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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오레 ㅣ 오늘의 일본문학 10
호시노 도모유키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오레오레 : 俺俺 おれおれ
오레오레 おれおれ 는 일본말이다. '나'라는 뜻의 '오레おれ' 를 두 번 연달아 쓴 말인데 '나야, 나'라는 의미라고 한다.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나야, 나"라고 말하며 아들인 척 흉내를 내 노년층의 돈을 뺏는 보이스피싱 사기 수법으로, 일명 '오레오레사기'가 성행하면서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은 말이란다. 그런데 왜 그렇게 좋지도 않은 말을 책의 제목으로 썼을까? 얼핏 생각하면 겉으로 드러나는 사회적인 병리현상을 말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지?' 하는 생각때문에 내심 조바심이 났다. 초반부에서의 상상력으로 순간의 몰입도는 좋았다. 그 상상력이라는 것이 현실과 부합된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복되어지는 단어 '나'가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는 느낌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헤매기 시작했던 것 같다. 복잡하다.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아니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기애( 自己愛 )의 덩어리. 상처입은 프라이드를 애지중지 끌어안고 다른 사람 옆에는 다가려고도 하지 않는..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거라고는 하나도 없으면서.. 자기 자신에게만 받아들여지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서로 상처를 핥고, 세상하고는 다르니 어쩌니 하고 있으면서 거기에 무슨 진심이 있다고.. 책속에 나오는 말이다. 결국은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것 같지만 누구나 똑같은 가슴앓이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 누구나 개성과, 나 자신만의 어떤 것을 꿈꾸지만 결국엔 그것조차도 타인에 의해 만들어지고 길들여져 끝내는 같아지는 그 어떤 것들.. 사실이 그렇다. 지금을 사는 우리는 모두가 목소리를 맞춘듯 이야기한다. 개성시대라고. 그러나 작금의 시대에는 개성이 없다 (이 말은 물론 나만의 생각일 뿐이고, 개성이 드러나는 부분이 없다는 건 아니다!). 세상이라는 톱니바퀴를 굴리면서 행여나 나만 튀어나오게 될까봐 묘하게 자신만의 그 어떤 것을 변화시키는 카멜레온같은 존재. 그러면서도 나는 나일뿐이라고 목소리만을 높이는 시대.. 그 아픔이 이 책속에 녹아있다.
책장을 덮고나니 펼쳐지는 표지의 그림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똑같은 얼굴이 똑같은 모습을 하고 줄을 지어 나온다. 모두가 '나'이면서 '너'이기도 하고, '우리'가 된다. 그리고 다시 나의 복수형인 '나들'이 된다. 결국 '하나'가 되어버리고 마는 그 상황이 조금은 멋쩍다. 손을 들어 나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없다. 어찌되었든 나는 그 세상의 톱니바퀴 사이에 끼어 함께 굴러가야 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읽고 난 뒤에야 속이 뒤틀린다. 왠지 반항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하지만 그 속을 꾹꾹 누른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아니 어쩌면 내 속을 들킨 것 같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독자적 존재였던 내가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희박해지면서 마치 좀비처럼 동일한 생각과 동일한 행동을 하는 '나'로 변해가는 설정을 얼핏 카프카의 <변신>을 생각나게 한다-고 옮긴이는 말하고 있지만, 내 경우에는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와 <눈 뜬 자들의 도시>를 동시에 생각나게 했던 책이었다. 상황설정은 다르지만 내게 다가왔던 느낌이나 남겨진 여운이 왠지 모르게 겹쳐졌던 까닭이다. '나를 죽여 나를 살린' 마지막 장이 인상적이었다. 결국은 그거였구나 싶었다. 세상은 '나'만으로도, '너'만으로도, '우리'만으로도 만들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 셋의 묘한 어울림이 필요한 모양이다. '나'를 인정하고, '너'를 인정해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우리'의 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만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만들어진 것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 '만들어진 것들'을 무작정 따라가는 텅 빈 얼굴을 책표지의 그림에서 보게 된다. 세상은 복잡한 것일까, 단순한 것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각자의 모습 그대로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