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생각하다 - 사람이 행복한 지속가능한 집에 대한 통찰
최명철 지음 / 청림Life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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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을 내집으로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쯤은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아파트가 아무리 편하다고해도 자연과 어울어지는 그림같은 집에 대한 생각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도 그렇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집의 형태가 아파트다. 아파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사람을 위한 집이 아니라 아파트를 위한 하나의 부속품처럼 사람이 거기에 붙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씁쓸한 기분이 느껴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더러는 아파트의 삭막함을 감추기위해 덩그렇게 커다란 나무를 심어놓기도 하고 물길 하나 만들어서 그것이 마치 시냇물인양 선전하기도 하는 걸 보면 아파트가 제 본성을 숨길래야 숨길 수 없다는 걸 금새 눈치채게 된다. 그런 집의 형태가 자산가치로서의 역할을 언제까지 하게 될까?

 

굳이 크고 넓은 집이 아니더라도 흙을 밟고 사는 곳에 내 집을 갖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그런데 어떤 집이 좋은 집일까?  타운하우스, 트리하우스, 셰어하우스, 플로팅하우스, 거기에 게스트하우스까지 집의 종류도 정말 다양하다. 건축에 문외한이다보니 처음 듣는 말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장은 잘 넘어갔다. 어떤 집이 좋은 집인지, 집은 어떻게 지어야 하는 것인지 넘어가는 책장마다 한번씩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공동으로 마을을 형성해서 개성있는 자신만의 집을 지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시선을 끈다. 많은 사진을 함께 보여주고 있어서 뉴타운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지기도 했지만 집에 관한 우리의 비틀린 의식이 보이는 것만 같아서 뒷맛이 개운치는 않았다.

 

그렇다면 어떤 집이 좋은 집일까? 넓고 큰 집? 최첨단 시설을 갖춘 집? 조망권이 좋은 집? 주변의 경치가 빼어난 집? 멋지게 꾸민 집? 이러니저러니해도 가장 좋은 집은 거기에 사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집이 아닐까?  집안으로 들어서면 포근하게 안아주는 것처럼 그렇게 아늑한 집이 가장 좋은 집일거라고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고 있다. 남들이 봐서 좋은 집보다는 내가 좋고 내가 편한 집이라면 가장 좋은 집일거라고. 최선의 집, 최적의 집, 최고의 집, 최신의 집이라는 부제로 나누어서 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시선을 끌었던 것은 최고의 집편에서 보여주었던 방배동 H씨댁이었다. 겉에서 보기에는 그렇게 뻘쭘해보이던 집이 안으로 들어서니 놀랄만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자신만의 개성이 듬뿍 베어있는 그런 집이란 생각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집을 짓고자하는 사람과 건축가의 생각이 하나되어 만들어진 집이라고 한다. 요즘은 그렇게 시대에 편승하기보다는 집다운 집을 짓고 싶어하는 건축가가 많다고 하니 앞으로는 개성있는 집을 자주 보게 되지 않을까?

 

불현듯 강릉의 오죽헌과 남양주의 여유당이 생각난다. 사랑채가 주는 느낌이 유난히 좋아서 오래도록 기억되는 집이다. 나중에 집을 짓는다면 이렇게 지어봐야지, 하는 마음에 평면도를 한번 그려보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 그림을 아직까지 가지고 있다. 가끔은 조금씩 수정하기도 하면서. 堂號도 미리 지어놓았다. 나도 언젠가는 편안하게 나를 감싸줄 집을 지어보리라. /아이비생각 

뜬금없이 찾아온 생각하나, 그런데 나무위의 집에서 살던 허클베리 핀이나 타잔은 행복했을까?

 

멀쩡한 단독주택지들을 노후 주거지라고 선을 그어서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고 부추기고 이웃 간의 갈등마저 야기한 잘못된 도시 행정은 멈춰져야 한다. 고요한 단독주택지 속에 뻘쭘하게 솟아 있는 아파트의 풍경은 이제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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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읽는다 세계 5대 종교 역사도감 지도로 읽는다
라이프사이언스 지음, 노경아 옮김 / 이다미디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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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통해 세계의 흐름을 알 수 있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그 질문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씩 풀린다. 그러면서도 종교라는 것이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정치나 경제 분야를 막론하고 사회적인 현상까지도 그들의 힘이 작용한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종교의 힘은 이미 우리가 어떻게도 할 수 없을만큼의 크기와 무게를 갖고 있는듯 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종교를 갖는 것일까?  인간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신을 믿는다는 소리도 있지만 딱히 그렇지만도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주변에서 종교를 가진 이들의 동향을 살펴보면 가까이하기에 무서울 정도로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도 많이 보인다. 사람이 우선이 아니라 오직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를 최우선으로 치는 모습, 그다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아서 하는 소리다. 종교의 기원은 아무래도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자연을 향해 기원했던 아주아주 오래전의 그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이야 과학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많은 옛것들이 사라져가거나 무시당하고 있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그런 것들이 존재했기에 과학이라는 것도 생겨났을테니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이슬람교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昨今의 세태였다.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전쟁은 그들만의 전쟁일까? 그 전쟁은 과연 영토전쟁일까, 종교전쟁일까?  전쟁이란 것은 궁극적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발생된다. 종교를 핑게로 그들은 영토전쟁을 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억지일까?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종교가 존재할까? 우리가 알지 못할 뿐 밀교로써의 형태를 띤 종교는 아마도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5대 종교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신자수로만 따져본다면 21억6천만명의 신자를 가진 기독교가 단연 1위를 차지한다. 그 뒤를 이어 이슬람교가 16억명, 힌두교가 10억명, 불교가 4억8천만명, 유대교가 1400만명이다. 세계를 움직인다는 미국이란 나라의 종교인은 대다수가 기독교인이다. 그러니 기독교의 힘이 정치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볼 때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중의 가장 중심이 유대교인이라는 사실은 더더욱이나 놀랍다 .

 

5장의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는 종교의 세계는 생각했던 것보다 넓고 깊었다. 5대 종교의 경전이 가르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5대종교의 역사와 그들이 추앙하고 있는 성지, 그 종교들이 세계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종교로 인한 세계의 분쟁상황등 그동안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종교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아울러 그들만의 특징은 무엇인지, 그 특징이 생겨나게 된 유래는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같은 유일신임에도 많은 그림이 존재하는 기독교와 달리 이슬람교에서는 알라의 초상화나 조각이 전혀 없다는 건 이채로웠다. 물론 불교에서도 무불상시대가 있긴 했다. 신이 없는 불교에서조차 붓다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많은 형태가 생겨났다. 그럼에도 이슬람교와 유대교에서는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니! 그러나 세상의 것들은 변할 수 밖에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시대의 흐름이 그같은 원칙주의마져 흔들고 있다는 말이다. 힌두교의 카스트제도나 이슬람교에서 여성의 신체를 감추는 제도등이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고 하니.

 

가끔 참종교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생각할 때가 있다. 종교로 인해 세상이 시끄러워질 때마다, 종교를 앞세워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고자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정교분리를 외쳤던 한때의 역사를 떠올리곤 한다. 정교분리의 원칙이 지켜진다면 세상이 저렇게 시끄럽지는 않을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각설하고 나는 아직 無敎人이다. 그러나 지금은 불교에게 마음을 열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남을 교화시키기에 앞서 자신을 먼저 정화하고자 하는 불교의 교리가 좋아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남을 향해 목소리를 내기 전에 자신부터 바른 삶을 살고자 한다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다른 이를 교화시키는 것이라고 보는 까닭이다.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직까지도 마음에 종교를 담지 못한 나이기에 어쩌면 종교라는 것에 대해 더 알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종교 상식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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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삼킨 소년 - 제37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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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 올라왔다. 이게 무슨?  느닷없이 찾아온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순간 눈물이 흘렀다. 아마도 쓰바사의 마음을 보았던 순간일 것이다. 차마 말할 수 없어서 터질것처럼 부풀어올랐을 쓰바사의 마음을...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던, 누구도 이해하려 들지 않았던 쓰바사의 마음이 느껴져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쓰바사의 마음을 알아차린 아버지 요시나가에게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착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강요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왜 나만 아프고 나만 힘들다고 느끼며 살아가는 것일까?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만,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기도 하는 것... 그게 바로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항상 받은 상처를 먼저 생각하는 모순을 안고 산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얼마전에 읽었던 책이 생각속에 자꾸만 겹쳐졌다.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이란... 그 책을 읽을 때도 지금처럼 마음이 아팠었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서로를 향한 갈증을 채워주지 못한 채 파국을 향해 치닫던 가족의 일상. 그리고 일은 터져버리고 말았지... 서로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어떤 것을 안고 바라본다는 것은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책속에 나타난 아버지와 엄마의 모습은 딱히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바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일 것이다. 책임지려 하지않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옮긴이의 말처럼 '정답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우리는 모범답안이라도 제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돌이켜보면 그런 사회를 만들어버린 것 또한 우리 자신이니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보아야 할 싯점도 바로 지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열네살인 쓰바사가 친구를 죽였다. 그러나 부모는 그럴리가 없다고, 그러지 않았다고 말해주기만을 염원한다. 그리고 입을 닫아버린 아들. 그런 일이 발생하기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랬는지 부모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알아내야만 한다.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그 일에 대한 것을 알아내야만 한다. 아버지 요시나가는 힘겹게 결정을 내린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이혼을 했다는 것도, 일이 바빴다는 것도 모두가 핑게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아버지 요시나가는 천천히 아들의 곁으로 다가가기 시작한다. 과연 아버지는 아들의 입을 열 수 있을까? 아니 굳게 닫혀버린 아들의 마음을 열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아들만이 알고 있다. 그러나 끝내 입을 열지 않은 아들 쓰바사는 결국 소년원에서 2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는 말하지. 다시는 너를 혼자두지 않겠다고. 그 누구보다도 너는 내게 소중한 존재라고.

 

소년범죄라는 것이 뉴스속의 일로만 여겨지는 부모가 꽤 많을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상대는 가해자이고 나는 피해자라는 착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이지러진 초상과 만나게 된다. 내 아이만큼은 저러지 않을거야... 나는 저런 아이의 부모와는 달라... 남탓하는 세상의 민낯을 보게 된다. 아울러 쫓아가 따귀라도 한 대 올려붙이고 싶은 언론의 비정함과 뻔뻔함에 불끈 주먹을 쥐게 되는 순간도 여러번 느끼게 된다.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나쁜 대처법은 외면하는 것이라고 한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그것을 해결하려고 할 때 그 문제는 비로소 무거움을 벗어나게 된다.  무거움을 버리지 못한 문제는 자꾸만 자꾸만 가라앉게 되고 끝내는 그것으로 인해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린다고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결과를 보여주고 있지않은가!. 내가 소중한 존재라면 남도 소중한 존재다. 우리는 이렇게 간단한 명제조차 외면하려 들지.... 어설픈 부모의 사랑과 부모를 향한 아이의 깊은 마음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나는 내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묻게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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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니 라베 지음, 서지희 옮김 / 북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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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혹은 놀라운, 이라는 단어을 앞세우며 반전을 예고하는 문장을 보게 되면 꼼짝없이 걸려들고 만다. 그리곤 책을 읽는 내내 앞서간다. 반전이라는 말이 주는 힘은 이렇게나 놀랍다!  심리스릴러라는 말이 눈길을 끈다.  어떤 상황에 맞서는 사람의 심리는 상당히 복잡할 터다.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읽으면서 느껴지던 조바심이 나름 흥미로웠다. 조여오는 느낌 또한 나쁘지 않았다. 함정에 걸려든 순간, 게임은 시작된다- 라는 책띠의 한 문장이 알 수 없는 기대감을 부풀린다.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동생 안나가 죽었다. 그리고 언니인 나는 그 범인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목격자가 있는데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 것일까?

 

그 사건 이후 11년동안 은둔 생활을 하며 작가로 지내고 있는 린다 콘라츠. 그녀가 집 밖의 세상속으로 나갔던 기억은 너무나도 멀다.  그런 그녀가 어느날 우연히 TV속의 남자를 보며 경악한다. 자신의 기억속에 분명하게 각인되어져 있던 범인의 얼굴. 동생을 죽인 살인자가 저렇게 잘살고 있다니....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오히려 그녀 자신이 동생을 죽인 살인사건의 용의자였다는 사실만을 확인하게 된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범인을 눈앞에 두고도 잡을 수 없던 린다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범인을 불러들이기로 한다. 과연 그녀는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그것도 12년전에 일어났던 일인데? 그러나 그녀는 알고 싶었다. 동생이 왜 죽어야 했는지를.

 

사람에게는 누구나 외면하고 싶은 과거가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과 다시 마주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끔찍할 것이다. 어쩌면 린다도 그런 심리상태였을 것이다. 감당할 수 없었던 기억을 안고 산다는 게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켰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속에 소설이 있다. 베스트셀러작가인 린다가 범인을 잡기 위해 택한 방법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그날의 사건을 책속에 담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그녀 자신을 세상에 노출시켜야 하는 고통을 이겨내야만 한다.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이 시작되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녀의 가뿐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런데 범인은 정말 TV속의 그 남자였을까?

 

자신이 살인사건의 용의자였다는 걸 모른 채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아야만 했던 린다. 잊고 싶었던 기억들이 하나씩 꺼내질 때마다 세상을 향한 그녀의 발걸음도 한발자욱씩 앞으로 나간다. 그녀가 범인이라고 믿고 있었던 남자와 치고받는 심리전은 가히 압권이다. 책을 읽는 사람조차도 그들의 술수에 말려들게 된다. 그 싸움의 끝에서 드러나게 될 진실은 과연 무엇인지....  어느 사형수가 있었습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종교생활을 하고 동화책을 쓰기 시작했어요. 거기서 얻은 수익금은 전부 기부를 했고요. 그리고 나서 그는 사형을 당했습니다. 스물 다섯 살때 살인을 한번 저지른 죄로 40년간 사형수 독방에 갇혀 지낸 예순다섯 살 먹은 남자는, 과연 그 때와 같은 사람일까요? 그를 아직도 살인범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400쪽)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그 사람은 정말 죽을 때까지 살인자였을까? 이상하게도 긴 여운을 남기는 대목이다. 이중적인 잣대로만 말할 수 없는 게 사람의 일이요, 세상의 일인 것을.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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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몽전 2 - 위원회, 개입을 시작하다
청빙 지음, 권미선 그림 / 폭스코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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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이 책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배경이다. 단순히 <삼국지>만을 다루고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아니 더 사실적으로 말하자면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인물들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는 정서가 아니라 나중에 그것을 토대로 나관중이란 사람에 의해 쓰여진 소설이다. <삼국지연의>, <서유기>, <금병매>와 더불어 중국의 4대 기서라는 <수호지>의 배경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게 놀라웠다.  진용운의 아버지가 고고학자였던 관계로?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만큼 이야기의 흐름이 정사와 소설을 넘나들며 한획 한획을 그어가고 있다. 어찌되었든 작가의 해박함에 놀랄 뿐이다.

 

우리의 주인공 진용운과 <삼국지>의 등장인물들이 만나는 과정은 알 수 없는 호기심을 불러온다. 그런 와중에도 은근하게 녹아드는 로맨스가 찰지다. 가상의 캐릭터에 불과하지만 역사속의 인물들과 캐릭터가 만나 사랑인듯 사랑아닌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입꼬리를 올라가게 한다. 말했듯이 이 소설의 흐름은 철저하게 게임의 법칙을 따라간다. 상대방의 정보를 읽을 수 있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킬 수도 있지만 진용운을 호위하는 4명의 여자무사 사천신녀라는 캐릭터가 또하나의 재미를 선사한다. 그가 <삼국지> 게임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캐릭터들이지만, 게임속으로 들어간 자신들의 주인을 위해 호위무사로써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정이다. 흠, 그럴 듯 하군! 그나저나 역사를 미리 알고 시작하는 게임은 이길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이미 짐작했듯이 변수는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성혼단... 그들이 바로 <수호지>의 배경을 업고 나타나 용운부자를 없애기 위해 끝도없이 공격해오는 캐릭터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과 자신이 왜 이 세계로 흘러들어왔는지를 알아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의 기로에서 용운은 자신의 아버지도 이 곳에 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다. 대단한 천기를 가지고 있다는 아버지 진한성의 활약이 이제 펼쳐질 모양이다. 용운과 아버지 진한성을 없애기 위한 성혼단의 계략은 성공할까? 그 계략에 맞서 싸우게 될 그들의 운명은 또 어찌될까? 그들이 갖고 있다는 순간기억능력과 과다기억증후군이란 게 궁금해진다. 그 놀라운 능력으로 낯선 세계에서 책사로 활약하게 되지만 역사의 흐름은 그만이 알고 있는 게 아니었으니... 거기에다 그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자 하는 이들이 바로 성혼단이라는...

 

<삼국지>를 통해 펼쳐지는 역사적인 흐름과 게임이라는 두개의 틀이 묘하게 어울린다. 긴장감도 있고 몰입도도 강하다. 다만 요즘 세대들의 컴퓨터 언어가 외계언어처럼 다가와 약간의 껄끄러움은 있다. 정사(삼국지)의 인물이 소설(삼국지연의)에서는 어떻게 재탄생되었는가를 부분부분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 어찌되었든 역시 무협지는 재미있다. 그러나 조금 아쉽다. 두권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게. 지금까지 열심히 읽었는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없었다는 걸 이제사 알게 된다. 그들이 왜 성혼단과 맞서야 하는 것인지를. 그들이 왜 그토록이나 머나먼 과거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궁금하면 3권을 읽으라고? 이런!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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