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격리 - 전염병에 맞서 싸운 한 도시의 기록 (1900-1910)
마릴린 체이스 지음, 어윤금 옮김 / 북키앙 / 2003년 6월
평점 :
전염병에 맞서 싸운 한 도시의 기록- 이라는 소제목처럼 1900년부터 1910년까지 장장 10년에 걸쳐 페스트와 싸운 샌프란시스코의 기록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을 지은이의 바쁜 발걸음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가감없이 사실적인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10년이라는 시간속에서 잉태되어졌던 수많은 아픔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닐듯 싶다. 인간이 살아가는 형태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그토록이나 심한 열병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직까지도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는 페스트와의 전쟁이라는 말은 살짝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올 것 같은 유령처럼 느슨해져가는 우리의 불감증을 꼬집기라도 하듯이. 물론 그때와 지금의 주변환경은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양분화되어가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졌거나 못가졌거나, 좋거나 나쁘거나, 깨끗하거나 불결하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서로가 서로를 도외시하는 두려운 현실말이다.
정치라는 틀에 갇혀 자신들의 이득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지난 세월속에서 그랬듯이, 아마 오랜세월이 지난 먼 미래속에서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가진자들의 탐욕 또한 마찬가지일터다. 오죽했으면 아흔아홉개를 가진 사람이 나머지 한개를 탐한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말이다. 자신의 힘과 부를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움직임은 뻔하다. 힘이 있는 자는 그 힘을 잃게 될까 가슴을 졸일 것이고, 부를 가진 자는 하나라도 놓치게 될까 안절부절할 것이다. 사실이 그랬다. 페스트라는 전염병으로 하나둘씩 사람이 죽어갈 때 그들은 현실을 외면했다. 그런 결과로 그들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전염병의 확산이었다. 그런 결과로 인해 도시는 격리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한 사람만의 힘으로 그렇게 큰 재난을 막아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였는지 후반부에서 말했던 '피리부는 사나이' 를 잊지 않았다는 말은 가슴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든다.
쥐들을 통해 퍼져나갔던 페스트는 다람쥐에게로 전이되었다. 설치류를 통해 병균을 실어나르는 벼룩들은 지금까지도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다. 부정과 외면에서 인정과 협조로 변하는 과정이 눈물겹다. 페스트를 이겨내기 위해 모두가 힘을 합쳤던 덕분에 지금의 샌프란시스코가 있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어느 누군가가 짊어져야만 했던 십자가의 무게는 가혹했다.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그려내는 문장들은 긴장감이 느껴지게 한다. 인종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미국인들의 냄새나는 모습은 역시 껄끄럽다. 반면에 자신의 민족을 위해 하나로 뭉쳐지는 중국인들의 모습은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지금까지도 중국은 이민자들을 위한 모든 조치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해결해 나간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어 한편으로는 부러움까지 자아내게 한다. 페스트로 인해 겪었던 10년이라는 세월이 참 많은 것을 알게 하고, 보게 하고, 느끼게 해 주었다. 전염병은 인류가 살아있는 한 계속적으로 이름을 바꾸며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지침서가 되길 바란다는 말은 묵직하게 느껴진다. 전염병에 대처하는 자세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가 바뀌지 않는 한 반복되어질 수 밖에 없는 일인 까닭이다. 인류의 역사상 부끄럽지 않은 10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