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와 경계를 넘다 - 수의사 문성도, 5대륙 12만 킬로미터를 달리다
문성도 글.사진 / 일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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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죽는 인간, 시작과 끝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늘 시작과 끝을 인식한다. 의미부여를 한다. 자연현상도, 우리가 행위 하는 많은 것들도 시작과 끝이라는 개념으로 구분 짓는다. 즉, 인간은 시간에 갇힌 유한존재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생을 사는 동안 인식의 대상들을 시간의 틀안에 가둔다. 나의 여행도 시작이 있었고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51쪽-

여행... 도대체 여행이 무엇일까? 여행이라는 말이 안고 있는 의미때문에 우리는 그 말만 들어도 왠지 설레인다. 떠남... 떠남이라는 것이 진정 우리가 꿈꾸는 것일까? 간혹 우리는 일탈이라는 말을 쓴다. 삶의 궤도에서 잠시 벗어나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어딘가로의 탈출을 시도한다. 그것도 아주 짧은... 그러나 거기에서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걸 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나의 삶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일 것이다. 여행이라는 말속에 숨겨둔 그 떠남이라는 말이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 그런데 가끔씩 이렇게 엉뚱한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이 있다. 무언가 색다르게, 그러나 깊은 각인을 남길 수 있는 그런 탈출 말이다. 아주 오래전에 모든 것을 접고 가족과 세계여행을 떠났다는 사람이 있었다. 공무원이라는 철밥통을 과감하게 던져버리고 살고 있던 집마저도 처분(?)해 버렸다. 그리고 그는 떠났다. 가족과 함께. 그런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면서, 그리고 부러워하면서 우리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사람, 돌아와서는 어떻게 살까? 돌아와서 그가 했던 말은 이랬다. 버렸던 것들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고. 내가 다시 마주쳐야할 현실은 이제 두렵지 않다고. 여행이라는 건 그토록이나 커다란 의미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게 분명한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여행서에 그다지 큰 유혹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읽는 순간 빠져들고 말았다. 뭐라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나를 끌어당기는 뭔가가 분명 있었다. 오토바이와 함께 넘나들었던 수많은 경계속에서 그가 느껴야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슬쩍 넘겨보던 책장을 코앞으로 끌어당길 수 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인간은 어느 상황에서나 생존을 위해 경쟁하고 투쟁할 수 밖에 없나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물종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법칙이 경쟁이라면, 그것을 회피하기 보다는 슬기롭게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할 듯 하다. -21쪽-

잘 나가던 수의사가 왜 길을 떠나야 했을까?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언제, 어느 순간에 떠나고 싶다는 느낌을 갖게 될까?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는 건 사실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다. 어느정도의 성공? 혹은 편안함이 곁에 머물 때가 바로 그 순간일 수도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여유부릴 수 있는 마음을 가진다는 건 그다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어느날 문득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뒤돌아보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설정은 교과서적이긴 했다. 그러나 그는 여행을 계획했고, 뭔가 남다른 방법이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함께 할 수 있는 동지까지 생겼다. 마음이 통하는 상대를 만났다는 건 어쩌면 그에겐 행운이었을 것이다. 오토바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는 말이 내게는 너무도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오토바이를 타기 위해서 따로이 소형운전면허를 취득했고, 얼만큼의 연습량만으로도 떠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떠난 길이 편할리가 없다. 당연히 개고생(?)이다. 그런데도 그는 웃고 있었다. 그 모든 걸 자기안에 차곡차곡 쌓아두면서 수많은 경계를 넘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넘어지고 깨지더라도 예서 말수는 없다'는 말을 떠올렸다. 대형사고로 수술까지 받아야 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렇게까지 달리게 한 것일까?

사람들은 때로는 편견과 오해로 말미암아 상대가 벽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편견과 오해의 벽이 무너지면 그것은 다만 비이성적 허상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다. -160쪽-

그의 여행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정말 많은 곳을 거쳐갔다. 그리고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토록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그냥 살아지는 사람들, 그저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 남녀노소 모두를 막론하고, 까만색을 하고 있어도, 하얀색을 하고 있어도, 저마다의 규칙이 달랐어도 그들 모두에게 내일은 있었다. 굳이 희망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내일은 늘 오늘이었다.  그렇게 그가 들려주는 세상속 이야기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가 부둥켜 안았던 인연들이 코끝을 찡하게도 만들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두었을 그가 내심 부럽기까지 했다. 위험도 따랐고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도 생겼지만 멈추지 않았다. 가끔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그가 가던 길을 멈춰야만 했던 순간들이 안타깝기도 했다. 많은 사진과 함께 했던 그의 여행이야기를 보면서 도전이 쉽진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하게 말해 어느정도의 경제적 도움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여행이다. 그러나 도전할 수만 있다면 정말 끝내주는 여행이 될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특이한 여행이었다. 이런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함께 다녀올 수 있어 행복했다. 책장을 덮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좋은 차는 빠르고 잘 움직인다. 또 제때 멈출 수 있다. 성능 좋은 브레이크를 장착하고 있다. 삶도 가끔은 멈춰 설 필요가 있다. 바쁜 삶 속에서도 쉴 때는 쉬어야 한다. 성능 좋은 차를 타고 목적지에 일찍 도착해 또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이라는 여정의 끝에는 해야 할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삶을 너무 빨리 몰아 붙이지만은 말자. 그동안 숨 가쁘게 살아왔다면 호흡을 조금 가라앉히자.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여전히 옳은지 한번 따져보자.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유혹에 이끌려볼 수도 있지 않은가. '멈춰 섬'에 대해 너무 큰 두려움을 갖지는 말자. 지나친 두려움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킬 수도 있다. -85쪽-

여행의 종류도 다양하다. 흔하게 말하는 베낭여행에서부터 무전여행이라는 것도 있고, 무작정 걷는 여행도 있을 것이며, 자전거를 타고 여유롭게 떠나는 여행도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여행은 분명 우리를 자라게 한다. 그리고 깊이를 더하게 한다. 그 여행이 길건 짧건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을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떨리는 목소리로 들려주고 싶어했을 그의 이야기가 책 속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여행을 통해 내 안의 아픔과 만나 서로 친해질 수 있다면 그것처럼 멋진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치유의 방법중 하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가끔씩 보게 되는 것일게다. 어쩌면 글쓴이처럼 커다란 여행보따리를 짊어질 수 있다면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끔 복권 맞으면 뭐할거야? 라는 말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때가 있다. " 복권 맞으면? 음~~ 나는 일단 유럽여행으로 여행을 떠날거야. 유럽의 구석구석을 다 돌아보고 싶어.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우리나라의 섬일주도 해 보고 싶어. 아주 작은 섬까지 모두 다 한번씩은 들러보고 싶어. 그러고도 남는다면 남는 모든 시간을 사찰 순례를 하며 살아가고 싶어."  나의 이런 상상앞에서 모두 입을 다물고 말아버리지만 나는 정말 그렇게 하고 싶다. 복권이 맞으면...^___^ /아이비생각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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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특사 이준
임무영.한영희 지음 / 문이당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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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을 쓰기 위해 수많은 사료를 찾았을 글쓴이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저 단순히 황제의 특사로 파견되었던 사람으로만 알고 있기에는 뭔가 부족한 점이 없지 않았었는데 이 책을 통해 당시의 배경을 알게 되었다. 헤이그의 밀사는 세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고종황제의 그 간절함마저도 하늘에 닿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글쓴이의 말처럼 고종의 명을 받고 헤이그에 갔다는 것 말고는 아는게 없었다는 게 솔직한 말이다. 그가 대한제국 최초의 검사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으니 고마운 일이다. 이 준.. 그의 이름은 원래 선재였다. 일본에서 배운 법지식을 나라를 발전시키는데 쓰고자 하는 각오로 '준儁'이라는 외자로 개명했다. 뜻있는 사람은 다 그런걸까? 책을 통해 알게 된 김 구선생의 이름도 놀랍긴 매한가지였다. 창수라는 이름이 왜놈의 호적에 올라 더럽혀졌다는 이유로 개명한 사람이 바로 김구선생이었다는 말이다. 평범한 백성들의 편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백범이라는 호를 썼는데 이는 백정이나 범부와 같다는 뜻이라고 한다. 아명이었던 거북이(龜)를 같은 발음의 아홉 九로 바꿔 죽을 때까지 그 이름을 썼다. 김 구의 또다른 이름, 김 창수...

학창시절에도 그랬고 어른이 된 뒤에도 궁금했었던 것이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황제의 특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였다. 지금말로 이야기하자면 어떤 조건을 보고 고종이 그를 특사로 임명했느냐는 것이다. 짐이 너를 부사로 삼는 이유는 네 의지가 굴강하고, 사고가 논리적이며, 문장과 언변이 능하기 때문이나, 무엇보다도 네가 만국공법에 밝음을 알아서이노라...(-260쪽)  궁금증은 해소되었다. 여기까지 읽어오면서 대충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마침표를 찍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해본다. 강하면 부러진다는 말이 있듯이 휘어질 수 없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융통성이 없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고집이 세다는 말일 것이다. 바로 그런 점이 필요했던 것일까? 어쩌면 그만큼의 강직함이나 추진력이 필요했던 거라고 나는 생각해본다. 그런데 이쯤에서 흥선대원군이 주장했던 쇄국정책을 떠올리지 않을수가 없다. 그가 문을 닫아걸지 않고 오히려 신문물을 좀 더 일찍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렇게 기약할 수 없는 길을 떠나지는 않아도 되었을까? 그랬다면 한나라의 황제가 그처럼 뼈아프게 나라를 빼앗기는 순간이 오지 않을수도 있었을까? 가보지 않은 길이니 알 수 없겠지만 한편으로는 늘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남기는 것도 사실이다.

일전에 중명전에 찾아가 문화해설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생각이 난다. 고종이 주로 머물렀다던 중명전.. 그의 모든 아픔이 함께 했던 곳이 바로 중명전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을사늑약부터 헤이그 특사를 보내기까지의 일정이 이야기로 되살아나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았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거다. 이준이라는 한사람도 물론 기억해야겠지만 그 사람의 이름이 안고 있을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사람의 특사가 헤이그에서 활동했던 부분들은 대강이나마 들어서 알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속에 감춰진 그들의 열정이나 서러움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책을 통해서 그들이 느껴야 했을 작은 희망에 가슴을 졸였다. 그들이 가는 길마다 평타치 않았던 순간들... 다가오는 절망의 그림자가 점점 짙게 드리워질 때 그들이 심정이 어떠했을까? 이준을 이야기하면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그의 아내 이일정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돌아오지 못할수도 있는 곳으로 남편을 보내면서도 담담할 수 밖에 없었던 여인.. 처음부터 그를 큰그릇으로 알아보았다는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를 그린 대목이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녀가 남편인 이준을 위해 노력했던 일들은 대단하다. 지극히 평범한 한남자와 한여자에 불과했을지도 모를 그들의 운명이 그녀가 있음으로해서 더욱 빛나는 삶을 살게 된 듯 하다. 어찌되었든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역사에 대해 너무도 무지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다시 많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아이비생각

 
중명전을 찾았을 때 찍은 사진이다. ▼


                          - 헤이그 특사 위임장 (1907.4) -




 

이 사진속에 영친왕과 을사오적이 함께 보인다. 을사오적(乙巳五賊)은 1905년 을사조약의 체결을 찬성했던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의 다섯 사람을 말한다.




고종이 주로 머물렀던 중명전의 모습.
이층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셨다는 고종은 주로 하얀옷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중명전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민족의 아픔을 대변하듯이...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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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산 -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마흔다섯 가지 힘
KBS 한국의 유산 제작팀 지음 / 상상너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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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보다가 앗! 하며 멈춰지는 순간이 있다. 이번엔 또 뭐지? 살짝 긴장감마저 생긴다. 무슨 공사를 하다가 발견되어서, 혹은 혹시나하는 마음에 들여다 보았는데...  잠깐 사이에 국보로 거듭날 수도 있는 운명의 순간이다. 존재의 유무조차도 알 수 없었으니 그 존재의 가치를 논할 수도 없었던 아주 오래된 것들의 서글픔... 모진 세월을 겪어내고 우리의 역사가 발견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답사초보자의 눈에 들어오는 한 장의 사진은 충분히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부연 설명으로 전해듣는 역사가 재미있다. 확실하지는 않으나 이러저러하다고 유추할 수 있다는 말조차도 이미 확정되어진 것처럼 다가온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문화유산에 대한 의미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바가 그리 크지는 않은 듯 하다. 공사를 하다 유물인듯한 것들이 발견되면 은근슬쩍 덮어버리고 만다는 말을 들어온 것도 사실이다.  눈앞의 이익만을 바라보며 달려왔을 우리의 팍팍함이 그 한마디속에 녹아 있다는 걸 부정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어느날부터였을까? 두둥~~ 두둥~~ 울리는 북소리와 함께 시작되어지던 아주 짧은 이야기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짧지만 놀라웠다. 그 짧은 순간속에는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담겨있었다. 커다란 덩치를 하고 있어 눈에 띄는 문화유산보다는 작으나 큰 뜻을 품고 있었던 문화유산들을 찾아낸다는 것이 더 큰 울림을 전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찾아냈던 한국의 유산이 묶여져 책으로 나왔다.

방송을 보면서도 느꼈던 점이지만 한사람의 힘이 그토록이나 크다는 것에 놀라곤 한다. 그만큼 우리의 문화유산을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속해있는 '국가'라는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도 된다. 그나라를 말해준다는 문화유산... 하지만 속상할 때도 있다. 기껏 찾아내 관청에 알려주어도 귀찮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는 말을 들었을 때가 그렇다. 그럴때마다 중얼거리게 된다. 국가는 무얼 하고 있는가?  인재를 키워 나라를 위해 쓸 생각은 안하고 혼자 힘겹게 도전해가며 정상에 오른 인재는 얼싸좋다 불러다 '국가'라는 옷을 입혀 꼭두각시를 만드는 일은 다반사라는 말이다. 그러니 당장 이익을 따질 수 없는 문화유산을 홀대하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많이 달라져가고 있음도 인정한다. 지금은 살 만한 세상이라고들 한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문화에 관심을 가질 때도 되었다. 이 책에서는 마흔다섯 가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갯수가 문제는 아니다. 그 하나하나마다 담겨진 의미를 새겨보는 일이 더 소중한 일일게다. 무덤속에서 나왔다는 '원이 엄마의 편지' 처럼 우리가 직접 그 편지를 보지 않았어도 먼저 간 남편을 향한 사랑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로 자리매김하였다는 의미보다는 남편을 향한 사랑이 우리에게는 먼저 다가온다는 게 솔직한 말일테니...

지난 여름여행길에서 우연하게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이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양동마을을 찾아갔었다.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온다는 경주를 지나쳐가면서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모른다. 그 뜨거운 햇빛도 마다하지않고 마을을 돌아보며 한 집, 한 집 둘러보던 아들녀석이 얼마나 기특해보였었는지... 그 후에 다시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갔었다. 양동마을과 하회마을을 비교해가며 함께 이야기하던 시간은 정말 좋았었다. 그런데 그런 곳을 찾아갈 때마다 전해받는 안타까움이 있다. 대를 이어 지금도 후손이 살고 있는 집임에도 불구하고 찾아가는 사람들이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는 거였다. '이 곳은 현재 후손이 살고 있는 곳이니 관람을 삼가해주셨으면 한다'는 안내글이 있었음에도 굳이 그곳까지 들어가 불편을 주다보니 대문을 닫아걸고 빚장을 질러버려 볼 수 없는 곳도 많았다. 문화유산이기 전에 그들에게는 생활인 것이니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오죽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아주 조금만 양보한다면 굳이 문을 걸어닫을 이유가 없을테니 하는 말이다. 그럴때마다 우리의 문화유산은 보는 것보다 느끼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되새기게 된다.

책을 보면서 마흔다섯 가지로 추스리다보니 역시 덩치 큰 유산들이 우선 순위로 올라온 듯 하여 아쉬웠다. 크게 기록유산, 인물유산, 문화유산으로 나누어 소개를 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자주 만날 수 없는 것을 더 많이 보여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만인소였던가? 만인산과 비슷했던 유산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지방의 유생들이 뜻을 모아 상소를 올리게 되는 내용이었는데 사실 그런 이야기는 책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언젠가 '제시의 일기'와 같은 육아일기를 소개했던 적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커가는 손자를 보며 써내려갔다던 그 오래된 육아일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데 이 책속에서는 만날 수가 없었다. '팔만대장경', '직지심체요절', '동의보감', '백제 금동대향로', '신기전' 과 같은 내용은 굳이 이 책에서 다루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오히려 외국 경매장에서 팔릴 위기에 놓인 고종의 옥보를 찾기 위해 애썼다는 조창수나 조선왕실의궤를 찾아다니는 혜문 스님, 창고에서 발견된 한 무더기의 원고가 조선말 큰 사전의 초고본이었다는 것과 같은 내용이 더 많이 실렸으면 좋았을거라는 아쉬움을 털어내지 못하겠다. 인물유산도 그렇다. 이회영이라는 이름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날이 있었다. 그리고 곧 드라마로도 제작되어져 그 사람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이순신이나 임상옥과 같은 인물을 여러번 소개하기보다는 알려지지 못한 이름을 찾아내어 더 크게 불러줘야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놓친 부분들이 어쩌면 '소소한 것'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 크기가 작다고 의미마저 작아지는 것은 아닐테니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주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해 좀 더 시간을 할애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아이비생각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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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휴와 침묵의 제국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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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휴, 그는 누구일까? 광해군대부터 숙종대까지 조선중기를 살아냈던 사람..  이괄의 난과 정묘, 병자호란을 피해 어머니와 함께 피난을 다녔다. 주로 젊은 시절을 여주에서 보냈다. 어린 시절에 외할아버지의 보살핌을 받기는 했으나 거의 독학하다시피 자신의 학문을 정진했다. 열아홉살때 십년이나 연장자였던 당대의 석학 송시열로부터 자신의 독서가 부끄럽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보고 그 치욕을 씻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기 전에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던 그가 중국에서 오삼계의 반청(反淸)반란이 일어난 소식을 듣고 전날의 치욕을 씻을 수 있는 기회라 여겨 숙종대에 관직에 오른다.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그를 불러들였던 숙종의 속마음을.. 숙종에게는 송시열을 견제하기 위한 인물이 바로 윤휴였음을.. 숙종이 누구인가? 교묘하게 당쟁의 힘을 이용하며 왕권을 다졌던 인물이 아닌가 말이다.
 
대부분의 일생을 포의(布衣-여기서 포의는 베옷이다. 벼슬하지 않은 사람이 입는 옷이기도 하고 벼슬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로서 보내어 정치적인 면보다도 학문적인 업적이 더 많다는 사람이 윤휴다. 원래 당색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만 예송논쟁으로 서인측과 틈이 벌어지자 남인으로 활약했다. 기해예송때는 벼슬에 오른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를 내세워 송시열의 주장에 오류가 있음을 빗대어 지적하였고, 갑인예송때도 같은 기준으로 서인측의 견해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였던 까닭이다. 예송논쟁... 정말 하릴없이 무의미하게 보내야 했던 시절을 대표적으로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서 송시열이라는 이름 석자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이긴자가 쓴다 했고, 영웅은 시대가 만든다는 말이 있다. 예송논쟁이라는 말이 나오면 당연하게 뒤따라 나오는 이름이 바로 송시열이다. 우리의 역사속에서 그다지 의롭지 않은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동안 그사람에 대한 평을 어떻게 들어야 했는가를 곰곰히 따져볼 일이다. 북벌론조차도 그의 의견이 아니었음을 이제 알만 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평가는 바뀌지 않는 것 같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시의 정치현황과 지금의 정치현황은 판박이다. 그러니 당연하다.

예송논쟁이라는 것이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다. 어째서 그 따위 논쟁에 허송세월을 해야만 했는지...모두가 제 잇속챙기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효종의 절대적인 신임속에 자신의 입지를 굳힌 송시열이었지만 효종이 급서한 뒤 장례절차를 시시콜콜 따졌던 것이 바로 예송논쟁이었다. 계모인 자의대비의 상복을 참최복(3년)으로 할 것이냐, 기년복(1년)으로 할 것이냐가 문제의 시초였다. 효종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소현세자의 아우다. 그러므로 그 문제는 효종이 적장자냐 아니냐와 결부되어 있었기에 중요한 문제였다. 이를 두고 윤휴는<의례>에 근거하여“제일자(第一子)가 죽으면 적처소생의 차장자를 세워 장자로 삼는다.”고 말하며 대비가 3년복을 입어야 할 뿐 아니라, 국왕의 상에는 모든 친속이  참최를 입을 것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송시열은 <의례> 의 소설에 “서자(庶子)가 대통을 계승하면 3년복을 입지 않는다.”는 예외규정을 들어 이에 반대하였다. 서자는 첩의 자식을 이르는 칭호이기는 하지만, 적장자 이외의 여러 아들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두 사람의 주장을 듣고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대신들이 <의례>에 근거한 두 설을 다 취하지 않고, <대명률>과 <경국대전>에 장자·차자 구분없이 기년을 입게 한 규정, 즉 국제기년설에 따라 1년복으로 결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목이 또다시 차장자설을 주장하여 3년복으로 할 것을 상소하고, 윤선도가 기년설이 효종의 정통성을 위태롭게 하고 적통과 종통을 두 갈래로 만들 수 있다고 공격하게 된다. 하지만 송시열과 송준길의 뜻을 꺽지는 못했다. 그 문제로 여러 차례 논의가 있었지만 기년설은 번복되지 않았다. 윤선도를 포함한 남인들이 유배되거나 축출된 것을 보면.. 그러다가 효종비의 상으로 자의대비의 복제문제가 또다시 불거진다. 서인들은 송시열의 주장대로 대공복(9개월복)을 주장하여 시행되었으나 영남유생 도신징의 상소로 인하여 기년복으로 번복되고 말았다. 그 일로 인하여 송시열은 '예를 그르친 죄'를 입고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사실 송시열의 예론은 <의례>에 근거를 두기는 하였지만 대체적으로 왕가의 예나 당시 양반계급의 예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컸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말해 둘째아들이라는 효종의 출생순서만을 중히 여겼다는 말이된다. 이 책속에서도 그런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글쓴이의 분석이 옳다 그르다를 논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왕실을 낮추고 종통과 적통을 두 갈래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아 결국 파직되는 정치적 위기를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윤휴와 송시열에 대해 다시한번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발견되었다. 내가 배웠던 바로는 효종의 북벌론을 도왔던 사람이 송시열이었다. (검색해보면 지금도 그렇게 나온다) 그런데 효종과 송시열의 북벌론은 동상이몽이었다는 사실이다. 실제적인 북벌보다는 이념적인 북벌만을 강조했던 게 송시열이었다. 송시열에게는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대의명분이었다는 말이다. 말로는 백성을 위한다고 하였지만 유교적 명분을 내세워 신분차별에 더욱더 확실하게 선을 긋고 있었던 것도 송시열이었다. 책에 따르면 그가 주장했던 성리학 역시 살짝 변형되어져 원래의 주자학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연구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올 수도 있는 일이지만 당시 송시열의 오만함에 비추어 볼 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효종이 죽음으로써 잠잠했던 북벌론이 윤휴의 등장으로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고, 윤휴가 내세우는 북벌론이 실제적인 북벌론이다보니 당시의 서인에게는 발등의 불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말이 된다. 실제적인 북벌론을 외쳤던 윤휴의 업적을 따져보자면 이렇다. 도체찰사부를 설치하고 무관인 만과를 실행하여 다양한 인재를 등용하려 하였다. 또한 전차나 화차를 개발, 보급하고자 했던 것도 윤휴였다. 군권통합을 요구했던 도체찰사부의 설치가 끝내 그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원인이 되기는 했지만 책을 통해 보여지는 윤휴의 모습에서 진정성을 보게 된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호패법을 지패법으로 바꾸어 신분차별을 약화시키려 노력했다. 끝내 실행되지 못했던 것은 백성을 부리고 싶어했던 양반계급의 반대때문이었다. 윤휴는 숙종에게 오가작통을 주장, 실행하기도 했다.  농경을 서로 돕고, 어려움을 서로 이겨낼 수 있다는 이유이기도 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각종 조세의 납부를 독려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던 게 오가작통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윤휴는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길이 어떤 것인지를 알았던 사람인 듯 하다. 오직 북벌만을 생각하며 관직에 올랐던 그였기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고문을 당하고 유배길에 오른 그에게 피맺힌 버선을 갈아신으라고 권유하던 자식에게 돌아가는 형국을 제대로 읽지 못한 자신이 반면교사가 되기를 원한다며 갈아신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교사라는 의미가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는다'는 뜻이라는 걸 생각해본다. 어쩔 수 없이 그가 느꼈을 후회가 내게도 전해져오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사문난적(斯文亂賊).. 그가 죽어야 했던 이유다. 유교사상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는 사람을 사문난적이라고 말한다. 유교를 반대하는 사람.. 다시말해 송시열에게 반기를 든 사람이라는 말도 될 것이다. 성리학, 즉 우리나라만의 유교학을 정립시킨 것이 바로 송시열이라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을테니까.. 유교의 교리자체를 반대했던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죽어야 했던 이유는 끝없는 당쟁의 결과이기도 했다. 숙종이 그를 버리기로 작정했던 이유가 바로 당쟁으로 인한 왕권의 흔들림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휴의 죽음은 반란의 중심에 있었다거나 역모를 꾀했다는 이유가 아니었다. '나라에서 유학자를 쓰지 않으면 그만이지 죽일것까지는 없었다'는 그의 마지막 말은 울림이 크다. 책을 덮으며 이덕일이라는 글쓴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의 소개글을 찾아 읽어본다. 색다른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의 작품을 몇 번 읽어보았는데 그 때마다 이채롭다는 생각에 흥미로웠던 것도 사실이고, 큰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는 것도 솔직한 말일게다. 판에 박힌 역사관은 아닌 듯 싶어 그의 이름이 보이면 다시한번 시선을 두게 된다. 그의 역사관을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그와 같은 사람이 있어 고마움을 느끼게도 된다. 그가 보여준 이 작품속에서 당시의 상황과 결부되었던 많은 사건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었다. 일전에 논산여행길에 둘러보았던 돈암서원과 윤증고택이 떠오른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진리를 다시한번 되새긴다. /아이비생각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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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이 하하하 - 뒷산은 보물창고다
이일훈 지음 / 하늘아래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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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에도 뒷산 있다. 앞산도 있고 옆산도 있다. 둘러보면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다. 그 앞산 옆산 뒷산 다 가보았다. 그런데도 나는 뒷산이 좋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앞산 옆산에 있는 바위 뒷산에도 있고, 앞산 옆산에 있는 산책길 뒷산에도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길이 좋다는 생각 못했다. 그랬는데 살짝 고장난 무릎 때문에 뒷산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이렇게 이쁜 길이 있었구나, 이렇게 이쁜 바위도 있었구나 싶었다. 약수터... 그 약수터 우리동네 뒷산에도 있다. 나는 그 물을 마시지 않지만 그 물 받으러 많은 사람이 오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약수터에는 자주 들리지 않는 편이지만 정리되지 않은 주변이 그 물을 믿을 수 없게 한다. 그런데 이 책이 다시 생각하라고 한다. 그 약수터를 통해 생겨나는 많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라고 한다. 어찌보면 참 할일 없다,고 말 할 핑계거리가 보인다. 사계절을 약수터에 앉아 오가는 사람 살피지 않고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재미있다. 보다가 배꼽을 잡고 웃는다. 맞아, 맞아 소리를 반복하게 된다. 슬쩍 부끄러워지기까지 한다. 한마디로 사람사는 이야기다. 사람냄새가 퐁퐁 솟아난다. 약수터 물처럼.. 이런 이야기도 책으로 태어날 수 있는거구나 싶으면서도 그렇게 맛깔나게 엮은 글쓴이에게 존경스럽다는 말도 하고 싶어진다. 잊고 지내는 것중의 하나다. 뒷산.. 그 뒷산이 하하하 웃고 있다. 그 웃음소리를 같이 듣자고 하니 내게도 들려온다. 하하하...

전체 3장으로 나뉘어진 큰 제목이 재미있다. 뒷산은 맛있어, 맛있으면 약수터, 약수터는 짜릿해... 어린시절의 노래가 떠오른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뒷산을 통해 흘러가는 세월을 본다. 계절의 시작을 왜 봄이라고 했을까? 그 봄에 움트는 모든 것들이 겨울에 생겨나니 봄보다 겨울이 먼저라는 말에 슬쩍 웃음이 난다. 그야말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싸움이니 거기에 걸려들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구멍새이야기가 재미있다. 딱따구리에게 글쓴이가 붙여준 이름이다. 우리나라의 식물이나 동물은 그 생김새를 따라 지어진 경우가 많다는데서 그런 생각을 했다. 구멍을 파고 사는 새니 구멍새가 어떠냐고 묻는데 나도 거기에 한표 보태주고 싶어진다. 맛있는 뒷산을 보여주기 위해서 뒷산 일주를 하는 글쓴이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등산화를 신기도 미안한 뒷산을 그렇게 소중한 마음으로 오르내렸을 글쓴이의 마음이 아름답다. 

책을 읽다가 문득 글쓴이의 이력이 궁금해진다. 어떤 사람일까? 건축철학자 또는 식물성의 사유를 지닌 건축가로 불린다는 말이 왠지 거창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건축과 글은 둘 다 '짓다'라는 행위 전에 '살피다'의 원형질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는 말에 그만 고개가 숙여진다. 그만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일게다. 작은 것 하나라도 쉽게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느낌을 전해받는다. 다들 편하게 살려고 발버둥치는데 불편하게 살자고 말하는 사람.. 그가 주창한다는 '불편하게 살기' '밖에 살기' '늘려 살기'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가까이 할 수 없었으니 자세한 내막이야 잘은 모르겠지만 어렴풋한 짐작만으로 또한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럴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살아야만 이겨낼 수 있는게 세상살이인지도 모를 일이다.

읽으면서 몇 번을 소리내어 웃게 된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찾아냈을까 싶은 부분들이 많다. 그러면서도 웃음뒤에 오는 싸늘함이 느껴진다. 줄에 묶여 있어 더 멀리는 갈 수 없는 개는 자신의 잠자리에서 되도록이면 멀리 똥탑을 쌓는다. 한껏 엉덩이를 바깥으로 뺀 자세였을거라고 말하는 글쓴이의 말속에 왠지 서글픔이 묻어난다. 저마다의 입맛대로 측정되어지는 물맛 또한 그렇다. 수도없는 안내판을 보면서 추사를 논한다. 맞춤법이 맞지 않아도 그 말이 담고 있는 의미의 강약을 눈치챈다. 자식같은 개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불편을 주는 존재일 따름인 것처럼 누구에게는 소중한 것이 누구에게는 별 것 아닌 것으로 되어버리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네 것은 없고 내 것만 존재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오래전 산을 찾았을 때 하산길에 보았던 그 현수막이 생각났다. '제발 개는 데려오지 마시오!' 그 아래 안내판은 더 가관이었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여기에 심은 꽃을 파간 사람은 양심껏 다시 심어놓으시오!'... 정말 나라도 잡아다 주고 싶은 생각에 '도대체 어떤 놈이야? 아니 퍼갈게 없어서 다같이 보자고 심어놓은 꽃도 저만 본다고 가져가냐?' 했었다. 그러고보니 뒷산은 너의 산도 아니고 나의 산도 아니었다. 우리의 산이었던 거다. 그러니 그곳에 우리의 이야기가 피어나고 꽃을 피우고 있었던 거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정말 행복했다.

재활용 밭집이나 여물기도 전에 떨어져야 하는 도토리나 밤의 서러움이 인간의 이기심을 말해준다. 김해공항만 김해에 없는 것이 아니다, 서울공항도 서울에 없다는 말은 게으른 행정을 슬며시 혼내고 있음이다. 옆에 사람이 앉기만 하면 들어주든 안들어주든 당진에 땅 샀시유, 집두 있슈를 연신 내뱉는 할머니의 쓸쓸함을 누가 알까?  모든 물병 다 죽던 그 날의 이야기를 듣다가 배꼽 빠질 뻔 했다. 무감각과 무덤덤이 제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거기에 무관심까지 보태지는 게 우리의 현실일 것이다. 버릇없는 아이 나쁜아이를 말하기 전에 나쁜 어른이 먼저다. 어른이라고 다 어른은 아닌 것이다. 나이만 먹었다고 다 어른은 아니라는 말이다. 말 한마디 행동하나로 그 사람의 인품을 어느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는 말에 나도 공감한다. 약수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다. 온갖 모양새를 하고 약수터에 모여드는 사람을 앞세워 세상을 말하고 있는 글쓴이의 마음이 읽어진다. 그래서 이 책은 뒷맛이 참 좋다. 여운이 길게 간다. 사람사는 이야기 들으러 나도 약수터에 가고 싶어진다. 그 약수터에 올라가 사람냄새 진하게 맡아보고 싶어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이다. 그런 것들을 보고 살피고 그리고 느꼈을 글쓴이처럼 내 마음도 열려야 할 것이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는 진리를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글도 글쓴이도 모두 멋지다. /아이비생각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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