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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들의 섬
브루스 디실바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어쩌면 이 더위를 이겨낼 수 있을만큼의 스릴을 원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온몸이 오그라들 듯한 짜릿함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추리소설의 묘미는 바로 그런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악당들의 섬에 첫발을 내딛은 후 살짝 더워지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평범한 전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그 고요함. 이미 일은 시작되어지고 있었는데 깔리는 느낌은 그랬다는 거다. 그것이 이 책의 숨겨진 매력일까? 계단을 올라가듯이 한걸음씩 정돈된 걸음걸이로 범인에게 다가가는 주인공을 따라가다보니 시원함이나 짜릿함보다는 이미 세상속에 만연한 부정부패의 소굴로 들어와 있었다.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가진자들의 욕심과 비리의 크기는 보통의 우리가 느끼기에 엄청나게 큰 건 사실이다. 미국에서 가장 작은 주라는 로드 아일랜드. 그 배경은 해안선을 끼고 있는 까닭에 습기를 안고 있다. 스멀거리는 안개속에서 그 욕망의 불꽃이 피어오른다.
범인은 항상 가까이에 있다, 라거나 범인은 이미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커다란 배경을 안고 있다거나 하는 식의 규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쯤은 나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짜릿한 반전의 시기는 항상 궁금했다. 언제 반전의 쾌감을 느낄 수 있느냐에 따라 책장을 덮는 순간의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끝까지 간다. 책을 읽으면서 혹시나했던 나의 예상은 이미 빗나가 버렸다. 그래서 오기가 났다.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에 대한 기대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끝내 짜릿함과는 만나지 못한 듯 하다. 순간적인 강렬함이 안겨줄 환상보다는 당장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라는 듯이.
주인공 멀리건은 신문기자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곳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화재에 이웃과 친구를 잃게 된다. 방화범을 잡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화재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관심을 갖게하고,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어설픈 추적을 시작한다. 많은 사람이 등장하지만 이렇다하게 불거져 나올만 한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마을 사람 모두가 주인공이다. 사건을 쫓아가는 멀리건조차도 그 중의 한사람일뿐이다. 그 흔한 영웅심리도 없다. 007처럼 이렇다 할 두뇌게임도, 액션도 없다. 단지 있는 그대로의 현실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뛰어다닐 뿐이다. 하지만 진실은 있었다. '강함'은 '강함'으로 이길 수 있다는...
사람은 할 수 있는만큼 모든 방법을 동원해가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간다. 약한 자들은 약한대로, 강한 자들은 강한대로. 그 약함과 강함이 마주칠 때가 있다. 간혹 약함이 강함을 이길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가 않은 게 현실이다. 책을 다 읽고나서 잠시 생각해보았다. 조금은 씁쓸했다. 작가의 글이 씁쓸했다는 게 아니라 작가가 보여주는 책속의 현실이 씁쓸했다는 말이다. 솔직히 재미있었다는 말은 못하겠다. 그러나 생각거리를 던져준 책임에는 분명하다. 생뚱맞게 '평범한 것이 위대한 것이다'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약간은 지루하게 느껴졌던 초반부의 느낌때문에 로드 아일랜드에 관한 것을 찾아보았다. 어떤 곳인지를 알고 있었다면 더 맛나게 읽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