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분 후의 삶
권기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오래도록 지속되어져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항상 그렇게 무언가가 제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 혹은 그 무언가 때문에 수도없이 속을 태우며 발을 동동굴러야 하는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문득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본 것 같다. 아니 했을 것이다.  이 책속에는 열두가지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것도 죽음의 바로 문턱까지 다녀왔다는 사람들이 들려주었던 자신들의 이야기가. 맨처음 책표지를 보면서 내가 떠올렸던 것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서 살아났던 주인공들이었다. 3일 혹은 그보다 더 많은 날들을 죽음과 싸워가며 끝내는 살아냈던 사람들의 이미지가 이 책위에 오버랩되어져 왔다. 그들처럼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예고되어지지 않은 불행, 예측할 수 없었던 사고앞에서 그들이 내려야 했던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과연 어떤 의미로 그려져 있을까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산위에서, 혹은 바다에서 그것도 아니면 하늘위에서 그들은 죽음의 사신을 보았다.
손짓하는 사신을 앞에 두고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맨처음엔 그동안 해주지 못했던 것들이 미안했고 그 다음은 잘 살아달라는 당부의 마음이 들었고 마지막엔 그들때문에 살아야 한다는 모진 각오를 했었다고 그들은 한결같이 말하고 있었다.  가족! 그 무궁무진한 의미를 안고 있는 단어앞에서 그들앞에 웃으며 다가왔던 사신조차도 그냥 물러서야 했다는 말이다. 그것은 또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사랑이었을 것이다. 가족은 사랑일테니까...

그 높디높은 산을 정복하기 위해 길을 떠났던 그들에게도 사랑은 머물러 있었다. 나를 버리고 가라는 후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동료애는 그야말로 멋진 승리로 보여졌다.
등반후유증인 동상으로 썩어들어가는 발가락을 잘라내야 한다는 아픔을 딛고 일어서게 한 것도 손가락없이 산을 오르내리던 선배의 말한마디, 우리 장애인 산악회를 만들자... 내가 회장할테니 네가 부회장을 해라... 눈물나는 한마디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미더워했을 것이다.
거북이를 타고 인도양의 바닷물속에서 일곱시간만에 구조되었다던 이야기는 마치 한편의 동화를 보는 것 같았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던 아내는 이렇게 말해주었었지.. 팔이 부러져도 좋고 다리가 없어져도 좋으니 사실대로만 말해주세요... 그리고 아내는 그렇게 가슴앓이를 했었다. 남편의 고통이 제것이었던 양.. 사랑, 그것의 실체가 이 책속에서 살아 숨쉬는 것 같았다.
소년이 가출을 하고 자신이 원했던 삶과는 다르게 살아야 했던, 세상을 너무 일찍 배워버린채 힘겨운 얼굴의 젊은이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다시 가다듬은 마음으로 많은 유혹을 이겨내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을 나왔지만 운명은 아직도 그를 비웃고 있었던 ... 하지만 그에게 다가왔던 비행기 사고는 그에게 절망이 아닌 또하나의 삶의 희망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비행기 사고가 났던 11시 23분과 사고후에 힘겹게 딸이 태어났던 시간 11시 23분..  같은 시간이었지만 그가 선택했었던 것은 후자의 희망이었다는 점이 내게는 아주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다. 그렇게 받아들였던 긍정적인 생각이 나는 사실 참으로 부럽기도 했다.

저자가 밀리 밝혀두었던 것처럼 몇몇의 이야기속에서는 종교적인 색채가 진하게 배여나온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없는것처럼 치부해버릴 수는 없었을 게다. 종교적인 힘이라는 것이 어쩌면 그들에게는 하나의 희망이었을지도 모를 일일테니까.
책장을 덮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록하던 저자의 그 때 그마음은 어땠을까? 이야기를 들으면서 실제적인 느낌이 전해져왔을까? 직접 겪은 이와 그것을 전해듣는 이의 느낌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만큼이나 커다란 차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느낌을 생생하게 전해주기 위하여 군더더기를 붙이지 않은 채 솔직하게 써내려간 문체는 참 좋았었다는 생각이 든다. 실화라는 게 그렇다. 전해주는 이의 말에 따라 듣는 이에게는 정말 다른 느낌으로 다가서는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책속에서 느껴지던 열두가지의 느낌은 참으로 절절하게 다가왔다.

인생의 벽에 부딪혔을 때 해답은 자기 자신이 쥐고 있다. 인생의 벽에는 흐릿하고 불분명한 것들이 벽돌로 꽂혀 있다. 워낙 사적이고 미묘한 것들이어서 남들은 결코 설명해줄 수가 없다. 자신이 그걸 남에게 가르쳐줄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해답이 나온다 <92쪽>

일 분 후의 삶.... 과연 그 일분 후에 나의 삶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저들과 같이 극한상황에 한번도 빠져본 적이 없는 나는 그 일분 후의 삶에 대한 의미를 진정으로 느낄 수나 있으려는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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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밴드왜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4
쇼지 유키야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책을 받고나서 혼자 히죽거리며 웃는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됴코에서 활동하는 밴드의 이름이 왜건인가? 이런 생각을 했었던 까닭이다. 참 어이없게도... 그런데 우선적으로 생각되어지는 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속에서 그런 편견과 선입견으로 마주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거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만의 관념과 잣대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자의반 타의반이란 말도 있긴 하지만 그것은 어느정도의 위장색을 띤 채 보여지는 모습같아서 왠지 진실하게 보여지지 않으니 말이다. 이 책, 도쿄밴드왜건은 처음의 내 생각처럼 밴드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아주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속으로 나를 이끌어주었다.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한지붕 4대 일가족이 벌이는 끝없는 소동속에서 일년을 살아가는 이야기... 유머미스터리라고 되어 있다. 유머미스터리? 웃기는데 그 웃음이 미스터리란 말인가? 책장을 넘기고 봄,여름,가을,겨울을 함께 겪어내면서 나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된다.

나는 제작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여기 머물러 가족들을 지켜본다우, 나와 함께 지켜보실라우? 할머니 유령이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다.
온화한 할머니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족의 모습은 어떨까? 이야기속의 배경은 90여년 대대로 영업 중인 도쿄밴드왜건이란 헌책방이다. 언젠가 필요한 책이 있어서 다리품을 팔았던 우리의 기억속에서 사라져버린 헌책방들을 생각했다. 지금은 그나마도 몇몇개가 남아 있지만 그 옛날의 정취를 찾아볼 수 없는 우리의 헌책방들... 가끔씩 남편과 나누었던 우리의 대화를 떠올려 본다. 황학동이나 한번 갈까? 거긴 왜? 그냥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옛날 생각도 좀 해보고 그리고 잊혀져가는 우리의 옛정취도 한번 느껴보자고.. 아마도 지금의 젊은이들은 황학동엔 왜 가지? 할지도 모르겠다.

4대가 함께 생활을 하는 곳은 정말이지 번잡스러울거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다. 고집스런 책방주인인 79세 할아버지 칸이치 영감을 맨위에 두고서 예순이라는 나이를 잊은 노랑머리 아들 가나토, 그는 젊은 시절에 로커였나나 뭐라나, 그 아들 가나토에게는 두아들 콘과 아오, 미혼모인 딸 아이코가 있다. 그런데 그 두 아들중 하나는 밖에서 낳아 데리고 온 아들이고 그런 상황이다보니 그 아들과 가나토의 대립은 뻔하게 보여진다. 그 외의 인물로는 증손자와 증손녀 그리고 이웃들이다. 지극히 자연스러울 것 같은 주인공들의 이력을 보면서 이야기의 짜임새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그 헌책방을 스스럼없이 드나드는 예외적인 손님들의 모습 또한 만만찮다. 유유자적 인생을 즐기는 신관 할아버지와 그의 아들, 부끄럼쟁이 영국인 화가 머독씨, 헌책 애호가 형사양반 한분이 등장하고, 노숙자 출신으로 가타토의 친구이자 아파트 관리인인 켄씨, 그리고 헌책을 살때마다 할아버지 칸이치에게 독후감을 써내야 하는 청년 사업가..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가족에 합류하는 손주며느리 후보 스즈미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습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등장인물이 한명씩 부각되어질 때마다 그가 안고 있는 삶의 이야기가 맛깔나게 펼쳐진다. 때로는 눈물도 자아내게 하고 때로는 웃음짓게 하기도 하면서... 이렇게 잔잔한 이야기속에서도 내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것은 언제 어느곳에서라도 마주칠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공통적인 면을 찾아보라고 한다면 그들에게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랑이다.
콘과 결혼을 함으로써 친정부모와 의절해야 했던 아미의 아픔은 친정어머니의 병으로 인하여 멋지게 마무리 되어졌지만 며느리 아미를 위하여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노랑머리를 검게 물들였던 가나코의 며느리 사랑이라거나, 영국인이지만 일본이 좋아 일본에서 일본화를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 머독의 사랑은 아이코를 향한 혼자만의 짝사랑이지만 참으로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대학시절 교수와의 사랑으로 잉태되어진 딸을 혼자 키우며 살아가는 아이코에게 사랑이란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그런데 이 책이 정말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은 그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방식이 아닌가 싶다. 처음부터 술술 풀려지는 이야기라면 정말 밋밋하고 재미 없었을 구도를 미스터리라는 수법을 동원해서 이야기의 시작점을 잡아주면서 뭐지? 이번엔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의구심을 정말 자연스럽게 만들어주고 있는 까닭이다. 성도착증 환자인줄 알았던 아파트 관리인이 사실은 오래전에 집을 떠났던 외할아버지였다거나, 스토커인줄 알았던 그림자가 아미의 친정동생이었다거나, 집안에서 물건들이 흩어지고 아이코의 캔바스가 칼로 찢기우는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은 자못 긴장감도 자아내게 되지만 그 결과는 되돌아보아도 가슴 찡하다.

전설의 로커 가나토의 관점은 오직 하나 '러브'다.  상처를 덮고 치유하는 건 말이지. 역시 러브라는 이름의 반창고라고.. 러브는 말이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상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거기 있는 거란다... 가나토의 말속에서 너무나도 커다란 느낌이 전해져 온다. 러브라는 이름의 반창고.... 정말 멋지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그런 것이 정말 이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

탈많고 말썽 많을 것 같은 대가족이었지만 가족 하나 하나가 서로를 감싸주며 위로해 주고 아픔을 보듬어주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거기에 헌책방을 찾아주는 사람들이 만들어내었던, 또하나의 사랑을 보태어주고 있으니 이 책속에는 온통 사랑만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사랑타령을 거부할 수가 없다. 아니 거부감조차도 느껴지지 않는다. 도대체 가족이란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이 책속에서 내가 찾아내 먹어야 할 것들은 참 많아 보인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우리의 이야기속으로 한번 더 들어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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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라인 - 전2권 세트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 지음, 김청환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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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599년, 당시 프랑스 왕 앙리 4세의 정부였던 가브리엘 데스트레가 임신 중에 갑자기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녀의 죽음은 앙리 4세와의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크나큰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이쯤에서 나는 팩션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사실을 재창조하는 장르를 가리키며 주로 소설쓰기의 한 기법으로 사용되었다는 팩션..

일전에 읽었던 트레이시 슈바리에의 작품이 생각났다. <진주 귀고리 소녀>라는 작품 역시 그림 한점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는 까닭이다.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전율을 여기 이 소설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을까? 내심 은근한 떨림을 기대하면서 책장을 열었다. 여기에서도 작자는 그림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리고 그 그림을 따라 배경색을 바꾼다. 엄청난 스릴이 느껴지고 어느새 나 자신을 그 시대속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작자의 놀라운 힘을 밀어낼 수가 없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학자들이 삽질을 하기 시작한다. 거대한 비밀처럼 묻혀져 버린 역사적인 사실을 하나씩 하나씩 파내어가는 과정들은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모아지는 단서들은 너무나도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지만 그것이 있기에 추론을 정립해가며 이야기는 만들어지고 있었다.
물론 그들에게도 의심과 부정의 시선은 당연히 따라왔다. 하지만 아주 미세한 단서하나라도 찾아내기 위해 눈을 부릅 뜬 그들의 모습이 내게는 보여졌다. 대단한 그들의 직감력.. 그것은 아마도 그림을 따라가는 작자의 직감력이 아니었을까? 사실과 만나는 소설의 형태는 언제보아도 흥미만점이다.

욕조에 두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한 여인이 옆의 여인에게 손을 뻗어 그 여인의 젖꼭지를 잡고 있다... 어찌보면 상당히 외설스러운 그림일수도 있겠지만 그 그림속에 숨겨진 많은 속뜻을 책을 읽으며 알아가는 재미는 빠져보지 않으면 결코 말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림 한장속에 그토록 커다란 의미를 숨겨둘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신비로웠다.
단순히 왕비가 되기 전에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한 여인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여인이 있었음으로 득을 볼 수 있는 한쪽과 그 여인의 존재 자체가 방해물이었을 또다른 한쪽에서 바라볼 수 있는 두갈래의 시선속에는 그 여인을 미끼로 매달았던 냄새나는 정치적인 술수들을 그려주고 있음이다.  가브리엘 데스트레라는 여인의 참담한 죽음을 보면서 중국 진나라 무장 항우의 총희 우미인이 생각났다. 사면초가에 놓여진 항우에게‘대왕의 의기가 다하였으니 천첩이 어찌 살기를 바라겠읍니까’라고 말한 후 자진을 했다던 그 여인..
가끔씩 나는 생각한다. 진정한 영웅의 곁에 머물러야 하는 여인의 모습에 대하여.. 역사속에서나 혹은 민화나 전설을 통해서 만나지는 영웅 뒷편에 앉아 있던 여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추하다. 물론 아주 없는 것은 아닐테지만 아름다움을 찾아내기가 결코 쉽지마는 않은 듯 보여진다. 욕망때문이겠지만 그 욕망으로 인하여 출세의 길을 달리다가 그 욕망의 허세로 인하여 끝내는 죽음의 길로 들어서고야 마는 흔한 이야기들처럼 이 책속의 여인 역시 그런 모습으로 비춰서서 실망스럽기도 했다.

책속에 담겨져 있는 많은 그림들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야기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라도 그 그림들은 필요했다. 이 소설의 저자는 이 사건에 흥미를 갖고 옛 문헌을 연구하던 중,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문서를 발굴했고 그것을 통해 400년 전 그 사건의 해답을 보여주고 싶어했던 건 아니었을까? 역사학회에 논문을 발표하여 이 사건에 대한 역사학계의 공식적 입장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지만, 저자는 이것을 소재로 한 편의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왜 그랬을까? 책의 말미에 붙여져 있는 부록에서 작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소설을 통한 그림의 해석... 나는 절대로 환상에다 박사학위의 모자를 씌우고 싶지는 않다. 그 모자의 차양이 탁 트인 지평선을 가릴 것이다. 그런 주제를 가지고 주석과 전기적 사실들을 담아 학회지에 논문을 게재해 몇 안되는 교수들과 학생들에게만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커다란 손실이 아니겠는가.<부록 313쪽에서>...나는 이글을 보면서 작자의 혼잣말처럼 그가 진정으로 가브리엘 데스트레를 사랑했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소설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또 얼마나 힘겹고 어려운 길이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림을 따라가며 거기에 묻혀져 있을 역사적인 사실들을 그려내는 이 소설은 정말로 흥미진진하다. 마침표를 찍는 문장 하나하나를 건너 뛰면서 색다른 즐거움을 안고 주고 있는 것이다. 보여질 듯 보여질 듯 보여지지 않는 수수께끼의 주인공은 도대체 어디에 숨겨놓은거야?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속에는 혹시나 하는 스포일러를 찾아내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하지만 끝내 마지막까지 달려야 하는 이 소설은 기나긴 시간속을 달려왔음에도 결코 숨차지 않았다. 결승점에 도달해서야 모든 것들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에필로그도 그렇지만 책의 말미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보여주었던 부록은 이 책의 별미다. 역사적인 사실을 연도에 맞게 배열해주는 옵션도 빠뜨리지 않았다.

사랑을 갈구했던 것일까? 그것은 아닐것이다라고 나는 결말을 지었다. 정치적 희생양일 수 밖에 없었던, 욕망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을 억제하지 못한채 죽어가야 했던 가브리엘 데스트레라는 여인을 통해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속에는 여인들이 갈구하는 그 흔한 지고지순한 사랑은 도무지 찾아볼래도 찾아지지 않는다. 사랑했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과거형의 사랑모습조차도 찾아내지 못했다. 책속의 주인공보다는 작자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신의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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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 (작사:김민기 작곡:김민기 편곡:김광민)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것은 아무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저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 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을테니까 말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하면서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같은 것이 저며 올때는
그럴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김민기의 "봉우리" 라는 노래의 탄생 배경은 88년도 서울 올림픽이었다.
모래시계의 작가로 유명한 송지나씨의 의뢰로 88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을 위한 TV프로그램의 테마음악을 김민기씨가 작곡하게 되었다.
하지만 해금에서 자유롭지 못한 김민기라는 이름은 드러낼 수 없었다.
김민기씨의 음악은 항상 순수하게 시작됐으나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운동권 가요도 되고,
시대를 대변하는 노래도 되었다며, 그게 자신의 팔자라고 김민기씨 스스로 말했단다.
아무튼 배경이야 어찌되었든 곱씹으며 들을 만한 노래다.



언제였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내가 처음 이노래를 들었던 때가..
왜 그리도 가슴이 아파왔었는지...
무언가 내안에서 꿈틀거리며 치고 올라와서는
끝내 눈물 한자락으로 흘러내리고 말았었지.
왜 그토록 저미는 가슴이었는지 나는 지금도 알지 못하겠다.
다시 이노래를 만나고..
김민기씨의 아릿한 목소리는 또다시 나를 멈칫거리게 한다.
어쩌라고...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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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라도에서 생긴 일
이제하 지음 / 세계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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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이라는 말에는 정말이지 많은 뜻이 포함될 수 있다. 있을지도 모를, 혹은 우리가 마음속으로만 간절하게 원하는 그 무엇들이 '만약'이란 말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까닭이다. 처음 능라도에서 생긴 일이란 제목을 보았을 때 얼핏 스쳐가던 느낌은 스릴러 혹은 추리극이 아닐까 하는거였다. 우습게도 나는 편견의 관습에 잡혀 있었던것 같다. 책을 받자마자 책날개속에 숨겨져 있던 작가의 이력을 만난다. 이력보다는 저서를 나열해 놓았다. 왠지 부드럽게 느껴지지 않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가상의 세계속에 존재한다는 능라도에서는 무슨 일이 생겼을까? 어느정도의 기대감이 부풀어오르기 시작한다.

이 책속에는 아홉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나타날 때마다 저마다의 등뒤로 무언가를 숨긴채.. 혹은 너무나 무거워 차마 내려놓지 못하는 등짐을 진채로.. 딱딱하게 전해져 오는 문체들앞에서 사실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직설적인 화법으로 보여주는 작가의 특성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일단은 내가 매일처럼 접하고 있는 인터넷이란 가상공간에서 시작되어지고 있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닉네임을 서로 부르며 온라인상에서만 만나던 그들이 어느날 문득 '우리 얼굴 좀 봐요' 하며 만남을 제안하는 글에 선뜻 응해올 때 드디어 그들에게 어떤 사건이 벌어지려는거군 했다. 내가 처음 인터넷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가 생각났다. 그저 우연히 들어왔던 곳이었지만 그 첫인상은 그리 곱지 않았었다는 기억이 났다. 진실된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가식적인 자기 자신을 앞세우는 가상공간이 내게는 왠지 껄끄럽기만 했었다. 친구의 손에 이끌려 끌려가다시피 했던 오프모임의 인상 역시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그야말로 그냥 그런 시간을 죽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열리지 않아 엄청 힘들었던 기억이 났다.

로르카.. 그에게 처음으로 그것이 소포로 배달되어져 왔다. '만약' 그것이 내게로 전해져 왔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한참을 고민했을 것이다. 이야기의 중심축인 로르카는 실버호텔의 담장 아래에 그것을 묻어두기로 한다. 그리고는 암호를 정하지. 앨리펀트라고. 그리고 그 코끼리의 움직임을 보고하라고.. 맨처음 그 코끼리를 움직인 것은 알렉산드리아였다. 이혼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그녀에게 전남편의 집착은 너무도 힘에 겨웠을 것이다. 차마 떨쳐낼 수 없었던 기억앞에서 다시 만난 그 기억의 꼭지점을 보면서 모든것을 놓아버리는 여자. 그 일을 계기로 코끼리의 움직임은 활발해진다. 무슨 일이든 그렇다. 누군가 하나가 시작을 해주면 그 다음부터는 순서가 정해진 것처럼 착착 진행되어지게 마련이다. 풍란에게로 옮겨갔다가 다시 배터리의 마음속에 잠시 머물렀던 코끼리는 그 무거운 몸을 아직은 어린 은박지에게 기댄다. 암호명 코끼리...그것의 정체는 총이었다. 한자루의 권총. 내게 그 총이 어느날 배달되어져 왔다면, 그래서 너의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면 나는 아마도 그 누구를 향해서도 총구를 들이밀진 않았을 것이다. 혹시나.. 나를 향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 보기도 하지만... 아니, 이건 정말 혹시나해서 하는 말이다.

그들은 모두가 외로웠다. 그들은 모두가 아팠고 혼자만이 안고 살아가야 할 상처를 하나씩 갖고 있었다. 그리고 저마다 저의 상처가 가장 크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저멀리에 존재하는 총부리를 자신에게 상처를 안겨주었다고 생각되어지는 사람에게 이미 겨누고 있음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니고 내 탓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느냐고.. 닉네임과 본명을 적절하게 섞어가면서 진행되어지던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알렉산드리아와 풍란을 통해 보여지는 여자들의 삶. 유교적인 관습이라든가 종교라는 허울을 빌어 너무나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삶의 모습. 결혼과 가족의 의미, 그리고 빠뜨릴 수 없는 사랑이란 의미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는 빌미를 던져주기도 한다. 배터리와 무한공간을 통해 보여지던 사회의 한단면을 보니 씁쓸했다.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죽음조차도 내 편한쪽에 맞추고 싶어하는 사회의 통념앞에서 그런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아니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어떻게 보면 우리 회원들 막다른 곳에 이른 사람들 같지 않아요? 무슨 강박증 때문에 사이트를 찾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속들을 털어놓고 오랜동안 얘기를 하다 보니 제 고독이 아니라 남의 고독부터 이해하고 최선을 다하는 게 정말로 고독을 안다는 소리라는 걸 깨닫게 된 거겠죠..
남을 이해하려면 가슴속의 응어리부터 풀어버려야지 그거 지닌 채 어떻게 남에게 다가가요...
95쪽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면 참으로 가슴아픈 말이 아닐수가 없다. 여기 모인 그들의 직업은 참으로 다양하다. 시인, 사진작가, 건축가, 주부, 영화조감독, 인테리어하는 사람, 운동가였던 사람... 그런 그들이 안고 있는 아픔 또한 다양하고 그 응어리진 모습 또한 다양하다. 모든 것의 문제와 답은 자신이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구에게 총부리를 겨누는가? 알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능라도라는 사이트를 개설하고 그 회원에게 총을 보내주었던 사람이 드디어 밝혀지던 순간. 그의 환상속 세상이 이해가 되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반전이라는 것일까? 아니 내가 보기엔 그것도 아닌것 같은데... 뭐지? 그리고 그의 자살. 결국 그가 원했던 것은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거였나 보다. 그 엄청난 무게를 견뎌내지 못한 채 누군가를 그 안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던가 보다. 그런데 마지막 여운이 왠지 길다. 단순히 한 개인의 자살이 아니라 뭔가 번잡스러운 우리의 생활하나가 무너져 내린 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마침표를 찍으면서 작품해설로 넘어가니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의도를 아주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 이 작품에서 권총은, 잠재적 폭발력을 지닌 현실적 대상일 뿐만 아니라 유구한 역사성까지를 드러내면서 더욱 문제적인 위상을 확보한다... 가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넘어와 버린 총의 의미가 왠지 무서웠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마치도 가상의 세계가 현실의 세계인양 여기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책의 뒷표지에 이런 말이 써 있었다.  작품을 읽어본 독자들은 인정하겠지만, 그는 오늘날 우리들의 현실을 대체할 만한 파괴력을 가지고 현실화된 가상 현실의 세계, 인터넷 세상의 삶의 본질로까지 그의 문제의식을 확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왠지 두려운 느낌이 들었다. 몇번을 반복적으로 읽으면서도 몇번을 끄덕거리게 되고 몇번씩이나 인정하게 된다. 왜그럴까? 그 인정이 두려워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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