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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테이키 作庭記 - 일본 정원의 미학
다치바나노 도시쓰나 지음, 김승윤 옮김, 다케이 지로 주해 / 연암서가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天圓地方의 원리를 잘 따르고 있다는 우리의 전통정원양식속에는 陰陽의 조화도 숨겨져 있어 가만히 살펴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방향까지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 나무 한그루 심는 것조차도 많은 것을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전통정원을 살펴보면 가장 중요한 게 자연과의 어울림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동화되어 그 안에서 살기를 바랐던 선조들의 지혜는 지금은 대부분 사라져버리고 없지만 그 뜻만큼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원을 뽑으라하면 단연 창덕궁 후원일터다. ( 비원이라는 말을 굳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해도 왠만하면 후원으로 불러주자..) 그 창덕궁 후원이 바로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다는 최대의 장점을 제대로 살렸다는 것인데 한번 가보면 왜 그런 수식어가 붙었는지 대충은 짐작하게 된다. 일부러 만들지 않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신의 정원인양 그렇게 품어안은 모습이 보기에도 흐뭇해진다. 그런 반면 슬그머니 옛사람들은 참 욕심이 많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렇다하게 울타리를 치지 않았으면서도 나만의 정원이라고 뒷산을 품어 안았으니 말이다. 거기에서 피고지는 온갖 꽃과 나무를 제 것인양 보고 즐겼으니 그만한 호사가 따로 없다.
답사를 다니다보면 왕년에 한가락 했다는 상류층의 옛집에서 어김없이 꾸며진 정원을 만나게 된다. 어떤 정원이 제대로 된 정원인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들어섰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이 있다. 풍류를 제대로 즐길 줄 알았다던 옛사람들의 취향이 그대로 들어나는 정원도 있다. 오래전 외암리 민속마을을 찾았을 때 송화댁과 건재고택의 색다른 느낌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마을자체도 그랬지만 집집마다 연결되어진 물길이 이채로웠다. 송화댁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그 솔향기에 흠뻑 취했을 때 집안의 마당을 가로지르는 작은 시내를 보고 얼마나 신기해했는지.... 우리의 전통정원 양식인 天圓地方의 원리를 따르고 있지 않다는 말을 어디선가 본 듯 하지만 건재고택의 정원은 일단은 그 꾸밈이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어떤 형태를 취했는지도 나중에야 알았다. 하지만 어떠랴 싶었다. 그저 좋았으니까. 그만큼 정원이라는 의미는 우리에게 편안함과 포근함을 함께 느끼게 해주는 곳이 아닌가 싶다.
이 책 <사쿠테이키>는 바로 그런 정원을 만드는 방법을 기록해 둔 책이다. 作庭記さくていき...'정원 만들기' 쯤으로 보면 될 것 같다. 헤이안시대의 일부 귀족층을 위해 만들어진 책.. 헤이안 시대 사람들이 정원을 만들때 생각했다는 의미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는데, 일본의 헤이안시대라고 하면 초기에는 천황의 통치하에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귀족이나 승려의 세력이 커져 부패가 만연하던 시기였다. 당연히 불만을 품은 세력들의 반란이 있었을테다.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무사계급이라고 한다. 그 배경만 살펴보더라도 귀족층의 사치를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으니 그들이 만든 정원이 어떠했을지는 가만히 생각만 해보아도 그림이 그려질 듯 하다. 정원을 만들되 그냥 아무렇게나 만들지 않았다. 뜰, 연못과 섬, 돌, 섬, 폭포, 계류, 돌 놓기, 나무, 잡동사니... 앞의 목차만 살펴보더라고 정원을 만들 때 얼마나 많은 것을 따지고 생각했는지 알 수가 있음이다. 돌 하나를 세우고 눕히는 것조차도 방향을 생각했고, 건물과의 배치를 생각했다. 계곡의 흐름 역시 집의 정면을 향하게 하지 말고 약간 옆으로 틀어지도록 하라는 말도 보인다. 그것은 '집안의 여자가 계곡과 마주보면 불길하다고 하기 때문이다'라는 식의 금기탓인데 금기가 참 많기도 많다. 이렇게 하면 안된다라거나 저렇게 해야 집안에 나쁜일이 생겨나지 않는다와 같은 금기는 우리네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불교적인 영향도 많이 받았음은 물론이다. 정원 만드는 일을 주로 맡았던 스님들을 이시타테소(石立僧)라고 했다는 말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처럼 陰陽五行이나 四神과 같은 풍수를 따지기도 했지만 우리와는 달랐다고 하니 그 속이 궁금해진다. 이 책에서는 돌을 놓는 일과 정원 만드는 일이 같은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원을 꾸미는 데 꼭 필요한 돌을 어디에 어떻게 놓느냐가 상당히 큰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나무 한그루, 꽃 한송이를 어디에 배치했는가도 중요하겠지만 돌의 생김새나 배치에 따라 더 멋진 정원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어 하는 말이다. 아시아에서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은 그야말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문화적인 특징도 비슷하다. 같은 뿌리에서 나왔어도 저마다의 특징을 살려 모든 분야에서 제각각의 맛을 우려냈다. 마치 셋 중 하나만 보더라도 자연, 풍수, 불교와 같은 셋의 어떤 공통점이 보여질 것만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또한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나는 정원에 대해 잘 모르는 문외한임에는 분명하지만 자연적인 이미지와 그 안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는 자체가 너무 좋았다. 어찌되었든 '자연'과 '자연스러움'은 정말 좋은 것이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