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요리책
엘르 뉴마크 지음, 홍현숙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향수>와 비교를 했다는 것이 일단은 흥미로웠다. 악취를 없애기 위해 생겨났다는 향수.. 보다 더 환상적인 냄새를 찾아내기 위하여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던 한 남자의 시간들을 따라갔던 <향수>속에 뿌리칠 수 없는 한사람의 욕망이 내재되어져 있었다면, <비밀의 요리책>속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욕망이 숨겨져 있는 권력의 역사쯤이라고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종교의 허울을 쓴? 이라고 말을 바꾼다해도 결국은 권력이 핵심이다. 힘을 갖는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현실속의 안녕을 추구하기 위한, 좀 더 나은 쾌락으로의 지름길일테니 말이다. <비밀의 요리책>이 담고 있었던 승리한자의 역사가 참으로 안스러웠다. 창칼을 앞세워 무력으로 싸우지 못했던 지식의 전달자들이 선택했던 하나의 방법이었겠지만 그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어진다.

모두에게서 버려져야 했던 사생아 그르누이에게는 냄새가 없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아무런 냄새도 없으면서 세상의 온갖 냄새에는 비상한 반응을 보여주었던 <향수>의 그루누이처럼 <비밀의 요리책>을 이끌어 갈 루치아노 역시 음식과 관련된 어떤 특이함을 타고 났을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편견이다. 물론 이 책의 제목처럼 요리에 관한 이야기들이 쉴새없이 나열되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열되어지는 레시피의 대목들을 보면서도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일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부모에게서 버림받고 매춘부의 손에 잠시 길러졌던 루이차노에게는 그시절에나 있음직한 악마적인 표식, 모반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반으로 인하여 총독의 주방장 페레로에게 선택되어진 루치아노는 그 순간부터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힘겨운 과정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오래전에 아들을 잃어야 했던 페레로 주방장의 아들에게도 커다란 모반이 있었다는 과거를 들추어내며, 읽는 내내 혹시나 하는 의심을 품게 만들었던 것이 이 책을 읽는 내내 하나의 모티브처럼 작용하는 것도 흥미롭다. 그들은 부자지간이었을까? 책의 말미에서 보여주었던 작가와의 인터뷰를 읽어본다면 작가의 심중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지금 생각해보아도 참으로 멋진 설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사랑의 물약, 영원히 살 수 있거나 늙지않게 만들어주는, 혹은 연금술 따위의 허접한 욕망앞에서 한점 부끄럼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인간의 속성이 참으로 서글프다. 소리도 없이 찾아왔던 첫사랑의 설레임을 소유하고 싶어 사랑의 물약을 포기할 수 없었던 루치아노와 매독으로 인해 서서히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해 불로불사의 약을 찾아헤맸던 총독의 욕망은 달랐다. 순수함도 영악함도 우리가 안고가야하는 인간의 속성인 것을... 경험해보지 않았던 것에 대하여 혹은 보지 못했거나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끝도없는 의심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면서 가재미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세밀화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건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야. 모래 한 줌이든 포도 한 알이든 아니면 복음이든, 여기 뭔가를 첨가하거나 빼고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거나 인간의 간섭을 거치면서 변화는 일어나게 마련이란다"(-232쪽).. 중세의 배경을 이야기하자면 역시 복음이나 종교적인 색채를 버릴수가 없는 모양이다. 하긴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그것을 피해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만 하겠지만 말이다. 예수를 신으로써가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써 바라보았던 시선을 통해 지식의 전달자이자 스승인 선구자로써 평가했다는 것만으로, 손가락질 당하며 단두대위에 올라가 목을 내밀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요리책속에 숨어 있었다는 게 놀랍기도 했지만 요리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것 또한 신비로웠다.

끝없는 의심의 샘물같았던 루치아노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음을 심어주었던 페레로 주방장의 존재는 어쩌면 우리가 꿈꾸고 있는 이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진실된 복음의 전달자로써, 가르치는 자로써의 삶을 살았던 페레로 주방장에게 루치아노의 존재는 넘어야 할, 그러나 껴안고 가야 할 역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전통은 이어져야 한다던 페레로 주방장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진리가, 모든 전통이, 있었던 그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은 채 우리에게 전해져 왔다면 우리의 역사는 얼만큼이나 다른 모습으로 현재를 만들었을까? 그랬다면 속임수와 술수가 만연한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어차피 욕심과 욕망을 벗어난 인간의 속성은 없을테니 말이다.

"일단 현재의 순간에 사는 법을 배우면, 어느 누구보다 부자가 되기 때문이지. 
 우리는 매순간을 껴안아야 한단다"
"좋지 않은 순간도요?"
"좋지 않은 순간은 특히 더 그래야지.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시간이니까"(-495쪽)
정말 매력적인 책이란 생각이 든다. 인간에게 먹고 마시는 것만큼 절대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작가의 아버지가 이탈리아인 요리사라는 것이 하나의 모티브로 작용했겠지만, 작가가 요리와 요리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들이 페레로 주방장이라는 필터를 통해 루치아노에게 전해졌던 과정들은 정말 촘촘했다. 거미줄같이 정교하다.기억하고 싶은 메세지들이 징검다리처럼 놓여져 있었다. 삶을 살아내면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 무엇일까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기도 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어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아쉬웠다. 거짓말같은 말이지만 참말이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조금만 더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남겨주었던 책이었다. 동서양의 온갖 지식을 요리에 암호화해 넣은 아주 위험한 요리사에 대한 팩션. 팩션이란 장르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너무나 매력적인 말이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