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세우는 옛 문장들 - 언어의 소금, 《사기》 속에서 길어 올린 천금 같은 삶의 지혜
김영수 지음 / 생각연구소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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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한쪽 벽에는 한자로 쓴 四字成語 두개가 큼지막하게 걸려있다. 가훈이다. 특별히 가훈을 만들고 싶어 만든 건 아니다. 오래전부터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그래도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않을까 싶어 결혼하기전부터 좌우명처럼 생각했던 말을, 아들녀석이 태어나면서 가훈으로 삼자고 결정했던 게 20년 가까이 눈만 돌리면 보이는 곳에서 나와 항상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말, 易地思之(입장을 바꿔 생각해볼 줄 알아야 한다) 와 知過必改(잘못을 알았다면 반드시 고치도록 노력하라).. 이 책을 접하면서 혹시나하는 마음에 유래를 찾아보았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는 말이야 그렇다치고 知過必改에 대한 유래가 재미있다. 知過必改하고 得能莫忘이라... 허물을 알았다면 반드시 고치고, 고칠 수 있게 되었다면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공자의 제자 자로와 자하에 관한 이야기로, 자로는 가난하고 천한 집안에서 부랑아처럼 살았던 사람임에도 공자의 제자가 되고 난 후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말에 화를 내지 않고 고쳤다는 말이 보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실천을 강조한 말인데 결코 쉬운 말은 아닌듯 하다. 그렇다해도 내가 죽을때까지는 그냥 벽에 걸어둘란다^^

 

이 책은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故事成語에 관한 이야기다. 옛날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이야기속에서 나왔다는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거기에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무언의 지혜가 담겨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실천하기만 한다면야 그것처럼 좋은 일도 없겠지만 실천한다는 게 그리 녹녹치않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끊임없이 들여다보면서 자신을 바꾸어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한번쯤은 그런 말들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알고 싶었다. 우리가 하는 말속에서 四字成語나 영어단어가 불쑥 불쑥 튀어나올 때 잘난척 한다는 생각보다는 그래도 조금은 멋져보인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쓰여질 때 그 말은 조금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잘못 알고 있었구나, 하는 문장이 꽤나 많다는 걸 알았다. 수박겉핥기식으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살아가면서 그런 일들은 그야말로 비일비재하다. 그저 남이 쓰니 나도 쓴다는 식이거나, 어디선가 들은 듯한 말이니 주워다 쓰는 식으로 너무나도 피상적인 접근이 많았다는 것도 인정해야만 했다.

 

가장 흔하게 써왔던 九牛一毛라는 말속에 담긴 그 깊은 의미를 이제서야 바로 알게 되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아홉 마리 소의 털 한 올.... 그저 많은 것중의 하나라는 뜻으로만 쉽게 사용했던 말속에 궁형을 당해야만 했던 사마천의 아픔이 그토록이나 절절하게 녹아있을 줄이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듯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는 책 속의 말은 가슴 한쪽을 뜨끔하게 한다. 擧世混濁, 唯我獨淸 이란 말도 보인다. 세상은 탁한데 오직 나만 맑다는 그 말을 듣고 비아냥거렸다는 농부와의 일화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擧世混濁, 唯我獨淸, 衆人皆醉, 唯我獨醒...세상은 온통 흐린데 나만 홀로 맑고, 모두가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는 말에서 나왔다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듯이 故事成語를 만들어낸 이야기속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삶의 지표로 삼을만한 말들이 많이 보인다.

 

문득 오래전에 항간에 떠돌던 黑猫白猫라는 말이 떠올랐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으로 중국의 鄧小平이 했던 말이다. 가끔씩은 어디서부터 나온 말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어 당혹스러울 때도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번 찾아보았더니 猫頭懸鈴 '고양이(猫) 머리(頭)에 방울(鈴) 달기(懸)'로, 旬五志에 실려 있는 이야기란다. 고양이목에 방울달기라는 속담으로 불가능한 일을 논의할 때 쓰이는 말이라지만 그만큼 개혁을 향한 등소평의 강한 의지를 드러낸 말이란 생각에 모르는 새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주제가 좀 딱딱하기는 해도 곁에 두고 생각날때마다 읽어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우연히 마주친 <旬五志>...<十五志>라고도 한다는데 책이 보름만에 완성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설화의 자료를 볼 수 있다하고, 그 책의 말미에 많은 양의 속담이 실려있어 그 뜻풀이와 함께 조선시대의 속담에 대해 알 수 있다는 말에 시선이 간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쯤 읽어봐야지 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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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 - 다큐PD 왕초의 22,000킬로미터 중국 민가기행
윤태옥 지음, 한동수 감수 / 미디어윌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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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문득 생각난 주제가 하나 있다. 바로 전통가옥이라는 말이다. 전통가옥이라 하면 말 그대로 전통적인 형태의 집을 말하기도 하지만 특정한 문화가 담겨있는 집이라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 그것을 우리는 韓屋이란 말로 부르기도 한다. 韓屋이라... 그렇다면 기와집이 한옥일까? 초가는 한옥이 아닐까?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 古宅이란 말로 부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民家라고 부르고 있다! 답사를 다니면서 내가 들어가 볼 수 있었던 전통가옥의 형태를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일전에 군산을 찾았을 때 보았던 일본식 가옥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은데 그런 집들이라는게 대부분 일반적인 주택이라고는 볼 수 없는 형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하는 말이다. 군산거리에서 지나쳤던 장옥을 떠올려본다. 들어갈 수 없었지만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안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했을 일본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우리가 韓屋이라는 이름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초가집보다는 커다란 기와집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사실이다. 오직 그것만이 우리 민족이 살아왔던 주거형태라는 듯이 말이다. 실제적으로 그 시대를 살아내면서 주거문화의 형태를 이루었던 것은 초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이 책속에서 볼 수 있었던 주택의 형태라는 건 조금은 특이했다. 어떤 특정인의 집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한시대를 거쳤던 다양한 민족의 삶이 오롯이 들어있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수민족끼리 모여살다보니 저마다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책을 소개하는 글을 보면서 혹시나하는 마음과 함께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생겼었다. 어쩌면 그 속에서 우리문화를 아우르는 어떤 것을 만날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다각적인 면으로 보았을 때 한,중,일 3국의 특징이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중국을 크게 생각했다던 우리 역사속의 시각을 생각해볼 때 나를 찾아왔던 기대감이 그다지 잘못된 것만은 아닐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랬는데 뜻밖에도 정말 멋진 여행이 되었다. 단순히 집의 형태만을 보겠거니 했다가 그 많은 민족의 역사와 생활상, 그리고 그들의 삶을 주거형태를 통해 볼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대박! 일년의 반은 중국에서 살다시피 한다는 지은이의 삶이 엄청나게 부럽기도 했다. 눈으로만 보는 관광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한 줄의 글귀도, 한 장의 사진도 허투루 넘길 수 없었음이다.

 

가장 먼저 소개하고 있는 사합원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우리의 옛주거형태와 비교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양반네들이 살았던 가옥과 비슷한 점이 없지않아 있어 보였다.사합원에 비해 한옥이 더 개방적이라고는 하지만 마당을 중심에 두어 반사되는 햇빛을 받았다는 것도 그렇고, 여자들의 공간을 뒤쪽으로 배치했다는 것도 그렇고, 대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영벽(또는 조벽이라 함)을 보면서 우리네 양반가옥의 내외벽을 생각했다. 물론 우리의 한옥과는 현저하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의 전통적인 주거형태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사합원이라 한다. 네 채의 건물이 모여서 가운데에 마당을 두고 이루어진 'ㅁ'자형 집이다. 집을 뜻하는 한자 '宮(집 궁)'도 사합원의 생김새와 유사하다고 하니 중국인들에게는 사합원의 의미가 남다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 주거형태로 인해 자연스럽게 생겨난 골목은 우리문화속의 골목이라는 의미와는 왠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같은 말인데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나라가 되었든 역사라는 건 전쟁의 결과물이다. 오죽하면 이긴자들의 이야기라는 말도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각각의 주거형태속에서 방어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촨디샤촌 산지 사합원, 베이징의 대원, 평방, 상하이 이롱주택, 안후이성과 저장성의 휘파건축, 둥양시의 노택, 강남의 구진 저택(이 집은 마치 요새같다!), 푸젠성의 객가 토루와 조루, 좡족자치구의 간란주택, 먀오족의 조각루, 안순의 둔보, 구이양의 석판방, 지금도 모계사회를 이루고 산다는 모쒀족의 목릉방, 동티베트의 조방과 조루, 동굴집, 초원의 게르, 어룬춘족의 사인주, 그리고 만주 조선족의 초가집.... 거칠었던 역사의 소용돌이속에서 살아남은 여러 민족의 집들이 현재까지 살아남았다는 건 정말 부러운 일이다. 그 이름만으로는 그들을 할퀴고 간 역사와 시대배경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살았던 집의 의미는 단순히 '집' 하나만으로 보기엔 너무 크게 느껴진다.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견뎌왔을 삶의 질곡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는 말이다.

 

제목이 참으로 도발적인 느낌을 불러왔던 책... 하지만 그 제목이 나오기 위한 앞의 글귀가 주는 느낌은 왠지 아련하다. 술을 마시기만 하면 옷을 벗어제끼는 사람에게 뭐라고 했더니 그가 했다는 말이 "나는 천지가 옷이고 집이 속옷인데 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 였다. 그 한 줄의 제목속에 담긴 수많은 의미를 곰곰이 따져본다. 깊이 들여다보기를 힘겨워하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제목을 주장했을 지은이의 속뜻이 참으로 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이 전부인양 살아간다. 이번 여행을 통해 겉으로 보여지는 것과 자신을 위해 내세우는 명분만이 절대적인 걸 아니라는 걸 새삼스럽게 되돌아보게 된다. 한채의 집이 안고 있는 의미가 정말 크게 다가왔던 순간이기도 했다. 이런 멋진 여행을 함께 즐길 수 있게 해 준 지은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런 주제를 따라 걸으며 맛볼 수 있는 중국이라면 흔쾌히 떠나보고 싶다. 중국, 한번은 가봐야 할 나라....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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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세트 - 전3권 샘깊은 오늘고전 15
유성룡 원작, 김기택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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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懲-지난 일을 뉘우치고, 毖-후세를 위해 앞으로의 교훈을 찾는, 錄-뼈아픈 역사의 기록' ... 제목에서부터 비장함이 묻어나는 책이다. 지금의 우리는 과연 그 뼈아픈 역사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고 있는가? 그래서였을 것이다. 지은이의 말이 사무치도록 깊은 울림을 주는 까닭은. 일본을 탓하지만 말고 그 침략을 통해 우리의 잘못은 없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지만 부끄러움을 빨리 잊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인지라 그다지 큰 교훈을 찾지 못하는 것도 서글픈 우리의 현실임에는 분명하다.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고 용기를 내는 사람만이 진정한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한 임진왜란' 이란 3권의 부제에 공감하지 못하겠다. 진정한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징비록'은 두번째다. 무슨 재미로 같은 책을 두번이나? 하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겠으나 출판사마다 저마다의 특징을 갖고 있는 탓인지 나름대로는 재미있게 보았다. 고전이라 하니 원본이 바뀔리야 없을테고 3권으로 나누어 그 기록의 생생함을 보여주고자 한 듯한 마음이 전해져 왔다. 1권 유성룡이 보고 겪은 참혹한 임진왜란, 2권 달아난 임금 남겨진 백성,3권 그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한 임진왜란... 각 권의 부제만 보더라도 어떤 장면이 그려질지는 훤히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웠다.

 

유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이었으며 도체찰사라는 벼슬을 하고 있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혹은 외교적으로 많은 힘을 썼던 사람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잘 알다시피 임진왜란의 주역들을 발탁했다는 커다란 의미를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전쟁을 끝낸 뒤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후세에 똑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기록을 남겼다. 남한산성의 역사를 그린 <산성일기>처럼 담담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정유재란때 일본에 잡혀갔던 강항의 기록인 <간양록>처럼 간절함이 묻어나기도 한다. 왕과 나라를 향한 징하디 징한 충정 또한 담겨 있으니 그 시대가 과연 왕조시대였구나 싶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음이다.

 

책을 읽으면서 간혹 보이던 그림들이 무슨 의미일까 싶었다. 조금은 낯선 기법의 그림이었음에도 그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으나 강한 느낌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책의 말미에서 그림에 대한 해설을 해주고 있다. '이야기 너머, 상상의 이미지들' 이란 제목이 왠지 아련하다. 불에 달군 인두로 목판에 밑그림을 그린 뒤 채색을 입힌 '채색 인두화'라고 하는데 그 말조차도 낯설었다. 하지만 예전에는 인두화를 그리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한번 되돌아가 꼼꼼하게 그림을 살펴보다가 그림만으로도 한권의 책이 될 수 있겠구나, 조금은 놀랍기도 했다. 하나하나의 그림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이 있었을까? 그림이 안고 있는 상징성이 이토록이나 큰 것이었구나 싶었다. 숨고 숨기고 숨쉬고 숨막히는, 모두 한 목소리의 처량한 털들, 비좁은 구멍-막힌 산, 비어있는 주인의 얼굴, 아무도 치료할 수 없는 바람, 무뎌진 칼춤, 이빨 자국같은 흔적, 녹슨 칼... 그림마다 붙여진 제목이 비장하다. 어떤 그림은 조금 무섭기도 하고, 어떤 그림은 조금 해학적이기도 하지만 그림속에 우리의 전통이나 일본의 전통을 숨겨놓았다고 하니 그림의 의미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괜찮을 것 같다. 각 권마다 전쟁사를 연구하는 분의 해설이 있는 것도 이채롭다. 당시의 상황을 청소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렵지 않게 풀어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해설을 붙인 까닭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에게는 너무나 피상적인 전쟁의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3권이지만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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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오케스트라, 우주의 선율을 연주하다 - 처음으로 읽는 궁중음악 이야기
송지원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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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상,각,치,우... 우리나라의 음계로 알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찾아보니 <악학궤범>에 중국음악을 설명하는 글로 사용되었다는 말이 보인다. 한국식 궁상각치우가 따로 있다는 말도 보인다. 그런데 나는 왜 우리음악을 대표하는 말쯤으로 배웠던 것일까?  다시보니 문묘악과 같은 음악은 중국식 궁상각치우로 봐야하지만 향악을 말할 때는 한국식 궁상각치우를 써야 맞다는 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진짜로 머리 아픈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머리가 아프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고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도 된다. 우리 음악인데 우리는 왜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까? 박물관을 찾아가봐도 악기형태를 보고, 그 소리를 들으며 그것을 연주했던 음악인들의 이름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낼 수 없는 것일까?  들으면 좋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우리음악인데 왜 그토록이나 멀게 느껴지는 것인지 도대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도 일년마다 들을 수 있는 종묘제례악과 성균관의 석전대제에서 들을 수 있다는 문묘제례악..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이라고? 종묘제례악이 향악계에 속한다는 말은 의외의 놀라움을 가져다 주었다. 조선시대에 궁중의례에서 사용했다는 전통음악을 아악이라고 했으며 거기에 반하는 음악을 향악과 당악이라 했다고 한다. 향악은 말 그대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전해져내려오던 음악으로 속악이라고도 한다. 당악 또한 말 그대로 삼국시대에 당나라에서 유입된 음악이다. 외세로부터 들어온 음악과 우리의 토속적인 음악을 구분하기 위하여 향악이라 했다고는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향악이란 말은 민속적인 의미를 더 크게 담고 있는 것 같다. 그야말로 일반 백성들의 음악쯤이랄까? 당시 3D업종에 속했다는 음악인의 길.. 우리 어릴때도 '딴따라'라는 말로 업신여김을 받았었다는 기억이 난다.

 

<악학궤범>이 어떻고 <시용향악보>가 어떻다고 아무리 말해도 잘 모른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 게다. 종묘제례에 대해 공부할때 軒架와 登歌에 대해 배우면서 아하, 그렇구나 했었던 때가 생각난다. 제례악을 연주하는 장소는 조금 높은 곳과 낮은 곳이 있는데 낮은 곳에서 노래와 함께 연주를 하는 악대를 헌가라 하며 높은 곳에서 노래없이 그냥 연주만 하는 악대를 등가라 한다. 헌가에는 관악기와 타악기를, 등가에는 타악기와 현악기가 중심이 되어 연주를 한다. 책을 읽다보니 그 웅장한 음악소리가 귓가에 내내 맴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먼저 출간된 <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의 개정판이라고 한다. 아마도 모드라마에 나왔던 '장악원'이라는 관청때문에 관심을 모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책들이 더 많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것은 좋은 것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정작 다가갈 수 없어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좀 더 쉽게 우리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책이 더 많아지기를 개인적으로나마 바래보는 것이다. 지금의 국립국악원에 해당한다는 장악원을 중심으로 조선 시대 음악인들의 일상을 그렸다는 그 책이 궁금해진다.

 

내용이 총 4장으로 분류되어져 있는데 3장의 새로 쓰는 樂人열전4장의 이야기가 있는 樂器열전을 통해 조선의 음악인들과 우리 악기를 알 수 있어 좋았다. 1년 사시사철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내야 했다는 장악원 사람들.. 가장 많이 출연했던 행사가 제사 의례였다는 말을 통해 조선이 어떤 나라였는지 조금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음악조차도 의 조화를 추구했다는 말이 보여 하는 말이다. 맹사성이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그밖에도 박연이나 성현, 임흥, 천재적인 기예꾼이었다는 정렴, 악보제작의 달인이었다는 허억봉, 한립, 이연덕, 김용겸... 낯선 이름이 많이 보이지만 귀가 밝았던 왕도 꽤 많았다는 말이 시선을 끈다.

 

가야금 소리가 가장 멋지게 들리는 곳은 토담집이다... 흙으로 지은 집에서 가야금 소리를 들으면 소리가 너무 울리지도 않고 먹히지고 않아 온화하면서도 섬세한 소리가 하나하나 살아난다는 말이 잠시 시선을 멈추게 한다. 자연과 어울어져 있을 때 그 악기도 제대로 된 소리를 내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니 살풋 웃음이 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겹쳐서. 아무래도 음악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형태에 따라 변하는 모양이다. 자연을 멀리하는 형태속에서 전자음이 탄생하는 걸 보니. 가끔 정말 한번 해볼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지금도 그럴 수 있다면 해금을 배워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그 슬프고도 아련한 소리가 좋아서. 어렸을 적 친정아버지의 퉁소소리가 너무 좋아서 한번 더 불어달라고 아버지를 졸랐던 기억이 난다. 비파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비파가 좀 더 일찍 대중화의 길로 들어섰다면 지금의 기타쯤은 충분히 이겨내고도 남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기기도 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제사 거문고와 가야금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비생각

 

 

우리가 보통 음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이는 외래어인 music을 번역한 것이고, 전통적으로는 '음'과 '악'이 각각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음'이란 음이 일정한 질서로 배열되어서 일정한 곡조를 이룬 것을 말하고, '악'은 干과 戚, 羽와 旄를 들고 추는 춤까지 수반된 것을 의미한다. 역대 왕과 왕비를 제사하는 제사의례에서 연행되는 '악'은 유학적 우주관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총체적 의미의 '악', 즉 樂歌舞가 모두 갖추어져야 한다. 그런 까닭에 등가악대와 헌가악대, 그리고 춤인 일무를 갖추어 연행하게 된다. (-82쪽)

 

登歌 : 종묘나 문묘, 사직등의 제례를 거행할 때 음악을 연주하는 악대 가운데 堂上, 즉 댓돌 위에 편성되는 악대. 제례뿐만 아니라 가례, 빈례, 군례의 예를 행할 때에도 당상에 편성된 악대는 등가라 했으며, 등가가 연주하는 음악을 登歌樂 또는 登歌之樂이라 했다.

軒架 : 堂下, 즉 댓돌 아래의 뜰에 편성되는 악대. 헌가가 연주하는 음악은 軒架樂 또는 軒架之樂이라 했다. 헌가는 제후국의 위격에 해당하는 악대의 명칭으로, 고종이 황제국을 선언한 1897년 이후에는 宮架로 바뀌었다. (-33쪽)

 

雅樂 : 원래는 고려시대 중국 송나라에서 들여온 제사음악을 가리켰지만 조선시대가 되어 아악 선율을 연주하는 제사음악을 모두 아악이라 하였다. 궁중에서 사용하는 당악과 향악을 속악이라 불렀던 것과 대비되는 용어이다. 현재는 궁중음악을 비롯하여 민간 지식층의 음악을 아울러 아악 혹은 正樂이라 이르기도 한다.

唐樂 :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유입된 당나라의 음악과 송나라의 속악. 원래부터 있었던 향악과 구분하기 위해 붙인 이름으로, 오늘날 한국 음악에서 당악이라고 하면 당나라 음악에서 유래된 것은 없고 거의 송나라 詞樂에서 유래된 것들이다.

鄕樂 : 삼국시대 이후 조선조까지 사용되던 음악의 한 갈래로, 당악과 함께 속악으로 분류된다. 순수한 우리 재래 음악과 서역에서 들어온 음악도 포함된다. 삼국시대에 당악이 유입된 뒤 외래의 음악과 토착음악을 구부하기 위하여 명명되었다. (-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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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 이현수 장편소설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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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24일

"어떤 피란민도 미군 방어선을 넘지 못하게 하라. 전선을 넘으려는 사람은 모두 사살하라. 어린이와 여자들은 재량권을 부여한다."

1950년 7월 25일

'어떤 피란민도 미군 방어선을 넘지 못하게 하라."

1950년 7월 25일

"왜 피란민을 항공기로 공격하는가? 피란민 공격금지 지침을 수립할 것을 건의하는 바이다."

1950년 7월 26일

"이 시각부터 피란민들의 미군 방어선 통과를 금지한다. 방어선에 접근할 경우 경고사격 후 총격을 가하라."

1950년 7월 27일

"이 지역에 보이는 모든 민간인을 적으로 간주하고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하라."

1950년 7월 29일

"이제부터 보이는 자는 모두 적으로 간주한다."

 

우리가 모두 적으로 간주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 5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남아 있던 문서 중 가장 결정적인 문서 한장이 사라졌다고 한다. 1950년 7월 26일 오후부터 29일 아침까지의 기록... 그 나흘동안의 이야기를 이 책속에서 말하고 있다.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철교 밑에서 일어났던 그 사건은 현재까지도 아무런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사살되었던 300여명의 원혼을 달래지 못하고 있다. 미군 전투기의 폭격을 피해 노근리 쌍굴로 숨었지만 미군의 기관총에 모두 죽어야 했던 그 처절한 죽음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묻고 있음이다. 역사가 안고 있는 또하나의 아픈 이야기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그러나 우리의 기억속에서는 퇴색되어져가는 이야기..

 

그 끔찍한 학살은 어처구니없게도 북한군에게 포로가 되었던 한장교의 실수로 인하여 벌어졌다. 그야말로 '라이언일병 구하기'쯤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누구의 잘못이라고 감히 손가락질 할 수도 없다. 속을 헤집어보면 바로 찾아낼 수 있는 지긋지긋한 그놈의 이념전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아픔을 겪어냈으면서도 지금까지 죽지않고 살아남아 우리의 가슴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처절했던 현장을 책속에서 마주치는 건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책속에 보이는 말들이 서러웠다. 한번도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단어 하나가 주는 느낌이 너무 아팠다. 귀에 익고 눈에 익은 말이 그렇게 변해왔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정말 부끄러웠다. 전쟁이 아니라 사변으로 보아 6.25사변이나 6.25동란으로 배웠던 내 어린시절이 생각났다. 남측의 입장에선 자유수호전쟁이었으며, 북측의 입장에선 조국수호전쟁이었다는 말이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랬던 것이 언제부터 한국전쟁으로 불리워지고 있었던 것일까? 솔직히 나는 알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자유수호를 외쳤던 남측군대가 마을을 지나가면 더 힘겨웠다던 엄마의 말씀이 떠올랐다. 마을 사람들에게 더 많은 해를 끼친 쪽은 남측이었다고. 남측군대가 보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는 건, 모순으로 뒤범벅이 되어버린 세상사의 보이지않는 측면이었을까?

 

과연 미국은 한국의 수호자인가?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한국을 이용한 지배세력인가? 미국에 대한 평가는 개인의 정치적인 성향을 확정한다 는 책속의 말을 들여다본다. 그러나 이제는 묻지 않아도 누구나 답을 알고 있는 물음이 아닐까 싶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이고 펄펄 끓는 국' 이라는 책속의 말에 백퍼센트 공감한다. 잘못 먹으면 입천장을 데기 쉽다는 말도 일리있는 말일터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너무 피상적으로 노근리사건을 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양파껍질처럼 까면 깔수록 자꾸만 눈물나는 이야기. "우리는 죽었고, 죽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는 그 한마디가 서럽디 서럽게 다가온다.


촘촘하다. 씨줄과 날줄이 견고하게 짜여져 손가락을 대면 튕겨져 나올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 현장속에서 나조차도 허덕이게 만드는 묘한 긴장감은 책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곁에 머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 좋았다. 피해자의 입장만이 아니라 그순간을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강요하지 않는 담담한 흐름이 새삼스럽다. 이야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강렬하다. 단지 몇 사람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역사의 한 단면이 이토록이나 절절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저마다의 가슴속에 각각의 아픔을 안고 그 지난했던 세월을 살아내야 했던 노근리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채로웠다.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인, 아니 현재진행형일 수 밖에 없는 그 이유가 책속에서 스멀거린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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