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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이 하하하 - 뒷산은 보물창고다
이일훈 지음 / 하늘아래 / 2011년 6월
평점 :
우리동네에도 뒷산 있다. 앞산도 있고 옆산도 있다. 둘러보면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다. 그 앞산 옆산 뒷산 다 가보았다. 그런데도 나는 뒷산이 좋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앞산 옆산에 있는 바위 뒷산에도 있고, 앞산 옆산에 있는 산책길 뒷산에도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길이 좋다는 생각 못했다. 그랬는데 살짝 고장난 무릎 때문에 뒷산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이렇게 이쁜 길이 있었구나, 이렇게 이쁜 바위도 있었구나 싶었다. 약수터... 그 약수터 우리동네 뒷산에도 있다. 나는 그 물을 마시지 않지만 그 물 받으러 많은 사람이 오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약수터에는 자주 들리지 않는 편이지만 정리되지 않은 주변이 그 물을 믿을 수 없게 한다. 그런데 이 책이 다시 생각하라고 한다. 그 약수터를 통해 생겨나는 많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라고 한다. 어찌보면 참 할일 없다,고 말 할 핑계거리가 보인다. 사계절을 약수터에 앉아 오가는 사람 살피지 않고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재미있다. 보다가 배꼽을 잡고 웃는다. 맞아, 맞아 소리를 반복하게 된다. 슬쩍 부끄러워지기까지 한다. 한마디로 사람사는 이야기다. 사람냄새가 퐁퐁 솟아난다. 약수터 물처럼.. 이런 이야기도 책으로 태어날 수 있는거구나 싶으면서도 그렇게 맛깔나게 엮은 글쓴이에게 존경스럽다는 말도 하고 싶어진다. 잊고 지내는 것중의 하나다. 뒷산.. 그 뒷산이 하하하 웃고 있다. 그 웃음소리를 같이 듣자고 하니 내게도 들려온다. 하하하...
전체 3장으로 나뉘어진 큰 제목이 재미있다. 뒷산은 맛있어, 맛있으면 약수터, 약수터는 짜릿해... 어린시절의 노래가 떠오른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뒷산을 통해 흘러가는 세월을 본다. 계절의 시작을 왜 봄이라고 했을까? 그 봄에 움트는 모든 것들이 겨울에 생겨나니 봄보다 겨울이 먼저라는 말에 슬쩍 웃음이 난다. 그야말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싸움이니 거기에 걸려들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구멍새이야기가 재미있다. 딱따구리에게 글쓴이가 붙여준 이름이다. 우리나라의 식물이나 동물은 그 생김새를 따라 지어진 경우가 많다는데서 그런 생각을 했다. 구멍을 파고 사는 새니 구멍새가 어떠냐고 묻는데 나도 거기에 한표 보태주고 싶어진다. 맛있는 뒷산을 보여주기 위해서 뒷산 일주를 하는 글쓴이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등산화를 신기도 미안한 뒷산을 그렇게 소중한 마음으로 오르내렸을 글쓴이의 마음이 아름답다.
책을 읽다가 문득 글쓴이의 이력이 궁금해진다. 어떤 사람일까? 건축철학자 또는 식물성의 사유를 지닌 건축가로 불린다는 말이 왠지 거창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건축과 글은 둘 다 '짓다'라는 행위 전에 '살피다'의 원형질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는 말에 그만 고개가 숙여진다. 그만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일게다. 작은 것 하나라도 쉽게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느낌을 전해받는다. 다들 편하게 살려고 발버둥치는데 불편하게 살자고 말하는 사람.. 그가 주창한다는 '불편하게 살기' '밖에 살기' '늘려 살기'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가까이 할 수 없었으니 자세한 내막이야 잘은 모르겠지만 어렴풋한 짐작만으로 또한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럴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살아야만 이겨낼 수 있는게 세상살이인지도 모를 일이다.
읽으면서 몇 번을 소리내어 웃게 된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찾아냈을까 싶은 부분들이 많다. 그러면서도 웃음뒤에 오는 싸늘함이 느껴진다. 줄에 묶여 있어 더 멀리는 갈 수 없는 개는 자신의 잠자리에서 되도록이면 멀리 똥탑을 쌓는다. 한껏 엉덩이를 바깥으로 뺀 자세였을거라고 말하는 글쓴이의 말속에 왠지 서글픔이 묻어난다. 저마다의 입맛대로 측정되어지는 물맛 또한 그렇다. 수도없는 안내판을 보면서 추사를 논한다. 맞춤법이 맞지 않아도 그 말이 담고 있는 의미의 강약을 눈치챈다. 자식같은 개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불편을 주는 존재일 따름인 것처럼 누구에게는 소중한 것이 누구에게는 별 것 아닌 것으로 되어버리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네 것은 없고 내 것만 존재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오래전 산을 찾았을 때 하산길에 보았던 그 현수막이 생각났다. '제발 개는 데려오지 마시오!' 그 아래 안내판은 더 가관이었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여기에 심은 꽃을 파간 사람은 양심껏 다시 심어놓으시오!'... 정말 나라도 잡아다 주고 싶은 생각에 '도대체 어떤 놈이야? 아니 퍼갈게 없어서 다같이 보자고 심어놓은 꽃도 저만 본다고 가져가냐?' 했었다. 그러고보니 뒷산은 너의 산도 아니고 나의 산도 아니었다. 우리의 산이었던 거다. 그러니 그곳에 우리의 이야기가 피어나고 꽃을 피우고 있었던 거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정말 행복했다.
재활용 밭집이나 여물기도 전에 떨어져야 하는 도토리나 밤의 서러움이 인간의 이기심을 말해준다. 김해공항만 김해에 없는 것이 아니다, 서울공항도 서울에 없다는 말은 게으른 행정을 슬며시 혼내고 있음이다. 옆에 사람이 앉기만 하면 들어주든 안들어주든 당진에 땅 샀시유, 집두 있슈를 연신 내뱉는 할머니의 쓸쓸함을 누가 알까? 모든 물병 다 죽던 그 날의 이야기를 듣다가 배꼽 빠질 뻔 했다. 무감각과 무덤덤이 제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거기에 무관심까지 보태지는 게 우리의 현실일 것이다. 버릇없는 아이 나쁜아이를 말하기 전에 나쁜 어른이 먼저다. 어른이라고 다 어른은 아닌 것이다. 나이만 먹었다고 다 어른은 아니라는 말이다. 말 한마디 행동하나로 그 사람의 인품을 어느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는 말에 나도 공감한다. 약수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다. 온갖 모양새를 하고 약수터에 모여드는 사람을 앞세워 세상을 말하고 있는 글쓴이의 마음이 읽어진다. 그래서 이 책은 뒷맛이 참 좋다. 여운이 길게 간다. 사람사는 이야기 들으러 나도 약수터에 가고 싶어진다. 그 약수터에 올라가 사람냄새 진하게 맡아보고 싶어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이다. 그런 것들을 보고 살피고 그리고 느꼈을 글쓴이처럼 내 마음도 열려야 할 것이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는 진리를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글도 글쓴이도 모두 멋지다. /아이비생각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