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람에게 길을 물으니 네 멋대로 가라 한다 - 허허당 그림 잠언집
허허당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7월
평점 :
허허당... 비고 또 빈 집... 그 집에는 무엇이 살까? 알 수 없지만 그 집속에 한번쯤 들어가보고 싶다는 욕심이 인다. 비고 또 빈 집속에 나를 가두면 나를 비워낼 수 있을까? 문득, 나로 인해 채워져버릴 그 집이 서글퍼질 것 같아 그 욕심을 이내 버리고야 만다. 사찰도 없고 시주도 안받고 있으면 있는대로 모두 세상과 나누어 갖는다는, 그래서 자신의 소유로 된 재산이 하나도 없다는 스님의 말씀... 그 스님께서 그렸다는 그림이 재미있다. 禪畵가 뭘까? 깨달음의 경지, 모습이 없는 (마음의 영역에 속하는) 관념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 그렇기때문에 상징적이며 비유적이라는 말이 보인다. 어렵다. 글로 친다면 은유법쯤 될까? 일단은 말이 많지 않아 좋았다. 많지도 않은 그 말조차 어렵지 않아 좋았다. 판단과 경계가 난무하는 세상속에서 붓끝에서 태어나는 새들의 날개짓소리가 크지 않아 좋았다. 있는 그대로를, 자연의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걸 다시한번 되새겨본다. 두마리의 새가 모여 한사람의 얼굴을 살포시 그려내는 그 순간이 미소를 불러왔다. 그렇게 잠시 일탈...
사람을 만나도 외롭고 안 만나도 외로운 것은 참 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요
사람을 만나도 공허하고 안 만나도 공허한 것은 참 나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존재의 길, 인생의 길, 행복의 길, 사랑의 길... 스님께서 보여주고자 했던 주제는 네가지였다. 누구나 한번쯤은 마음속에 품어보았음직한 의문점이란 생각을 한다. 지금은 너무 흔해진 군중속의 고독이란 말, 그래서 이제는 느낌조차도 갖지 못하는 서글픈 말이 불현듯 생각나는 건 왜일까? 누구나 부처라던 말을 떠올린다. 누군가에에 빛을 받으려하지말고 스스로 빛이 되고자 노력하라는 말씀이 그래서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대가 빛이라면 쫓아다니며 뿌리려 하지말고 고요히 앉아서 번지게 하라는 말씀이다. 선택을 강요하는 세상속에서, 누군가의 인정과 관심과 사랑이 강요당하는 세상속에서 고요히 번지는 빛이 될 수 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 분명할터다.
살다보면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는 것이 있다
그럴 땐 마음을 완전히 비워야 한다
안되는 것을 억지로 하면 그보다 큰 불행이 없다
채우고 비우는데 걸림 없는 자유를 말한다는 무소유... 솔직히 새삼스럽다.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쯤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소유에 대한 의미를 왜 자꾸 되짚어보게 되는 것일까? 내려놓을 수 없는 우리의 욕심탓일 것이다. 그 욕심이 마치 희망이라도 되는 양, 그 욕심을 내려놓으면 버텨내고 있을 내 삶이 무너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은근슬쩍 외면해버리고마는 삶의 진리들이 어디 한둘일까? 가끔씩은 자신의 우물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 우물에 비친 나의 얼굴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만 한다. 부끄럽지않은 삶을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가보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의 크기는 겨우 한 뼘이요
모든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무한대다
사람들은 이런 이치를 알면서도
한 뼘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사람들은 가슴속에 저마다의 잣대를 하나씩 갖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잣대로 다른 사람을 재고 평가한다고 한다. 참으로 무섭게 다가왔던 그 한마디를 처음 만났을 때 얼마나 두려웠었는지.....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나만의 자를 버리지 못했다. 버리고 싶었으나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나만의 잣대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틀에 갇힌 채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그 무엇이 답답할 때가 있지만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는 我執에 대한 집착이라니... 마음을 크게 굴리면 세상도 내 마음에서 뒹굴고 논다는 말씀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역시 쉽지않은 얘기.. 전기밥솥이 마지막으로 푸우우우~~~ 소리를 내며 밥이 다 되었음을 알릴 때 코가 벌렁대고 귀가 쫑긋거리고 창자가 밀렸다 당겼다하며 몸의 모든 것이 기절초풍한다는 글을 보면서 잠시 뜨악했다. 그랬는데 그 순간을 가리켜 행복의 도가니에 빠졌다, 고 말씀하시는 스님의 표정이 떠올라 피식 웃고 말았다. 어쩌면 그런게 우리의 삶은 아닐런지. 어쩌면 그렇게 단순한 일상속에서 발에 채이듯 가까운 것이 우리가 꿈꾸며 그리워하는 행복은 아닐런지.
그런 것이다
때론 멀리서 들려오는
반가운 사람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세상이 편안하다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문득
그리운 사람 하나 있는 것만으로도
한세상 살 만하다
그런 것이다
마음을 비우면 세상 모든 것이 편안하다
살 만한 세상이다
보여주신 그림들이 참 좋았다. 마치 아이가 붓을 들고 장난을 한 것처럼 어떤 그림은 뭐지? 싶었고 어떤 그림은 한참동안을 바라보게 했다. 이런 그림쯤이라면 나도? 하는 마음이 감히(?) 생겼는데 책을 덮으면서 문득 시선을 사로잡던 말 한마디가 그 마음을 부끄럽게 만들고 말았다. 세상을 살면서 누가 나를 구제해주길, 위로해주길, 이끌어주길 바라지 말라는 글이 스님의 목소리가 되어 내게로 날아올 것만 같아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지만 잠시 꿈처럼 찾아왔던 일탈의 이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