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문구 - 매일매일 책상 위에서 고군분투하는 일상 문구 카탈로그
다카바타케 마사유키 지음, 김보화 옮김 / 벤치워머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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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라는 말이 있다. オタク라는 일본말의 한국식 표현이다. 어떤 분야에 흥미와 열정이 대단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지만 사회성이 결여돼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처음엔 부정적인 의미가 더 컸던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당당하게 자신의 관심사를 말하며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솔직하게 말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무언가에 빠진다는 건 그리 나쁜 게 아니다.   매일매일 책상 위에서 고군분투하는 일상 문구 카탈로그...라는 소제목을 본다면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바로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문구에 관한 이야기다. 문구의 종류도 종류지만 그토록이나 많은 역사를 안고 있을거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책상위의 문구를 다시 한번 바라보게 한다.

 

상당히 전문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데 문구에 대해 전문적이라고까지 말하려니 왠지 뜬금없어 보이긴 한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그 말에 수긍할지도 모르겠다. 직접 그렸다는 일러스트도 대단하지만 꼼꼼한 문구 사용기 또한 놀랍다. 제품마다 각각의 특징이 있어서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도 소개해 주고 있다. 그러고보니 일본에는 눈길을 끄는 문구나 팬시용품이 많은 듯 하다. 소재나 디자인면에서도 상당히 공들인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제품말이다. 그러니 덕후가 생겨나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 하다. 책의 저자는 일본에서 문구가 많은 이유는 한자를 쓰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같은 한자문화권인 우리나라나 중국에 비해 더 많은 이유가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도구에는 목적에 맞는 선택 기준이 있다고 말한다. 어떤 것이 좋고 나쁜지 보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쓰임새에 정확하게 맞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신발을 고르듯 가위를 고르라는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도구를 잘 사용하는 사람이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한번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그럼에도 도구를 잘 사용하면 멋진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는 공감하게 된다. 쓰임새보다는 디자인에 먼저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게 팬시용품이다. 어쩌면 그리도 갖고 싶은 마음이 솟아오르게 만드는지... 4색펜을 처음 보았을 때 이렇게 편한 볼펜도 있었구나, 싶었었다. 볼펜 한자루만 있으면 4가지색을 모두 사용할 수 있으니 그 편리함이야 말해 무엇할까?

 

책장을 넘기다가 시선을 끄는 말이 보였다. '문자를 쓰는 도구'에 관한 이야기...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대중화된 세상에서 손편지를 받는 감동을 이야기하고, 문자와 메일이 아무리 우리곁을 맴돌아도 아나로그식 소통 수단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신문과 종이책이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쪽에 한표 보탠다. 昨今의 세상을 보라, 아나로그 세상으로의 회귀현상은 이미 낯설지않은 풍경이 아닌가!  빨라진다고 모든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편해진다고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듯이. 문자를 쓰는 도구를 통해 훌륭함과 훌륭하지 않음을 구별한 것이 재미있다. 붓을 사용하는 것을 가장 훌륭한 것으로 보았다. 그 다음이 만년필, 볼펜, 샤프펜슬, 워드프로세서 순이었다. 결국 워드프로세서가 가장 훌륭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지만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알 것 같아 어느정도는 공감하게 된다. 79가지의 문구를 보면서 내 책상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몇가지나 될까 찾아보았다. 그다지 많지 않다. 한때 지우개를 모으던 아들녀석 덕분에 각양각색의 지우개를 구경하는 호사(?)를 누려보기도 했지만 역시 문구는 쓰임새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진리다. ^^*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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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마지막 그림 - 화가들이 남긴 최후의 걸작으로 읽는 명화 인문학
나카노 교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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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는 우리가 많이 들어왔던 이름의 화가들이 등장한다. 제목에서 보듯이 화가의 마지막 그림에 초점을 맞춘 듯 하다. 그 화가의 마지막 그림을 설명하자면 아무래도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때문에 이 책속에는 화가들의 일생이 그야말로 그림처럼 펼쳐진다. 어떤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유명인의 길로 들어서 화려한 삶을 살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죽은 후에도 한동안 빛을 보지 못한 채 후대에 와서야 그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화가도 있다. 그러니 그들의 일생이 얼마나 파란만장 했을지는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는다. 우리에게 명작이라고 평가되어지는 그림이 이 책속에 등장한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반가움에 고개를 주억거리게도 되고, 화가의 이름을 보면서 그 그림도 나오겠군, 하는 기대감도 아울러 찾아온다.

 

솔직하게 말해 나는 그림을 볼 줄 모른다. 어떤 교양의 테두리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그림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싶은 욕심도 있긴 하다. 그림을 볼 줄 알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때가 많았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림의 문외한으로 남아 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내 마음대로, 내 느낌대로 그림을 보고 싶은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정말이지 오아시스같은 책이 아니었나 싶다. 어쩌면 그리도 쏙쏙 들어오게 설명을 하고 있는지... 지금까지 그저 막연하게 그런 사람인가보다, 했었던 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그런 까닭인지 늘 기억해왔던 그림 역시 달리 보였다. 이 그림속에는 그런 의미도 숨어 있었구나....

 

어렸을 적에 읽었던 동화 <플란다스의 개>에서 루벤스의 그림을 보지 못하고 죽어가던 네로때문에 무척 마음이 아팠었는데 나중에 그 그림의 제목을 알고는 아하, 이 그림이었었구나... 했었다. 그 그림을 책속에서 보게 되니 또한 반가웠다. 이 책 속에는 모두 15명의 화가가 등장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이라고 불리워진다는 라파엘로나 루벤스를 시작으로, 벨라스케스, 반다이크, 고야까지... 그들이 처음에 그리기 시작한 것은 신화였다. 그리고 종교를 그림속에 표현했으며, 후대에 와서야 그림속에 일상을 그려넣었다. 오래전의 그림은 일부 상류층만을 위한 것이었기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에게는 자유가 없었다.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돈을 지불하고 그림을 부탁하는 이들 또한 시대에 따라 변했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의 요구에 맞춰 그림의 형태도 변했을 것이다.

 

1부에서는 종교와 신화에 관한 것으로 보티첼리, 라파엘로, 티치아노, 엘 그레코, 루벤스가 등장한다. 2부에서는 궁정의 화가로 활약했던 벨라스케스, 반다이크, 고야, 다비드, 비제 르브룅이 등장한다. 나중에 주변인을 대상으로 풍속화를 그리며 그림을 통한 풍자를 통해 민중의 삶을 보여주었던 브뤼헐, 페르메이르, 호가스, 밀레 고흐는 3부에서 등장한다. 각양각색으로 살았던 그들의 삶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그들에게 그런 아픔도 있었구나... 어쩌면 그런 아픔이 그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준 하나의 기틀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들도 사람인데 어찌 고뇌와 방황이 없었을까 싶다. 페르메이르가 그렸다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언제 보아도 끌림이 있다. 겁먹은 듯한 눈동자와 살짝 벌어진 도톰한 입술에서 느껴지는 관능미는 정말이지 압권이다. 각각의 주제마다 저마다의 느낌이 달라 눈길을 끈다. 거기에다 명화에 대한 해석이 달려 있으니 금상첨화다. 복잡하고 어려운 미술사를 화가들의 인생을 통해 보여주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내게는 정말로 유익한 시간이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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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기 - 신화란 무엇인가 인문플러스 동양고전 100선
간보 지음, 임대근 외 옮김 / 동아일보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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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괴소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괴이한 이야기. 지괴소설은 그 바탕이 무속, 불가, 도가와 연관된 사상을 갖고 있다는 말이 보인다.  搜神記... 한마디로 말해 신을 찾는 이야기다. 그러다보니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불사가의한 이야기들을 많이 보게 된다. 소설의 형식을 갖추지는 않았으나 후대의 문학에 많은 소재를 제공했다는 말에는 금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搜神記는 중국의 역사적인 시대배경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  위·진·남북조 시대에 지괴소설이 대량으로 만들어졌던 것은 거듭되는 혼란속에서 불안해진 사람들에게 뭔가 믿고 의지할만 한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으로 士나 仙, 혹은 음양사상이 널리 퍼졌다고 한다. 아마도 昨今의 우리가 무속이라 말하고 있는 그런 사상쯤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진시황이나 한무제 등도 방술을 믿었다고 하니 당시의 사회적인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 볼 만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연과의 조화에서 궁극적인 가치를 논했던 노장사상이 그런 기이한 이야기와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다고 말하기에는 좀 아닌 듯도...

 

개인적으로 神話를 엄청 좋아한다. 학창시절에 처음으로 마주했던 게 아마도 그리스 로마 신화였을 것이다. 그 많은 신의 이야기가 어쩌면 그리도 재미있던지... 황당해보이는 것 같아도 알 수 없는 끌림이 있어 나도 모르게 빠져들곤 했었다. 이 세상에는 신이 있고 사람이 있으며 그 중간쯤에 귀신, 혹은 기인이 있다. 책속에는 그 세 부류의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보이지만 아무래도 인간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보인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도술을 부리는 기인들은 사람들 곁에 머무르지 않고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랬던 까닭에 사람들은 기인들에 대한 환상을 지울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전설의 고향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찾아보면 우리에게도 그런 이야기들이 많다. 귀신을 볼 수 있었다던 남이장군의 설화처럼. 죽어서 신이 되었다는 김유신의 이야기도 그렇고, 위인에 관한 이야기속에서도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는 설화 하나쯤 쉽게 볼 수 있다. <삼국유사>만 보더라고 그 비슷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가 있다. 우리의 삶속에는 과학의 잣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한다. 그처럼 이 책속의 이야기들이 과학적이지 않다고하여 굳이 밀어낼 필요는 없다. 그 이야기가 전해주고자 하는 바를 찾아낼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겠지만 말이다. 일전에 <산해경>을 읽으면서도 꽤나 시간이 많이 걸렸었다. 그만큼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말이다. <신해경>도 그렇고 <수신기>도 그렇고 그 두께에 압도되는 첫만남의 순간이 재미있다. <산해경>은 그나마 그림이라도 있었지만 이 책속에는 단 하나의 그림도 찾아볼 수가 없다. 늘 사람곁에 머무는 귀신들의 이야기나 기괴한 동물들의 이야기가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이미 내가 그만큼의 순수함을 잃어버렸다는 말일까? 알 수 없다.

 

우리나라 신화를 읽다보면 무슨 신이 그리도 많은가 싶다가도 다른 나라의 신화를 읽어보게 되면 그 나라 역시 많은 신을 모시고 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그 나라의 신 역시 사람들의 생활속에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다. 단순히 무속(?)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왠지 껄끄러운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만큼 사람들은 현세의 불안감을 다스리기 위해 신에게 의존했다는 말일 것이다. 신들의 영역이 따로 있을까? 우리 마음속에 모든 것이 존재할 것이다. 때에 따라 신도 되고 귀신도 되는 것은 아닐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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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우 - 비밀을 삼킨 여인
피오나 바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레드박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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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ow.. 미망인, 과부. 똑같은 뜻인데 영어로 쓴 것과 우리말로 쓴 것이 주는 느낌의 차이는 참 큰 듯 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냥 미망인이라거나 과부라는 제목을 붙였다면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우리에게 각인되어 모르는 새 정형화되어버린 것들이 많다는 뜻일게다. 비밀을 삼킨 여인이라는 소제목에서 보이듯이 이건 추리물이다. 책표지를 살펴보다가 뒷면에서 마주한 두 줄의 문장. "훌륭한 아내... 그게 이제 내 역할이다. 남편의 곁을 지키는 훌륭한 아내"  앞표지의 소제목과 딱 맞아 떨어지는 장면이 그려진다. 유괴사건이 벌어지고 그것을 쫓는 형사와 기자의 발빠른 움직임, 그리고 유괴된 자신의 아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워가는 모정의 비정함. 사실을 은폐하고자 하는 범인의 숨가쁜 시간들이 해결되지 못한 그 몇 년의 시간속을 왔다갔다 한다. 하나둘씩 밝혀지는 진실속에 담긴 것은 과연 무엇일까?

 

참 묘하지만, 단순한 거짓말이 가장 어렵다. 큰 거짓말은 입에서 저절로 나온다.... 아마도 왠만한 사람이라면 크게 공감하는 말일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삶속에는 끝없이 거짓말이 난무한다. 아니 어쩌면 거짓말이라는 것이 필요악일지도 모르겠다. 사실만을 말하면서 그야말로 진실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일수도 있을 것이다. 하면 할수록 쉬워져야 하는데, 거짓말을 할 때마다 점점 더 덜 익은 사과처럼 시고 떫은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그만큼 거짓말 뒤에 따라오는 양심의 가책 또한 그 크기가 만만치 않다는 뜻일 게다. 범죄의 한 가운데에서 감정의 이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글렌'과 '진'이라는 부부의 상황이 긴박하게 그려지는 소설의 중간부까지가 이 소설의 최고점이 아닐까 싶다. 아울러 진정한 사랑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무엇이 그들을 거기까지 몰고 간 것일까?

 

난 그 여자가 자신이 아는 것과 자신이 믿고 싶은 것 사이에 갇혀서 힘들어했다고 봐... 우리의 뇌는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말이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달라져 새롭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쉽게 용납하지 못한다는... 그 여자 '진'도 어쩌면 그런게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끝없는 욕망과 그것을 채워줄 수 없는 현실속에서 방황한다. 가끔씩은 그 답답한 현실을 박차고 나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현실에 눈을 감아버린다. 다 너를 위해서였어, 라는 말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려 했던 남편 '글렌'의 말을 들으며 그 여자 '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사랑은 정말 이기적이고 개인적이다. 사건을 뒤쫓던 형사반장이 만나는 사람들의 감정 상태가 묘하게 시선을 잡는다. 문득 떠오른 말, 주홍글씨. 한번 낙인 찍힌 사람은 여전히 그 올무안에 갇혀 괴로워해야 한다.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앞에 마이크를 갖다 대며 끝없이 묻고 또 묻는 매스컴의 역겨움이 그대로 드러나 책을 읽는 내내 개운치 않은 느낌이 떠나지 않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장면들이 눈앞을 스친다.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던 장면들이다. 뒷심 부족일까? 그렇게 껄끄러운 느낌으로 이 소설은 마지막 장을 덮게 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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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6-07-13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이건 스릴러 장르인가봐요 ㅎ 전 맘에 안들면 리뷰조차 쓰지않는 성격이라 ㅋ 솔직하게 쓰신 리뷰가 좋네요 잘 읽고 갑니다 ㅎ

아이비 2016-07-14 21:30   좋아요 0 | URL
좋고 싫음은 아무래도 개인적인 견해일테니까요 ^^* 그래서 되도록 솔직하게 쓰려고 합니다만... 흔적 남겨주심에 감사드려요.

루쉰P 2016-07-15 00:18   좋아요 0 | URL
솔직한 게 좋아요 ㅋ 전 그럴 용기는 없어서 아예 안 써 버립니다. ㅋ 그냥 저 좋아하는 책만 써요 푸하

이런 흔적은 천번이고 만번이고 남길 수 있어요 ㅋㅋㅋ 앞으로도 좋은 리뷰 부탁드려요 ㅎ
 
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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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보다 마음이 먼저 앞섰다. 마음이 먼저 앞서니 책장을 넘기는 손끝이 짜릿했다. 이런 느낌, 정말 오랜만이다. 별다른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날줄과 씨줄처럼 얽혀드는 그들만의 이야기에 묘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건 뭐지? 싶었다. 스톡홀름 증후군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상하게 그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냉정하게 한번 생각해보자.  앞으로는 조용히 살면서 다시는 누구도 내게 상처를 입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나는 계속 생존할 것이다. 초원에서의 그날 밤, 쏟아지는 별빛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간직한 채. 그것은 내가 특별한 사람이고, 남다른 도덕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깨달음이었다.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동물, 소나 여우, 올빼미의 도덕성을.(-407)   이것은 분명 자기 변명이다. 세상에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있을까?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 더 맞는 표현은 아닐까?  죽여 마땅하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처리다.  살아가는 동안 상처를 입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있을까?  또한 살면서 남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단언컨데 없다. 절대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남에게 상처를 입히고 남으로 인해 상처를 입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때로는 아파하고 때로는 눈물 흘린다. 그럼에도 내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죽여 마땅하다고 한다면 이 세상은 아마도 말 그대로 지옥이 되고 말 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일전에 읽었던 <열차안의 낯선 자들>이라는 소설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열차안에서 우연히 만난 낯선 남자가 서로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죽여주자는 제안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어지던 그 책속의 장면이 떠올랐다. 거기서 그들은 이렇게 말했었다. 사람들, 감정들 모든 것이 이중적이라고. 개개인의 마음속에 두 사람이 있어서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의 일부가 정반대의 모습으로 어딘가에 숨어 있는 거라고. 솔직히 나는 그 말에 공감했었다. 복잡하고 미묘한 현대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상황에 맞는 가면 몇 개쯤 필요한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러나 모든 것은 철저히 주관적이다.  사랑도, 미움도 모든 것은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시작되어진다. 그래서 위험하다는 거다. 세상의 모든 것이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고는해도 각각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감정만을 내세우며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라는 말이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후회하지도,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는 릴리의 말은 왠지 가슴 한켠을 서늘하게 한다. 자신만의 당위성에 갇힌채 오로지 자신만이 피해자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 정도를 넘어선 피해의식은 결국 자신까지도 망쳐버린다. 릴리와 미란다의 모습속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게 된다. 자가당착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의 삶을 그 안에서 보게 된다.  그녀는 정말 완벽했다. 아니 그럴 줄 알았다. 어쩌면 은연중에 나는 릴리의 당위성을 옹호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상처입기 싫어하는 마음이야 모든 사람이 다 같을테니까. 따지고보면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었다. 바로 외로움이다. 조금의 후회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릴리가 한순간 가슴이 아팠던 이유, 그것은 외로움 때문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할 때 구멍난 것처럼 가슴속에 서늘한 바람 한점이 불어왔다. 내가 아는 사실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외로움.  눈길을 따라가던 마음속에 쿵,하고 뭔가 내려앉은 느낌이 온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외로움! 그 외로움이 우리를 이토록이나 처절하게 막다른 골목으로 내치고 있었구나! 

 

책장을 덮으면서도 가슴속의 서늘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아직 채색되어지지 않은 하얀 책표지를 쓸어내렸다. 마음을 잃고 방황하는 우리의 현재가 서글펐다. 릴리가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은 모두 우리 자신이었다고 인정해야만 한다. 뭔가 변화가 필요한 세상을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이 전하고 싶어한 메세지가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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