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아랑전
조선희 지음, 아이완 그림 / 노블마인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어렸을 적에 읽었던 전래동화는 재미있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어른이 되어 읽어도 재미있다는 거다. 그 내용의 황당함에 코웃음을 치고 말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상황들을 보면서도 그다지 싫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사실 전래동화는 권선징악의 구도다. 모진 풍파를 헤쳐가며 살아가야하는 어른들의 세계는 그 단순한 구도가 먹히지 않는다. 착하게 살면 나중에 복을 받는다? 그런 결말을 보장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오죽했으면 어린시절에 나쁜 역할을 맡았던 놀부와 팥쥐같은 캐릭터가 오히려 삶을 살아가는데는 더 긍정적이었다는 말이 나올까? 같은 이야기라해도 순수하게 받아 들였던 어린 날의 마음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어하는 건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 처절한(?) 어른의 세계도 저렇게 권선징악의 구도로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숨겨두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그래서일것이다. 여전히 고전에 이끌리는 이유는.

 

모던보이나 모던걸과 같은 수식어처럼 새롭게 옷을 갈아입은 전래동화의 모습은 이채로웠다. 그냥 뒤집기정도려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단순하게 어떤 반전만을 기대했다는 것이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하나의 동기가 되어준 우리의 고전은 옛맛과 현대의 맛이 어울려 묘한 느낌을 내게 전해주었다. 아하,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는거였구나 싶었다. 여기에 인용된 전래동화는 금도끼 은도끼, 심청전, 할미꽃전설, 토끼전, 북두칠성, 아랑전이다. 제목만 들어도 다 알 수 있는 어린시절의 향수다. 그런데 작가는 그 향수속으로 빠져들게 하지 않는다. 이것이 네 도끼냐? 하고 묻는 연못속의 신령님 물음에 제 도끼는 쇠도끼입니다, 라고 대답하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하지만 그 도끼를 통해 우리가 한번 더 생각해야 할 메세지는 분명히 달랐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있는 이 싯점에서 인간의 수명조차 태어날 때 유효기간이 정해진다는 설정이 오싹하게(?) 느껴졌던 북두칠성은 오래전에 보았던 어떤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의 복제품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시설을 탈출하는 그 영화는 보는 내내 껄끄러웠었다. 인간의 오만이 어쩌면 저런 세상을 만들어낼지도 모르겠구나 싶어서. 하지만 우리의 전래동화가 어떤 것인가? 단순히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별을 노래하고 함께 나눈 정을 그리워하는 마지막 설정은 못내 안타까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동화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슬프다. 그 슬픔을 '아름답다'는 틀에 가두어 그것을 '바보같다'고 느낄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전혀 아름답지가 않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찾는 동화는 여전히 아름답다. 한때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 형제의 동화는 원작과 다르다는 말과 함께 무서운 동화, 잔혹동화라는 말이 떠돌았던 적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것'에만 촛점을 맞춘 탓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동화도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옛날이야기라는 것이 굳이 윤리적이고 교육적이어야만 한다는 규칙은 없는 까닭이다. 옛날 옛날에~~~ 라는 말 뒤에는 어떤 내용이 따라붙어도 괜찮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은 온전히 듣는 사람의 몫이다. 행복하고 즐거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무섭고 잔인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까닭이다. 기대하시라, 짜자잔~~ 하고 나타날 그 어떤 것에 대한 설레임은 누구도 만들어낼 수 없는 나만의 것이기에.

 

한마디로 말해 <모던 아랑전>은 은근히 오싹하다. 군데군데 이야기의 느낌을 강하게 전해주는 공포스런 분위기의 그림도 단단히 제 몫을 한다. 하도 강한 것들이 많이 나오는 세상이다보니 그 그림을 보고 겨우 이런걸 보고? 라고 말할런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새로웠다. 작가의 전작이라는 <모던 팥쥐전>도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봐야겠다. 어떻게 그렸을지 궁금하다. 아울러 그림형제의 잔혹동화 역시 그 본모습이 궁금해진다. 편협된 나의 개념에 한방 먹인 책이다. 아우를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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