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라오가 좋아
구경미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디로 갈까?"
"어디든 데려다 주세요"
그렇게해서 남자와 여자는 무조건 길을 떠났다. 바다가 보고 싶다던 그녀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서도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들의 움직임을 사람들은 쉽게 기억했다. 한국남자와 라오스여자... 아직은 아닐 것 같은데도 거리를 걷다보면 정말 많은 외국인들을 보게 된다. 얼마전까지만해도 그들을 신기한 동물보듯이 쳐다보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게 맞는 말일게다. 그만큼 우리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는 말도 되겠다. 그 남자는 라오스의 현장소장으로 근무했었다. 어느날 월급을 나눠주던 그 때에 강도가 들었고 그 강도의 총에 노동자 하나가 죽었다. 그 노동자의 유골함을 들고 찾아갔던 낯선 곳에 그 여자가 있었다. 스물세살의 그녀는 예뻤지만 삶의 현실은 비참했다. 그것이 그들의 어설픈 시작이었다.

그들은 변화를, 아니 변신을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여자가 되기를, 그리고 라오스남자가 되기를.  각자가 그리던 변신의 형태가 많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남자와 그 여자가 공간이동을 통해 서로의 변신체가 되어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들이 변신을 원했던 이유는 결코 다르지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타국생활로 인하여 한국으로 돌아온 그남자는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고 그야말로 신데렐라의 꿈을 안고 한국남자와 결혼했던 그녀의 꿈은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남자는 외로웠고 여자는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다. 마음의 위안을 찾아 헤맸던 그들은 쉽게 여행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탈출을 시도했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누구나 꿈꾸는 그 유토피아... 외로움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어떤 모습일까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사람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외롭다. 어디에도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채 부유물처럼 그렇게 떠돌기만 하는 현실이라는 흐름속에서.. 그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사람들속에 그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곧바로 나의 화신으로 변신했다.

얼핏보면 그녀 아메이를 통해 다문화가정이라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내게는 그것과는 무관하게 다가왔던 책이다. 사랑의 도피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는데,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함께 떠날만큼 많이 사랑했던 여자도 아니었는데 오로지 그녀를 위해서 떠났다고 생각했던 남자의 참담함.. 멋진 코트와 자동차와 집을 줄 수 없었던 남자를 버린 것은 여자에게는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이었을 게다. 오로지 네가 원하는대로 다 해주었다던 그 남자의 말이 가슴속까지 파고 들지 못했던 것은 그여자의 말처럼 "내 마음을 당신 종은대로만" 해석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했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모든것이 제 잣대로 재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군중속의 고독이라는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싶어지니까.

그렇게 좋다던 라오라오가 뭘까? 거두절미하고 술이다. 독한 술.. 마시면 강해지는 술.. 한마디로 화끈한 술.. 온 몸에 활기를 주고 뱃속에 용기를 주는 술.. 어쩌면 그 남자가 필요로 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독함, 강함, 화끈함, 활기, 용기... 미적지근하게 살아지는 일상속에서 자신을 확 끌어당길 수 있는 그 무언가를 꿈꾸면서도 그 남자는 쉬고 싶었다. 온전히 쉬고 싶었다. 자신을 이방인처럼 대하는 가족들이 두려웠고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직장에서의 시간들이 두려웠다는 말이다. 여기서 문득 기러기아빠를 생각하게 된다. 오랜 시간을 타국에서 고생하는거나 아내와 자식을 타국으로 보내놓고 혼자서 생활하는거나 별다른게 없을테니.. 단절을 보게 된다. 가족이라는 테두리안에서조차 부유물처럼 서로가 겉돌기만 하는 우리의 시대를 누가 만들었는가! 모든 것이 엉킨 실타래같다. 

상실감이었을 것이다. 무언가를 잃은듯한.. 그리하여 마음속에 텅 빈 풍선하나를 품고 살아가는 것같은.. 그 남자와 그 여자에게서 나는 상실감을 보았다. 그나마 있었던 것들도 하나씩 잃어버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남자의 여정이 처절한 서글픔을 자아냈다. 위안이 되어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던 여자는 버렸던 제둥지로 다시 돌아가 버티고 있는데 자신만 모든 자리가 가시방석이었다. "내가 가야 다들 맘 편히 살 것 같아서" 라는 말이 서럽게 들려왔다. 그나마도 자신을 받아주고 안아주었다고 생각되는 라오스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정했으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보고 싶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선택했던 충동적 도피.. 그 도피는 우리의 마음속에 내재되어진 그 어떤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혼자 갈거야"
"그나마 라오스에 있을 때가 행복했던 것 같아" 
그 남자의 슬픈 목소리가 슬프다. 바다를 보고 있으면서도 바다가 보고 싶다고 말하던 그녀는 끝내 동행하지 않았다. 삶의 길이란 것이 혼자가야하는 것이 맞는데도 지독한 서글픔이 느껴지는 것은 왜인지... 예전의 가을은 가을다웠는데 올해 가을은 겨울을 닮았다던 그 남자의 말이 가슴 어딘가를 콕 찌르며 지나간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수 왜곡의 역사 - 성서비평학자 바트 어만이 추적한
바트 D. 에르만 지음, 강주헌 옮김 / 청림출판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 로버트 퍼시그 ' ... 내가 일찌감찌 모셔두고도 아직 읽지 못하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펼치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말이다. 사람들은 숨겨진 진실과 마주쳐야 할 때 가장 망설이게 되지 않을까? 그것이 불편한 진실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무언가 숨겨진 것이 있을 것만 같다고 느껴질 때 사람들의 반응은 두가지다. 그게 무얼까? 궁금해하며 다가보는 부류가 있는가하면 아니야, 그렇지 않을거야 그럴리가 없어 라며 애써 모른 척하는 부류가 있다. 그렇게 본다면 바트 어만은 전자에 속한다. 그러나 그가 외치는 것은 정말 명쾌하다. 기독교를 버렸다고는 하지만 그는 철저한 기독교인이다. 다른 어떤 이의 믿음보다도 더 강한 믿음을 가진 존재일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개인적인 나만의 판단으로 볼 때 그의 그런 선택은 옳았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했어야만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정한 종교의 모습을 찾아나가는 그의 믿음에 나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의 전작 <성경 왜곡의 역사>를 먼저 읽었다. 궁금했기에 망설임없이 다가갔고 그의 작품으로 인해 막혀있던 궁금증도 어느정도는 해결할 수 있었던 게 사실이다. 나는 무신론자다. 이렇다하게 내세울만한 나만의 종교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를 무조건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형식과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너무나도 편파적인 상징성만 강조하는 현대 종교의 모습에서 환멸을 느낄때도 종종 있었다. 아무런 조건없이 그 상징적인 틀에 자신을 맞추어가는 모습이 어설프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하나님은 성경을 쓰지 않았다. 성경은 여러 사람이 쓴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성경은 하나의 시각에서 쓰이지 않았다. (370쪽)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알고 싶었기에 나름대로는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는 나로써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모든 것은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그 시대의 상황에 맞게.. 그리고 그 시대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편리하도록..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성경은 신화일까? 아니라면 그냥 문학작품으로써의 존재가치가 있는 것일까?

신앙적 접근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역사적인 증거를 들이대는 그의 반론은 듣기에 거북하지 않았다. 뭔가 불완전하다면 차라리 그런쪽으로라도 접근해가는 방식이 더욱 신선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말하고 있는 모든 모순들을 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신학교에서 모두 배운다는 사실이었다. 그랬던 사람들이 목회자의 길을 걷는 교회에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조차도 묻고 있었다. 왜 그래야만 하는건지를..  무조건적인 반론이 아니다. 그가 하는 말들은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가 성경 속에서 찾아내는 모순들이 그렇다. 감히 묻고 싶어진다.  진실한 기독교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여, 과연 당신도 그처럼 성경을 꼼꼼하게 읽어본 적이 있느냐고.. 무조건적인 믿음만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수가 언제 죽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니 그런 부분에 대해 한번이라도 의심을 품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복음서마다 다른 예수의 행적에 관한 부분은 다시한번 읽게 되기도 한다. 설마하는 마음에서.. 예수는 정말 부활했을까? 사실 과학적인 논리를 들이대자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성경속에 내재되어있는 모순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스물일곱권으로 되어있는 신약성서중에서 단 여덟권만이 정확한 저자를 알 수 있다는 말은 사실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이미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책이라는 전제를 달고 시작한 것이기에.. 그가 찾아낸 복음서의 차이점들조차 왠지 당연한 이치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그 많은 복음서들은 누가 썼을까? 책을 읽으면서 하나씩 벗겨지는 진실들이 내 눈앞에 펼쳐질 때마다 놀라움보다는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보다는 그래,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생겨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가 하고 있는 모든 말들이 신앙적인 접근이 아니라 역사비평적인 접근 방식인 까닭이다. 시대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다른 마음을 가지고 바라다보게 되니 당연히 다른 메세지를 전달할 수 밖에 없었을거라는 말이다. 그러니 성경의 위작생산은 작은 산업이었고 그것이 수익을 내지 못했을 경우에는 당연히 사라졌을거라는 말에도 백배공감할 수 밖에...

책을 읽으면서 예수가 종말론적인 예언자였다고 강론하는 부분에서 나는 잠시 멈추어야 했다. 그리고 그가 들이대는 모든 정황들을 거부할 수 없었다. 성경이 완성되어지는 과정들... 초대교회의 정통성과 이단이 생겨나게 되는 배경들... 그렇게하여 살아남게 되는 종파와 배제된 종파들이 각자 처하게 되는 상황들... 그들이 제시했던 모든 근거들은 다분히 주관적이었다는 거였고, 중요한 것은 신약성서의 원전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거였다. 그리하여 지극히 인간적인 정서에 맞춰지는 과정으로 탄생하게 되는 성경!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이 자행했던 유대인 대학살이 그런 차원에서 생겨난 일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분개할 일이다. 그들의 신이 그토록이나 선함을 주장했다면서, 그들의 신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다면서 그들은 그렇게 무서운 일을 저지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책속에서 언급되어진 말이기도 하지만 출애굽의 과정속에서 나타났던 모든 일들 또한 말할 수 없이 잔인했었다. 나 이외에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 오로지 나만! 을 외쳐대는 지독한 이기주의가 아니고 무엇이랴 싶다.  왠만한 종교는 다른 종교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독교를 제외하고!

마지막장에서 그는 기독교인이 만들어낸 것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훗날 예수를 따른 사람들을 지배한 믿음과 관점이 예수의 종교 자체와 사뭇 달랐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는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여러 해석과 교리, 관점과 기준 등이 경쟁했고, 갈등과 다툼을 겪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탄생한 것이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역사적·문화적인 의미를 지닌 인간의 발명품이었다. 아마도 서구 문명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358쪽)  이토록이나 명쾌한 답을 보여주면서 에필로그를 통해 그가 다시한번 묻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은 가능한가?  그의 말을 빌어보자면 가능하다.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좀 더 강하고 깊은 믿음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교회를 떠났을 뿐이지 자신의 믿음을 버린 것이 아니었다. 상징적인 것들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일 뿐이었다. 믿음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기독교를 통해 세례를 서너번은 받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래도 내노라하는 교회에서 성찬식이라는 것도 몇 번씩 겪어보았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의 말처럼 구원을 받았을까? 하지만 너무나도 형식적인 그런 행위들이 내게는 아무런 의미조차 전해주지 못했다. 나를 인도했던 사람의 마음속에 기쁨을 선사할 수 있었다는 것만이 유일한 나의 위안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교회의 정식구성원으로 자리매김했는가? 보다시피 그렇게 되지 못했다!  보여지는 것, 보여질 수 있는 것에만 치중하는 것이 문제는 아닐까? 종교를 통해 위안을 받을 수 있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 자신의 종교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종교일 뿐이지 타인의 종교와 연관성을 갖지는 못한다. 형식적이고 보다 자극적인 상징성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진정한 마음을 나누는 것이 우선은 아닐까? 기독교가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니 그런 믿음을 가진 이들이 잘못되었다고도 할 수 없다. 단지 무언가를 강요하기보다는 책임질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하는 말이다. 

진실한 기독교도로써 바트 어만은 왜 이런 책을 써야만 했을까? 내심 궁금증이 일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그 궁금증을 접었다. 바트 어만과 같은 사람들을 좀 더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보면서. 1인시위를 했던 고등학생이 있었다. 그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었을 때 당시 학교를 상대로 했던 소송에서 그는 이겼다. 실로 값진 승리였다. 미션스쿨이라 할지라도 기도나 예배를 모든 학생들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안건이었다. 그 학생에게 나는 진심으로 박수를 쳐 주었다. 하나님 자체에 대한 의문은 없다. 다만 성경에 언급된 하나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뿐이다. 바트 어만의 말처럼 이미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박제되어진 예수가 아니라 진실로 살아있는 예수를 보게 될 날이 오기는 올까? 예수가 어떻게해서 신이 되었는가를 찾아가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반감보다는 이해가 한발 앞섰던 시간이기도 했다.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조건 배척하기보다 한번쯤은 읽어볼 만한 책일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믿음이 더 돈독해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놀라움은 책장을 펼치지마자 찾아왔다. '국가의 명예에 큰 손상을 입히고 자신들에게도 거대한 정치적, 경제적 손실을 입혔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했다는 저자의 말.. 우리에게도 한때는 노래한소절도 마음대로 부르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랬다고는 해도 출판사가 글을 쓴 사람을 고소한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나라의 특성상 그럴수도 있다고 치부하기에는 뭔가 좀 부족하다는 말이다. 책을 펼치면 읽게 되는 한국독자에게 전하는 글쓴이의 말은 정말이지 참담하기까지 했다. 현실인 것과 동시에 꿈을 쓴 것이라던 말을 이해하기까지 숨을 죽이며 읽었던 것 같다. 생명의 연약함과 탐욕의 강대함을 쓰고자 했다던 그의 말처럼 이 책속에는 탐욕이라는 거대괴물에게 짓밟히는 한없이 여리고 작은 인간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생각했던 말은 '참담하다'는 거였다. 말 그대로 끔찍하고 절망적이었다. 말 그대로 너무나도 슬프고 괴로운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면서도 무지함에 대해 어쩔 수 없는 한심함을 느껴야 했다. 모른다는 것이 죄일까? 가난이라는 것이 죄일까?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그 관념의 차이라는 것이 새삼스럽게 두려워지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이야기의 소재는 에이즈다. 그러나 그 에이즈를 불러오게 만드는 매개체는 국가였다. 자신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매혈운동을 장려하고 그 매혈운동으로 인하여 열병이 번지는데도 국가는 그들을 버렸다. 아주 처참하게 무너져가는 한사람 한사람의 인간성은 열병과 함께 죽어간다. 그런 와중에서도 매혈우두머리들은 그들을 이용하여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자신들만의 성을 구축해 나간다. 너도나도 사람들의 피를 얻어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리하여 금방 쓰러질 것만 같은 사람들을 상대로 그들은 다시 피를 뽑아낸다. 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오래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허삼관 매혈기>라는 책 때문이었다. 목숨과도 같은 피를 팔아서 가족들을 부양해 왔다던 허삼관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변해가는 시대를 읽고 싶었었다. 그리고 거기에 존재하는 인간의 마음을 찾아보고 싶었던 까닭이기도 했었다. 그 책을 읽지 못했기에 이 <딩씨마을의 꿈>은 상당히 유혹적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이 느낌은 도대체 뭘까?

어떤 상황이 와도 끝을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탐욕일까? 갖지 못했던 자들의 소유욕은 정말 대단하다. 아흔아홉개를 가지고도 마져 채우지 못한 한 개때문에 허덕인다는 인간의 탐욕.. 한번 맛들이면 벗어날 수 없는 늪이 탐욕의 늪이라고 했던가? 딩씨마을의 딩수이할아버지는 마을의 지도자겪이기도 하지만 국가와 국민을 이어주는 역할을 떠맡게 된다. 아주 조금이나마 글을 안다는 이유가 있기는 했지만 더 쉽게 말한다면 국가에게 이용당하는 국민의 꿈이기도 하다. 철저하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이용하는 탐욕의 화신은  딩수이할아버지의 큰아들 딩후이다. 그 두사람을 통해 보여지는 이성과 감정의 차이는 대단하기까지 하다. 작가는 끝내 아들의 뒷통수를 깨뜨려 죽게 하는 할아버지를 통해 어쩌면 현실보다는 꿈을 갖는 것이 더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더 큰 꿈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작가의 마음을 얼핏 본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야기의 화자가  이미 죽은 딩수이할아버지의 손자라는 거다. 아버지 딩후이에 대한 마을사람들의 원한으로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죽게되는 어린 영혼의 눈으로 말할 수 없이 지독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 시선이 순수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더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것일까?

일전에 읽었던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자들의 도시>와 <눈 뜬자들의 도시>라는 책이 떠올랐다. 아니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도시풍경이 오버랩되었다는 말이 더 솔직할 게다. 한 건물에 모여살게 된 그들은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욕심채우기에 급급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세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또한 권력을 원했다. 눈 뜨고는 할 수 없었던 일들조차도 서슴치 않았었다. 살인과 사랑이 공존하는 빛과 어둠의 그 명백한 대비.. 그리하여 그들이 다시 눈을 떳을 때 그들은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누군가가 나서서 그 기억을 지워줄 수만 있다면 이번에도 역시 무슨 일이든 할 것처럼... 매혈로 인하여 열병이 걸렸던 딩씨마을사람들이 학교에서 모여 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처음과 달리 점점 변해가는 그들만의 삶.. 망가져가는 그들의 사고.. 그런 중에도 사랑은 싹트고 그 사랑으로 인하여 가슴앓이를 하기도 한다. 이미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권력이라는 힘을 갖고 싶어했다. 정말이지 참담했다!

이미 먼저 나온 작품이 '민감한 사안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판금조치를 당하기도 했다던 작가는 이 책 역시 판금조치를 당했고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작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글쓴이의 비상(飛上)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현실인 동시에 꿈이기도 했고, 어둠인 동시에 빛이기도 했고, 환멸인 동시에 여명이기도 했다던 글쓴이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할까? 새의 몸부림을 느껴달라던, 그 몸부림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울음과 잠꼬대를 조용히 경청해 달라던 글쓴이의 당부가 왠지 무섭게만 느껴진다. 그토록이나 처절한 고통을 그려낼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러면서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랑을 그려낼 수 있었다는 것이 또한 놀라웠다. 작가가 목숨걸고 썼다는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작가의 말처럼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통스럽고 누구 때문에 눈물이 흐르는 것인지 한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기에.. 우리는 무엇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오로지 내 삶을 위해서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타인의 삶에 의하여 내 삶이 만들어져 가는 것은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 세상이 있기에 나는 그저 살아지는 것일까?  알 수 없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드레스덴.. 독일의 피렌체라고 불리울만큼 아름답다는 도시. 제2차 세계대전때 이 곳은 영미연합군 공군 폭격기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나치 독일이 러시아 포로들을 대량 살육할 목적으로 대단위 수용소를 지었던 곳이 바로 그곳 드레스덴이다. 독일군 감시자는 그곳의 주소가  '슐라흐토프-퓐프'- '다섯 번째 도살장'이라고 말한다.  전쟁포로가 된 미군 보병대의 낙오병 빌리.. 그가 겪은 일들은 회상형식이다. 그리고 저자가 겪었다던 끔찍한 기억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것을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고심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찾아낸 방식이 참 흥미롭다. 트랄파마도어라는 행성을 다녀오는 빌리의 기억들은 보통의 사람들이 보기엔 분명히 정신분열이다. 미친 사람의 이야기는 누구라도 곧이 듣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빌리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참상이 더 안타깝게 느껴질런지도 모르겠지만. 드레스덴의 대폭격 현장에서 우연인지 다행인지 살아남게 되어 귀환한 그의 직업은 검안사였고 꽤나 안정된 수입으로 괜찮은 생활을 꾸려나간다. 

딸의 결혼식 날  트랄파마도어 행성으로 끌려가게 되었던 빌리의 삶은 어땠을까? 그 부분에서 먼저 보았던 <걸리버 여행기>의 한부분이 떠올랐다. 떠다니는 섬의 이야기처럼 조금은 황당하게도 들리지만 말들의 나라에서 '야후'라는 이름으로 짐승처럼 부림을 당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던 까닭이다.  그가 우주인들에게 납치되어 그들의 4차원적 시간관을 배우게 된 것은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멀쩡한 정신으로 자신의 기억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테니 말이다. (어쩌면 자신의 기억을 되살려내는 저자의 편법일수도 있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기억속을 맴돌던 영화 한편..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 정말 오래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는..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부정이 눈물겨웠던 이야기..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중의 하나를 새롭게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그렇게 말한다면 이 작품 역시 그렇고 그렇게 뻔한 스토리의 전쟁이야기였다고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나는 그랬다는 말이다.

사실 이 이야기속에 커다란 울림은 없어보인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너무 밋밋하게 다가온다. 전쟁이라는 커다란 테두리를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처럼 겪어냈던 사람들이 있다. 낙오병들이 함께 했고, 적군을 만나 포로가 되었고, 그들은 끌려갔다. 수많은 죽음을 보았고 끝도없는 총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주인공 빌리는 감각조차 마비되어버린 듯한 시간을 보낸다.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의 기억속을 오고간다. 어찌보면 조금은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책을 읽었다던 사람들의 한 줄 서평은 왠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웃어서는 안되는 웃기는 책? 블랙유머라고는 했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눈물 흘릴 수 없는 슬픈 책? 그렇게까지 깊은 슬픔을 찾아내야 했다면 나는 정말 실패다. 통렬하고 아주 재미있다? 어떤 면을 보고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지금도 궁금하기만 하다. 물론  빌리 필그림의 시간여행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무엇이 그토록이나 우스웠는지, 무엇이 그토록이나 통렬하고 재미있었는지 나는 찾아내지 못했을 뿐이다. 한 권의 책을 보면서도 수많은 감정과 의견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랍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직접적인 표현이 있는가 하면 살짝 감춰주는 듯한 은유적인 표현이 있다. 직접적인 표현을 써서 좀 더 강한 자극을 줄 수도 있고, 은유적인 표현을 써써 길게 남은 여운을 줄 수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나는 이 책이 은유적인 표현을 썼다고 말하고 싶다. 제2차 세계대전, 그 혼란의 와중에서 직접 보고 겪게 되었던 전쟁의 참상을 자신의 입으로 말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차마 말로는 할 수 없는 것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꼭 전해야만 했을 상황을 저자는 빌리 필그림의 시간여행을 통해 보여주고 있음이다. 지금도 노구를 이끌고 반전활동을 하고 있다는 저자의 아픔을 이야기 한 이 <제5도살장>이 고전이라는 또하나의 옷을 입었다고 하니 시간과 마음이 허락한다면 다시한번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책이 전해주는 느낌보다도 뒷부분 '옮긴이의 말'이 오히려 더 깊이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활 속 미스터리 해결사 과학 시크릿
이진산.강이든 지음 / 삼양미디어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줄의 제목속에 이미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늘 들어오는 말이지만 우리 생활속에 과학적인 원리가 들어가지 않은 것이 얼마나 있을까? 무엇 하나를 놓고 볼 때 이것이 어떤 원리로 되어있는지,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인지를 따져 묻는다면 그것은 이미 과학을 논하고 있는 것이라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과학.. 과학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아니, 우습게도 정말 처음으로 과학이란 말을 검색해보게 되었다.  과학 - 자연세계에서 보편적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 지식... 거기에 덧붙인다면 과학은 어떤 사물을 '안다' 라는 뜻도 있고 철학이나 종교, 예술과는 대립되는 개념이라고 나와있다. 그 밖의 말도 있지만 말 자체가 어려운 듯 하니 피하기로 한다. 과학이라는 말을 생각하다보면  이상하게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라는 말이 떠오른다. 아마도 검색해 본 말처럼 종교나 예술과는 대립되는 개념이라는 말 때문인듯 싶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우리의 일상속에 숨겨진 과학의 원리를 찾아가는 형식이다. 숨은 그림 찾기나 퍼즐 맞추기처럼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평상시 우리를 궁금하게 했음직한 것들만 쏙쏙 골라냈다. 과학이라는 것이 딱딱한 주제여서 였을까? 함께 곁들여진 삽화가 재미있다.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내용도 있지만 아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일만한 내용도 꽤나 많다.  차가운 얼음에 혓바닥이나 손이 붙어버렸던 기억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수 있을테고, 커다란 우박이 떨어져서 자동차가 찌그러졌다거나 밭의 과일들이 심하게 상처를 입었다거나 하는 뉴스도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하고,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정전기를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는지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봤을 것이다. 바로 그런 것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 역시 나는 주부인 관계로 냉장고속에 넣어 두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대목에서, 도시가스요금의 실체에 관한 대목에서 눈이 커진다. 무조건 차게 해서 먹는 것보다는 차지않은 상태에서 먹어야 더 맛있는 것들, 도대체 어떤 식물을 어디에 두어야 최대한의 효과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인지, 어떤 성분을 갖고 있는 온천을 가야 좋은 것인지... 뭐 그런 것에만 관심이 가는 걸 보니 아줌마는 아줌마인 모양이다.

우리가 늘 쓰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알고 쓰는 말이 얼마나 되는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도 한다. 의미도 모르면서 쓰는 말이 없지 않은 까닭이다.  아이가 어렸을 적에는 누구랄 것도 없이 "왜?" 병을 앓는다. 이제 막 세상을 배워가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엄마의 인내심은 그 단계에서 점수가 책정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 까닭에 어지간한 엄마라면 아이들의 소소한 호기심에 답변해주기 위한 책 한권쯤은 곁에 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읽어주었을 것이다. 그런 책들의 연장선이라고 보면 딱 알맞을 내용이 이 책속에 담겨져 있다. 아이들에게 읽히면 꽤나 재미있어 할 것 같다. 그리고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일반적인 상식처럼 가까이 다가온 과학의 원리를 배울 수 있는 까닭이다.  쓰나미, 별, 천체, 우주, 태양계, 블랙홀과 같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분야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 주고 있음이다.

과학.. 꼭 필요할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너무 심하게 강조되는 과학개념때문에 우리가 잊어가고 있는 감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진화라는 것은 인간의 편리를 위해 변화하는 것이라던 말이 떠오른다. 그 변화가 과학이라면 억지스러울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의 원리원칙을 따지고 분석하기 보다는 때로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겨두는 것도 우리에게는 필요할 것이다. 묻지 않고 따지지 않아도 잘 흘러가는 것들이 의외로 많을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원리원칙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아도 되는 것들 말이다. 어찌되었든 이 책은 아이들에게 아주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내일은 화원에서 파키라와 보스턴줄고사리를 사다가 아들녀석 방에 놓아주어야겠다. 집중력을 향상시켜준다고 하니.../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