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심리학 - 심리학의 잣대로 분석한 도시인의 욕망과 갈등
하지현 지음 / 해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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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심리학, 도시인들의 심리학,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심리학.. 그것도 아니라면 도시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중성에 대하여...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생각하게 된 말이다. 그것 말고도 또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 두개의 얼굴을 할 수 밖에 없는 현대인들에 대하여, 혹은 도시에서 버텨내기 위해 수시로 바꿔야만 하는 그들만의 가면에 대하여.. 살펴보니 다 같은 뜻인데 참 여러가지로 말했다. 왜일까? 왜 우리는 하나의 답을 위하여 여러갈래의 문제를 내야만 하는 것일까? 참 복잡하다. 원래가 그렇지는 않았을 게다.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을 게다. 살다보니 필요성에 의해 어느정도는 가식적인 얼굴을 해야만 하는 거라고 그렇게 정의내려졌을 게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가식적인 면을 앞세운다는 데 있다. 진실된 자신을 보여주기 보다는 만들어지고 포장되어진 자신을 보여주어야만 하는 세상을 만들어버린 우리들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것들을 전혀 탓하지 않는다. 그런 모습들이 정상이 되어버린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세상을 누가 만들었을까? 바로 나, 그리고 당신, 우리다...

가깝게 지내던 동생집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열쇠구멍에 열쇠를 꽂는 순간부터 동생은 말한다. 집이 지저분해요.. 하나도 안치웠는데.. 그럼 나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나 지금 호구조사 나온거 아니거든? 집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어질러졌다고 여겨지는 물건들이 하나둘씩 어디론가 사라진다. 동생의 종종걸음속에서.. 그럼 나는? 호구조사하러 나오지 않았던 나조차도 그 종종걸음을 쫓아 사라지는 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한다. 무의식일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하지.. 그냥 냅둬. 나중에 치워도 되잖아.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하나도 안치웠는데요, 하던 그 말처럼 그 친구는 아마도 평소에 그렇게 살것이다,라는 것이 내 지론이기 때문이다. 흉을 보자는 게 아니라 평소에 그렇게 살면서도 누군가가 오면 그것은 아주 특별한 모습으로 변신하게 된다는 것, 그 심리의 밑바닥이 궁금한 까닭이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테지만 말이다. 그만큼 우리는 나를 만드는 틀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건 나의 이야기이고 너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이야기가 맞다고.. 그런데 왜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지, 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 싶어하는 저자의 의도가 밉살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바로 코앞에서 돋보기를 들이대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은 아닐것이다, 라고 비켜갈 수 없게 만드는 저자의 능청스러운 화술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가끔씩 지름신을 불러 들이는 나를 보아도 그래, 당신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인정해주고 싶어진다. 정체성은 내가 아니라 타자에 의해 정의되고, 나와 타자와의 관계에서 내가 반응하는 방식에 의해 규정된다... 정체성은 '존재'와 '관계', 그리고 '행위'로 정의되며 자아의 경계선을 만들면서 점차 명확해진다.(-115쪽) 는 책속의 문구가 왠지 서글프게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노래방 문화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어울리지 않게 무거워지는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부르고 싶은 노래와 불러야 할 노래가 엄연히 다른 현실, 그것은 저자의 말처럼 사회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도 될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와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는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좋아한다고 다 부를 수는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타인에 의하여 정해지는 나의 선택권이 어디 노래방 한 곳 뿐일까만 지독하게 개인적이고 자기취향적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타인의 기준에 맞춰야만 하는 우리의 모순, 또하나의 아이러니다.

뒤로 호박씨 깐다는 말이 있다. 앞과 뒤가 일치되지 못하는 상태를 이르기도 하는데 이 책을 읽게 되면 우리가 딱 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저자는 그렇게밖에 살아갈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까발려놓고는 내가 이렇게 가려운데를 긁어주니까 좋지? 묻고 싶어하는 거 같다. 그런데 나는 그래서  이런 글을 썼느냐고 묻고 싶어진다. 왜냐하면 잠시 긁어준다고 그 가려움증이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어쩔 수 없다. 결론은 항상 내 몫이라는 걸 인정한다. 선택 역시도 내 몫일수밖에 없다.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tv도 없고, 전화도 없는 곳에서 하나 더 보태 인터넷이 되지 않는 세상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낸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까닭이다. 어린왕자에게 여우가 말했었던 길들여짐에 대하여 다시 생각한다. 길들여진다는 건 편한 것일까? 왠지 그 길들여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인다. 왜일까?  이 책을 통하여 말하고 있는 저자의 목소리를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우리의 영혼을 위한 자기 위안쯤으로 여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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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방불명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기희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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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읽는 독자 모두가 궁금함과 오싹함, 상쾌함과 안도감을 모두 느끼시기를 바란다... 역자후기에 나온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땠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궁금함은 정말 대단했다. 책장을 넘겨가면서 범인을 찾아내고 싶어하던 나의 추리력이 열심히 활동을 했었으니까. 오싹함은? 그것도 그렇다. 사건의 전말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이렇게까지 될 수가 있는것인지 왠지 소름이 돋는 듯한 기분이었다고 할까? 하지만 상쾌함과 안도감까지는 느껴보지 못하고 책장을 덮었다는 게 솔직한 표현이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 <파일럿 피쉬>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본다. 아주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우리의 내면에 대하여 썼던 글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떨까? 이 책은 스릴러형식이지만 역시 인간이 가지고 있을 법한 내면을 살짝 비춰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사건을 파헤치기 위한 소설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복잡하다. 범인을 찾지 못한 채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일가족 살해사건과 아무런 빌미조차 남겨두지 않은채 어느날 아침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일가족의 행방불명 사건, 이렇게 두가지 사건이 병행되면서 사건을 따라가는 시선 또한 두개다. 출발선은 둘인데 도착점은 하나인... 그렇다보니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거지? 되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인지 일치되는 것이 하나 있긴 하다. 일가족 살해사건과 행방불명 사건을 쫓는 그 두개의 시선이 모두 작가라는 점이다. 양쪽 끝에서부터 사건을 몰아오듯이 잰걸음이다. 탐정처럼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두 작가의 걸음걸이에 보조를 맞추다보면 어느샌가 내가 쫓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는 그런 형국이다.

스릴러소설이다보니 원칙에 충실하게도 배경이 좀 음침하다. 구로누마, 즉 검은 늪이라는 뜻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일전에 상영되었던 우리의 영화 '검은 집'이 떠오른다. (유명배우가 주인공을 맡아 떠들썩 했었지만 흥행면에서는 실패했던걸로 기억한다.)  스릴러물의 형식대로 반전이 끝내주는 영화였는데 이 소설 역시 멋진 반전을 준비하고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 두사건의 교차점까지 가는 과정이 뭐랄까, 왠지 무언가를 빼먹고 지나간 듯한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늪.. 그 늪이 잊은듯하면 하나씩 토해내는 사건의 실마리들은 하나같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과 오버랩되어지는 것을 보게된다. 흔한 이야기들이지만 결코 용납되어질 수 없는 일들이 사건을 풀어가는 열쇠로 작용되어진다는 것에 대해  왠지 또 씁쓸해지고 말았다.

사건의 종착역에 이르러서야 범인의 윤곽은 밝혀진다. 하지만 여기서 그냥 지나쳐버린다면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드는 것이 하나 있다. 어머니...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당신의 모든 것을 잃어도 감수해야 했던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하여. 두가지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하나의 사건이 또하나의 사건을 불러오게 되는 형국속에서 우리의 위대한 어머니라는 존재가 갖고 있는 무게는 참으로 무겁다. 사건을 따라가면서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존재.. 그래서 조금은 당혹스러웠고 그래서 나는 또 가족이라는 말이 안고 있는 의미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가족이라는 의미가 이미 하나의 낱말처럼 굳어져버린 것은 아닐까? 엉킨 실타래속에 숨어버린 그들의 내면에는 서로에게 힘겨워하는 가족의 모습이 담겨 있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채 버릴 수 없게 되어버린 그 무엇들을 하나씩 안고 살아가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고 있는것이다. 마치도 나외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리고 이 세상속에는 오직 불행만 존재하고 있다는 듯이..

현재와 과거가 어울리는 플래쉬 백효과처럼 보여지는 느낌, 그리고 한편의 연극을 관람하고 있는 듯한 느낌,  책을 읽으면서 다가왔던 느낌은 두가지였다. 과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어느샌가 현재로 보여진다. 결말 부분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또하나의 존재는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었던 사건의 구도는 참 좋았다. 그랬기에 책을 읽는 속도감도 꽤나 좋았을 게다. 그런데 결말 부분이 왠지 꽈배기처럼 배배꼬인 듯 보여 영 개운치가 않다. 잡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던 이야기의 핵심을 놓쳐버리고 말았다는 허탈감이라니... 그래도 더위와 싸우기엔 괜찮은 설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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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입은 봉황 선덕여왕
김용희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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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가게문 열고 여자가 첫손님이면 재수없다, 여자 목소리가 어찌 담장 밖을 넘을 수 있는가, 여자가 배워서 뭘하려고? 여자가 감히! 등등 우리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시절부터 여자이기 때문에 서러웠을 시절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 시대에는 그렇게 살아야하는 거라고 배웠던 까닭에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서럽지는 않았으리라. 세상이 변했으니 이제는 여자가 어쩌고하는 말을 하게 되면 구석기시대사람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다. 드라마를 통해 보더라도 지금은 당당하게 큰소리치는 여자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조금은 과장된 듯 보여지기는 하지만 시대가 여성성만을 요구하지는 않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아이러니는 존재한다. 마냥 무엇이고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해놓고선 수퍼우먼이 될 수는 없는거라고 숨어버리기 일쑤다. 가끔씩은 이런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정말 여자라서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여자라는 것을 내세워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책의 주인공 덕만공주가 선덕여왕이 되기까지는 참으로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했던 모양이다. 여자였기에 힘겨웠을 점들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말이다. 하물며 타국의 왕에게조차 멸시아닌 멸시를 받았다고 하니 그 심적 고통이야 어찌 말로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여자가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으니 망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던 <삼국사기>의 글은 지금 읽어도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처음에는 선덕여왕이라는 한 여자를 그려주는 소설쯤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책장을 넘겨가면서 소설이 아닌 한권의 역사서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삼국사기>나 <화랑세기>, <삼국유사>등에서 빌려오는 글들만 봐도 그렇고 이런저런 경로를 파헤쳐가며 한사람의 여제가 탄생되어지기까지의 여정을 따라가고 있음이다. 삼국시대의 이야기가 배경으로 깔려 있으면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이겨내기 힘들었을 여제 탄생의 과정이 순서에 맞게 잘 펼쳐져 있다. 깊이 베인 불교의 이념속에서 성장해가는 신라의 모습과 고구려와 백제를 합한 삼국의 상황들이 함께 어울려 마치 한편의 설화를 읽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너무 오래된 탓인지 학창시절 역사시간에나 배웠음직한 호칭들은 좀 낯설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낯익은 이름들이 많이 보여 시대적인 흐름을 짚어낼 수 있었다. 항간에 세명의 왕을 주무르며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조종했다던 '미실'이라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지금보다는 개방적이었던 성적 풍속도를 그려주고 있어 그녀에 대한 이해를 훨씬 쉽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설화를 많이 만날 수 있어 좋았다. 특별한 것들은 아니다. 그림을 보고 꽃에 향기가 없을거라고 했던 이야기나 지귀설화처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설화일뿐이다. 하지만 요소요소에 맞게  들려주는 설화 한편 한편을 통해 그 시대의 풍류와 이야기의 흐름을 알 수 있게 해주니 그 또한 고마운 일임엔 분명하다.

선덕여왕이 어떻게해서 왕이 되었으며 또한 어떤 정치이념으로 백성을 보살폈는지, 그녀의 정적으로는 누가 있었으며 그들을 또 어떻게 다루었는지, 그리고 그녀의 죽음은 어떠했는지 이 책은 잘 다루어주고 있다. 그런데 나는 백성의 생활속으로 들어온 그녀의 모습이 조금은 이채로웠다. 죽은 뒤에도 백성들이 그리워할 수 있는 왕이었다는 건 그녀가 결코 패배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의 불교가 인도와 그토록이나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는 사실도 조금은 놀라웠다. 어찌되었거나 백성을 위한 정치를 했다는 그녀는 여자였기에 그리고 말년에 정치적인 패배의 맛을 보았기에 역사속에 기록되어지지 못한 이야기들이 더 많았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역사속에서 사라져버릴뻔한 한사람의 여제를 위한 글, 마치도 그녀가 왜 그렇게 되어야만 했는지 변론해주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어떠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사장되어져 버리기엔 아까운 인물도 세상에는 많이 있으니 그녀들의 이름이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나올 수 있다면 좋은 일일게다. 조금은 밋밋하고 조금은 싱거운 맛이긴 하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일까? 아무리봐도 왠지 뭔가 부족한 느낌이 남아 자꾸만 내려놓은 책을 쳐다보게 된다. 무엇일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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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책만 읽는
이권우 지음 / 연암서가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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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책만 읽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 생각엔 참 많을 것 같은데 정말 그럴까? 그건 알 수 없다. 어찌되었든 죽도록 책만 읽고 싶어 도서평론가라는 직함을 만들었다는 저자의 소개글을 보면서 흠, 하고 한번 더 보게 되었던 건 사실이다. 저서도 꽤나 많다. 현재 모대학 교양학부의 강의교수로도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한다. 그러니 멀리 있는 작가이기보다는 우리와 현실적으로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내가 왜 이렇게 말하는가하면 그만큼 편하게 이 책을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을 에둘러 하고 있는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다. 거기다 하나 더 보탠다면 요즘처럼 논술이다 뭐다하면서 억지로라도 책과 가까워져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면서) 교육현실이 그와 조금은 가깝게 느껴지는 까닭도 있다. 왜냐하면 그가 곧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사람이니까..

책을 읽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속에서 먼저 읽은 사람이 올려준 서평이 그사람의 선택을 얼만큼이나 좌우할까? 나는 그것이 항상 궁금했다. 기실 나는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으면서도 남들이 써놓은 서평에 그다지 많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건 그사람만의 생각일뿐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오만함이 앞서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사실 한사람의 서평 모음집이라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책을 읽고 그가 썼던 서평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엮여 꼬리를 물고 있다. 재미있을까? 물론 재미있을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껄끄러운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 서평들이 개인적인 편차를 드러내는 까닭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책을 통해서 나의 시야가 넓어졌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겠다. 책을 읽고 난 후 작가의 심중을 읽어내리는, 그 작가의 글쓰기 과정을 짚어낼 수 있는 저자만의 경지를 느낄 수 있었으니 하는 말이다. 가장 깊이 다가왔던 것은 책을 책대로만 해석하지 않고 우리의 현실과 맞물리는 점들을 찾아내어 서로 연결시켜주었다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을 통하여 또하나의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가 찾아내 주는 글의 장점과 단점들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 수 한 수 배워나가는 것 또한 이책의 별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역시 책속에는 배울 것이 많다. 제대로 된 느낌표를 찍는다는 게 쉽진 않은 듯 하다.

1/문학의 숲을 거닐다, 2/참 사람의 향기에 취하다, 3/인문의 바다에서 헤엄치다, 4/무엇이 세상을 변화시키는가, 5/생명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다, 6/열정과 냉정 사이, 7/희망을 읽고 쓰다... 무엇이냐하면 책을 읽기전의 목차 목록이다. 저자는 저렇게 크게 7장으로 분류를 나누어 놓았다. 참으로 다양하다. 그만큼 책읽기의 넓이가 넓다는 말도 되겠다. 그러면서도 아주 냉정하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멋진 책이다, 실망했다 등등 자신있게 자신만의 표현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야말로 도서평론가라는 직함에 대해 반론의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듯이... 그 중에서 3장 인문의 바다에서 헤엄치다에 수록되어져 있는 글 '편지로 주고받은 철학 논쟁'이 참으로 인상깊게 다가왔다.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사단칠정 논쟁에 대한 글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편지글을 읽고 난 후 그가 썼다는 서평형식이다. 편지글에 대한 전화수다라... 참으로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했다.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며 말로 하는 서평을 내가 듣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멋진 글이었다. 나만의 생각일수도 있겠지만...

<쾌도난마 한국경제>라는 책을 읽고 난 그의 서평 제목은 이렇다. 시대의 고민을 끌어안은 뜨거운 책.. 그러면서 그가 말하고 있는 좋은 책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보게 된다. 그의 말을 빌려보자면 이렇다.. 굳이 좋은 책이 무엇인가 정의한다면, 읽고 나서 지은이와 논쟁을 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굳이 무엇을 올해의 책으로 뽑아야 하는지 말해야 한다면, 우리 시대의 고민을 끌어안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뜨거운' 책이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라고. 우습게도 나는 저 문장을 보면서 베스트셀러에 대한 나의 반감이 이유없는 반항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저자의 다양한 책읽기가 존경스러웠다. 책을 읽는 저자의 넓은 혜안이 부러웠다. 그야말로 책의 제목처럼 어쩌면 죽도록 책만 읽는.. 그런 사람, 이 세상에 참 많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함께 가져보게 된다 (물론 나도 그중의 한사람이 되어보고 싶기도 하다. 욕심일테지만). 그가 읽었던 책중에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나 김영하의 <아랑은 왜>처럼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 많았다. 역시 나의 책읽기는 편협하다. 책꽂이의 구석에서 아직도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토마스모어의 <유토피아>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만 생각해보더라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양한 분류의 책읽기가 필요하기는 하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실천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나서 다른 사람의 서평을 보면서 또다시 서평아닌 서평을 쓰게 된다는 마무리가 그리 깔끔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는 게 솔직한 내 고백이다./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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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 패자의 슬픈 낙인 - 피로 쓴 조선사 500년의 재구성
배상열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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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쓴 조선사 500년의 재구성... 제목만 보면 조선사 500년에 대한 이미지가 붉기만 하다. 언제부터였는지 우리는 지금까지 흔하게 알고 있던 것보다는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에 촛점을 맞추기 시작한 듯 하다. 보여주기 싫은, 혹은 보여줄 수 없었던, 그것도 아니라면 보여서는 안되는 그런 이야기들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자명한 일인데도 우리는 왜 지금까지 그렇게 까발리는 일에 대해 무심했던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만큼... 이제는 숨기고 싶은, 혹은 숨겨주고 싶었던 과거사에 대해 그만큼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가 변했다는 말도 되겠지만 어찌보면 형평성을 잃어버린 우리의 주체성에 일침을 가하는 것처럼도 보여 왠지 씁쓸할 때도 있다. 그만큼 성장한 탓이겠지 생각하며 위안삼기도 하지만 말이다.

책속에서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내게만큼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이미 우리에게는 너무도 잘 알려진 사건과 배경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하여 내내 그타령이라는 말은 아니다. 가끔 정말 그랬을까? 싶은 역사의 한 장면을 앞에 두고도 그래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겠다,하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으니 하는 말이다. 한켠으로 치워두었던 것들을 어디 다시한번 훑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새롭게 느껴지는 맛을 음미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승자가 쓰는게 맞긴 하다. 하지만 그 역사는 승자의 장자방들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머리싸움에서 이기는 자, 누가 더 상황을 잘 읽어내는가 하는 게 관점이다. 이 책속에서 보여지는 역사의 한장면들 또한 치열한 머리싸움의 현장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아비와 아들의 머리싸움, 왕과 신하의 머리싸움.. 하나가 되어도 모자랄 그들이 마음은 모두 다락방에 가둬두고서 서로가 눈을 굴리며 머리만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피로 쓴 조선사 500년이 될 수 밖에...

역사속에서 똑똑하다고, 진보적이라고 불쑥 튀어나왔던 인물들조차도 그 치열한 머리싸움에서 한 수 밀리면 바로 유배요, 사약이다. 그것도 모자라면 죽어 묻힌 뒤에까지 목이 잘린다. 참혹한 부관참시의 대표격이 칠삭둥이 한명회라는 걸 보면 마음없이 그저 머리만 들이미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줄을 알겠다. 권력의 구도앞에서 너무도 허망하게 무너지는 마음이 없는 사회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이긴자들에 의하여 변질되어지는 진실은 우리만 그런게 아니니 어찌보면 그것 또한 또하나의 진실처럼 여겨진다. 만들어지는 것들, 만들어지는 것들은 만드는 자마다 다르게 변화되는 것이 정답일테니 말이다. 

가장 화가 나는 대목은 역시 선조와 인조가 등장하는 부분이다. 어쩌면 그리도 닮은 꼴을 한 아비였는지.. 거기에 덧붙여 어쩌면 그리도 한심한 모습만 지금의 관료들이 쏙 빼닮았는지..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자식도 버릴 수 있다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었을까?  그 못난 왕의 욕심앞에서 느닷없이 화를 당하게 되는 신하들이 가엾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우려가 된다. 그 가여운 신하들조차도 어느날  누구에겐가 그야말로 발가벗겨진 모습으로 내게 보여질지도 모른다고... 언젠가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있다고 하지만 때로는 감춰지는 진실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속된 말로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는데 비틀린 세상을 위하여 진정한 목소리를 내었던 사람들조차 어느 순간 발가벗겨질까 두렵다고 말한다면 어불설성일까?

홍길동이나 임꺽정, 그리고 장길산을 다루었던 번외편, 영웅이 된 도적들은 재미있었다. 그야말로 만들어진 의적들이다. 그리고 후세에 글쓰는 이들에 의하여 화려한 옷을 입게 되는 이름들이다. 그런데 가끔씩은 이렇게 만들어진 영웅이라도 있어야 세상에 대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체한듯이 답답한 가슴을, 하소연할 곳이라고는 어디 한군데도 없는 백성들의 목소리를 대신하여 일갈할 수 있는... 그런 영웅들조차도 못난 왕이나 관료들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은 정말이지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네의 모든것들이 우리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소멸되어지는 것을...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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