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22가지 재판 이야기
도진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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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耳懸鈴鼻懸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가장 먼저 생각난 말이다. 罪刑法定主義 라는 말은 옳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하고 그 형을 가함에 있어 정해진 원칙에 의한다는 것도 맞다. 그런데 막상 '法' 이란 말을 들으면 왜 저 단어가 떠오르는 것일까?  어쩌면 이미 오래전부터 관료주의적인 법의 해석이 난무했을거라고 늘 생각한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바로 '有錢無罪 無錢有罪' 다. 뭣도 모르는 것들이 그렇게 말한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오죽했으면 그런 말이 생겨났을까 싶어 하는 말이다. 나?  글의 시작부터 이미 부정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니 소크라테스가 했던 "惡法도 法이다" 란 말에 공감하기 힘든 사람중의 하나가 분명하다. 세상이 변하면 법에도 어느정도의 융통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럴 수 없다면 변한 세상에 맞춰 법도 어느정도는 변해줘야 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하는 까닭이다. 물론 법에 도덕적, 윤리적인 면들을 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세상은 변해가는 데 법이라는 테두리가 과거에 묶여 있다면 차라리 즁세적으로 '以夷制夷' 하는 게 더 낫다. 온갖 매체들속에서 난무하는 실제적인 以夷制夷의 형태가 그를 반증하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서도 내가 늘 궁금했던 것은 과연 법은 어떤 모습일까,였다. 이 책을 통해 그 어려운 낱말들에 대한 정의를 알아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말처럼 법은 늘 딱딱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살면서 경찰서나 병원을 가지 않고 살 수 있다면 행복한 거라는 말이 떠오른다. 왠일인지 사람을 위축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곳이기에 하는 말일터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시종일관 익살맞다. 그 말의 뜻처럼 웃기려고 일부러 우스운 말이나 행동을 하는 태도가 보인다는 말이다. 그래서 한걸음 더 물러서게 된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법이라는 게 가까워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책속에 등장하는 많은 예를 보면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는 걸 금새 알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이런 죄를 지면 이렇게 벌을 받아야 한다는 식의 결과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벌을 받아야 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으니 고마운 일임엔 분명하다.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22가지의 원리만 알고 있다면 일상생활속에서 답답하거나 고생할 일은 없을거라고 하니 두 눈 크게 뜨고 다시 봐야겠다.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재판 이야기' 라는 부제와 함께 등장하는 옛날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법의 범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이 아닌 법적으로 죄가 될 수 있는 행동은 어떤 것인지, 똑같은 행동을 놓고 죄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상황은 또 어떻게 정의를 내리는 것인지, 어쩌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보았음직한 주제들을 앞에 놓고 법의 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성냥팔이 소녀, 피리부는 사나이, 윌리엄 텔, 헨젤과 그레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봉이 김선달, 춘향이와 같이 등장하는 인물도 많지만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을 보여주며 그 재판의 원리를 따져보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운 말투만 제외한다면 퍽이나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제는 콩쥐보다는 팥쥐가 이목을 끌고 흥부보다는 놀부가 더 박수를 받는 세상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이 대접받는 세상이 된다면 살 만한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도덕적, 윤리적인 해석보다 법적인 해석이 우선되어야 했기에 내게 지금 이렇게 힘든 일상이 주어지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법에 관한 것은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게 더 낫지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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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단언컨대 이 책은 가장 재미있는 법률 입문서입니다
    from 책으로 책하다 2013-10-16 09:31 
    [서평] ⓒ추수밭 8월 경에 전례없는 호평을 받으며 인기리에 종영한 SBS 수목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였다. 난데 없이 표절 시비가 붙었다. 4~6회 분에 해당하는 '쌍둥이 살인 사건'이 2012년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출간한 의 도진기 작가 '악마의 증명' 편을 표절했다는 논란이었다. 출판사 측에서 먼저 저작권 침해에..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다니엘 튜더 지음, 노정태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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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찾았던 때가 떠올랐다. 진보와 보수의 충돌로 개관하기까지 말이 많았던 곳이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다. 그곳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볼 수 있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정말 놀랍다. 와, 이런일이 있었어?  이런 일도 있었구나!  교과서에서나 보았을 그런 장면들이 당시의 상황에 맞게 잘 설명되어져 있어 학생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겠다 싶었지만, 박물관을 찾았을 때 가장 놀랐던 점은 이제는 사회구성원의 한쪽으로 밀려난 어르신들의 끝없는 발길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그 때 그 시절을 회상하시는 걸 보면서 그 날, 참으로 묘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 분들이야 말로 한시대를 살아온 역사의 증인이 아닐까 싶어서. 당신들이 살았던 시절을 다시 되돌아보는 심정이 어떠했을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그 분들의 표정만큼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 각설하고,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데는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과 독립운동부터 6.25전쟁, 1945년 8.15광복을 거쳐 근대국가를 이루기 위한 경제개발과 산업화의 흐름이 이 책에서도 보이는 까닭이다.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변해가는 시민사회의 모습 또한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음이다. 한국의 자본주의와 세계로 뻗어나가는 모습도 이 책속에서 언급되어지는 까닭이다. 생각해보게 된다. 과연 대한민국의 미래는 핑크빛일까?

 

그런데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과 현재의 모습을 누군가의 입을 통해 전해듣는 건 어떤 차이일까?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면 좋아할 사람이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굳이 나쁜 점만 들춰내지도 않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은 점만 얘기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니엘 튜더라는 사람은 아직까지 대한민국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한국은 이런 나라라고 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가끔 우리는 말한다. 나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도 없다고. 그런데 솔직하게 말한다면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는 정말 다르다.  생각해보면 내가 알지 못하는 내 모습을 주변 사람이 더 잘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일까?  다니엘 튜더가 보여주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왠지 씁쓸하다. 어쩌면 제목부터가 마음에 안들지도 모르겠다.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그런데 그 제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어쩌면 저 말이 정답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어쩌면 저렇게 속속들이 주머니를 뒤집듯 보여주고 있는지 한편으로는 부끄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최첨단의 시대를 만들고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뒷면으로는 행복지수가 최저이며 자살률 최고라는 사실도 그렇거니와 신상이나 명품에 절절매는 그 모습 또한 그다지 유쾌하게 보이진 않는다. 가장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던 부분은 아마도 언론에 관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다소 부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말에 그렇지 않다고 다부지게 반박할 언론사가 과연 있을까? 모든 매체가 균형감각과 중도적 입장이 부족해보인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거기에 내 느낌을 하나 더 보탠다면 그 모든 언론매체가 이미 정체성을 잃었다고 말하고 싶다. 신문뿐만이 아니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그 모습은 정말이지 한심스럽다. 정말이지 꼴불견이다. 언론매체가 자신의 주장도 없이 세상의 말속에 뒤섞여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걸 볼 때마다 저건 아니지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 또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의 일부라고 말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기적을 이루었으나 기쁨을 잃었다는 말이 서글프다. 많은 것을 얻었으나 지금도 끝없이 경쟁을 부추키고 만족할 줄 모른다는 말도 역시 서글프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까지 비관적으로만 보진 않았다. 한국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그의 시선을 통해 그가 얼마나 한국을 사랑하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그가 들춰내는 우리의 이러저러한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우리가 정말 이랬었나 싶은 마음에 뒤가 켕기기도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함께 지적해준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옛말에도 있다. 나쁜 점을 지적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발전할 수 있어도, 좋은 점만을 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 사람은 더 나빠질 뿐이라고.  '良藥苦口利於病 忠言逆耳利於行' 이니 잘 받아들일수만 있다면 이런 책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새겨들을 일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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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스케치 노트 스케치 노트
장 프랑수아 갈미슈 지음, 이주영 옮김 / 진선아트북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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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출판사에서 끊임없이 도전하라고 유혹하는 스케치시리즈를 보면서 나도 한번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끄적거려본 기억이 있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왜 그리도 부러웠던지... 답사를 다니면서도 저런 풍경은 그림으로 한번 그려보고 싶다는 욕심을 부렸던 기억도 많다. 그래서 도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림, 그렇게 쉽지 않았다. 만만찮게 볼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그래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하지만 지금도 늘 그 신세다. 부러워만 하는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오래전에 내게 찾아왔던 <스케치 쉽게하기> 를 따라하면서 내가 느낀 건 역시 기초를 무시하면 안된다는 거였다. 미술에 관해 아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면서 감히 도전해보겠다고 설쳤으니... 어쩌면 일러스트를 좋아해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나는 지금도 그림을 한번 그려보고 싶은 것이다.
 
일전에 따라했었던 드로잉에 관한 책을 다시한번 펼쳐보았다. 기초 드로잉, 사람의 얼굴이나 표정 그리기, 사람의 몸체를 그릴 때 어떤 비율로 그려야 하는지, 사람이나 동물의 재미있는 일러스트 그려보기 등... 선과 면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해 형태와 명암을 표현하는 것까지 상세하게 나와 있지만 역시 쉽지 않다. 그랬는데도 다시 이 책을 펼친다.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그런데 펼치는 순간부터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세상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아름다운 도시들이 그림으로 표현되어져 있다는 놀라움!  도시마다 저마다의 특징을 안고 있는 건축물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지만 내게는 역시 어려운 일일테고, 일단은 펼쳐지는 그림속의 풍경들이 너무 좋았다. 스케치를 하기 위해 구도를 잡는 방법이나 원근법에 대한 설명은 이제 낯설지 않았지만 계절과 날씨에 따라 변하는 도시와 그 도시의 건축물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저자의 솜씨에 흠뻑 빠져들었다는 거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스케치 기법이나 원근법의 원리를 보면서 문득 사진을 생각했다. 이 설명처럼 그렇게 사진을 찍어도 멋있을거라는 엉뚱한 생각을. 사실 그림이나 사진이나 표현하는 도구만 다를 뿐이지, 하는 생각.... 너무 앞서갔나?  한참동안 눈으로만 씨름하던 책을 덮으면서 전문가와 초보자 사이에 생겨나는 이질감을 어쩌지 못했다. 그렇다해도 건축에 대한 기초 지식이나 건축의 자재를 설명해주는 부분은 참 좋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도전하는 나같은 초보자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어느정도 기본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다시한번 인정하게 되는 진리가 있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든,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가는 곳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다면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사진에 담을 것인지 보인다는 거였다. 목적과 목표가 분명하다면 역시 얻는 것도 많을 것이다. 책속으로 답사를 다녀 온 기분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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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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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미치 앨봄이란 이름이 떠올랐다.  <천국에서 만난 다섯사람>이나 <단 하루만 더>라는 그의 작품을 통해 전해졌던 그 묘한 느낌이 되살아났다. 정말 오래전에 읽었던 작품임에도 새삼스럽게 겹쳐졌던 까닭은 무엇일까? 가끔 우리는 묻는다. 당신은 영혼의 존재를 믿느냐고. 그런 주제를 담은 영화도 꽤나 많은 편이지만 영혼이 있다, 없다의 단순한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이 단순히 죽음뒤의 세상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그가 살아 있었던 사회의 어떤 단면들을 보여주고 있는 까닭이다. 몸은 죽었으나 영혼이 저편 세상으로 떠나지 못한다는 설정이 영혼을 믿는 사람에게도, 그렇지않은 사람에게도 묘한 분위기속으로 불러들이는 마력을 지닌 듯 하다.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중간계의 세상은 정말 있을까? 그 묘한 세상속에서 마주치는 인연들. 나쁜 인연이었든 좋은 인연이었든 다시 만난다는 건 좋은 일일까?  아무래도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이 인간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그 상대가 누가 되었든 같은 무게를 지니는 듯 하다. 무엇이 되었든 자신의 마음속에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는 게, 완벽하고 싶고 만족하고 싶어하는 우리네 정서에는 맞지 않는 모양이라고, 그래서 그렇게들 죽음뒤에도 무언가를 찾아헤매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또한번 기억하게 된다. 더 늦지않게 사랑한다는 말이 필요하다는 것을.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연을 맺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진실이라면 수도없이 많은 인연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테지만, 나와 가까운 곳에서 좋든 싫든 인연이라는 끈으로 묶여진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내 삶속에 자리잡는다. 그들과 함께 만들어내는 사회의 단면들은 좋아도 내 몫이며 나빠도 내 몫일 것이다. 그 인연들이 죽음속 세상에서 다시 만나 살아서는 하지 못했던 마음속 이야기들을 거리낌없이 들려준다. 살았을 때 했더라면 좋았을 그런 이야기들을.  왠지 서글프다. 세상이 사람을 속이는 건지, 사람이 세상을 속이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 아닐까? '情'이라는 말로도 표현되어지는... 가까이 있지 못하면 나눌 수 없는 그런 느낌들. 굳이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아도 알 것만 같은 상대방을 향한 나의 느낌들말이다. 작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아 조금은 씁쓸하다. 죽음뒤에도 서서히 변해가는 영혼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작가의 상상이 어느 정도의 공감을 불러온다. 물론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자신의 몸을 떠난 영혼들이 차마 저쪽 세상으로 떠날 수 없었던 것은 하나같이 예고되지 않은 죽음 때문이었다. 아직은 하지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해야했으나 하지 못한 것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나의 모습이다. 내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다시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가를 다시한번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후회와 미련이 없는 삶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렇다해도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되돌아본다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책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들을 통해 지금의 우리를 다시한번 돌아보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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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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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읽으면서 정말 대단하다! 라고 생각했었던 기억을 더듬는다. 우스개소리처럼 들리겠지만 그 뒤로 나는 정말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내가 무엇을 느낄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얼만큼의 깊이를 갖는다면 그렇게 느낄 수 있을까 싶었다. 얼만큼을 알아야 그렇게 바라볼 수 있을까 싶었다. 평생을 박물관사람으로 살았다던 사람이니 오죽할까 싶기도 하지만 그 느낌에 대한 부러움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혹시나하여 성북동 골목길을 더듬으며 찾아갔던 그가 살던 집은 내겐 그저 한사람이 살았던 옛집에 불과했다. 솔직히 특별하게 무엇을 바라고 간 건 아니었다. 역사의 산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그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은 욕심이었을 게다. 자그마치 10년동안이나 그의 작품이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랐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내겐 너무 멀기만 했던 최순우의 심미안이 내안의 무언가를 흔들고 있을 때, 두번째로 답사열풍을 일으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를 읽고나니 한대 맞은듯 얼얼했다. 어떻게 이렇게나 유려한 글솜씨로 우리문화유산에 대한 사랑을 풀어낼 수 있는지 놀라웠다. 가장 기억나는 말이 '아는만큼 보인다'는 거였다. 그 이전에도 이미 들어왔던 말이었을텐데 유난스럽게 파고 들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맞는 말이다. 우선은 관심이 있어야 알려고 한다. 그리고 알면 그 아는만큼 보이게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찾아가는 곳마다 엉터리같은 안내판들이 그렇게 미웠었다. 도무지 자기들만의 잔치인양 되지도 않는 용어를 적어놓아 우리문화유산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가는 그들의 행태가 나는 정말 싫었었다. 지금은? 지금이라고 뭐 달라졌을까마는 아무래도 이전보다 우리문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아지다보니 신경을 쓰긴 쓰는 모양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우리에게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다시한번 돌아보게 해준 작품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연속적으로 인기있는 작품으로 선정되는 것만 보더라도 틀린 말은 아닐 터다. 시작이 1990년대니 그다지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전국토가 박물관이다' 라는 그의 말처럼 가는 곳마다 나를 맞이하던 그많은 문화유산들은 갈 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아는 만큼 보인다' 는 진리가 새삼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간다. 거죽만 보고오는 답사가 되지 않기를. 너무 큰 욕심을 앞장세운채 그곳에 가지 않기를.


살아있는 역사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들의 말과 글이 크나큰 목소리로 내게 울림을 전해주어 한창 되지도 않을 욕심에 끌려다니지만, 현장에서 그만큼의 느낌과 분위기를 눈치챌 수 있다는 건 정말 고수가 아니고서는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이 책, 읽다보니 나를 무아지경으로 빠뜨린다.  각장마다 보이던 부제들만으로도 나는 벅찼다. 어떻게든 글로 표현해야 했기에 붙여주었을 글귀였겠지만  '역사를 배우기보다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는 한 줄의 글귀가, '광화문의 동상 속에는 충무공이 없다' 던 그의 말이 내게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가 언제 어디를 찾아갔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바라보던 그 눈길과 마음길이 아프고 아련했다.  백흥암의 비구니 스님을 바라보았던 그의 눈길과 마음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무등산을 바라보며 평등을 생각했다던 그의 말은 꽂히듯이 내게로 달려왔다. 감히 뭐라고도 말할 수 없는 그의 글은 상당히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겼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주 조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는 했다. 백마강에서 그가 했던 말, '역사는 과거로 떠나는 여정이 아니라 현재의 과제로 돌아오는 귀환입니다'... 이 말만큼은 지금을 사는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새겨졌으면 하는 욕심을 갖게 한다. 큰 나무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가슴속에 새긴다. 嗚呼痛哉라! 아직 한발자욱도 떼지 못한 나의 미욱함이 서글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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