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록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3
혜경궁 홍씨 지음, 정병설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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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은 역사와 문학을 뛰어넘는 인간 내면의 기록이다... 

혜경궁은 1735년 6월 18일에 태어나 1815년 12월 15일에 죽었다. 팔십 평생의 긴 세월을 살았다. 온갖 사건에 휘말리며 몇 번씩이나 죽을 결심을 하고 몇 번씩이나 목숨을 끊으려고도 했다. 참 질긴 삶을 살았던 여인이 바로 혜경궁 홍씨인 것이다.  명문가의 딸로 태어나 불과 아홉 살에 세자빈에 뽑힌 혜경궁은 열 살의 어린 나이에 숨 막히는 궁중으로 들어갔다. 자기보다 겨우 몇 달 일찍 태어난 동갑나기 남편 사도세자와 함께 지내야 했던 궁중생활은 시작부터 평탄치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혜경궁의 시아버지인 영조의 성격을 파악하게 된다.  영조의 그 까다로운 성격이 부자간의 도타운 정을 쌓기에는 쉽지 않았던 까닭이다. 원래 마음에 차지 않는 자식을 앞에 둔 아비의 심정은 탐탁치않은 자식의 모습을 자꾸 탓하게 되어있는 법이다. 그러다보니 천성적으로 우직하고 느렸던 사도세자는 가뜩이나 정을 느낄 수 없는 아비앞에서 당연히 주눅들어 있을 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고, 아비는 그런 자식이 점점 더 마음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왜 그런지 나는 이상하게 사도세자를 생각하면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를 떠올리게 된다. 소현세자와 사도세자를 일컬어 조선왕조의 비운의 왕세자라고 한다던가?  왕세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왕이 되지 못하고 요절한 주인공들.. 그래서일까 나는 자식을 기르는 어미의 심정으로 이 책을 읽었던 듯 하다.
 
그 당시의 수명으로 볼 때 팔십평생을 살다간 혜경궁은 장수했다. 그 오랜 세월동안 지켜보았던 일들을 적은 것이 바로 '한중록'인 것이다. 물론 손자인 순조내외의 간곡한 부탁도 있었겠지만 어찌보면 자신으로 인해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던 친정붙이들에 대한 마음이 더 애틋하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고로 이 책은 남편 세도세자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자기 이야기와 친정이야기로 나누어져 있다. 바깥 사람들이 그 날 일을 두고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다 맹랑하고 근거없는 말이니 이 기록을 보면 그 날 일의 시종을 분명히 알 것이라... 라고 했던 혜경궁의 말처럼 다른 사람이라면 감히 쓸 수 없었던 내용까지도 상세하게 적어내고 있음이다. 그녀가 평민이 아닌 탓이기도 했지만 비록 왕비는 되지 못했으나  왕을 낳은 왕의 어머니였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한중록'을 쓸 당시의 혜경궁에게는 마음에 담아두어야 할 남편도, 시아버지도, 자식도 이미 없었으니 하는 말이다. 그리고 망해가는 친정의 일가를 위해 절절한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지병을 앓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심정, 부친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들과 그에 비해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며느리로써의 심정, 아버지를 여의게 되는 어린 아들을 바라보는 어미의 심정.. 한 여자가 가슴속에 숨겨두었던 그런 것들이 나는 궁금했다. 어쩌면 영조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아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랬기에 그 아들이 더 잘하기를 바랬고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이 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비로써 어찌 아들을 뒤주에 갇혀 죽게 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영조의 아들 세도세자는 아비와 마찬가지로 적장자가 아니었다. 서자였으며 그 어미 또한 궁인의 신분이었다! 자신의 과거가 그토록이나 힘겨웠기에 그 과거를 용납하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다. 어쩌면 아들보다도 그 자신의 과거를 뒤주속에 가두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한번 생각해보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정조이후의 왕조가문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할 수 있어 좋았다. 복잡한 왕조의 혈통을 따져보는 게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닌 까닭이다. 역사속에는 사건이 있고 그 사건속에는 자의건 타의건 왕족이 있었던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세자를 제외한 왕자들은 결혼하면 궁 밖으로 나가야 했다. 하지만 권력이라는 악귀는 궁 밖의 왕자들을 더 이용하기 좋은 존재로 여겼던 모양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책 속에서 드러나는 당파싸움의 언저리를 빙빙 돌며 그간 잘 정리되지 않았던 것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사도세자의 서자였던 왕자들이 궁 밖을 쫓겨나 죽임을 당하고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도 후대의  왕들을 다시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흥선 대원군 역시 그런 왕족이었다는 말이니 고종의 출신성분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또한 책을 통해 어떠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듯 하다.

오래전부터 한번은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 '한중록'이었다. 단순히 왕가의 여인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글은 아닐까 지레 짐작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한 여자의 일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딸로, 누이로, 아내로, 어미로, 시누이로, 며느리로, ... 그 많은 역할을 해내야 했던 여인. 그 여인이 바로 혜경궁 홍씨였다. 어쩌면 우리 어머니들의 일생일런지도 모르겠다.  혜경궁 홍씨.. 세자빈이었으나 중전이 되지 못하고 왕의 어미였으나 대왕대비가 되지 못했던 여인.. 그 마음속의 전부를 다 내어 보여주지는 않았을 테지만 모진 풍파를 겪어내야 했던 한 여인의 마음을 읽으며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많았다. 옛사람의 이야기로만 치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생겨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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