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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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予其懲而毖後患)”... ≪시경≫ 소비편(小毖篇)에 나오는 말이란다. 옛선조들은 무언가 이름을 지을 때 문서속에서 많이 따왔다. 문이나 집에 이름을 붙일때도 그랬다. 시대적인 상황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라고 이해를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여전하다. 각설하고, 오래된 책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 것은 이 책을 지어야만 했을 글쓴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궁금했다. 지옥같은 전쟁을 겪어내고 거기에 대한 반성을 기록했다는 말은 충분히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당시를 생각해 볼 때 그런 마음을 갖는다는 게 그리 쉽진 않았을거라는 생각을 했던 까닭이다. 명분에만 치우쳐 그저 저 잘난 맛으로 살았던 선조들의 모습을 많이 보았던 까닭이기도 했다. 임진왜란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너무나도 큰 의미로 다가오는 전쟁중의 전쟁이다. 환란중에 겪어야만 했던 기록들이 낱낱이 보인다. 그래서 읽는 내내 안타까움이 따라왔다.

 

내용을 살펴보면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의 기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전의 사정, 즉 일본과의 외교적인 관계도 기록되어 있어 임진왜란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책의 구성은 징비록1권, 징비록2권, 녹후잡기로 되어 있다. 녹후잡기란 징비록을 작성한 후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적어 놓은 것이다. 지나고 보니 그때 이렇게 했다면 더 좋았을것이라는, 차후에라도 이런 일이 생긴다면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그런 마음으로 쓴 글이니 글을 쓸 때 유성룡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니 우리에게 이런 역사적인 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의 태도나 습관은 전혀 변하지 않은 채 세월만 잡아먹고 있는 듯 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전쟁의 조짐은 진즉부터 있었다. 중종때인 1510년에 삼포에서 일본거류민들이 폭동을 일으켰던 삼포왜란이 있었고, 명종때인 1555년 왜구가 전라남도 강진, 진도 일대에 침입해 약탈과 노략질을 한 을묘왜변이 있었다. 그것뿐일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훨씬 전인 1583년에는 병조판서로 있던 이율곡이 선조에게 <時務六條>를 바치며 십만양병설 등의 개혁안을 주장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거쳐야 할 것은 결국 거치게 되어 있는 것인지....

 

솔직하게 말해 우리의 역사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선조와 인조, 그리고 그 후의 대원군에 대한 나의 감정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왜 그들이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는가를 한번쯤은 물어보고 싶었다는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머리속에 그려볼 수 있었다. 물론 전체적인 것은 아니지만 씁쓸했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조선의 역사는 '아니되옵니다'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혹은 '통촉하시옵소서'란 말로 축약된다고. 오죽했으면 그런 말이 나왔을까 싶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도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고 만다. 이 책의 맨 마지막에 명나라의 심유경이 당시의 우의정이었던 김명원에게 보냈다는 편지글이 보인다. 부끄럽게도 그런 상황에서조차 당쟁을 일삼고 각자의 이득만을 챙기며 말싸움만 일삼던 재상들의 행태를 꼬집는 글이 보여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무슨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속이 쓰렸다. (김명원은 1589년에 鄭汝立의 난을 수습하는 데 공을 세웠던 사람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검사에 이어 팔도도원수가 되어 한강 및 임진강을 방어했으나, 적을 막지 못하고 적의 침공만을 지연시켰던 인물이다. 하지만 명나라에서 원병이 오자 명나라 장수들의 자문에 응했다. 병서와 弓馬에도 능하였다고 한다.) 

 

환란에 대처하는 자세는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였나보다. 엊그제 읽었던 <격리>의 상황과 어쩌면 그리도 똑같은지. 전염병에 대처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사람들과 전쟁에 대처하는 우리의 선조들에게서 단 한가지라도 다른 점을 찾아낼 수 없어 읽는 내내 마음이 껄끄러웠다. 책표지의 뒷면에 이런 말이 보인다. "너희 나라가 망할 날이 멀지 않았다. 아랫사람들의 기강이 이 모양인데 어찌 나라가 온전키를 바라겠느냐".. 그 당시에 일본 사신이 했다는 말이긴 하지만 작금의 우리를 돌아볼 때 따가운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돈이 되는 호초를 줍느라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잔칫상 자리가 눈앞에 선하게 펼져져 왠지 서늘해지기도 한다. 임진년이었던 작년 2012년에 유난스럽게 떠들던 말들이 떠오른다. 다시 임진년의 재앙이 생겨날 거라고 떠들어대던 그 목소리... 말은 번지르르한데 이렇게까지 생생한 <징비록>을 놔두고도 유비무환의 정신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길이 없다. 역사를 외면하는 민족이 되지 않기를....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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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 - 전염병에 맞서 싸운 한 도시의 기록 (1900-1910)
마릴린 체이스 지음, 어윤금 옮김 / 북키앙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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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에 맞서 싸운 한 도시의 기록- 이라는 소제목처럼 1900년부터 1910년까지 장장 10년에 걸쳐 페스트와 싸운 샌프란시스코의 기록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을 지은이의 바쁜 발걸음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가감없이 사실적인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10년이라는 시간속에서 잉태되어졌던 수많은 아픔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닐듯 싶다. 인간이 살아가는 형태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그토록이나 심한 열병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직까지도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는 페스트와의 전쟁이라는 말은 살짝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올 것 같은 유령처럼 느슨해져가는 우리의 불감증을 꼬집기라도 하듯이. 물론 그때와 지금의 주변환경은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양분화되어가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졌거나 못가졌거나, 좋거나 나쁘거나, 깨끗하거나 불결하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서로가 서로를 도외시하는 두려운 현실말이다.

 

정치라는 틀에 갇혀 자신들의 이득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지난 세월속에서 그랬듯이, 아마 오랜세월이 지난 먼 미래속에서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가진자들의 탐욕 또한 마찬가지일터다. 오죽했으면 아흔아홉개를 가진 사람이 나머지 한개를 탐한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말이다. 자신의 힘과 부를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움직임은 뻔하다. 힘이 있는 자는 그 힘을 잃게 될까 가슴을 졸일 것이고, 부를 가진 자는 하나라도 놓치게 될까 안절부절할 것이다. 사실이 그랬다. 페스트라는 전염병으로 하나둘씩 사람이 죽어갈 때 그들은 현실을 외면했다. 그런 결과로 그들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전염병의 확산이었다. 그런 결과로 인해 도시는 격리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한 사람만의 힘으로 그렇게 큰 재난을 막아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였는지 후반부에서 말했던 '피리부는 사나이' 를 잊지 않았다는 말은 가슴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든다.

 

쥐들을 통해 퍼져나갔던 페스트는 다람쥐에게로 전이되었다. 설치류를 통해 병균을 실어나르는 벼룩들은 지금까지도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다. 부정과 외면에서 인정과 협조로 변하는 과정이 눈물겹다. 페스트를 이겨내기 위해 모두가 힘을 합쳤던 덕분에 지금의 샌프란시스코가 있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어느 누군가가 짊어져야만 했던 십자가의 무게는 가혹했다.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그려내는 문장들은 긴장감이 느껴지게 한다. 인종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미국인들의 냄새나는 모습은 역시 껄끄럽다.  반면에 자신의 민족을 위해 하나로 뭉쳐지는 중국인들의 모습은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지금까지도 중국은 이민자들을 위한 모든 조치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해결해 나간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어 한편으로는 부러움까지 자아내게 한다. 페스트로 인해 겪었던 10년이라는 세월이 참 많은 것을 알게 하고, 보게 하고, 느끼게 해 주었다. 전염병은 인류가 살아있는 한 계속적으로 이름을 바꾸며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지침서가 되길 바란다는 말은 묵직하게 느껴진다. 전염병에 대처하는 자세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가 바뀌지 않는 한 반복되어질 수 밖에 없는 일인 까닭이다. 인류의 역사상 부끄럽지 않은 10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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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정체성 - 경복궁에서 세종과 함께 찾는
박석희 외 지음 / 미다스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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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으로 답사를 가게 되면  그곳에 상주하는 해설사를 찾게 된다. ( 요즘엔 어딜가나 상주하는 해설사가 있다! ) 물론 찾아가는 곳의 자료를 꼼꼼하게 준비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해설사와 동행하는 쪽이 훨씬 이해하기 편하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한번은 너무 일찍 도착한 탓에 해설사가 없어 혼자 보아야 했는데 나오는 길에 해설사와 마주쳐 다시한번 돌아봤던 경험도 있다. 당연히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해설사가 자리에 없으면 자료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감함이 앞선다. 그만큼 우리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일터다. 그런데 해설사라고 다 똑같지는 않다. 그 사람만의 특징이 있다. 재미있게 이야기 형식으로 들려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역사책을 읽어주듯이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나름대로의 생각이 담겨 있는 탓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 해설해주는 쪽에 마음이 더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볼 때 이 책은 그 두가지 해설의 장점을 모두 갖춘 듯 하다. 도심에 살면서 경복궁을 가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굳이 답사라는 말을 하지 않고도 부담없이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아마 경복궁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 경복궁을 배경으로 우리문화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미 범했던 잘못된 정보에 대한 오류는 지금도 많이 수정되어지고 있는 단계지만 이 책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새롭게 정리할 수 있어 좋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경복궁에 몇 번은 더 가봐야겠다고..

 

입장권을 내고 안으로 들어가면 누구나 손에 쥘 수 있는 안내자료가 보인다. 많이 꼼꼼해지고 부드러워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그 안내자료만 자세히 들여다봐도 어느정도는 해설사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내가 늘 느끼는 안타까움이지만 이 책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경복궁을 찾는 이들의 자세다. ( 어디 경복궁뿐일까? ) 체험학습을 이유로 경복궁을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조금만 더 신경을 써 준다면 참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너무나 크다. 물론 그 나름대로의 사정도 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되돌아 생각해보면 내 나라의 문화유적에 대해 우리가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다면 찾아오는 외국인들 역시 우리문화유적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이라는 말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

 

책속의 내용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 않을까 싶다. 경복궁을 제대로 보기 위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어느 곳에서 바라보면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지, 무엇을 어떻게 찾아보아야 하는지 세세하게 안내를 해 주고 있다. 요소요소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잘못된 정보의 오류를 바로 잡아주기도 하고, 가끔씩은 관리하는 쪽과 관람하는 쪽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슬며시 보여주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하루만에 경복궁을 다 보려고 하지 말라는 의견에 나도 동의한다. 시간에 쫓기면서 다 보려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두세번 들러보기를 권하는 그 마음이 어느정도는 이해되는 까닭이다. 그렇게 여러번을 갔어도 아직 제대로 보지 못한 곳이 내게도 있으니 하는 말이다. 개인적으로도 아쉬운 마음이 크게 느껴지는 것은 책속의 말처럼 닫혀진 공간이 너무 많다는 거였다. 굳이 저렇게 문을 닫아놓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정말 많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문화를 바라보고 찾는 이의 마음, 관람하는 자세가 변하지 않는 한 그런 곳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듯이 그렇게 번듯하게 축하의 분위기를 띄우며 왕이 되었던 이가 바로 세종이다. 거기다 태평성대라는 말과 함께 성군이며 대왕이라는 호칭으로 우리에게 불리워지는 분이니 그를 통해 조선의 정체성을 찾아보자고 한 의도를 조금은 가늠해보게 된다. 곳곳에서 세종대왕의 성품을 알 수 있는 일화가 보인다. 여러방면으로 마음을 쓰셨던 분이니 그만한 업적은 당연하다 싶다. 법궁이었으나 270여년간을 비워두어야 했던 경복궁. 다시 제자리를 찾은 듯 했으나 일제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혀야만 했던 경복궁. 그 경복궁이 법궁이었을 때 조선은 태평성대였다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지금도 복원중인 경복궁이 온전히 옛날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일지... 경복궁에서 찾고자 했던 조선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무언가의 속을 들여다본다는 건 결코 만만찮은 일임에 분명하다. 하물며 우리의 역사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책표지에 적힌 글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 儉而不陋華而不侈...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게, 화려하나 사치하지 말라! "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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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잔과 토마토 두 개 - 오광진 우화소설
오광진 지음 / 문이당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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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소설이란 말은 내게는 왠지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살짝 비켜가는 듯 하지만 은유적으로 우리에게 할 말은 다하고 있는 그 뻔한 수법도 왠지 싫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돌아가게 하기 때문일거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잘 모르겠다. 주인공에게 찾아왔던 천사 가브리엘.. 그 가브리엘이 내게도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생겨난다. 아니 어쩌면 벌써 내 곁에 와 있는데도 내가 부르지 않아 대답을 하지 못하는건지도 모를일이다.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하고 찾아왔던 천사 가브리엘은 다른 누구;도 아닌 또다른 나의 모습이다. 누구나 외면하려고 애쓰는, 가면으로 숨긴 또하나의 내 얼굴인 것이다. 그래서 모순이다. 또하나의 나와는 만나기 싫어하면서 남에게 찾아오는 어린 천사 가브리엘은 만나고 싶어하는 것 자체가. 되돌아보라 한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다시한번 생각해보라 한다,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우화소설은 거창하지 않아 좋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자기계발서같이 뻔한 이야기가 되고 말기에 손을 뻗기가 조금은 껄끄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책날개에서 지은이와 마주친다. 외롭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 주고 싶다는 그를, 사람들은 '모모선생'이라고 부른단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들어주는 일밖에 없다고 한다. (아하, 가장 멋진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군!) 일단 시골에서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고 있다는 말에 부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오래전 내 어머님께서 사셨던 그곳에도 사자산이 있었다. 시인 김병연이 떠돌다 묻힌 곳이라는 말이 까닭모를 여유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던 그곳... 그토록 시렸던 맑은 날의 기억이 떠올라 책장 넘기는 손길이 무겁지 않았다.  어쩌면 단순한 세상을 아주 복잡하게 살아내고 있는 게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 장면들이 자꾸만 책속에서 배경처럼 떠돈다. 머지않아 아나로그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늘어갈거라고 버릇처럼 말하던 내 목소리가 들려온다. 변화만이 살길인 것처럼 빠르게 빠르게 달려가기만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모두 알고 있다. 단지 이론으로써만 존재하기에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작은 제목들속에서 지은이의 목소리를 듣는다.  나의 가치는 감사함에 있다, 보려고 해야 보이는 것, 우린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때문에 살고 있다, 위험할 때 나를 지켜주는 것, 가장 흔한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 천사가 되는 약, 우리는 거꾸로 살고 있다..... 특별하지 않은 것들, 그러나 특별해야 할 것들.. 바로 그런 것들을 말하고 있는 지은이의 심정은 절절하기까지 하다.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말, 내가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다는 것, 위험할 때 나를 지켜주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 있는 것이라는... 그러나 너무도 많이 들어왔던 이야기이기에 또 그 타령이군, 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내게 묻는다. 그렇다면 너는 그렇게도 많이 들어왔던 말에 대해 단 한가지만이라도 소중하게 받아들인 적이 있느냐고. 그래서일것이다. 이런 주제가 한없이 반복되어지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에게는 소중한, 그래서 너무도 절실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천사가 되는 약이 있단다. '웃음'이 바로 그것이란다. 억지로라도 웃어야 한다고 웃음동아리도 생겨나는 작금의 실태를 생각한다면 코웃음칠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가장 흔한 것이 소중한 것이라고 백번을 말해도, 행운보다는 행복이 우리 주변에 더 많은 것이라고 천번을 말해도 변하지 않는 우리의 의식구조를 돌이켜본다면 쉽게 넘길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있는 나 역시도 무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은 좋으나 살아내야 할 현실이 그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라 말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너무 멀리 던져버리지는 말자. 너무 늦지 않은 날에 그것만이 우리가 살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까닭에. 풀 한포기, 꽃 한송이, 나무 한그루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는 그날, 내려놓음과 비움을 벗삼아 느리게 가는 발걸음이 우리 삶속에 둥지를 트는 그 날, 진정한 행복이 찾아올거라는 걸 내가 믿기에.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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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이선희 옮김 / 예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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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울 때 절망할까? 아니면 죽고 싶을만큼 괴로운데,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을 때 절망할까?

- 사람을 비난하는 말에는 두가지가 있다. 나이프의 말, 십자가의 말....

 

크게 보면 저 두 가지의 명제로 압축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까?  하지만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닌 듯 하다. '왕따'라는 주제는 이미 우리 주변에 만연하다. 심각하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상황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도 우리의 현실이다. 그것이 모두 교육의 현실이 잘못된 탓인양 말하고는 있지만 뭔지모를 묵직함으로 찾아드는 꺼림칙함도 어느정도는 인정해야만 한다. 무조건적으로 교육때문이라고 탓을 하기에는 모두가 어쩔 수 없이 켕기는 마음을 숨겨야 하는 탓이다. 지금의 사회적 병폐를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억지다.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던 때도 있었던 까닭이다. 물론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던 그 시절에도 문제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죽음이라는, 그것도 너무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죽음이라는 의미와는 거리가 있었을 것이다. 특히나 어린세대에게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情'이라고 말하는 그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흔히 '인간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 우리는 잊고 산다. 어쩌면 잃어버리고 싶어 안달하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해야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모순을 안고 말이다.

 

'왕따'를 당하던 중학생의 자살이 몰고 온 파장은 컸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아프고 고통스러웠을 사람은 누구일까? 남겨진 유서속에 그 네사람의 이름을 쓴 것은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일전에 우리에게도 그런 학생이 있었다. 남겨진 유서로 인해 일었던 사회적인 파장도 역시 컸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나이프의 말과 십자가의 말 중에서 너는 어느쪽이냐고...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입는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입힌다. 그렇지만 상처를 받고, 상처를 입었다는 그 배경은 서로가 다르다. 그래서 그 아픔의 깊이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얼만큼의 깊이로 그 상처의 흔적이 남는가는 중요하다. 나이프의 말처럼 한번 찔리고 마는 아픔이라면 좀 나을까? 평생을 짊어지고가야 할 십자가의 고통보다는 나을 수도 있을까?  작가가 말하는 건 십자가의 고통이다.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니었지만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십자가인양 짊어져야만 했다. '방관'했었다는 이유로.. 절망속에서 죽어갔을 친구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이유로... 나만 아니라면 괜찮다는 사회적인 풍토를 생각하게 한다. 나만 아니라면 괜찮을 나쁜 순간과, 나라면 더 좋겠다는 좋은 순간을 우리는 선택할 수 없다. 그래서 더더욱 이야기의 주제가 씁쓸함을 남긴다.

 

고뇌하고 망설이고 상처를 받으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 20년간의 이야기... 라는 말이 보인다. 그렇게 한 순간에 끝날 줄 알았고, 또 그렇게 한 순간의 일이었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한 소년의 죽음... 그러나 죽은 이에게 불리워졌던 이름의 주인들은 그렇지 못했다. 아니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거라고 말하고 있다. 그 네명의 이름은 특정되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의 이름인 것이다. '방관'하고 '외면'했던 우리 모두의 이름인 것이다. 끝내는 용서하지 않는 것으로 아들의 존재를 부여잡고 싶어했던 아버지의 절제된 분노와 무표정함은 절절한 느낌과 함께 눈물샘을 자극한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심정이 너무나도 아프게 전해져오는 까닭이다.  입속의 칼이라는 말이 있다. 칼과 총을 들이대야만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너무도 뻔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심한 감정의 흔들임을 겪어야 했다는 게 놀라웠다. 같은 세대를 살고 있는 아들을 둔 부모였기에 그랬던 것일까?  나 역시도 무언가 방어할 것을 찾아헤매며 이 세상은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거라고 모르는 척 외면하는 일들이 많았던 까닭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틈엔가 우리는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공범자'라는 틀에 갇혀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만큼은 '피해자'일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한 소년의 죽음을 바라보는 두 기자의 각도가 많은 울림을 전한다.  누군가가 내민 '구원의 손길'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주 차갑게 다가서는 진실의 체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묘한 분위기속에 갇혀버려 어쩔 수 없이 나 역시도 '공범자'가 되고 말았던 순간들은 아찔함으로 남겨진다. 문득 묻고 싶어진다. 지금 내가 짊어지고 가는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십자가를 짊어졌다는 말이 생각나서 하는 말이다. 태어남으로 인해 온전히 내 몫으로 짊어져야 할 십자가 말고도 내가 짊어진 십자가가 또 있는가? 나로 인해 또다른 십자가를 짊어져야만 했던 이는 몇이나 될까?  다시 나를 돌아보게 되지만, 돌아보는 순간은 언제나 아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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