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느끼는 낙타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막내집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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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이야기>에 이어 두번째로 만나는 싼마오의 이야기.. 처음 <사하라 이야기>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 참 좋았었다. 젊은 새댁의 거침없는 생활이 너무 멋지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부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마도 가감없이 써내려갔던 그녀의 문체가 좋았을게다. 꾸미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그렇게 다가서기 좋은 느낌을 전해줄 때가 있다. 물론 꾸며야 할 상황이라면 꾸며야하겠지만 말이다. 뜨거운 사막을 사랑하는 여자.. <사하라 이야기>를 읽으면서 도대체 무엇이 이 여자를 이토록 거침없이 달려가게 하는가 궁금했었다. 그토록 힘겹다는 타지에서 그것도 뜨거운 햇빛과 모래뿐인 사막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무엇이 그토록이나 그녀에게 당찬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가가 궁금했었다는 말이다. 오로지 사랑하는 남자 하나만을 믿고 거기에 갔을까? 그럴수도 있겠지만 내가 알지 못한 그 어떤 것들이 틀림없이 작용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무리일까? 하지만 이 책 <흐느끼는 낙타>를 읽으면서 전작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그녀의 글속에는 아주 평범한 일상들이 담겨져 있었다. 누구나 겪으며 살아가는 삶의 비참함도 들어 있었다. 어느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삶의 절망도 들어 있었다. 그리고 오해와 싸움과 화해와 이해도 들어 있었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런 것들이 참 좋았다. 특별히 꾸미지 않아도 이뻐보이는 순수함과 같은 것들이 느껴져 참 좋았다. 이 책, <흐느끼는 낙타> 속에는 그녀에 관한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속세의 인연) 이야기들이 작가의 말로 담겨져 있다. 겨우 6년이라는 결혼생활을 마감하면서, 그리고 그녀가 그토록이나 거침없이 사막속에 뛰어들어야 했던 배경과 같은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조금은 특이하게 보이기도 하는 그녀의 어린시절은 그녀에게 있어 하나의 버팀목이 되어준 게 아니었을까?  어버이날에 쓴 그녀의 글속에는 그녀가 살아왔던 짧은 생의 시간들이 하나씩 하나씩 베일을 벗으며 나를 맞이했다. 싼마오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에 대해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전작 <사하라 이야기>와 같이 독특한 사하라 이웃들과 엉키며 살아가는 모습들을 담담히 담아내고 있는 <흐느끼는 낙타>속에서도 어김없이 가슴 찡한 느낌은 나를 찾아왔다. 서사하라의 정세가 날로 불안해져 가는 와중에 이웃들에게 버림을 받기도 하고 위안을 받기도 하는 싼마오에게 사하라는 그저 사하라일뿐이다. 그녀의 남편 호세와 그녀 싼마오가 결코 잊을 수 없었던 이웃들의 이야기가 때로는 참을 수 없는 아픔으로, 때로는 참을 수 없는 절망으로, 때로는 더이상 없을것 같은 인간적인 모습으로 정갈하게 그려져 있다. 결국 이상속에서만 맴돌던 서사하라 주민들의 문맹앞에서 그녀가 사하라를 떠나야 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서 사하라는 또하나의 고향으로 자리했을 것이다. 이야기속에서 '벙어리 노예'나 '영혼을 담는 기계'를 통하여 보여주었던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할 조건들은 참으로 아프게 다가왔다. 영혼이 살아 있어 사랑을 가슴에 품을 줄 알았던 벙어리 노예, 그가 원했던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을 것이다. 가족과 함께 하고 싶다는...

유격대장의 아내였기에 처연한 삶을 살아야 했던 샤이다라는 여인의 죽음속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서사하라의 자주 독립을 외치며 투쟁하는 유격대의 모습속에서 철없는 욕망과 이상만을 보아야 했던 싼마오의 가슴은 서늘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이 안타까웠으리라. 이웃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의 현재를 그대로 인정할 줄 알았던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사막 사하라를 떠나 화산섬 카나리아 제도에 다시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의지할 곳 없는 노인의 장례를 치뤄주는 그들 부부에게 무엇때문에 그런 일을 하느냐고 멀어져가던 카나리아 제도의 이웃들은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는 이웃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녀의 솔직하고 담담한 삶의 이야기는 몇번을 마주친다해도 식상하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따뜻한 그녀의 마음은 자주 만나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돈을 얼마나 버는 남자랑 결혼하고 싶어?"
"꼴 보기 싫은 놈이라면 천만장자라도 필요없고, 마음에 든다면 억만장자라도 결혼해야지"
"결국은 돈 많은 사람한테 시집가겠다는 얘기 아냐"
"예외도 있을 수 있어"
"나랑 결혼한다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있으면 돼"
"당신 많이 먹어?"
"아냐, 아냐. 그리고 앞으로는 더 조금 먹을 거야" (206쪽)

책속 이야기 '털보와 나'를 통해서 보여준 그녀 부부의 이야기는 참으로 정겹다. 그리고 소박하다. 번듯한 청혼 한번없이 그냥 결혼해 버려서 돌이켜보면 유감스럽다고 작가는 말했지만 아마도 그것이 그들 부부의 매력이었을거란 생각이 든다. "무슨 반쪽?" "당신의 반쪽이니까 당연히 나지!" "나는 반쪽이 아니라 하난데" '그래, 사실 나도 반쪽이 아냐. 나도 완전한 하나라고'... 가정 같지가 않고 남녀가 같이 사는 기숙사같다고 했지만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인정해주었고 또다른 하나로써 받아들였다. 결혼하면서 서로 동료가 되어 주기를 바랐을 뿐, 피차 무리한 요구나 집착은 없었다던 그들 부부.. 그저 인생의 길을 함께 걸어갈 동반자를 찾으려 했을 뿐이라던 그들 부부.. 특별할 것 없는 그들 부부의 특별한 이야기속에 푹 빠졌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녀의 삶속에서 작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녀, 싼마오의 이야기가 다시 나온다면 나는 주저없이 또다시 그녀의 이야기속에 빠져버릴 것만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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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와같은 소리가 참 좋다. 상여메고 나갈 때 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있는지.. 있다. 그리고 나는 가끔 그 소리를 그리워한다. 산사의 처마끝에 달려 바람소리를 대신 전해주는 풍경소리처럼 가슴 한쪽을 싸아하게 만드는 소리..  어여~ 어여~ 이제가면 언제오나~ 어여~ 어여~ 어렸을 적 하얀 종이꽃으로 치장을 했던 할아버지의 상여를 지금도 기억한다. 상복을 입고 줄을 지어 따라가던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처럼 빛바랜 기억속에서 그것들이 안고 있었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린 세월들! 너무 멀리 있는 것들이 많아져서, 너무 멀리 보내버린 것들이 많아져서 어쩌면 우리가 이토록이나 각박한 세상속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놈의 젊은소, 옆에 있다면 그 궁둥짝을 찰싹찰싹 소리나게 때려주고 싶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했던 첫마디였다. 정말이지 그 젊은소가 너무도 미웠다. 그 큰눈을 씀벅이며 묵묵히 할아버지의 동행이 되어주던 늙은소가 울던 날 나도 눈물이 났다. 젊은 소와 그 젊은소의 어린 소를 위하여 두배로 일을 해야 했던 늙은 소는 아마도 왼쪽 다리가 불편하신 할아버지의 그림자가 아니었을까? 길들여지지 않기 위하여 할아버지를 힘들게 했던 젊은 소안에는 너무도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나의 세대, 그리고 나의 다음 세대들이 들어 있었다.

"이 소가 없어져야 아버님이 일을 안하시니까 소를 파세요 아버님! " 
나는 묻고 싶었다. 만약에 정말로 소를 판다면 그 뒤에 남을 아버지의 모습에 대하여 한번쯤이라도 생각해 본 적은 있느냐고...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집에 있었으니까 많이 늙었다고 소를 보며 말하던 우리들은 과연 아버지의 늙음에 대하여 얼만큼이나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지...
 
"웃어요, 웃으라니까요! "
당신 몸이 아프셔도 그저 아파, 아파라고만 말씀하셨던 할아버지께서 병원엘 다녀오시는 길에 사진관에 들러 할머니와 사진을 찍으실 때 굳어진 표정을 보고 사진사가 말했었다. "웃으세요 어르신!"
제대로 들리지 않았던 할아버지에게는 오로지 늙은소의 목에 걸린 워낭소리와 할머니의 투정 섞인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지만 그래도 할아버지는 행복하셨을 게다.

"이 소가 사람보다 더 나아. 아, 잠든 나를 집까지 데려다 준 소가 이 소라니까!"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맙다고 말하지 않아도 할아버지의 마음이 곧 소의 그 맑은 마음이었으리라.
너무 늙어서, 이제는 고기도 안나올거라고 제 값을 쳐주지 않았던 우시장의 사람들에게 기어코 헐값에는 팔지 않겠노라고 다시 늙은 소를 끌고 오시던 할아버지는 제 값을 다 받을 수 있다고 하였어도 그 소를 팔지 못하셨을게다. 자신의 분신과 같았던 그 소를 어찌 팔 수 있을까?

죽어가는 소를 바라보며 좋은 곳을 가라고 빌어주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마음이 너무도 아팠다.  할아버지와 소의 그 끈끈함이 끝내 내 눈물샘을 자극했다. 내 부모와 내 자신과 내 자식이 한데 어울어져 가슴 한쪽을 저미는 듯한 아픔을 주고 갔다.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던 할아버지와 소의 말없는 대화가 너무도 아팠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당신 돌아가시면 나도 따라 죽을라요. 당신없이 내 혼자 어찌 살겠다고.. 자식들한테 갈 수도 없고.. 간다해도 내가 거기서 어찌 살아요.. 그 눈치밥 먹으면서 나는 못사네요..."
소박한 할머니의 투정 또한 질펀한 아낙네의 속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그것 또한 하나의 그리움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저놈의 소가 죽어야지 내만 이리 두배로 심들다.."

저 소가 죽어야 이 영화도 끝나겠구나...
오죽했으면 이 영화를 찍으면서 그랬단다. 차마 시선을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나였다해도 아마 그랬을거란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표현하기에는 감동적이란 말로도 뭔가 부족한 듯 싶다. 어찌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사람과 소의 관계만도 못한 세상속에서 우리는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부모님 세대의 그 끈끈한 사람냄새를 맡을 수 있던 시간이었다. 너무나 짧은 순간이었지만 너무나 긴 세월을 걸어가고 있던 시간이었다.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이 영화를 관람하던 엄마,아빠의 모습.. 비록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들어버린 아들이지만 그래도 얼마나 이쁘기만 한지... 이 영화를 보고 나온 나의 눈이 빨갛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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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내기한 선비 샘깊은 오늘고전 8
김이은 지음, 정정엽 그림, 김시습 원작 / 알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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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보면 그저 아이들을 위한 한편의 동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김시습 단편소설 모음이란 부제를 보면서 또 한편의 어려운 고전이 다시 태어났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처님과 내기 한 선비>는 김시습의 소설 《금오신화》에 나오는 다섯 이야기중의 하나이다. 《금오신화》는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이렇게 다섯편의 이야기로 되어 있으며 모두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 현실적인 이야기라는 게 해설의 말이다.  책속의  '부처님과 내기 한 선비'는 <만복사저포기>가 원전이며,  '이생이 담안을 엿보다'는 <이생규장전>이 원전이라고 한다. 이 두 편의 고전을 읽으면서 내심 기쁘기도 했다. 어렵기만 한 우리의 고전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니 말이다. 한시를 그대로 쓰지 않고 풀어 썼어도 아이들이 보기에 그 내용을 이해하는데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해설편을 보면 매월당 김시습과 그의 작품《금오신화》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되어져 있는데 그것만큼은 지나쳐가지 말고 꼭 알아두었으면 한다. 이 책에 실려있지 않은 이야기까지 《금오신화》의 모든 이야기를 고루 만날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될테니 말이다. 

두 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내내 서포 김만중의《구운몽》을 떠올렸다. 육관대사의 제자 '성진'이 술에 취해 팔선녀와 희롱한 죄로 인간 세상에 '양소유'란 인물로 환생하면서 시작되어지는 이야기. 깨어보니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설정을 통하여 인생의 덧없음을 주제로 삼았다던《구운몽》에는 남녀간의 애정이야기도 쏠쏠하게 나온다.  《구운몽》이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던 일종의 사회상을 보여주었다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금오신화》의 이야기에는 왜적의 침입을 받은 나라의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환상같은, 정말 꿈속에서나 이루어질 그런 사랑을 그렸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왜 이렇게까지 꿈같은 사랑을 그려야 했는지 잠시 생각해 본다. 어쩌면 너무나도 많았던 규제때문은 아니었을까?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자유롭지 못했던, 아니 사랑뿐 아니라 여러가지 상황을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자신안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사회적인 여건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저 빙 둘러쳐진 담벼락안에서 책이나 읽고 수나 놓으면서 살기에는 젊은 피가 너무 뜨거웠던 때문은 아니었을까?  조선시대를 살아야 했다면 결코 빠져나갈 수 없었던 유교의 덫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하는 말이다.

연리지라거나 비목어처럼 우리가 지금도 사랑을 이야기 할 때 흔히 비유되는 표현이 있다. 이 책속에서도 역시 남녀간의 사랑을 그렇게 비유하는 걸 보면 '사랑'이라는 정의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하다. 나뭇가지가 서로 얽혀 하나가 되는 연리지나 눈이 하나만 있어서 두마리가 함께 있어야만 온전해진다는 비목어처럼 끝내주는 비유가 또 어디있으랴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이 책을 통하여 또한번 나의 무식함이 탄로났다. 지금까지 내게 있어 금오신화는 金鰲神話였었다. 그런데 金鰲神話가 아니라 金鰲新話였다는 것...  '금오'는 경주 남산의 금오봉 또는 남산을 가리키며 '신화'는 '새로운 이야기'라는 뜻이었다는 것... 너무 쉽게만 생각했던 나를 자책하며 또한 수박겉핧기식의 내 자만에 대하여 생각하니 정말 부끄럽기 그지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저 학창시절의 국어교과서에서만 잠시 스쳐가는 우리의 고전이 아니라 이렇게 가벼운 소설을 읽는것처럼 가까이 하기에 편하고 좋은 우리의 고전을 만날 수 있다면 어찌 좋지 않겠는가 말이다. 유교적인 시선에 의하여 김시습의 문집 '매월당집'이 간행될 때 《금오신화》는 거기서 빠졌었단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널리 읽히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으로 전해져서는 거듭 간행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고 하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나라의 문화를 업수이 여기는 것 또한 시대가 변했어도 여전한 듯 하니 또한 마음 아픈 일임엔 분명한 듯 하지만 누굴 탓하기 이전에 앞서 나먼저 우리의 고전을 사랑해야지 하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여 풀이를 하였고 또한 설명을 하였다고는 하지만 어른이 읽어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해설편에서 보여주고 있는 《금오신화》의 상세한 면면들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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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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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하는 질문중에 이런게 있다. "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느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 , "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어? "  그런데 이 책은 그것을 뛰어넘은 채 당신의 시간이 거꾸로 간다면 어떻겠느냐고 묻고 있다. 한번 생각해본다. 정말 나의 시간이 거꾸로 간다면 어떨까? 내가 살고 있는 이 싯점부터 다시 거꾸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부정도 긍정도 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길을 고스란히 되돌려 거꾸로 가야한다면 그것은 반대일것이고 무언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을 선택해서 거꾸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딱히 싫지만도 않은 것 같다. 사람이 자신이 살아가야 할 삶의 여정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이런 생각도 고민도 하지 않겠지 싶다. 그런데 나는 이쯤에서 저런 기발한(?) 제목을 불러올 수 있는 생각이 왜 들었을까 궁금해진다.

F.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를 빼놓고 작가에 대해 알고 있는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임없이 말할 수 있는 답이 있기는 할까? 이 책을 만나고서야 나는 피츠제럴드라는 사람의 이력에 대한 궁금증을 온전히 풀게 되었다. 이 책속에서 만날 수 있는 젊은 시절의 방황이라거나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허탈함,  마음처럼 되지 않는 냉혹한 현실에 대한 공허함등이 실제적으로 작가가 겪었던 일과 일치한다는 것이 일단은 놀랍다. 너무나 세속적이면서도 너무나 현실적이었던 그의 생활패턴과 삶의 여정이 왠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아내 젤다 피츠제럴드와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나 결혼생활이 그에게 가져다 준 빈곤의 나락속에는 헤어날 수 없는 인간의 욕심과 허영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서글프기도 하지만 말이다.

첫작품으로 등장하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벤자민 버튼이 살아냈던 시간들이 황당하게만 보여지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자신의 인생이 끝나야 할 싯점에서 태어나 태어나야 할 싯점에서 죽는다는 것은 살아보지 않고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벤자민 버튼의 시간들이 그리 당혹스럽게만 보여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가 살아냈던 젊은 시절의 욕망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변화에 반응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그 변화에 대처해나가는 벤자민 버튼의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야기 한편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갖을 수 있다는 건 어쩌면 행복한 일이다. (요즘 한창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동명의 영화는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책속의 작품들중에서 젊은시절의 방황과 거기에 따른 책임을 보여주었던 <젤리빈>,  자신의 욕심을 버린 후에야 제대로 된 사랑을 만나게 된다는 메세지가 보여지던 <낙타 엉덩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봄직한 부에 대한 환상의 세계를 그려주었던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사랑의 허망함속에서도 끝내는 그 사랑의 끈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인간의 내적 외로움을 알게 해 주었던 <행복의 잔해>를 통해 전해지던 메세지의 여운은 참 괜찮았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에 대해 혹은 작품에 대해 그다지 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습작노트처럼 보였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나의 작품이 나오기 위한 구상정도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말미에 붙어 작품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작가의 말이나 옮긴이의 말, 작가연보가 너무나도 고맙다. 또한 편집해준 출판사에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작품의 연이은 실패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아내 젤다의 병으로 절망에 빠진 피츠제럴드가 회복 불가능한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는 등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들은 참으로 많아 보였다. 힘겨웠던 작가의 여정이 그대로 녹아든 듯한 느낌을 전해주기도 했고... '재즈시대의 이야기'들이라고 평했던 옮긴이의 말은 차치하고라도 피츠제럴드와 젤다 피츠제럴드가 실제적인 생활속에서 보여주었다던 파격과 방종한 기행이 그 시대적인 정신세계를 그대로 반영한 듯하여 남겨지는 여운이 씁쓸하기도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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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0
허균 지음, 김탁환 엮음, 백범영 그림 / 민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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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젼
됴션국셰둉대왕즉위십오연의홍희문밧긔한재상이잇스되셩은홍이요명은문이니위인이쳥염강직하여덩망이거록하니당셰의영웅이라일직용문의올나벼살이할림의쳐하엿더니명망이됴졍의읏듬되매....

책 뒷편의 글을 옮겨본다. 아래아를 사용해야 할 곳에서 쓰지 못했으니 물론 제대로 옮긴것은 아니다. 처음으로 보게 된 홍길동전의 영인본이라 한다. 책의 설명에 따르자면 영인본은 행갈이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하는 우종서(右縱書)....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뒷장부터 거꾸로 읽어올라오는 게 마냥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한번 읽어보자는 마음에 몇장 넘겨보았지만 영 쉽지가 않다. 아마도 현대적인 글맞춤법에 익숙해진 탓이리라 여겨진다. 이 책속에서 만날 수 있는 홍길동전은 세가지나 된다. 그 하나는 홍길동전 완판이요, 또하나는 홍길동전 경판이요, 마지막 하나가 바로 홍길동젼 영인본이다. 거기다 완벽한 보너스까지 곁들여져 있다. 허균이라는 작가 연보가 그것이요, 김탁환님의 작품 해설까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홍길동전이라고 하면 바로 이 말부터 생각난다.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의 배경이 아마도 가장 큰 주제로 여겨지는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가장 강렬한 메세지를 전해주었던 대목이지 싶어서 그렇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부끄럽게도 이 책을 통하여 새로운 사실을 더 알게 되었다. 홍길동이 서자로 태어나 그 서러움을 달래지 못하고 집을 떠나 의적이 되었다는 내용이야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제도로 옮겨가는 이야기나 울동을 죽이고 백씨처녀와 조씨처녀를 부인으로 맞이하는 이야기, 율도국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이 책을 통해 자세히 알게 되었으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완판을 읽고 다시 경판을 읽으면서도 못내 그 점이 아쉬웠다. 그래서 연거푸 두번을 읽어야 했으니... 정말 새롭게 다가온 홍길동전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에서는 시대적인 오류라 칭했던 장길산.. 그 <장길산>을 신문연재소설로 보다가 다시 책으로 나왔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주저없이 다시 <장길산>을 읽었던 그 때가 생각나는 것은 아마도 홍길동에 대해 너무도 몰랐던 미안함 때문이기도 한듯 하다. 천하게 태어난 장길산이나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이나 처지는 비슷하겠지만서도 두 사람을 표현한 대목들은 너무도 달랐다. 둔갑술에 축지법까지 쓰는 홍길동을 보면서 조금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생각을 했었는데 의외로 홍길동이 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라 연산군 시절 실존 인물인 도적떼의 두령 홍길동이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는 게 나를 너무도 허탈하게 만들기도 했다. 또한 율도국이란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허균의 관념에 대해 알게 되니 너무도 새롭기만 했다.

얼마전에 읽었던 <라오찬이야기>가 떠오른다. 중국의 견책소설이라던 소설.. 우리나라의 사회소설이라고 일컬어진다는 홍길동전에도 비틀어진 조선 사회에 대한 비판과 탐관오리들에 대한 원망, 숭불정책이 나은 잘못된 승려들의 비리등 많은 것이 담겨져 있다. 어디 홍길동전뿐이겠는가? 찾아보자면 이 책처럼 서자를 차별하는 것이라거나 고관대작들의 횡포라거나 조정의 일을 보는 벼슬아치들의 무능함, 무사안일주의에 대한 것등 조선시대의 어긋난 사회상을 그리고 있는 소설은 참 많을 것이다. 백성의 입장에서 그런 문제들을 비판하고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사회소설이 보여주는 또하나의 매력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고전을 읽고 싶다는 욕심으로 평소 민음사에서 출판되어지는 세계문학전집을 눈여겨 보았었는데 이번에 홍길동전이 나왔다는 소리에 내심 반갑기도 했다. 제대로 된 우리의 고전 또한 만나고 싶다는 욕심이 앞섰던 까닭에 주저없이 홍길동전을 택하게 되었다.  원본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이렇게 쉽게 풀어쓴 우리의 고전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민음사에서 앞으로 우리의 고전도 많이 보여준다고 하니 참 좋은 일이지 싶다.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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