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싸는 집 - 세계의 화장실 이야기
안나 마리아 뫼링 글, 김준형 옮김, 헬무트 칼레트 그림 / 해솔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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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가지씩은 똥에 관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시골 할머니댁에 갔을 때 난감했던 기억이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그만큼 우리 화장실의 변천사는 그리 길지 않은 듯 하다. 아주 오래전 내가 어렸을 적에는 화장실이라는 말보다 뒷간, 똥간, 측간, 변소 따위로 불리워졌었다.  그시절에는 변소 한귀퉁이에 잡지 한 권쯤 놓여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고, 똥싸면서 심심하면 그 책을 읽기도 했었다. 똥푸는 아저씨가 똥지게를 지고 다니며 " 똥 퍼~ " 를 외쳐대던 소리는 " 머리카락 팔아요~ " 하던 소리와 " 뻔~ 뻔~ " 하며 다니던 고물장수 아저씨의 소리처럼 내가 어린시절에 자주 들었던 외침중 하나이기도 했다. 학창시절에 아주 짓궂은 생물선생님이 계셨는데 이 분은 점심시간만 되면 각 반을 돌아다니시면서 큰소리로 묻곤 하셨었다. " 얘들아~ 콩나물 먹고 화장실가면 어떻게 되는 줄 아니? " 그러면 비위 약한 아이들은 그만 도시락 뚜껑을 닫아버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아이들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정말 지푸라기로 밑닦개를 했던 시절도 있었다. 변소 한귀퉁이에 놓여있던 잡지책이 행여라도 두꺼운 종이였을 경우 그것을 싹싹 비벼 부드럽게 만들어서 사용하기도 했었다.  몇년전 부모님께서 강원도에 계실 때에도 그 집 화장실은 정말이지 재래식 변소였었다. 한번은 잘 놀던 조카가 느닷없이 집에 가자고 울며불며 떼쓴 일이 있었는데 자초지종을 알고보니 바로 화장실이 너무 더러워서 집에 가야한다는 거였다. 그만큼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변소라는 말조차도 생소할게다. 

똥! 똥이 더럽다고? 뭐 솔직히 말한다면 더럽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만큼 똥이라는 말은 터부시되었던 말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그 똥이라는 말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게 된 듯하다. 더럽게만 보아오던 똥이 우리 건강을 체크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건강이 우리의 관심사가 된 뒤부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받고 한번 훑어보았는데도 더럽다거나 하는 별다른 느낌은 생기지 않았다. 이 책은 화장실에 관한 이야기다. 시대별로 화장실이 변해져가는 모습을 만날 수도 있고, 각 나라마다 다른 화장실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일인용이 아닌 다인용 화장실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며, 노르웨이의 가족용 화장실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저런 화장실이 생긴다면 어떤 반응들을 보일까 하는 우스운 생각도 한번 해보게 된다.  여성의 상징인 하이힐이 바로 똥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는 사실은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예나 지금이나 오물처리가 고민거리였음은 같은 모양이다.  그러나 저러나 어떤 왕이 썼다던 그 대리석 화장실은 겨울에 사용하기엔 너무 괴롭지 않았을까?

똥이야기, 화장실 이야기였음에도 재미있다. 어린 아이를 둔 엄마라면 이 책을 빌미로 껄끄러운 주제 하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뚝딱 해치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재미있다는 말이다. 그림만 보아도 더럽다며 인상 찌푸리기 보다는 흥미를 느끼게 할 수 있을 듯 싶어 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이를 위한 책을 보면서 나도 배울 수 있다는 것 또한 재미있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시집을 갈 때 필수적으로 준비했었다는 요강..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그것이 우리나라만의 특색인줄 알았었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부터 각 나라마다 똥오줌을 처리하는 데 공통적으로 요강을 필요로 했다는 것, 세상에 그렇게나 많은 종류의 변기가 있었다는 것, 등등 아이와 마주앉아 재미있게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의 흐름이 매끄러워 괜찮았다. 이 책을 읽고나니 한가지 욕심이 생긴다. 엄마가 직접적으로 표현해주지 못하는 성에 관한 주제도 이렇게 풀어주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렇게해서 부모와 아이가 자연스럽게 성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참 좋을 것만 같다.  책장을 덮으면서 한가지 괴담(?)이 떠올라 피식 웃고 말았다. 학교의 화장실이 모두 재래식 변소였을 적에는 변소괴담도 꽤나 많았었다. 때마침 휴지를 가져가지 않아 당황스러운 아이에게 손이 쑥 올라와서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를 줄까~ 하고 물었다던 이야기는 정말 무서웠었는데... ^^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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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없는 길 2 - 불타는 집 길 없는 길 (여백) 2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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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중의 납자를 만나고 싶으시면 언제라도 오십시오. 오시고 싶을 때면 언제든 소식도 없이 찾아오십시오. 혼자서 오시고 싶으시면 혼자서 오시고, 누구랑 같이 오시고 싶으시면 함께 오십시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단지 그 말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천도재를 지내기 위해 아내를 따라나선 청계사 가는 길.. 40여년만에 찾은 그 길 위에서 다시 만나는 어린 시절의 짧은 단면이 그에게는 몹시도 힘겨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힘겹게 하는 것이 어디 하나 둘뿐이겠는가마는 굳이 예정에도 없이 법명스님을 찾아가던 강 빈의 저 깊은 속내를 짚어볼 수 있기를 바랬다. 그가 힘겨움에 어쩌지 못한 채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 갈구하던 것, 그것은 곧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경허스님의 화두와 다를게 없었음이다. 늙고 야윈 손하나가 불혹의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내내 자신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는 것이 그는 화가 났을 것이다. 버리지도 못하고 끌어안지도 못한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그 어디에도 내려놓지 못한 채 방황하던... 그가 아버지 의친왕이 정표로 주었던 그 일곱알의 염주를 법명스님에게 진정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과 청산은 어느 것이 옳은가. 봄볕이 이르는 곳에는 꽃피지 않는 곳이 없구나. 저 속세와 청산은 어느 곳이 옳은가 시비를 가릴 필요가 없다. 봄볕이 비치면 속세에도 청산에도 꽃은 어김없이 피어난다. 청산이니 진세니 어느곳이 옳은가 시비를 가릴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 꽃이 피는가 그 꽃피는 곳을 찾아가려 할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봄볕을 발견해야 한다. (-261쪽) 자신을 찾아와 병이 들었다고 말하며 출가의 뜻을 비추던 강 빈에게 법명스님이 해 주었던 말은 정말이지 가슴깊은 울림이 전해졌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피하고 싶어하는지 이미 알고 마음을 읽어버린 법명스님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이 나를 아프게 하고 있는 것을 어찌할까..

거문고가 안고 있는 비밀을 찾아 낸다면 마음속의 짐을 조금은 덜 수 있을까, 혹시나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그것은 더 무거운 짐을 지우고 말았다. 경허라는 이름과 강 빈이라는 이름이 왠지 내게는 같은 의미처럼 다가왔다. 결코 학문으로써, 문자로써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이 교화의 길이라는 것을 역병으로 죽어나가던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찾아냈던 경허. 그 길로 강원을 폐하고 자신만의 화두를 찾아내기 위해 모든것들로부터 자신을 위폐시켜버린 경허. 두번째 길속에서는 우리가 어찌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또한 그 깨달음을 얻으면 어찌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음이다.  동쪽의 나라에 법도가 전해지기 위한 길은 멀고도 멀었다. 몇대손, 몇대손을 따지기 이전에 앞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소가 수레를 끌고 가는데 만약 수레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 때는 수레를 다그쳐야 하겠는가, 아니면 소를 다그쳐야 하겠는가" (-92쪽) 대를 이어 내려오는 법통을 하나씩 살펴 보여주면서도 놓치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어떻게 대오각성의 순간을 맞이했는지, 또한 그들이 제자들에게 혹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것을 전파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가 찾아내야 할 것들도 함께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日面佛 月面佛.. 매일매일이 좋은 햇님, 매일매일이 좋은 달님..

"도는 닦아 익힐 필요가 없다. 오직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면 된다. 더러움에 물든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나고 죽는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일부러 별난 짓을 벌이는 것을 바로 더러움에 물든다고 하는 것이다. 단번에 도를 이루고 싶은 생각이 있는가. 평소의 마음이 바로 도이다. '평소의 마음'이란 어떤 마음인가. 그것은 일부러 짐짓 꾸미지 않고 이러니저러니 가치판단을 하지 않으며 마음에 드는 것만을 좋아하지도 않고 단견상견 斷見常見을 버리며 평범하다느니, 성스럽다느니 하는 생각과 멀리 떨어져 있는 그런 마음을 가리킨다. 범부처럼 행하지 않고 성인 현자처럼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보살행인 것이다." (-99 ~ 100쪽)  '平常心''라는 말은 의외였다. 말로만 있는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나라는 존재에게 점차 다가오는 법맥의 흐름이 책을 읽는 내내 좋은 의미로 다가왔다. 멀리 떨어져 있지 아니하고 나에게 좀 더 가까이 오기 위해, 오직 나로 인함을 말해주고 있는 그 흐름이 나는 좋았다. 利他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세상에 오직 나만이 존재하고 있는 듯 살아가고 있는, 경전이라는 것이 하나의 도구처럼 쓰여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속에서 뜬구름처럼 아련하기만 한 것이 믿음의 실체라면 그것은 뭔가 잘못된 것일거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랬기에 조금은 따분하게 느껴졌을 두번째의 길이 적어도 내게는  밝아 보였다. 前際無去 今際無住 後際無來.. 과거는 감이 없으며 현재는 머무름이 없고 미래는 옴이 없으니 ... (-362쪽)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이순간이다. 그러니 지금 나의 마음을 다시한번 챙겨볼 일이다. 생각해보면 작가가 보여주는 두번째 길은 수행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이기도 하며  깨달음을 얻은 이로써 해야 할 수행의 길이다. 平常心... 범부처럼도 성인현자처럼도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그 마음인 것이다. 내 안에 머무는 내 마음.. 내 것이면서도 내것이 아닌 그것... 그 마음을 진정으로 내가 취할 수 있어 그 마음을 다듬으며 살아가야 하는거라고 말해주고 있음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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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상상과 몽상의 경계에서
김의담 글, 남수진.조서연 그림 / 글로벌콘텐츠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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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버스를 타고 가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있을 때 흔들리는 차안에서 조용히 끄적거립니다. 모두 어디로 갔는지 혼자 마시는 커피의 향이 왠지 서글픔으로 다가설 때 곁에 있는 메모지에 뭔가를 끄적거리게 됩니다. 곁에 아무도 없다고 느껴지던 날의 그 소소한 쓸쓸함들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태어났다면 바로 이런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아니 어쩌면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희망과 연결된 또하나의 고리였을지도 모르지요. 그랬던 나의 감정들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하나둘씩 모여든 친구들이 한점씩의 삽화를 보태준다면 나의 글은 좀 더 멋지고 좀 더 분위기 있는 장면을 연출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느낌을 전해주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생각을 합니다.  길을 걸으며 생각하기도 하고, 차를 마시며 생각하기도 하고, 하물며 타인과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 생각속에는 온전한 내가 들어 있습니다. 아니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직 내 안의 내 의지대로만 움직여질 수 있는 까닭입니다. 이 책은 한 여자가 문득문득 끄적거린 메모장 같기도 하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쓴 끊어진 일기장 같기도 합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의 생각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쩐 일인지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 책장을 넘기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자신안에 살고 있는 괴물로부터 시작되어집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실체는 보이지 않고 안개처럼 희미한 형상만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어떤 괴물인지 알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듯 보이기도 하고, 그 괴물과 맞대면 할 자신이 없는 것처럼도 느껴집니다.

가끔 난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여질까 궁금하다. 그리고 또 가끔 이 세상에서 내가 사라지고 없다면 사람들은 날 어떤 모습으로 기억할까? 하고 생각한다. 51쪽에 나와 있는 문구입니다.  나 역시도 이런 생각 많이 해 보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없어진다면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본적도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아주 흔한 생각,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아주 흔한 일상속의 느낌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독하게 주관적인 듯 하면서도 왠지 많은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드는 한소절의 넋두리입니다. 왕십리행 마을버스를 탔던 누추한 아낙과 손자를 바라보는 동정의 시선, 끝도없이 뱉어내는 사랑의 맹세를 습관적으로 받아들이며 사는 불신, 5일장에서 엄마를 잃어버렸을 때 그 장소를 떠나지 않았던 쓰라린 기다림의 아픔, 탐욕과 기대치에 허물어져 버리는 자신만의 특별함,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린채 밖으로 나가길 두려워하는 단절... 모두가 우리안에서 집을 지은 채 나가려 하지 않는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책속에 상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걷다보면 넘어질 때가 있고 그러면 손을 툴툴 털고 일어선다는 의지도 있습니다. 타인의 삶을 약으로 나의 병을 고치기도 합니다. 당신에게 인생에서 지키고 싶은 열가지가 뭐냐고 묻기도 합니다. 그녀만의 이야기를 읽으며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는 끈이 있어 그 끈들이 모여 또하나의 긴 띠가 될 수 있는 그런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을 서원해 봅니다. 우리가 자주 말하곤 하는 어린왕자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길들여짐과 적응의 차이점을 말하는 대목이 그렇습니다. 아니 그렇다고해서 뜻이 같다는 것은 아닙니다. 길들여짐과 적응의 차이점을 앞세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니까요. 모든 일에 만능인 사람이나 모든 일에 서툰 사람이나 저마다의 인생에 어떤 색으로 그림을 그려가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말입니다. 글을 쓰고 있는 그녀는 고기를 굽다가도 삶의 이치를 깨닫습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도 진리가 담겨있었다는 걸 눈치채기도 합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은 공존과 양보가 있어야만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 테니까요. 많은 돈과 멋진 차와 멋진 집, 이런 조건들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니라는 뻔한 진리를 말하기도 합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이야기지만 각자 얼만큼의 깊이로 받아들이며 느끼는가의 차이겠지요..

자전거 자리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단지 스무개의 계단이 앞에 있다는 이유로 일년째 그 자리에서 1cm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세대의 자전거... 그녀의 말처럼 우리의 욕구는 현실을 이겨내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욕구가 있어 지금의 이 현실이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요.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것 같은 계단에 얽매인채 단 1cm도 움직이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을 꼬집어 주고 싶었을 겝니다. 그러니 다시한번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글 속에서 어쩌면 그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문구를 찾아냅니다. 저마다 이러니 저러니 떠드는 것은 인정받고 위로받고 싶음이니, 내가 그렇듯 고개를 끄덕여 호응을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지나친 관심도 지나친 자존심도 모두 피곤하니 적당히 사는 것이 제일 좋다. 89쪽에서 본 문구입니다.  이 한권의 책을 내기 위해 무던히도 긴장했을 그녀의 마음을 보여주면서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얼핏 생각해보니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일런지도 모르겠네요.  부드러운 글과 조금은 강렬한 느낌을 전해주었던 그림들.. 잘 어울어졌느냐고 묻지는 마시길...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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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없는 길 1 - 거문고의 비밀 길 없는 길 (여백) 1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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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작품은 책보다 영화나 드라마로 먼저 만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젊은 시절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하니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그의 생각과 손을 통해 태어났을까...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깊고 푸른 밤>, <해신>, <상도>...와 같은 제목들은 책제목이라기보다는 영화의 제목이나 드라마의 제목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일게다. 안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소위 말하는 인기작가나 베스트셀러라는 말에는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 않았었다. 그런 까닭에 그의 작품을 내가 선택해서 읽어본다는 것이 쉽진 않았음이다.  이 책 <길 없는 길>을 만나게 되는 동기 역시도 지인의 소개때문이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불교의 경전을 읽어본 적도 없었고 이렇다하게 불교의 형식을 이해하지도 못했기에 처음 이 책을 접한다는 것에 불쑥 두려움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누군들 처음부터 알고 시작하랴 싶은 마음에, 그것도 아니라면 뭔가를  배워보고 싶다는 욕심에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총 4권의 책을 모두 앞에 두고 이제 손에서 내려놓아야 할 첫번째의 만남.  첫만남치고는 너무나도 강한 느낌을 내게 각인시켜버리고 말아버렸다. 왠지 가슴이 설레인다.

일종의 모티브였을 것이다. 거문고의 비밀은.. 그 거문고를 찾아 길을 떠나는 주인공의 여정을 쫓아가는 나 역시도 무엇을 만나게 될지 풍선처럼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고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그 태어남이 축복이 되지 못했던 의친왕과 만공스님의 만남. 그 짧은 만남속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을 쓰기 위하여 작가가 기울여야 했던 모든 노력들.. 카톨릭 신자였다던 작가가 찾아 헤맸을 모든 과정들이 얼마나 힘겨웠을까 싶었다. 그리하여 불교라는 또하나의 세계속으로 빠져들었다던 작가의 마음.. 그 마음처럼 내게도 또다른 세계의 경이로움이 제대로 전달되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보게 된다. 작가조차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이 책 <길 없는 길>, 아직 남은 세번의 만남이 내게 행복한 시간이기를..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거문고와의 만남이었지만 거문고와 주인공의 만남으로부터 비밀은 하나씩 옷을 벗기 시작하는 듯 하다. 거문고에 새겨진 글자들을 보면서 뜨거운 가슴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던 주인공의 사연조차도.. 이미 지나가버린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며 모든 기억은 시작되어진다. 일곱알의 염주.. 그 염주속에 새겨진 이름.. 그 이름의 주인들이 엮어나가야 할 고된 역사의 흔적을 따라가야 할 순간이다. 이제 시작이지만 만공스님과 그의 스승 경허스님의 여정은 또하나의 세계로 내게 안내되어질 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우리의 조선사를 따라 맥을 짚어줄 의친왕의 흔적속에서 마주칠 역사의 숨결이 기대되기도 한다.

시작은 만공스님과 의친왕의 만남이었다. 왕자로 태어났다는 부처와 의친왕의 배경이 비슷하다는 설정은 작가가 무언가 작정한 듯 보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당연히 만공스님의 여정을 따라가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경허스님이었다. 경허스님의 깨달음과 주인공이 아버지를 찾아가는 과정속에서 묘하게 얽혀드는 깊은 감정이 있다. 돌림병이 돌아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아버지 의친왕이 살아야 했던 거친 삶속에서 내가 보아야 했던 것은 무었이었는지.. 어쩌면 주인공의 마음속에 바위처럼 자리했을 무거운 그 어떤 것.. 아직은 알 수 없다. 만공스님과 의친왕이 서로 주고받았다던 염주와 거문고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을까? /아이비생각 


부처님이 어떤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그러자 사문이 대답했다.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이 실망하여 말하였다. "너는 아직 도를 이루지 못하였다"
부처님이 다른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그는 대답하였다. "밥 먹는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이 말하였다. "너도 아직 도를 이루지 못하였다"
부처님이 또 다른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사문이 대답하였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마침내 말하였다. "그렇다. 생과 사는 호흡하는 사이에 있다. 너야말로 도를 이루었다"
부처님의 말씀은 비유가 아니다. 그의 말은 진리이다. 우리의 삶과 죽음은 며칠 사이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밥 먹는 사이에 있음도 아니다. 우리의 삶은 숨을 들이마실 때 있고 우리의 죽음은 숨을 내쉴 때 있다. 우리는 숨을 들이마실 때 살고 숨을 내쉴 때 죽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생과 사의 문턱을 넘나들면서 호흡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쉴 새 없이 눈을 끔벅이고 있는 것처럼 눈을 감을 때 우리는 장님이 된다. 그러나 뜰 때 우리는 빛을 본다. 그 장님과 봄()의 찰나적이고 극단적인 행동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도 우리는 그냥 '보고 있다'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숨을 내쉬고 들이마심으로써 죽음의 문턱을 하루에도 수만 번씩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324~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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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전통
에릭 홉스봄 외 지음, 박지향 외 옮김 / 휴머니스트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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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처음인듯 싶다. 전통이라는 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 것이. 그리고 새삼스럽게 전통이란 말의 의미를 찾아보게 되었던 것 같다. 통상적으로 전통이라는 것은 옛부터 내려오면서 지속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는 까다로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관습이나 인습을 전통이라는 말로 포장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객관적인 가치판단보다는 주관적인 가치판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관습처럼 연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되는 문화유산을 전통이라고 한다는 말이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다시말해 전통이라는 것은 어떤 신념을 강화시킨 것이라고 알면 더 빠르게 다가올 수 있을까?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때로는 정치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게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전통이라는 것을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일종의 구속력이 필수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그것... 가만히 보면 꽤나 무서운 어감을 내포하고 있는 듯 하다. 한 시대를 이끌어가기 위해서, 혹은 조직적인 사회를 이끌어가기 위해서 그들을 묶어둘 수 있는 것으로 사용되어졌던 전통. 그렇게해서 만들어진 전통들이 그 시대의 사람들 위에 군림했었다는 건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대중을 이끌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뭉치게 할 수 있고 그들을 다스릴 수 있는 어떤 장치는 필요하다. 그런 도구로써 전통이라는 말이 필요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믿고 싶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전통과는 너무나도 확연하게 달랐던 그 전통이라는 의미앞에서 당혹스럽기도 했다.  보통은 식민지를 다스리기 위해 만들어지는 전통들이 많았었던 것 같다. 익히 알고 있는 왕정국가인 영국의 대관식마져도 그렇게해서 근래에 태어나게 된 전통이었다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일종의 세뇌작업이었을 것이다. 하나의 문화처럼 거리낌없이 다가가 그들의 사고를 마비시켜버리고 마는 그런 존재. 그런 역할을 했었던 것이 바로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것인데 더 무서운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왠만한 전통들이 모두가 다 그렇게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전통을 발명해내는 사람들에 의하여... 그것도 대량으로 생산되었다는... 어쩌면 지금 현재도 그런 전통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리하여 그런 보이지않는 힘에 의하여 우리는 세뇌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만들어지는 전통들은 때론 소멸해가는 것들을 재탄생시키기도 하고, 멀쩡하게 잘 있던 것들도 때론 소멸시킨다. 필요에 의해서. 문제는 그 만들어진 전통들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많은 사람들의 사회속으로 혹은 정신속으로 파고 들었다는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문화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의 온도를 느끼지 못한채 죽어가는 개구리와 다를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가끔씩은 전면전을 치루어야 할 때도 있었을테지만  거부한다는 그 자체가 마치도 이단아가 된 것만 같은 분위기라면 어느 누가 그 대열에서 이탈하고자 할까?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한 채 홀로 떨어져나간 사람들의 그 고립감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 전통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본다면 그것의 배경을 알게 되고 힘없이 만들어지는 전통이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그러니 개구리처럼 익어갈밖에... 집단적인 힘을 필요로하는 것이니 좋은 효과를 얻어도 또한 나쁜 효과를 얻는다해도 그 파장은 클것이다. 흥하거나 망하거나 둘 중의 하나처럼 말이다.

빽파이프를 불며 행진하는 스코틀랜드의 치마 입은 남자들의 모습은 누가 뭐래도 꽤나 낭만적인 풍경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만들어진 전통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씁쓸한 것이 어디 그것뿐일까? 이 책을 읽다보면 가히 그럴만 하구나 싶은 사실들이 꽤나 많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하기까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었다. 600쪽에 달하는 무시할 수 없는 책의 두께에도 불구하고 덥석 손에 들긴 했지만 내가 지금까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아마도 가장 오래도록 손에 잡고 있었던 책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날들이 스쳐지나가 버렸다. 아주 오래도록 놓지도 못하고 전진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한숨만 푹푹... 너무 쉽게 생각하고 덤벼들었던 내 자신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일종의 연구서와도 같이 어렵고 딱딱하게만 다가오던 책. 전문적인 성격마져 보이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까지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요구되었던 거다.  

아직도 헤매고 있는 나 자신을 위해서 책속의 문장들을 빌려와 다시한번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① 만들어진 전통에서 무엇보다도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기념행위다. 그것이 없다면 일정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일시적일 수 밖에 없는 집단적 기억을 안정화시키려는 계산된 전략이다. 그것은 과거로 하여금 현재에 돛을 내리게 하고 시간이 멈춰있을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낸다. - 역자 서문에서- .. 지금 읽어도 참 무서운 말인듯 싶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기념하기를 좋아한다. 뭔가 특별한 것을 좋아한다는 말도 될 것이고 그것이 아주 오래도록 곁에 머물러 나를 즐겁게 만들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바로 그런 심리를 이용한 하나의 전략인 셈이다. ② 만들어진 전통의 특수성은 대체로 과거와의 연속성을 인위적으로 내세우려 든다는데에 있다. 적응은 새로운 상황에 처해 낡은 것들을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목적을 위해 낡은 모델을 활용함으로써 가능한 법이다. 엉클 샘은 미국정부와 미국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로 United States의 이니셜 US로 만들어졌다. ③ 포스트모더니즘 시각에서 볼 때 역사적 사료는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텍스트에 불과하며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된 서술은 실은 권력의지에 의해 구성된 담론일 뿐이다... 역사는 힘있는 자에 의해 쓰여진다는 말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어차 피 모든 사회적 구조는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사실일테니 말이다.  ④ 전통의 창조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차이점들을 극복하고 '상상된 공동체' 를 만들어내는 공통분모를 형성해내는 데 기여한다는 말과,  '근대사회는 여전히 신화와 의례를 필요로 한다' 던 이안  길모어의 말을 마지막으로 기억해둘까 한다.  숨겨놓은 채 드러내지 않는 인간의 심리적인 취약점을 교묘히 건들이며 만들어지는 것이 전통이 아닐까 하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하면서...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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