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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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이 책의 부제다. 아우슈비츠가 유대인을 집단으로 학살했던 수용소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400만 명의 목숨을 빼앗았던 비극의 현장이 바로 그곳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생지옥을 만나게 된다는 곳. 유대인 학살을 이야기할 때마다 인용되어지는 굴뚝의 연기. 그 소각로나 카펫을 짜기 위해 머리카락을 모아두었다는, 그리고 고문실등 그야말로 광기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는 곳이 지금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는 것을 나는 지금에야 알게 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치에게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란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찾아가던 여행프로에서 그 때 당시 희생되었던 사람들의 두개골만 모아놓았던 위령탑이 떠오른다. 너무나 많아서 누가 누구인지를 가려낼 수 없어 그렇게 한곳에 모아 두었다고 하는데 그 탑의 이름이 영혼의 눈물이었다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숙연해지던 참배객들의 표정이 생각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폴란드가 그 곳을 보존하기로 결정한 것은 정말 뜻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바로 그 현장에서 살아남았다는 사람의 기록이다. 뒷부분의 부록을 읽다보면 그가 겪었던 일들을 전해야 한다는 의식만으로 버텨냈다는 말이 있다. 이 얼마나 냉혹하고 잔인한 현실인지...

공동샤워실... 이곳이 바로 위장된 가스실이었고 그곳에서 약한 사람이나 노인들, 어린아이들이 죽어갔다.  나치의 인종법에 의해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희생양이었다. 금니를 뽑아 금괴로 만들었다거나 머리카락을 모아서 카펫을 짰다거나 하는 것들은 이 책속에서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열차에 올랐던 사람들. 그들은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배설물과 함께 먹고 자고 한다는 것이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단지 화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수용소에서의 마지막을 남들보다 나은 생활속에서 지냈지만 그가 보고 겪었던 일들을 말이나 글로 전해듣는 우리가 얼만큼이나 공감할 수 있을런지... "몇 개?" "650개"... 나치는 그들을 그렇게 불렀다. 어떻게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릴 수 있을까? 묻고 있는 그 심정은 오죽할까 싶기도 했다. 싸구려 상품들처럼 무자비하게 포개진 채 무를 향한, 아래쪽을 향한, 바닥을 향한 여행을 했다던 저자의 말은 상상할 수조차 없을 것 같다.

여행중에 그리고 그 후에도 끝도없는 절망의 나락에서 우리를 건져낸 것은 바로 이런 불편함, 구타, 추위, 갈증이었다. 살려는 의지나 의식적인 체념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서로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아니 서로를 바라보며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마음을 다졌을 것이다. 시간이 한방울씩 흐른다!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 더딘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게 해 주었던 버팀목은 무엇이 되었든 정말이지 단단했고 끈질겼다.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누구를 탓해서도 안되는 거라고.. 옆 침대의 젊은이가 가스실로 가야하는 운명에 처했다고 해도 자신이 선발되지 않은 것에 대해 신께 감사하는 노인을 원망해서도 안된다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 이름은 174517.. 텅 빈 인간...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이기에 그렇게 잔인할 수도 있고, 인간이기에 그 잔인함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거라고.. 그래서 한번 더 생각해보면 이것이 인간이냐고 묻고 있는 주체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인간임을 느끼게 하는 잔인하고 오래된 고통, 기억... 그 기억은 이미 오래전에 곁을 떠나가버린 지난 시절들이다. 뒤돌아보면 안타깝기만 한 그런 기억들이 그들을 버티게 해 주었던 것이 아니었다. 당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오직 한가지 신념으로 살아남았다는 그의 말은 정말이지 기가 막히다.  그런 기억들이 육체를 혹사시키고 배고픔에 주린 배를 쓸어내리고 곪아가는 상처의 아픔이 지독할수록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혹독한 현실을 견뎌내야만 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런 기억은 오히려 사치였을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인간을 파괴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쉬운 일도, 간단한 일도 절대 아니지만 독일인, 당신들은 그 일에 성공했다고...

부록 1 - 독자들에게 답하다부록 2 - 프리모 레비 연보 를 읽으면서 쓸쓸하게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던 그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그 커다란 사건의 배경이나 그일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에 대한 이해를 돕기에는 충분했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흘러 지나가버린 기억들에 대해 묻는 이 시대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질문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 힘겨운 고통을 견뎌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열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얼마나 먹먹해지던지... 그에게는 그 열흘이라는 시간이 백년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해서 살아남은 이들중에서 나중에 서로 만남을 가진 이도 있지만 아픈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며 만남을 원치 않았던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럴 것이다. 아픈 기억은 잊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일테니... 영화 <쉰들러 리스트>나 <인생은 아름다워>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제2차 세계대전이야기..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혹은 머물러 있는 시대에 따라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는 것은 삶의 아이러니일까?  '이것이 인간인가' 라고 묻는 저자의 아픔속에서도 '인간'임을 인정했던 사람들도 있었음을 떠올린다. 그래서 아직은 우리에게 조금의 따스함이 남아있을 수 있는거라고...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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