마도 솔직한 심정이었을게다. < Atonement >라는 영화의 원작을 썼다는 작가의 소개글을 보면서 그 영화에 대해 검색해 보았던, 그리고 영화평을 보았던 기억이 났다.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사소한 것들로 인하여 벌어지는 일들은 참 많다. 아주 잠깐의 순간때문에 얽혀드는 사연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왠지 한번쯤 보고 싶다는 유혹을 느꼈던 영화였기에 이언 매큐언이란 작가의 이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듯 하지만 이 책을 보고 난 느낌은 껄끄럽다. 어쩐지 혼탁한 호러물을 본 듯한 느낌처럼 그렇게 찜찜함을 피할 수가 없다. 책을 옮긴이의 말처럼 그렇게 내면적인 것을 말하고 싶어했던 거라면 작가가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체 또한 너무 무섭다. 그야말로 살벌하다. 어쩌면 그리도 가감없이 써내려 갈 수 있었는지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작은 은유조차도 허락할 수 없다는 듯이 거침없다. 그래서 더 잔인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작가의 단편들을 모아놓았다거나 어떤 부류에 따라 혹은 시대적이라서...등등등 이런 식으로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편집상태를 과히 좋아하지 않는지라 처음 책을 받아 후루룩 넘기며 살펴보았을 때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느낌이 그리 좋았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더구나 책속 세상의 이야기들이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그런 이야기여서 책읽기를 그만 멈추고 싶어졌다.  그쯤에서 작가의 프로필에 다시한번 눈을 돌려보았지만 어떤 작품으로 어떤 상을 받았다는 식의 프로필만 눈에 뜨일 뿐 작가에 대한 나의 예측을 허락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느낌이 어쩌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듯한 첫번째 단편, 그리고 어린시절에 한번쯤은 겪었을지도 모를 호기심에 대한 것들을 능청스럽게 보여주고 있는 두번째 이야기, 세번째, 네번째로 넘어가면서 조금씩 책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단순히 보여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느끼기를 바라는 작가의 시선이 마치도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나비' '벽장 속 남자와의 대화' 를 통해서 알 수 있었던 것은 너무 외롭다는거였다. 처절하도록 외로웠을 두 남자의 이야기속에는 보여질 듯 말듯한 무작위적인 사람들의 숨겨진 적의나, 어디에도 마음 둘데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의 배타적인 이기심, 그러면서도 어딘가에 안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수도없이 되뇌이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적인 그러나 사회적인 동물로써의 인간 군상이 그려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얼핏 스치고 지나갔다.  제 스스로 벽장속으로 다시 들어가야만 했던 그 남자의 모습이 책장위로 그림처럼 펼쳐져 당혹스럽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도 생생하게 다가왔던 그 느낌들이 나를 너무 섬뜩하게 만들었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내게는 되돌이표를 찍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이야기 묶음이었다. 하지만 옮긴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장어를 풀어주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강가를 산책하는 시셀( 일곱번째 이야기 첫사랑, 마지막 의식에 나왔던 여자) 처럼, 나도 어쩐지 내 인생의 어떤 부분을 덜어 놓은 기분이 든다고... 어떤 부분을 덜어 놓을 수 있었을까? 어느 순간부터인가 한 집, 한 공간속에서 함께 살아갔던 쥐 한마리의 존재를 알고나서, 그리고 그 쥐가 점점 통통해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공간속의 남자와 여자는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게 되었던 이야기.. 그 쥐를 죽이던 순간 미처 태어나지 못한 채 제 어미의 찢어진 몸통 틈에서 투명하고 작은 발을 꿈틀대며 삶을 향했던 희망을 버리고 싶어하지 않았던 그 작은 생명들.. 그러나 그 작은 생명들에게 희망은 없었다. 그리고나서 그들은 낚시를 통해 잡았던 장어를 다시 강물속에 다시 돌려보냈고 다시 시작되는 사랑을 느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작은 은유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너무도 큰 은유의 늪에서 내가 허우적거리고 있었음을 알았다.  너무나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강한 문체에 시달리다보니 그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은유속에 숨겨진 깊은 의미들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이 섬뜩한 문체들과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다. 문득 눈을 감은 채 누워있던 여자, 책표지의 그림이 생각났다. 그 여자는 죽은 것일까? 그저 잠을 자고 있을 뿐일까?  그 생생했던 느낌들을 지워볼까하여 장난삼아 책을 옆으로 세워보았더니 그 여자가 일어나 생각이 많은 얼굴로 고뇌에 빠져 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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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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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다. 솔직히 정신이 없다. 책을 읽는 내내 절망과 고통스러움만이 내게 존재했던 것 같다. 어지러움속에서 책장이 넘어가고 다가오지 않는 세상의 이야기들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이건 뭐지? 도대체 현실속인건지 상상속인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마콘도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는 그 많은 이야기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조차 알 지 못한채 그렇게 500쪽 가까운 책장을 모두 넘겼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나라는 남자와 우르슬라 이구아란이란 여자가 서로 만나 가정을 이루고 황당한 살인사건으로 인하여 그들은 다른 세계로의 도피를 꿈꾸게 된다. (내가 느끼기에 그것은 황당하기까지 한 도피였다!)  수많은 역경을 딛고, 힘겨운 것들을 쳐내가면서 어느 한곳에 정착..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마을, 곧 그들과 그들의 후세들이 백년동안을 살아내야 했던 그 마을 마콘도를 만들어 그 안에서 그들이 겪어내는 삶의 여정은 너무 혼란스럽기만 하다.

책속 세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환상적인 묘사들이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무슨 마술사의 손안에서 비둘기가 나오듯이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날아오르고, 하늘로 날아올라 승화되어지는 한 여인의 모습이 보이는가 하면, 나타날때마다 나비를 앞세우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사람도 있음이다. 이미 죽은 가족과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 그리고 그 유령들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현재의 사람들.. 그런가하면 우르슬라는 120년정도를 살았고, 또 한 여자는 (그 여자는 카드로 점을 치며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여자였다. 그리고 부엔디나 가문의 후세도 낳아준다) 140살을 넘기고서야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것들에 대한 나의 느낌은 그야말로 황당함 그 자체였으며 그런 대목이 나올 때마다 너무도 어색하기만 했다. 한편의 신화를 읽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신화적인 요소라고 말할 수도 없다.

처음에 나는 어떤 원주민들이 서구문명의 발아래 짓밟혀가는 과정일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들이 그들나름대로는 잘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기가 들어오고 기차가 들어오는 현대적인 문명앞에서 서서히 무너져가는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 펼쳐질거라고 지레 짐작을 했었다.  밀려들어온 문명의 물결속에서 그들이 겪어내야 했던 일들, 고용주와 고용인의 싸움,  파업을 하고 계엄령을 선포하고... 그런 일들은 원시적인 삶속에서는 생각할 수 조차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내가 짐작했었던대로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어색하게만 다가오는건지... 근친상간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가족사는 정말 비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날까봐 늘 노심초사 했던 맨처음의 여인 우르슬라가 염려했던대로 그들의 마지막대에 와서는 결국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나고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나의 가문은 멸망한다.  이름부터가 참 어지럽다. 같은 가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였을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름을 손자 손녀가 쓰고 또 그 손자 손녀의 이름을 더 먼 후세의 자손들이 다시 쓰고하니 몇 대를 걸쳐가면서도 같은 이름의 반복이다. 차리리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나 1세,2세,3세,4세...등으로 불리워졌다면 덜 혼란스러웠을까?  모르지.. 그건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저마다 겪어내는 삶의 여정조차도 대물림을 고스란히 하고 있는걸 보면 딱히 그렇지만도 않을 것 같다. 어쩌면 그렇게도 그 이름을 썼던 사람들과 같은 혹은 비슷한 여정을 가고 있는지...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 닮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음이다.

책속에서 내가 만났던 것은 어떤 희망이나 기대보다는 절망과 좌절, 고통스러움이었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력을 미쳤던 멜키아데스라는 집시 예언자(이 집시 예언자는 죽어서도 유령이 되어 그들의 집에서 방한칸을 차지한채 지내고 있다)의 기록을 부엔디나 가문의 마지막 자손이 해독하는 순간 그 가문의 종말을 보게 되는 결말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결국 예언자가 양피지에 써놓았던 것들은 부엔디나 가문의 일대기였음이 밝혀지는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현존하는 사람과 이미 죽어 유령이 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었던 곳 마콘도.. 그 마콘도가 안고 있었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래도 가장 똑똑하다고 존경받으며 한마을의 지도자로 살아갈 수 있었던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나가 집시가 전해주던 문명의 도구에 빠져들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과학이 없고 종교가 없고 형식이 없었던 세상속에서의 인간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아냈었던 것일까?  인간에게 과학과 종교가 그리고 허울뿐인 형식이 자리잡게 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과연 인간은 과학과 종교와 형식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일까?

복잡하다. 매끄럽지 못한 길을 걸어온 듯한 느낌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라는 것보다도 나는 사실 <백년 동안의 고독>이란 제목과 고전이라는 유혹에 이끌려 이 책을 접하게 되었지만 잘 모르겠다. 내면의 고통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하는 것인지...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내가 보아야만 했던 것은 진정 무엇이었는지...  저마다 사랑을 갈구하며 가슴속에 바윗덩이만한 고독을 숨긴 채 일세기를 살아내야 했던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나 가문의 사람들... 그래도, 어찌되었든 한번 태어난 사람은 저마다 기를 쓰고 살아낼 뿐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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