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 집필진이 쉽게 풀어 주는 술술 한국사 1~6 세트 - 전6권 역사 교과서 집필진이 쉽게 풀어 주는 술술 한국사
노현임 외 지음, 심수근 외 그림, 오정현 외 감수 / 주니어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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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는 한국사 열풍이 조금은 걱정스럽기도 하다. 풍선 바람빠지듯, 거품처럼 순간적으로 일어났다가 언제 그랬느냐듯 관심밖으로 밀려나는 일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도 많은 까닭이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대학을 가기 위해서라면, 혹은 취직을 하기 위해서라면, 이라는 단서가 붙게 되면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우리의 역사인데 어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났던 것일까? 정작 한국사를 떠올리게 되면 외울게 너무 많아서 부담스럽다는 말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어찌보면 한국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더 문제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면 결국 우리나라의 교육현실과 부딪히게 되는 모순점이 드러난다. 이미 오래전부터 외워야하는 과목으로 낙인찍혀진 까닭이다. 나부터도 연대 외우랴, 거기에 맞춰 사건이나 인물을 외워야만 하는 공부를 했던 세대인 까닭이다. 언제부터인가 불기 시작한 역사기행은 지금 한창 물이 올랐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크게 한몫했다고 하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라면 아마도 왠만한 사람은 다 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문화유산을 답사하기 위해서는 미리 알고가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만큼 성의가 있어야만 한다게 나의 지론이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진리다. 답사를 가게 된다면 그곳에 상주하고 있는 해설사를 적극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다.

 

사실 한국사를 다루는 책은 많다. 서점에 가보라, 얼마나 많은 종류의 한국사가 보이는지. 전체적인 틀이야 어쩔 수 없으나 역사를 바라보는 각각의 시선이 다르다는 게 중요하다. 어떤 생각과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지기도 한다. 정사를 다룬 책도 그렇고 야사를 다룬 책도 그렇다. 그러니 많이 보고 많이 다녀보며 많이 느껴야 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이 책의 소개글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에 대한 오류 수정도 반드시 있어야만 할 것이다. '을사조약' 을 '을사늑약' 으로 바꾼다거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번 자리잡은 것은 여간해서 바꾸기가 쉽진 않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많이 알고 그것에 대해 옳은 것이 무엇인가를 판단한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듯 싶다.

 

총 6권으로 되어있는데 1권에서는 선사시대와 남북국 시대를 다루었고, 2권에서는 고려시대를, 3권에서는 조선시대를, 4권에서는 개항기, 5권에서는 일제강점기, 6권에서는 현대를 다루고 있다. 그많은 이야기를 담자고 한다면 여섯권으로 끝낼 수 있는 것도 아니겠지만 마치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같은 문체가 흥미롭다. 수도없이 보고 들었던 한국사인데도 들을 때마다, 볼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무엇보다도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던 그림의 느낌이 참 좋았다. 지도 하나를 그렸어도 정성이 느껴진다. 가장 나의 마음을 움직였던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소주제의 말미에 부록처럼 붙여진 이야기들이 좋았다. 중국과 일본의 건국신화라든지, 선덕여왕과 비교하여 대표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성 군주에 관한 이야기라든지, 임진왜란을 부르는 다양한 명칭이라든지... 이 책을 보게 된 이유이기도 하지만 현대를 다루었다는 점도 이채로웠다. 근현대사라고 뭉뚱그려 말하지 않고 근대와 현대를 각각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각권의 마지막에 붙여준 한국사연표가 새삼스럽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선조들이 昨今의 후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갑짜기 박물관에 가고 싶어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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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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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었다고?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건 단순히 소설제목일 뿐이다.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었다는 설정이 기가 막히지 않은가? 정말 발칙하다. 하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이렇게 기막힐 일이 어디 한둘일까? 아주 간단하게 세문장만으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도 있는데... 책의 제목이 시선을 끌었다. 거기에 세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라 한다. 슬쩍 살펴보니 서울의 변두리를 배경으로 삼았단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야기일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책속에서 만난다는 건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또한 직시해야만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 문제작이라면 열번이라도 읽어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펼친다.

 

아무리 헤야려봐도 가진 돈이라곤 4264원밖에 없는 삼류 작가와, 주식하다 가진 돈 다 날려버린 여자가 만난 것은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찾아주는 알바를 하면서였다. 불광천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거기에서 서식하는 오리들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어서 사진을 갖다줘야 하는 일이었는데, 장소가 장소인지라 어쩔 수 없이 그들은 마주치게 된다. 하루 일당이 오만원이나 되니 절절하게 돈이 필요했던 그들이 외면하기엔 어려웠을 오리 사진찍기는 살짝 그들의 양심을 흔들기도 하지만 느닷없이 나타난 꼬마가 합세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그들을 고용했던 노인도, 노인에게 고용된 세사람도 모두가 서로의 이름 석자 알지 못한 채 시작된 만남이었는데 그 설정이 왠지 씁쓸함을 자아냈다.

 

그리고 그들은 생각한다. 오리가 진짜로 고양이를 잡아먹었을까? 너무도 진지한 고용주 노인의 표정이 마치 영화의 한장면처럼 오버랩되어오는 환상이 느껴질만큼 이 책이 전해주는 느낌은 강하다. 이제 어떤게 진짜이고 어떤게 가짜인지 헷갈리는 지경까지 이를 모양인데 노인의 생활속에 얽혀드는 그들의 현실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 둘 수 없었던 그들의 절박함과 안타까움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알 듯 말 듯하게 다가오는 메세지가 순간 뭉클함과 분노를 한꺼번에 불러오기도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족이란 의미는 무엇일까? 숨가쁘게 달려가기만 하는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다가오는 사랑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꼬마의 입을 통해 다시한번 꼬집어보는 가족의 테두리는 아찔하다. 88만원 세대를 대표하는 두 젊은이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작금의 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조차 가늠할 수가 없다. 그만큼 우리의 현실은 아프다. 비이커속의 개구리를 떠올리게 한다. 물은 뜨거워지는데 그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서늘함이라니!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주변사람에게 갖는 우리의 관심과 이해도는 얼만큼의 크기와 깊이일까? 오리에게 잡아 먹혔다는 고양이와, 고양이를 잡아먹었다는 오리는 결국 노인의 집에 모두 모이게 된다. "자, 이제 보자고.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는지!"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우리는 얼만큼이나 알고 있을까? 나만 생각하고, 나만 알아줘야 하고, 나만 잘되면 되고... 오로지 나만을 앞세우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을 한번쯤은 되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이 책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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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사랑을 그리다
유광수 지음 / 한언출판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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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에 소개된 고전부터 살펴보자. <박씨전>, <운영전>, <아랑전>, <은애전>, <이생규장전>, <일타홍>, <최척전>, <주생전>, <윤지경전>, <위경천전>, <심생전>, <춘향전>, <변강쇠와 옹녀전>, <지귀설화> 등... 고전을 들여다보자면 끝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끝도없는 고전을 알고 싶었다. 어떤 형식으로든 고전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은 까닭이다. <삼화요탑>이라고도 한다는 <지귀설화>는 선덕여왕을 사랑한 지귀의 이야기이고, <아랑전>은 억울하게 죽은 처녀가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다가 부임해오는 사또마다 죽어나갔다는 그 이야기다. 그것처럼 <박씨전>, <운영전>, <아랑전>, <은애전>, <이생규장전>과 같은 이야기들은 이미 우리곁에 자주 등장하는 설화다. 고전소설이라는 게 옛날 사람들의 의식이나 법을 다루고 있는 까닭에 모두 색다른 사랑의 형태를 그리고 있거나 시대적인 상황을 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혔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익히 들어 알고 있던 내용도 있었지만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혹은 이런 설화도 있었구나 싶은 이야기도 있어 나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처음에는 저자가 무슨 의도로 이 책을 썼는지 가늠하기가 쉽진 않았다. 설화속에 나타난 사랑의 형태를 보며 그 안에서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찾으려했던 것인지, 아니면 완전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싶어하는 것인지... 때로는 설화속에 숨겨둔 은유를 찾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의 모습에서 불합리와 부조리함을 찾아내기도 한다. 시대적인 상황까지 공감해가며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입장을 옹호해주기도 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 작금의 현실속 사랑과 비교해보기도 하는데 어떤 의도로 말하고 있는 것인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여 불꽃이 피기 시작한 자녀를 앞에 두고서 사랑은 이런 것이니 이렇게 저렇게 해야하는 거라고 쉼없는 잔소리를 늘어놓는 아버지앞에 앉아 있는 듯한 그런 느낌처럼 말이다.

 

사랑에 정답이 있을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랑에는 정답이 없다. 다분히 주관적인 감정일 뿐이다. 이런 사랑도 있고, 저런 사랑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고전설화를 통해 살펴본 시대적인 상황을 통해 그들의 아름다운, 혹은 원통한 사랑에 공감하게 된다. 설화를 만들어낸 사람이 은근슬쩍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속에 숨겨놓기도 한다. 그것을 찾아내는 재미도 나쁘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전에 읽었던 < 신화와 정신분석>이 떠올랐다. 각각의 신화속에 담긴 주인공들을 통해 나름대로의 정신분석을 보여주었던 책이었는데, 왠지 이 책이 남기는 뒷맛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듯하여 하는 말이다. 전체적으로 분류해놓은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짝사랑, 마스터베이션, 도착과 페티시즘, 강간, 간통, 엇나간 사랑, 고운 사랑, 순수한 사랑, 숭고한 사랑... 조건을 앞세우고, 가볍게 만나다 헤어지는 작금의 우리 사랑을 가짜 사랑이라 한다. 우리 고전속에 숨겨진 차가운 진실을 찾아내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을 다시한번 생각해보자고 한다. 익히 알고 있는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를 미녀와 야수와 비교한 부분은 이채로웠다.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잔혹동화로 우리에게 다가왔던 그림형제나 안데르센동화의 다른 얼굴처럼.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사랑은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어떠한 법칙이나 규칙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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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라디오
이토 세이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영림카디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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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이 잦은 일본에서조차 최대로 관측되었다던 그 날의 지진은 대형 쓰나미가 덮치면서 해변도시들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일어나면서 세계적인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그 피해의 여파가 남아있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그러나 그 어떤 충격보다도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는 게 가장 가슴 아픈 일이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도 멀지 않은 기억속에 그런 아픔이 발생했었다. 삶과 죽음을 갈라놓는 순간이 언제 어느때 우리에게 찾아올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산 사람이란 말이 있지만 죽은 사람은 산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 책속의 말처럼 그들에 의해 다시 불려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봤어? 안해봤으면 말을 하지마!" 아무 생각없이 뱉어내는 저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를 우리는 모른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는 말이 얼마나 처절한 절규인지를 우리는 모른다. '同病相憐'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를 애틋하게 여긴다는 뜻이지만 여기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그 마음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잊혀지기에는 너무나도 아픈 일이기에 한번쯤은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는 취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죽은 자의 시선으로 산 자를 바라보는 것, 또한 죽은 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채로웠다. 세상의 죽음에는 자신이 왜 죽어야 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를 모른 채 찾아오는 순간도 많을 터다. 자신에게 죽음이 찾아오던 순간을 기억해내는 망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의 전개과정은 서글픔을 남기기도 한다.

 

中有... 사람이 죽은 뒤에 다음 생을 받을때까지 머무는 중간계를 말하는 불교용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49재의 의미를 지닌 말이기도 하고, 잘 알고 있는 윤회의 의미이기도 하다. 굳이 이렇게 불교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무래도 죽은이들을 애도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아닌가 싶다. 그들 모두가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기를 바라는 그 마음말이다. 상상라디오를 진행하는 DJ 아크의 죽음이 안타까움을 만들어낸다. 자식의 주검이 너무 높은 삼나무 가지위에 걸려 아무도 찾아내지 못할텐데 너를 두고 어찌 내가 저쪽 세상으로 갈 수 있겠느냐며 찾아왔던 아버지의 영혼에게 담담하게 말하던 DJ 아크의 처참함을 살아남은 우리가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아무도 몰랐던, 그 누구도 상상조차해보지 않았을 그의 주검을 묘사하는 장면은 끔찍하다. 그런 생각을 어느 누가 단한번이라도 해봤을까?

 

"죽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 바로 잊고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해. 정말 그래. 언제까지고 연연하고 있으면 살아남은 사람의 시간도 빼앗겨 버려. 그런데 정말로 그것만이 옳은 길일까. 시간을 들여 죽은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슬퍼하고 애도하고, 동시에 조금씩 앞으로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 죽은 사람과 함께." - 146쪽

 

"살아남은 사람의 추억도 역시 죽은 사람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아.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그 사람이 지금 살아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겠지. 즉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은 상부상조 관계야. 절대 일방적인 관계가 아냐. 어느 쪽만 있는 게 아니라, 둘이서 하나인 거라고." - 151쪽

 

어쩌면 저 말을 하고 싶었던건지도 모르겠다. 죽은 사람만 억울하지, 라는 말이 있긴 하다. 그러나 삶과 죽음을 떼어놓고 보기에 그 둘은 너무 가까운 관계이기도 하다. 그 어떤 것보다도 잊혀지는 것이 가장 커다란 슬픔이라고 어느 시인은 말하지 않았던가. 책속의 말처럼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애도하고 동시에 조금씩 앞으로 걸어가야 할 우리의 의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재미로 읽을 책은 아닌듯 하다. 그러나 공감하기도 쉬운 책은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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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역사와의 결별 징비록
배상열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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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전란의 원인, 전황 등을 기록했다는 '懲毖錄',“미리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豫其後患)”... 《시경》에서 나온 말이다. 오래전에 '징비록'을 읽으면서 어째서 우리는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통탄을 했었다. 그런데 이 잭의 저자 역시 묻고 있다. 우리에게 위기는 위기였을 뿐인가? 라고. 오죽했으면 눈물과 회한으로 써내려간 글이라고 했을까? 우리에게보다는 일본에서 더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징비록'의 의미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훗날까지 일본에서 조선 연구의 바이블로 각광받았다는 <징비록>의 가치가 놀랍지 않은가? 지금의 우리 현실을 돌아볼 때도 그 옛날과 다르지 않음을 볼 수가 있다. 어째서 우리는 우리것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며 살지 못하는 것일까? 전혀 자부심을 가지기는커녕 어떻게든지 현대에 맞게 뜯어고치려고만 하는 모습을 볼 때는 어쩔수 없이 화가 나기도 한다.

 

작금의 현실은 '징비록'이 쓰여지게 만들었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당파싸움에 저희들끼리 패를 나누고, 거기서 또 뜻이 안맞으면 또다시 패를 나누는 형국이 나라를 망치게 했던 그 시절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 무엇이겠는가? 역사를 보고 배워야 할 것은 배우지 않고 못된 것만 배운 나쁜 아이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저자의 말처럼 부검 당하는 '징비록'의 속살은 처참하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그 시대의 상황이 전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와 새로운 느낌을 내게 전해주었다. 그 시대를 만들었던 한중일의 형국이 마치 한장의 그림처럼 보여져 아하, 그랬던거구나! 싶었던 장면이 많아 새삼스러웠다.

 

지금까지 몇 번을 말한 것이지만 나는 조선사를 통틀어 선조와 인조가 가장 싫다. 그들로 인해 조선이 잃어야했던 것이 너무도 많은 까닭이다. 현재의 우리에게 이렇다할 이름으로 기억되어지는 그 좋은 인력을 가지고도 그렇게밖에 살지 못했던 선조를 어찌 좋아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이산해와 정언신에 의해 '불차채용'으로 추천되었다는 이순신의 이야기가 시선을 붙잡았다. '不次採用'이란 현재의 관직과 서열을 일체 따지지 않고 인재를 천거한다는 의미인데 이순신의 면모를 알게 해주는 일화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한심한 시절, 전쟁은 이렇게 예정되었다'를 시작으로 소제목으로 등장하는 한줄의 글귀만 읽어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미루어 짐작할만 하지만 각장마다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더라도 저자가 신립을 변호한 것에는 결코 공감할 수 없다. 저자의 말처럼 그정도의 무장이었다면 그런 실수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역사의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시대에 어떤 사람이 했는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어쩌면 저자의 <징비록> 부검하기는 엄청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조목조목 들여다보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여정이 나쁘지 않았다.

 

역사속에서 군역에 대한 제도의 보완을 이야기했던 사람은 많았다. 이이도 그랬고, 허균도 그랬고... 류성룡이 주장했다는 '제승방략'과 '진관제'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문득 임진왜란때 포로로 잡혀갔던 강항의 <간양록>이 떠올랐다. <간양록>은 강항이 돌아와 선조에게 올렸던 글이다. 강항이 일본인과의 교류를 통해 일본의 실정을 기록한 글로 일본의 지리 및 지세, 관호, 군제, 형세 등 임란 당시의 일본 정세가 상세히 담겨 있다. 그렇게 생생하고도 세세한 글이 우리에게 전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그것은 그저 책일 뿐이었으니 더 말해 무얼할까 싶기도 하고... 솔직히 말해 책을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달래며 읽어야했다. 책이 무슨 죄가 있다고.... 잘못 끼워진 단추하나로 인해 옷전체가 비틀어진 꼴이라니! 역사는 반복되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 책속에서도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되어진 우리의 역사와 만나게 된다. 어쩌면 그리도 똑같은지.... 그런 의미에서 보니 이 책의 제목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비열한 역사와의 결별... 징비록을 통해 우리가 해야 할 숙제는 아닐런지. 류성룡의 시대와 지금의 우리는 무엇이 다른가?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모두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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