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션 1
고어 비달 지음, 권오숙 옮김 / 치우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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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리스를 대표하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생각하다보면 전쟁을 떠올리게 된다. 영토를 확장해 나가던 페르시아와의 전쟁 말이다. 기원전 6세기경, 페르시아 제국은 지금의 이란과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레바논과 이집트까지 뻗어가고 있었다. 그 때의 왕이 다리우스왕이다. 당시 정치적으로는 군주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지만 다리우스는 민중들에게 주도권을 줄 수 없다며 전제군주제를 주장했다. 하지만 소수의 귀족들은 과두정치를 주장했다. 논쟁을 벌이던 중  자기 의견을 내지 않았던 고브리아스, 인타프레네스, 아스파티네스, 히다르네스(모두 이 책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다)가 모두 다리우스를 지지하면서 결론은 군주정으로 났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 때의 상황이 이 책의 전체적인 배경인 듯 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크세르크세스가 바로 그의 아들이다. 처음의 느낌으로는 세계를 정복하고자 했던 그들이 어떻게 꿈을 펼치는가를 보여줄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했는가가 더 장황하게 지면을 채우고 있다.

 

크세르크세스왕이 이끄는 페르시아의 100만 대군과 300명의 스파르타군의 싸움은 우리에게 신화와 같은 이야기로 남았다. 오래전에 보았던 '300'이라는 책이나 영화의 장면이 머리속에 그려졌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유프라테스강을 이용해 바벨탑을 세우고 공중정원을 만들었다던 바빌로니아의 역사가 이 책속에서 살아 숨쉰다. 그들에게 부서져버리고 말았던 바빌로니아의 그 화려한 역사가..   전쟁의 역사는 왜 생겨나는 걸까? 영토확장이다. 좀 더 커지고, 좀 더 많이 갖고 싶어하는 욕망의 산물이다. 그로인해 많은 것이 없어지기도 하고 많은 것이 새롭게 태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든다. 이미 있었던 화려한 역사는 남겨두는 게 후세를 위해 더 좋은 일은 아닐까 하는... 태양의 아들이라는 신 '벨 마르둑'을 받들었던 바빌로니아의 이야기는 짧았지만 재미있었다. 그들의 뛰어난 문화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어땠을까? 그것처럼 이 책속에는 전쟁과 함께 다리우스의 욕망이 뻗치던 나라들의 문화를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다리우스의 대사로 임명을 받은 이가 조로아스터의 손자라는 것이다.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를 믿는 사람을 앞세워 아시아를 대표하는 철학자 혹은 종교를 만나게 했다는 점이다. 무역을 위한 것이었다고는 하지만 실제는 그곳의 실정을 알아보고 지리적인 요소를 살피기 위함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키루스 스피타마는 본래의 목적보다 철학쪽에 관심이 더 많았던 모양이다. 그가 부처를 통해 또다른 철학의 세계에 눈을 뜨는 대목은 흥미로웠다. 노자와 공자를 만났던 중국여행 역시 만만치가 않다. 아직은 실크로드가 생겨나기 전의 일이다보니 가끔은 모험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견문록 같기도 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종교와 종교의 만남처럼 충돌이 일어났던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다르게 인정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부분들은 책을 읽는 사람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줄 듯 하다.

 

선과 악을 만들어냈으며 창조론을 말하는 조로아스터,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달아 불생불멸을 체득한다는 니르바나의 세계, 자연주의적인 道家사상을 만들어냈던 노자와의 만남, 그리고 어렵게 만난 공자와의 시간속에서 사람은 끝없이 배워야 한다는 진리를 알게 된다. 나이 15세의 志學, 30세의 而立, 40세의 不惑, 50세의 知天命, 60세의 耳順, 70세 때의 從心 이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됨은 물론이다. 장황해서 조금은 지루한 느낌도 있었지만 각각의 문화와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수가 있어 좋았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키루스 스피타마가 賢者들과 나누는 대화속에는 많은 것이 들어있다. 함축적인 의미가 상당히 큰 울림을 전해주고 있는 듯 하다. 우리의 삶과 종교의 참된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당시에 그들이 꿈꾸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번쯤은 생각해보게도 한다. 장황해서 지루했지만 그런데로 여운이 남았다. /아이비생각

 

 

"조로아스터에 관해 아십니까?" 고살라가 고개를 끄덕였어.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그는 매우 젊었었음에 틀림없도다. 천국이니, 지옥이니, 심판의 날을 만들어내서 명료한 종교적 과정에 대해 걱정한다는 것은 극도로 젊다는 증거이니라. ..... 수천 년 전에는 나도 그런 과정을 밟았었느니라, 알겠느냐? 모든 것은 불가피한 것이니라."  불가피하다. 그것이 고살라의 야박한 가르침이었어. 나는 그 가르침을 결코 잊은적이 없었어. <중략>

우선, 현실적으로 볼 때, 이 인정머리 없는 불변의 창조설이 득세하게 된다면, 인간 사회는 결과적으로 완전히 붕괴되고 말 거야. 선과 악이 단순히 실타래처럼 펼쳐진 인간의 속성이라면, 실타래의 초기에 누가 굳이 선한 행동을 하겠으며, 또 선한 행동이 없이는 어떤 종류의 문명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에, 진리가 거짓을 무찌르는 날 구원도 훨씬 적게 될 것이 틀림없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 하루도 고살라와 실타래에 관한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나간 적이 없었단다.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1권 인도편 315~3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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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노예의 역사 - 5천 년 노예제도를 말하다 주제로 읽는 역사 시리즈 1
마조리 간.재닛 윌렌 지음, 전광철 옮김 / 스마트주니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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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인'이라는 말이 있다. 단순히 말의 의미만 따진다면 '아랫사람'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하인'이라는 의미는 그게 아니다.  팔순을 넘기신 우리 어머니께서 가끔  "참, 그때는 정말 너무 했었지.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다룰 수가  있었는지.... 저보다 한참을 더 산 노인들한테도 이래라 저래라 함부로 했던 건 지금 생각해도 참 미안한 일이야..."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끝나지 않은 노예의 역사라는 말을 한참동안 들여다 보았다. 사실이 그럴거라고, 어쩌면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과 공간속에서도 그 '노예'라는, '하인'이라는 의미가 버젓이 살아 숨쉬고 있을거라고 인정하게 된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저와 같은 부족을 팔아 넘기는 것도, 부모가 자식을 팔아 넘기는 것도 있어서는 안될 일임에 분명할텐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만 했는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착취'라는 말과 동행하는 하인이나 노예라는 의미속에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숨길 수 없은 인간의 욕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에 '뿌리'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평화롭게 살던 아프리카 고향 땅에서 어느날 갑자기 이유도 모른 채 끌려와 노예시장에서 거래가 되었던 한 남자의 슬픈 이야기를 그렸던 드라마였다. 영문도 모른 채 끝도없이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그의 꿈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었던 예전의 그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 그래서 그는 여러번 탈출을 시도하게 되고 끝내는 발가락까지 잘리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 이 책의 서두에서 언급되었던 프랜시스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결국 자유를 찾았으나 그 괴로웠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은 어디에서도 받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만큼 사람이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는 건 무섭고 끔찍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인류의 문명이 가증스럽다.

 

5천년의 노예제도를 말한다는 소제목이 참으로 아프게 다가온다. 너무도 오랜 세월동안 멈추지 않고 행해졌던 그 야만적인 행위를 모르는 척 외면했었던 수많은 사람의 행태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성경에도 기록되어졌다는 노예의 역사는 더욱이나 그랬다. 아주 당연한 것처럼 묘사되어진 부분은 지금 현재도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는 우리의 단면과 그다지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마치 인류의 편리함을 위해서 꼭 필요한 존재라는 듯이 이름만 바꾸고 형태만 바꿔서 우리 주변을 맴도는 서글픈 노예의 역사는 어쩌면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일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일전에 중앙박물관에서 보았던 <마야문명전>이 떠올랐다. 우리의 역사속에도 존재하는 '순장'이라는 못된 풍습도 그렇지만 제물로 바쳐지거나 한순간의 재미를 위한 도구로 취급을 받았을 노예의 또다른 모습이 생각나 가슴 한켠이 서늘해진다.

 

'인권'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말은 아닐 것이다. 책장을 덮으니 책표지의 간절한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친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을텐데...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사는 세상, 하지만 그 자유를 위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역사라고 말할 수 없다는 책 속의 말이 깊은 울림을 전한다. 많은 사람이 지금도 노예와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외면하지 않을 때 우리가 만들어놓은 저 '인권'이라는 말의 참의미가 살아나지 않을까 싶다. 사람으로써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그렇게 아픈 이들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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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품격
후지와라 마사히코 지음, 오상현 옮김 / 북스타(Bookstar)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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もののあわれ 모노노아와레....  이 책속에 많이 보이는 말이다.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을 쓴 글쓴이의 메세지가 들어있는 말처럼 다가온다. 무슨 뜻일까? 그래서 찾아보았다. 자연이나 인생대하여 느끼는 차분한 정감, 이라고 나온다. 다시 찾아보면 애절함이나 무상함이라는 말도 보인다. ' 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쓴 용어라는 말도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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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우화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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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창 밖에 펼쳐져있을 풍경이 궁금하다. 저 조그만 창으로 그녀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저 조그만 창으로 그녀는 무엇이 보고 싶은 것일까? 쓸쓸히 앉아 작은 창으로 스며드는 햇빛을 느끼듯 그림처럼 앉아있는 그녀는 아마도 신경숙 자신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또 왜일까? 신경숙... 그녀의 소설은 참 아프다. 아파도 그냥 아픈게 아니라 저 깊은 내면으로부터 천천히 끌려나오는 울음소리처럼 그렇게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늘... 언제나... 그랬다. 이제쯤이면 세월도 지나 그 아픔이 덮혔을거라 생각했을 즈음 그녀가 발표했던 소설이 <엄마를 부탁해>였다. 사람들은 말한다. 작가는 작품속에서 자신을 표현한다고. 그 말은 다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듯 하다. 같은 시간을 다른 공간속에서 느꼈던 사람들은 안다. 그것이 같은 시대를 살아낸 동질감이라는 걸.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소설은 늘 나를 아프게 한다.

 

뒷부분의 해설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녀의 소설은 다분히 일상적이다. 그래서 특별하다고 말할 만한 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녀의 글은 이상하리만치 감성을 짓누르는 힘이 있다. '내적 독백, 혹은 방심의 문체' 라는 말이 보인다. 내가 처음 그녀의 글을 만났을 때 그 방심한 듯한 독백때문에 꽤나 오래도록 얼얼했었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 이런 문체로 글을 쓸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문체속에 이토록이나 절절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일까?  그 마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나는 여전히 신경숙의 팬이라 자처한다. 작품마다 베어져 나오는 그 아련함이 싫어 잠시 딴청도 부려보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이름앞에서 다시 손을 내밀고 말았다.

 

신경숙의 작품을 읽다보면 금새 내가 그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마술에 걸려버리고 만다. 아마도 나와 같은, 특별하지 않은 일상때문이겠거니 한다. '예쁘다'는 말과 '아름답다'는 말의 차이를 생각나게 하는 순간이다. 그녀의 소설은 결코 예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하기에. 꾸며지지 않은 소소한 시간들이 그녀의 작품속에서 나를 기다린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작가는 그녀말고도 많다. 작품마다 내가 함께 살았던 같은 시대를 그리고 있으니 공감대가 큰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그것은 시대가 만들어낸 아픔이겠지만 마술에 걸린 듯 유독 그녀의 문체에 빠져드는 것은 그 안에 숨겨진 그녀의 모습을 몰래 훔쳐보고 있는 듯한 착각 때문은 아닐까?  가끔은 그 모습속으로 내가 들어가 숨기고 싶은 나의 또다른 모습을 타인에게 들켜버린 듯한 느낌이 들게도 하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런 소설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잘 팔리는 작가의 이름을 빌어 잠시 잇속을 챙겨보자는 속내가 느껴져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다시 만난 <외딴방>은 반가웠다.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다시 찾아낸듯한 그런 느낌이랄까?  그리고 다시 떠오르는 단어, 결핍... 그녀의 작품을 늘 흥건하게 적시는 그 결핍의 깊이. 우리가 그리도 절실하게 찾아헤매야 할 것이 무엇인가 묻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가 희망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행복과 불행이 함께 손을 잡고 오듯이 결핍과 희망도 역시 그런거라고. 안일하게만 살 수 없는 게 우리의 일상이라고. 그러므로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찾아헤맬 수 밖에 없는거라고. 채워지지 않는, 채울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우리는 그래서 늘 외로운지도 모를 일이다. 한동안 다시없을 외로움이 곁에서 서성대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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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고전 : 동양문학편 - 서울대 선정 동서고전 200선 세상의 모든 고전
반덕진 엮음 / 가람기획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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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초보' 를 위한 책.. 그래서 택했다.  古典에 다가가고 싶어도 어려울거라는 선입견때문에 쉽게 손을 내밀지 못했던 게 사실이니까. 거기다가 古典이라고 불리워지는 책들은 왜 그리도 두꺼운지..  내용 또한 만만찮은 깊이를 보여주니 그것도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이유중의 하나라면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 어렵다는 고전읽기가 점점 쉬워지고 있는듯 하다. 몇몇 출판사에서 저마다의 특징으로 하나둘씩 풀이된 고전,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고전시리즈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오래도록 꾸준하게 사람들이 찾아주는 책을 가리키는 '스테디셀러'라는 말이 있다.  나는 솔직히 '베스트셀러'라는 말보다 저 말을 훨씬 더 좋아한다. 작가의 인지도나 출판사의 홍보전략에 의해 만들어지는 순위보다는 많은 세월이 흘러도 오래도록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겨지는 그런 책이 아닐까 싶어서.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古典이란 장르 또한 같지 않을까 싶다. 단순한 재미만을 위해서 그토록이나 오래도록 사람들 곁에 머물수는 없을테니까.

 

욕심을 부려 손을 내밀었는데 처음부터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무슨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도 아닌데 그런 기분을 느끼기에 딱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어서... 읽고 싶었던 책의 목록들이 목차에서 보였다. 그것부터 찾아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그 배경이나 작가에 대해 한번쯤은 제대로 알고 시작하는 것이 좀 더 좋은 책읽기였다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렇게 받아들이고나니 책을 읽는데 속도가 붙었다. 책을 읽는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다고 한다. 통독, 다독, 정독, 속독, 음독, 묵독... 꼭 필요한 부분만 찾아읽는다는 적독이나 소리내서 읽는다는 음독만 빼면 보통의 내 모습이긴 하지만 그런 방법을 말하자는 건 아니고 그만큼 이 책속에는 이렇게 저렇게 보여지는 친절함이 많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수험생을 위해 나온 책일거라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나의 편벽함 때문인지...)

 

먼저 동양과 서양을 분류하고 문학이냐 사상이냐로 나누어서 총 4권으로 만들어졌다는 <세상의 모든 고전> 중에서 이 책은 동양문학편이다. 그래서그런지 조금은 가까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만큼은 꼭 읽어보리라하여 내가 읽고싶은 책의 목록에 다시 적어놓은 것도 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만큼의 분량만으로는 뭔가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겐지모노가타리'나 '천일야화'는 그 양이 너무 많아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고 있던 책인데 여기서 또 만나니 하루 빨리 만나고 싶다는 조바심이 인다. 고전을 위한 안내서라는 말이 딱 맞다.

 

동양의 최고문학작품 45편을 실었다고 하지만 가장 먼저 욕심을 부려야 할 것은 역시 우리의 고전이 아닐까 싶다. 소설류에서는 그래도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몇 편 보이긴 하지만, '수이전'이나  '역옹패설'과 같은 고대설화집을 꼭 한번은 읽어보고 싶다.  일전에 군산으로 답사를 갔을 때 '탁류'의 배경이 되었다는 표지석을 본 적이 있었다. 궁금해서 한번 찾아봐야지 했다가 잠시 잊고 있었는데, 1930년대의 시대상을 예리하게 풍자했다는 채만식님의 소설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어 참 반가웠다. 아울러 우리에게는 이름으로만 외워졌던 작가에 대해 일일이 소개를 해주고 있어 그 또한 내게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카프문학'이나 '브나로드운동'과 같은 의미에 대해서도 숙지할 수 있어 참 좋았다.

 

동서양의 걸작 고전 200권... 언제 읽을까 싶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책을 고를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이런 책이 있어 고르는 재미는 있을 것 같다. 단지 이렇게 소개된 책만으로 내가 그 책을 읽었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도록 경계심을 늦추지 않아야 할 것 같다.  말로만 들어왔던 작품들에 대해 소개와 평가가 함께 들어있으니 뜻하는 이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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