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라오가 좋아
구경미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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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갈까?"
"어디든 데려다 주세요"
그렇게해서 남자와 여자는 무조건 길을 떠났다. 바다가 보고 싶다던 그녀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서도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들의 움직임을 사람들은 쉽게 기억했다. 한국남자와 라오스여자... 아직은 아닐 것 같은데도 거리를 걷다보면 정말 많은 외국인들을 보게 된다. 얼마전까지만해도 그들을 신기한 동물보듯이 쳐다보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게 맞는 말일게다. 그만큼 우리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는 말도 되겠다. 그 남자는 라오스의 현장소장으로 근무했었다. 어느날 월급을 나눠주던 그 때에 강도가 들었고 그 강도의 총에 노동자 하나가 죽었다. 그 노동자의 유골함을 들고 찾아갔던 낯선 곳에 그 여자가 있었다. 스물세살의 그녀는 예뻤지만 삶의 현실은 비참했다. 그것이 그들의 어설픈 시작이었다.

그들은 변화를, 아니 변신을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여자가 되기를, 그리고 라오스남자가 되기를.  각자가 그리던 변신의 형태가 많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남자와 그 여자가 공간이동을 통해 서로의 변신체가 되어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들이 변신을 원했던 이유는 결코 다르지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타국생활로 인하여 한국으로 돌아온 그남자는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고 그야말로 신데렐라의 꿈을 안고 한국남자와 결혼했던 그녀의 꿈은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남자는 외로웠고 여자는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다. 마음의 위안을 찾아 헤맸던 그들은 쉽게 여행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탈출을 시도했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누구나 꿈꾸는 그 유토피아... 외로움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어떤 모습일까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사람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외롭다. 어디에도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채 부유물처럼 그렇게 떠돌기만 하는 현실이라는 흐름속에서.. 그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사람들속에 그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곧바로 나의 화신으로 변신했다.

얼핏보면 그녀 아메이를 통해 다문화가정이라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내게는 그것과는 무관하게 다가왔던 책이다. 사랑의 도피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는데,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함께 떠날만큼 많이 사랑했던 여자도 아니었는데 오로지 그녀를 위해서 떠났다고 생각했던 남자의 참담함.. 멋진 코트와 자동차와 집을 줄 수 없었던 남자를 버린 것은 여자에게는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이었을 게다. 오로지 네가 원하는대로 다 해주었다던 그 남자의 말이 가슴속까지 파고 들지 못했던 것은 그여자의 말처럼 "내 마음을 당신 종은대로만" 해석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했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모든것이 제 잣대로 재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군중속의 고독이라는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싶어지니까.

그렇게 좋다던 라오라오가 뭘까? 거두절미하고 술이다. 독한 술.. 마시면 강해지는 술.. 한마디로 화끈한 술.. 온 몸에 활기를 주고 뱃속에 용기를 주는 술.. 어쩌면 그 남자가 필요로 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독함, 강함, 화끈함, 활기, 용기... 미적지근하게 살아지는 일상속에서 자신을 확 끌어당길 수 있는 그 무언가를 꿈꾸면서도 그 남자는 쉬고 싶었다. 온전히 쉬고 싶었다. 자신을 이방인처럼 대하는 가족들이 두려웠고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직장에서의 시간들이 두려웠다는 말이다. 여기서 문득 기러기아빠를 생각하게 된다. 오랜 시간을 타국에서 고생하는거나 아내와 자식을 타국으로 보내놓고 혼자서 생활하는거나 별다른게 없을테니.. 단절을 보게 된다. 가족이라는 테두리안에서조차 부유물처럼 서로가 겉돌기만 하는 우리의 시대를 누가 만들었는가! 모든 것이 엉킨 실타래같다. 

상실감이었을 것이다. 무언가를 잃은듯한.. 그리하여 마음속에 텅 빈 풍선하나를 품고 살아가는 것같은.. 그 남자와 그 여자에게서 나는 상실감을 보았다. 그나마 있었던 것들도 하나씩 잃어버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남자의 여정이 처절한 서글픔을 자아냈다. 위안이 되어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던 여자는 버렸던 제둥지로 다시 돌아가 버티고 있는데 자신만 모든 자리가 가시방석이었다. "내가 가야 다들 맘 편히 살 것 같아서" 라는 말이 서럽게 들려왔다. 그나마도 자신을 받아주고 안아주었다고 생각되는 라오스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정했으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보고 싶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선택했던 충동적 도피.. 그 도피는 우리의 마음속에 내재되어진 그 어떤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혼자 갈거야"
"그나마 라오스에 있을 때가 행복했던 것 같아" 
그 남자의 슬픈 목소리가 슬프다. 바다를 보고 있으면서도 바다가 보고 싶다고 말하던 그녀는 끝내 동행하지 않았다. 삶의 길이란 것이 혼자가야하는 것이 맞는데도 지독한 서글픔이 느껴지는 것은 왜인지... 예전의 가을은 가을다웠는데 올해 가을은 겨울을 닮았다던 그 남자의 말이 가슴 어딘가를 콕 찌르며 지나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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