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입은 봉황 선덕여왕
김용희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가게문 열고 여자가 첫손님이면 재수없다, 여자 목소리가 어찌 담장 밖을 넘을 수 있는가, 여자가 배워서 뭘하려고? 여자가 감히! 등등 우리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시절부터 여자이기 때문에 서러웠을 시절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 시대에는 그렇게 살아야하는 거라고 배웠던 까닭에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서럽지는 않았으리라. 세상이 변했으니 이제는 여자가 어쩌고하는 말을 하게 되면 구석기시대사람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다. 드라마를 통해 보더라도 지금은 당당하게 큰소리치는 여자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조금은 과장된 듯 보여지기는 하지만 시대가 여성성만을 요구하지는 않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아이러니는 존재한다. 마냥 무엇이고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해놓고선 수퍼우먼이 될 수는 없는거라고 숨어버리기 일쑤다. 가끔씩은 이런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정말 여자라서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여자라는 것을 내세워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책의 주인공 덕만공주가 선덕여왕이 되기까지는 참으로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했던 모양이다. 여자였기에 힘겨웠을 점들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말이다. 하물며 타국의 왕에게조차 멸시아닌 멸시를 받았다고 하니 그 심적 고통이야 어찌 말로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여자가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으니 망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던 <삼국사기>의 글은 지금 읽어도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처음에는 선덕여왕이라는 한 여자를 그려주는 소설쯤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책장을 넘겨가면서 소설이 아닌 한권의 역사서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삼국사기>나 <화랑세기>, <삼국유사>등에서 빌려오는 글들만 봐도 그렇고 이런저런 경로를 파헤쳐가며 한사람의 여제가 탄생되어지기까지의 여정을 따라가고 있음이다. 삼국시대의 이야기가 배경으로 깔려 있으면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이겨내기 힘들었을 여제 탄생의 과정이 순서에 맞게 잘 펼쳐져 있다. 깊이 베인 불교의 이념속에서 성장해가는 신라의 모습과 고구려와 백제를 합한 삼국의 상황들이 함께 어울려 마치 한편의 설화를 읽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너무 오래된 탓인지 학창시절 역사시간에나 배웠음직한 호칭들은 좀 낯설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낯익은 이름들이 많이 보여 시대적인 흐름을 짚어낼 수 있었다. 항간에 세명의 왕을 주무르며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조종했다던 '미실'이라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지금보다는 개방적이었던 성적 풍속도를 그려주고 있어 그녀에 대한 이해를 훨씬 쉽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설화를 많이 만날 수 있어 좋았다. 특별한 것들은 아니다. 그림을 보고 꽃에 향기가 없을거라고 했던 이야기나 지귀설화처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설화일뿐이다. 하지만 요소요소에 맞게  들려주는 설화 한편 한편을 통해 그 시대의 풍류와 이야기의 흐름을 알 수 있게 해주니 그 또한 고마운 일임엔 분명하다.

선덕여왕이 어떻게해서 왕이 되었으며 또한 어떤 정치이념으로 백성을 보살폈는지, 그녀의 정적으로는 누가 있었으며 그들을 또 어떻게 다루었는지, 그리고 그녀의 죽음은 어떠했는지 이 책은 잘 다루어주고 있다. 그런데 나는 백성의 생활속으로 들어온 그녀의 모습이 조금은 이채로웠다. 죽은 뒤에도 백성들이 그리워할 수 있는 왕이었다는 건 그녀가 결코 패배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의 불교가 인도와 그토록이나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는 사실도 조금은 놀라웠다. 어찌되었거나 백성을 위한 정치를 했다는 그녀는 여자였기에 그리고 말년에 정치적인 패배의 맛을 보았기에 역사속에 기록되어지지 못한 이야기들이 더 많았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역사속에서 사라져버릴뻔한 한사람의 여제를 위한 글, 마치도 그녀가 왜 그렇게 되어야만 했는지 변론해주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어떠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사장되어져 버리기엔 아까운 인물도 세상에는 많이 있으니 그녀들의 이름이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나올 수 있다면 좋은 일일게다. 조금은 밋밋하고 조금은 싱거운 맛이긴 하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일까? 아무리봐도 왠지 뭔가 부족한 느낌이 남아 자꾸만 내려놓은 책을 쳐다보게 된다. 무엇일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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