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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들의 아찔한 수다 - 여성 작가들의 아주 은밀한 섹스 판타지
구경미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2년 5월
평점 :
요즘도 음담패설이란 말을 많이 쓸까? 그 음담패설이란 게 아찔함으로 다가오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아찔함, 어쩌면 그냥 순수한 짜릿함을 느껴본다는 게 어려운 시절인 듯 하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 널리고 널렸다는 말일테다. <이브들의 아찔한 수다>라는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실 들여다보기도 전에 그 주제가 무엇인지를 밝혀두고 있는 책이지만. 아주 은밀한 섹스 판타지... 그렇다면 여자들만의 수다쯤일까? 여자들이 모여 떠드는 그 음담패설을 한번 들어나보자고 작정한다. 지금쯤이면 이제 수면위로 떠올라야 하는 주제가 아닐까 싶은 의도를 숨겨두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똑같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꾸며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간혹 손가락질을 받기도 하고, 세간의 이슈로 떠오르기도 하는 섹스 판타지. 그런 주제라면 우리는 벌써 '마광수'라는 이름을 떠올렸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렇게까지 이슈가 될만 한 일은 아니었다는 게 내 개인적인 주장이지만, 세상은 내 생각하나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는 걸 다반사로 하니 그저 그러려니 하고 지나간다.
여섯 여자가 모였으니 접시 하나쯤은 충분히 깨졌겠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은근한 아픔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우리와는 동떨어진 저 먼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 시대에 한번쯤은 있었음직한 그런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그 사람들이 섹스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궁금해할 필요는 없다. 뻔하지 않은가 말이다. 보여지는대로만 이야기하면 너무 까발렸다고 말할 것이고, 슬쩍 건드리듯이 이야기하면 그럼 그렇지 하면서 내심 별 볼일 없는거라고 치부해버릴 테니.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가 안고 있는 이시대의 아픔이다. 우리가 외면하는, 혹은 놓쳐버린 그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보라는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기왕에 은밀한 이야기에 끼어들었으니 아줌마 특유의 은밀한 이야기도 하나 해보자. 일전에 모월간지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작가의 글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이라 시선을 끌기도 했지만, 여기서 말해두고 싶은 건 여성잡지가 아니라 남자들이 읽는 경제지였다는 거다) 그중에서도 섹스 없는 이성관계도 필요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는데 주제는 이랬다. 성적인 관계와 친밀한 대상의 관계는 분명 다르다는 거였다. 단순무식하게 표현해서 아무리 섹스를 많이해도 거기서 관계가 형성되지는 않는다는.... 섹스리스 부부가 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작금의 세태만 보더라도 분명 섹스는 친밀함의 척도가 될 수 없다는 말에 나는 공감한다. 섹스가 곧 사랑이라는 공식은 틀렸다! 어쩌면 우리는 그만큼 섹스라는 의미를 잘못 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숨겨야만하는 그 어떤 것에서 이제는 밖으로 드러낼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변화되어가는 요즘을 보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은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관점인 것이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평가는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솔직히 나는 참 좋았다. 개인적으로 일본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 때문이기도 했던 까닭이다. 이미 통념적인 개념으로 자리잡은 것들이 우리에게는 숨겨야만 하는 의미로 단정지어지는 게 싫었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인데도 드러내 말하지 못하는 위선과 가식이 싫었었다. 사회적인 모순이나 현상따위를 가감없이 글로써 엮어내는 일본소설들처럼 우리는 언제 글로써 진정한 사회의 아픔을 느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우리도 이제는 당당하게 말 할 건 말할 줄 아는 글쟁이들이 많아질 것 같다.
적나라하게 파헤쳐버린 고등학생들의 탈선 이야기, 프리섹스, 동거, 사회적인 조건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었던 비극적 사랑 이야기, 나만의 사랑으로만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질투..... 정말 아찔한 수다였다. 자꾸만 올라가는 젊은 여성들의 치마처럼 아찔한 게 아니라, 그 속에 숨겨둔 우리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아찔했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소설같고 영화같은 현실을 살아내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 이 혼돈과 어둠의 골짜기에서 섹스의 판타지를 건강하게 끌어내는 일이야말로 이 책에 동참한 작가들과 독자 여러분의 몫- 이라는 말이 책머리에 보인다. 그 평론가의 이야기를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 백퍼센트 공감하는 말이기에.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