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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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보다 마음이 먼저 앞섰다. 마음이 먼저 앞서니 책장을 넘기는 손끝이 짜릿했다. 이런 느낌, 정말 오랜만이다. 별다른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날줄과 씨줄처럼 얽혀드는 그들만의 이야기에 묘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건 뭐지? 싶었다. 스톡홀름 증후군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상하게 그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냉정하게 한번 생각해보자.  앞으로는 조용히 살면서 다시는 누구도 내게 상처를 입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나는 계속 생존할 것이다. 초원에서의 그날 밤, 쏟아지는 별빛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간직한 채. 그것은 내가 특별한 사람이고, 남다른 도덕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깨달음이었다.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동물, 소나 여우, 올빼미의 도덕성을.(-407)   이것은 분명 자기 변명이다. 세상에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있을까?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 더 맞는 표현은 아닐까?  죽여 마땅하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처리다.  살아가는 동안 상처를 입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있을까?  또한 살면서 남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단언컨데 없다. 절대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남에게 상처를 입히고 남으로 인해 상처를 입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때로는 아파하고 때로는 눈물 흘린다. 그럼에도 내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죽여 마땅하다고 한다면 이 세상은 아마도 말 그대로 지옥이 되고 말 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일전에 읽었던 <열차안의 낯선 자들>이라는 소설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열차안에서 우연히 만난 낯선 남자가 서로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죽여주자는 제안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어지던 그 책속의 장면이 떠올랐다. 거기서 그들은 이렇게 말했었다. 사람들, 감정들 모든 것이 이중적이라고. 개개인의 마음속에 두 사람이 있어서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의 일부가 정반대의 모습으로 어딘가에 숨어 있는 거라고. 솔직히 나는 그 말에 공감했었다. 복잡하고 미묘한 현대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상황에 맞는 가면 몇 개쯤 필요한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러나 모든 것은 철저히 주관적이다.  사랑도, 미움도 모든 것은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시작되어진다. 그래서 위험하다는 거다. 세상의 모든 것이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고는해도 각각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감정만을 내세우며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라는 말이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후회하지도,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는 릴리의 말은 왠지 가슴 한켠을 서늘하게 한다. 자신만의 당위성에 갇힌채 오로지 자신만이 피해자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 정도를 넘어선 피해의식은 결국 자신까지도 망쳐버린다. 릴리와 미란다의 모습속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게 된다. 자가당착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의 삶을 그 안에서 보게 된다.  그녀는 정말 완벽했다. 아니 그럴 줄 알았다. 어쩌면 은연중에 나는 릴리의 당위성을 옹호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상처입기 싫어하는 마음이야 모든 사람이 다 같을테니까. 따지고보면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었다. 바로 외로움이다. 조금의 후회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릴리가 한순간 가슴이 아팠던 이유, 그것은 외로움 때문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할 때 구멍난 것처럼 가슴속에 서늘한 바람 한점이 불어왔다. 내가 아는 사실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외로움.  눈길을 따라가던 마음속에 쿵,하고 뭔가 내려앉은 느낌이 온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외로움! 그 외로움이 우리를 이토록이나 처절하게 막다른 골목으로 내치고 있었구나! 

 

책장을 덮으면서도 가슴속의 서늘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아직 채색되어지지 않은 하얀 책표지를 쓸어내렸다. 마음을 잃고 방황하는 우리의 현재가 서글펐다. 릴리가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은 모두 우리 자신이었다고 인정해야만 한다. 뭔가 변화가 필요한 세상을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이 전하고 싶어한 메세지가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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