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나, 김처선
이수광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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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가 시작되었는가? 나는 알 수 없다. 어지간해서는 TV를 보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굳이 드라마를 찾아서 보고 싶지는 않다. 익히 알고 있는 혹은 너무도 흔한 조선사의 일화가 이야기의 배경으로 쓰여졌다. 사적인 느낌으로 말하라고 한다면 마치도 일전에 대흥행을 일으켰던 영화 <왕의 남자>를 탄생시키기 위해 쓰여진 글처럼 보여진다는 거다. 그만큼 이 이야기의 흐름을 잡아내지 못한 탓이려니 한다. 어쩌면 나의 기대가 너무 컸던 탓도 있으려니 한다. 어쩌면 영화라는 틀속에서 만났던 이야기의 내용이 너무 강하게 다가왔던 탓도 있으려니 한다. 

내시, 어릴 때에 거세를 당하고 궁궐에 들어와 그야말로 불목하니처럼 살아가는 존재.. 하지만 때로 권세를 갖고자 그 욕망을 표출했던 이도 있었다. 때로 권세가들의 손발 노릇을 해주며 그 자신도 그에 못지 않은 힘을 가진 자도 있었다고 한다. 속살거리는 자.. 이것이 내시가 아니었을까? 나는 솔직히 잘은 모르겠다. 거세를 함으로써 오는 신체의 변화에 대해서는. 하지만 책속의 내용을 빌어서라도 말을 한다면 어찌되었든 그들은 속살거리는 자들이 분명했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에게 처해진 현실에 대한 반항이었을 것이며, 어쩌면 그것은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운명에 거스르고 싶어하는 처절한 그들의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나는 그냥 내시면 내시일뿐이라고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 책속의 세상은 그런 나에게 보란듯이 비웃음을 보여준다. 물론 모든 내시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나 개중에는 학문이 높았던 내시도 있었고, 또한 나름대로 학구열이 높아 책을 가까이 하는 내시도 있었을 것이다.  왕조차도 '조금 지식이 있는 자들'이라고 말했다고 하니 말이다. 학과와 무과를 포함하여 일정기간 동안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고 하니 말이다. 자신들의 신분에 걸맞는 시험을 보기도 하였다니 참 놀랍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시는 그냥 내시일뿐이라는 나의 의식은 아마도 그들에 대한 어떤 정보조차도 가질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더군다나 그들은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고 한다. 물론 직급이 높을 경우에야 있을 법한 일이지만 말이다. 내시 김처선과 그의 식솔들에 관한 이야기는 왠지 서글픈 느낌으로 다가왔다. 김처선의 아내 향이가 그의 무덤에 찾아와 술한잔 하며 내뱉는 독백의 끝에서 나는 오랜 외로움을 보았다. 사람은 마음만으로는 살수 없다는 것을..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한다는 것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아픔을 함께 안아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한다는 것을.. 그들이 나누었던 사랑은 어떤 사랑이었을까? 죽음 뒤의 세상에서도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 향이는 이렇게 말했지, 첩도 두고 아들도 둡시다. 하지만 아들만큼은 내가 낳을테요, 라고. 끝내 자신의 속깊은 공허를 드러내는 그 장면은 흔한 말로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하고 되묻게 되는 장면이 아닌가 싶었다.

잘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왠지 김처선이란 인물이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물처럼 느껴졌다. 어지러운 난국을 헤쳐나오며 여러명의 왕을 모셨다는 김처선.. 그의 시선으로 그 시대를 바라볼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내내 주변을 맴돌며 차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김처선이란 이미지가 못내 껄끄러웠다. 그냥 연산군의 시절로 가기 위한 하나의 돌다리위에 잠시 서 있었던 듯한 느낌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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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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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는 신윤복을 사랑했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서로 사랑했다?
김홍도가 사랑했던 여인은 과연 누구였을까?
책장을 펼치니 가는 붓대 하나조차 들 수 없는 늙은 육신의 남자가 담담한 어조로 말문을 열고 있었다.
그가 회상하는 시대의 연정은 과연 누구를 향하는 것일까?
영웅은 시대를 잘 만나야 한다고 했었는가?
아니면 시대가 영웅을 만들어 낸다고 하였는가?
많은 조선시대의 이야기들을 접하면서도 유독 우리의 역사속에서 과연 시대를 잘 만난 영웅이 있었는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있었을까?  있었다면 과연 얼만큼의 시간속에서 그들은 머물다 간 것이었을까?  팩션이란 말의 정의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실제 있었던 사실이나 실제적인 인물을 구도로 잡아 배경을 채워가며 하나씩 하나씩 설명을 늘어놓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과연 무엇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일까?  참으로 놀라웠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책속에 나의 혼을 들여보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숨막히는 긴장감속에서 감히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태어날 수 있었는지 읽던 도중에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이정명이란 작가의 이력을 보고 또 보았다.  문득 <진주귀고리 소녀>라는 책이 떠올랐다. 그 책을 읽으면서도 이토록 긴장을 했었는가? 나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에게도 이런 책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작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던것 같다. 한장 한장 그림을 따라가면서 엮여지는 이야기들이 마치 환상처럼 보였던 까닭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에 대한 나의 지식은 참으로 짧다. 그림에 문외한일 뿐더러 아무리 기억속을 헤집어 보아도 나의 기억속에서 그들의 이름을 만날 수 있었던 때는 가방 들고 학교 다닐적의 시험시간이었을 뿐이다. 단원 김홍도, 그가 그린 그림은 무엇인가?  그는 어떤 식으로 그림을 그렸는가? 이런 종류의 객관식 문항에 넷중 하나를 골라 답을 가려내야 하는 그런 정도의 수준밖에는 없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속에 숨겨져 있는 단원과 혜원의 그림은 정말 색다른 감흥을 불러왔다. 그것은 아마도 그림을 펼쳐 준 후에 벌어지는 그 그림에 대한 논리적인 이야기 한마당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림 한장이 나올 때마다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림 한장으로도 말을 대신 할 수 있다던 단순한 진리를 이 책속 끝없이 만날 수 있었다. 그림 한장속에 세상사의 모든 것들을 담아 낼 수 있었던 그들은 책속에서 말하고 있듯이 하늘이 내린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자와 스승으로 만났던 두사람.. 그들은 진정 사랑했을까? 아마도 그랬으리라. 나를 정말로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뒷부분의 놀라운 반전을 굳이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사랑했어야 했다. 그 놀라운 반전으로 인하여 어쩌면 그들의 사랑은 더욱더 견고한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싶었다.  제자 신윤복을 마음속에 가두어 두었던 김홍도와 기생 정향을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신윤복의 말없는 사랑 앞에서 책을 읽는 내가 오히려 안타까웠다. 다가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어쩌면 그토록이나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향이 타던 가야금의 곡조와 윤복이 그리던 그림속의 그리움은 마치 하나된 듯이 그렇게 어우러졌다. 그림 하나 하나가 어쩌면 그리도 정갈하게 다가오던지... 그들은 진정 그들이 가진 서로의 재능만을 사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홍도와 신윤복을 사랑했던 정조대왕의 마음이 오로지 출세와 탐욕으로 삐뚤어진 세상의 입으로 인하여 한숨을 내쉴 때의 막막함이라니... 변화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은 지금의 세상속에서나 통하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사실이 그랬다. 복지부동,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서 결코 변화를 바라지 않는 썩은 무리들의 악취속에서 꽃은 피어날 수 없는 것이 그 시대의 현실감각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두 화가를 통해 세상을 알고 싶어했고 백성을 알고 싶어했던 왕의 마음, 그것이 차마 볼 수 없는 그림이라 할지라도 왕은 그들의 숨겨진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거침없는 그 마음을 왕은 사랑해 주었다. 그 마음때문에 하늘이 낸 천재를 곁에 두지 못했던 왕의 상실감... "그렇다. 조선은 대대로 일하는 자를 업신여기고, 사대부라 하여 몸 움직이기를 게을리하였지. 하지만 이제 알겠다. 삶의 기쁨이란 정직한 노동의 대가로 오는 것임을 말이다." ... 늘 그렇다. 지금이나 그때나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서 존재할 뿐이다. "화원은 본 것으로 그릴 뿐이옵니다. 보지 않은 것을 그리는 것은 문인들이지요"... 정조의 힐책에 대답하는 윤복의 대답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 내심 통쾌하기도 했다. 탁상공론뿐인 세상사의 법칙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아무것도 겪어보지 못했으면서 그저 읽은 책에서 혹은 주워들은 정보와 통계만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세상사의 법칙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상반적인 구도로 그려지는 반상제도와 마주치는 나는 언제나처럼 또다시 쉽게 흥분하고 말았다. 

책속에 풀어 놓은 신명나는 이야기 한마당속에서 만나지는 모든 것들을 단순히 허구라고만 보고 싶지 않았다. 김홍도의 선굵은 남성적인 화풍과 신윤복의 섬세한 여성적인 화풍이 너무도 잘 어울어진 한편의 마당극처럼 보여졌다. 마지막 그림 대결에서 보여주는 두장의 그림..  서민들의 풍속을 그린 김홍도의 그림중 으뜸이라는 <씨름>과, 넓은 마당 한가운데서 칼을 들고 춤을 추는 두 여인의 그림을 보여주는 신윤복의 <쌍검대무>라는 두장의 그림을 앞에 두고서 그림속 세상을 헤집어 낱낱이 까발려 놓고 싶어하는 도화서 계원들과 심사관들의 칼날같은 논쟁이 나는 더욱더 놀라웠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 그림을 보는 사람의 시각에서 자신들의 느낌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장면은 마치도 내가 실제로 그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찾아내지 못했던 것은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의 속깊은 마음이었다. 그 그림속에 숨겨두었던 그들의 속내를 어찌 찾을까?

<뿌리 깊은 나무>라는 책은 작가의 글을 다시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욕심을 불러왔었다. 그의 세상은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있지 않은 것 같아 읽으면서도 참으로 편안했다. 살아있는 듯한 책속 세상을 만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또다른 행운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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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심리학 - 인간관계가 행복해지는
이철우 / 더난출판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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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자기자신을 잘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자기자신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고집불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회성이 좋다거나 아니면 인간관계가 좋다거나 하는 것일게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타입일까? 나를 향해 언제든 던져질 수 있는 화두이지만 언제나 결론은 없었다. 이 책속에서도 역시 묻는다. 나는 누구일까?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는 얼만큼의 차이가 있을까?  늘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비롯되어진다고. 그러니 모든 것들의 결과 역시 나로부터 비롯될 수 밖에는 없는 일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명과 핑계를 준비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이 기왕이면 좀 더 좋은, 좀 더 괜찮은 이미지로 부각되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우선적일테니까 말이다.

숨겨진 채 나에게도 남에게도 드러나길 꺼려하는‘나’ 들여다보기는 사실 쉽지 않다.  비밀을 함께 공유할만한 친구가 몇이나 있나요? 속을 터놓고 지낼만한 사람은 또 몇이나 있나요? 간혹 이렇게 물어오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물어오는 사람의 정의처럼 그렇게 속속들이 세세하게 자신을 다 보여줄만한 용기가 필요한건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그런 용기가 부족하다. 착각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란 우스개소리를 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내 맘대로 내 뜻대로 해석하는 자체를 두고 하는 말이었을 게다. 이 책은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착각 덩어리 독재자일지로 모른다고. 그만큼 자신의 틀안에서 살기를 원하거나 혹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말도 되는 것 같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또다른 나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순간을 두려워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그 어떤 것의 힘은 가끔 나를 두렵게 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남을 얼마나 의식할까? 자신의 이마에 E자를 써보라는 저자의 말에 나도 E자를 써보았다. 그런데 나는 상대편에서 보기 좋은 E자를 썼다. 거기에 따른 여러가지 설명을 읽어보면서 슬그머니 작은 안도감도 느껴본다. 너무 내 본위대로만 살아가고 있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도 하면서...   자기 자신이 보이고 싶은 면만 보이는 자기제시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며 오히려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자기개시에 관한 글을 읽을 때는 약간의 긴장감도 느껴졌다. 어찌되었든 좀 더 확실한 친밀감으로 그사람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욕구가 내재되어져 있는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어느쪽이든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어느정도는 보일건 보이고 숨길 건 숨기는 융통성이 필요한 듯 하다.

나는 한사람일까, 두사람일까? 그것도 아니면 여러 사람일까? 처해진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보통의 사람들이 아닐까? 나 역시 그런편에 속해 있다는 말이 솔직할 것이다.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모습만 보여주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을까? 확신하건데 도사가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나 자신이 몇사람이 되었든 너무 인위적이며 가식적이기 않기를 바랄 뿐이다. 너무 내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 본다. 책속에서 말하고 있는 카멜레온형 인간이 되라는 말도 어쩌면 나하나만을 위해서라는 말은 배제시킨 부분일 것이다. 그만큼 자기자신에 대해 모니터링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말도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도대체 몇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또 내 등뒤로 숨겨놓은 가면은 몇개가 있는지 나를 한번 더 돌아본다.

마지막 11장에서 말하고 있는 주제가 너무도 좋았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서 형식적인 인간관계를 극복하라는 말, 감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은 내게 많은 생각을 불러오게 만들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 물어온다.. 어떠한 경우 어떠한 장소에서라도 나는 언제나 같은 나라는 말이 과연 좋은 말일까? 한번 더 생각해보고 솔직하게 말하지만 나는 앞서 말한 모습의 나로 살아가기는 싫다. 경우와 장소, 조건에 따라 어느정도는 자신을 변화시킬 줄 아는 그런 내 모습이 더 좋아보이는 까닭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되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될 부분은 숨기면서 살아가는 게 오히려 더 낫다고 판단되는 까닭이다. 어느정도의 융통성과 변화는 필요한 것일테니까 말이다.

"나는 누구일까요?" 이 책에서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다. 나는 누구일까요? 그말은 나는 어떤 사람일까요? 하고 묻는 것일까? 처음부터 갈팡질팡했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까닭도 있겠지만 각장마다 따라오는 심리테스트 문항들이 나의 판단력을 흐려놓았던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어렸을적엔 아이큐테스트라는 게 있었다. 학교에서 모든 아이들에게 시험을 보듯이 몇장의 문항지를 나누어주면 정해진 시간내에 답을 체크하여 제출하였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중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폐지되었다고 들었다. 이 책속에서 만나지는 심리테스트 단계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아이큐테스트가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어느정도는 실험과정을 거쳐 종합적인 근거를 가진 단계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왠지 저런 테스트에는 거부반응이 인다. 잘난것도 없으면서.

좋은것만 보여주면서 살아도 세상은 살아가기 힘든 곳이라고 한다. 이 책속에서 많은 규칙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결국 따지고보면 일종의 처세술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은 이렇게 터득하는 것이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좀 더 나은 조건에서 혹은 좀 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좀 더 요령있게 자신의 약점을 감출 수 있고 교묘하게 이용할 수 있기 위해서 등등등 세상을 요령있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규칙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결론은 이렇다. 생각을 바꾸면 인간관계가 쉬워진다는 말이다.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는 데 인색하지 말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다. 프롤로그에서 볼 수 있는 저자의 말처럼 생각을 바꾸려면 다른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어떤 식으로 처신하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여러가지 상황에서 자기를 잘 나타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고집하며 상태와 상황에 따라 변화할 줄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이 책은 손해보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지침서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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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매스컴에서 그토록 뜨거운 공방전을 한다해도 나에게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아이구, 한국영화가 다 그렇고 그렇지 뭐...
단지 서로간의 느낌 차이일뿐인 것을 왜 저토록이나 목소리를 키우며 얘기를 하는 건지,
지금은 무조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시대가 아니잖아?
D-WAR 를 보고 싶다는 아들녀석을 달래서 나는 트랜스포머를 보게 했었다.
그랬던 내가 오늘 그야말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D-WAR 를 보았다.
그럼 한번 보지 뭐, 인심쓰듯이 표를 구입했고 인심쓰듯이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래, 어떻게 만들어서 그렇게들 말이 많은지 한번 보기나 하자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왠걸!!! 도입부분부터 나를 긴장하게 했다. 어라? 시작이 괜찮은데!  그리고 영화는 시작되었다. 예고편으로 혹은 이런저런 지면을 통해 많이 보아왔던 그 CG 부분만 빼면 별 거 없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던 그 장면들은 정말 놀라웠다. 영화속에서 보여지던 조선시대의 모습은 왠지 색다른 느낌을 불러 오기도 했었다. 막힐 듯 하면서도 막히지 않고 이끌어가는 스토리라인도 꽤나 공들인 느낌을 받았고 CG 로 보여지는 부분도 그리 어설프게 보이지 않았다. (단, 그 하마같은 괴물만 뺀다면 ㅎㅎ)
 
영화라는게 그렇다. 보는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고 또한 받아들이는 이의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 다가오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전문적으로 영화를 평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전문적인 평가만을 그들에게 맡기면 되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다 자신의 느낌을 말 할수 있는 자유가 있는 곳에 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사람들만을 위해서 영화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까닭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 역시 영화에 대해 많은 생각과 지론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옹졸한 혹은 졸렬한 애국심이라는 말을 배제시킨다 해도 이 영화는 그렇게 형편없는 영화로 보여지지 않았다.
누구나가 전문가적인 평가를 하기 위해서 영화를 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영화 자체만을 보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또한 거기에 심형래라는 사람의 인간승리를 더하여 그 영화를 평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기에 자신만의 주관적인 느낌 표현에 충실하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심형래가 만들었기에 마이너스적인 효과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말하며 눈물 짓던 그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렇지 않다. 심형래가 만들었기에 더 좋은 영화로 보여질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잘된 것은 아니란 얘기다. 사실 조연으로 나왔던 외국배우들의 연기력도 썩 잘했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리 나쁘지는 않다. 그의 불끈 쥔 주먹을 보며 화이팅을 외쳐본다.
 
우리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진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전설.
처음엔 과연 될까? 싶은 생각에 우려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곧 나의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흔히 영화속에서 보아왔던 중국의 모습과는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 우리의 도사들도 축지법을 쓸 줄 알았고 물위를 걸을 줄 알았으며 장풍을 쓸 줄 알았다. 웃음이 나올 것 같은가? 전혀 그렇지 않다. 단지 우리는 중국의 것에 습관처럼 기준을 맞추고 있을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국인임을 느끼게 해 주었던 앤딩장면의 감동은 너무 벅찼다. 가슴 저릿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그 아리랑의 곡조.. 지금의 젊은이들이 그 아리랑의 곡조속에서 가슴 아린 느낌을 찾아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웃기는 사람중의 하나이다.
미국 비디오 대여점에 꽂혀있던 용가리를 보면서 다시한번 용기를 내게 되었다.
우리의 기술로 만들어진 디워가 너무 자랑스럽다.
올라가던 자막이 멈추었는데도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없다고 본다. 끝내는 용이 되어 승천하던 이무기처럼 심형래 감독에게도 그런 멋진 날이 올 수 있을거란 기대를 해 본다. 마지막 클라이막스 장면이 아직도 눈에 보이는 듯 하다. 멋지다. 우리의 영화였기에 더욱 더 대견스럽다. 우리의 영화도 저렇듯 멋지게 폼을 잡을수 있구나 싶었다. 모든 편견과 선입견을 떨쳐버리고서
오직 나만을 앞세워 영화를 한번 봐도 괜찮을 것 같다.... /아이비생각


심형래라는 이름을 생각합니다. 자신의 일을 끊임없이 개선·개발·혁신해 부가가치를 올리는 지식을 소유한 사람...신지식인이란 말은 바로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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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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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무서워... 내가 처음 이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무섭다는거였다. 정말로 이 세상이 눈먼 자들의 세상이 되어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진즉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던 사람과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던 사람이 온통 검은색의 세상을 만나게 되는 느낌은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가만히 앉아 눈을 감아 본다. 세상이 온통 먹빛이다. 그러다가 알 수 없는 소용돌이를 본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그런데 이 책속에서 만나지는 것은 온통 먹빛인 세상이 아니라 하얀 어둠이다. 온통 하얀 세상... 그러나 아무것도 바라볼 수 없는 세상... 거기에는 두려움과 절망과 포기만이 있을 뿐이다.

어느날 운전을 하며 집으로 가던 한 남자는 신호등 아래서 그만 눈이 멀어버린다. 신호등이 바뀌고 뒤에 있는 차들은 경적을 울려댄다. 하지만 그 남자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왁자지껄하게 한마디씩 거드는 틈을 타서 착한 남자가 말한다. 내가 당신을 집까지 데려다 주겠소.. 하지만 그 남자 역시 실명을 하게 되고 그 실명은 전염병이 되어 실명을 한 남자를 치료를 해 주었던 병원의 의사나 간호사, 그 착한 남자를 거쳐 갔던 경찰관이나 모든 사람들이 마치도 줄에 꿰인 듯 하나씩 하나씩 실명을 당한다. 놀란 정부에서는 그들을 격리시키게 된다. 하지만 그곳은 일상적인 병원이 아니다. 버려진 정신병원... 너무나 황폐한, 그리고 너무나 을씨년스러운 곳.. 그리고 그곳의 사정은 넘쳐나는 실명자의 숫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나는 하나의 희망을 본다. 단지 남편을 보호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수용소에 갇힌 아직,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 아니 어쩌면 그녀는 이 글이 끝날때까지 눈이 멀지 않을 것이다. 가장 처음 수용소내의 같은 병실로 수감되게 된 일곱사람.. 처음 눈을 멀게 된 남자와 그 남자의 아내, 안과의사와 그의 아내, 그리고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와 엄마를 잃은 소년, 검은 안대를 한 노인, 이렇게 일곱 사람은 눈 뜬 의사의 아내에게 너무도 무거운 책임과 과제로 남겨진다. 차라리 눈이 멀고 싶다던 그녀의 마음, 나는 눈이 멀지 않았다고, 나는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던 그녀에게 남편은 말한다. 아니, 차라리 말하지 않는게 나아. 당신이 이 많은 사람들의 노예가 되는 것은 싫어... 지옥같은 수용소의 생활속에서도 착취하는 계급이 생겨나고 약탈과 강간등 말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묶여진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과 봉사를 하는 의사의 아내는 불의에 맞서 결국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불이 난 수용소를 탈출하게 되지만 그들 앞에 놓인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그 여자는 도대체 어디 있는거야. 나 여기 있어요..내가 그애 손을 꼭잡고 있어요, 아이를 떼어내려면 내 팔부터 잘라야 할거예요, 다른 손으로는 남편손을 잡고 있어요, 그리고 내 뒤에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가 오고 있어요, 그 다음에는 검은 안대를 한 노인이, 그 다음에는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가, 그 다음에는 그 사람 아내가 와요, 모두 함께 있어요, 솔방울처럼 꼭 붙어 있어요, 이 열기속에서도 솔방울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 지옥같은 수용소내에서 똑같이 실명이란 불행을 겪으면서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인간의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는 정말 역겨웠다. 역겹다 못해 허무했다. 자기자신의 존재의식마져 상실한 채 그저 동물적인 욕구와 본능에만 충실하기 위한 그들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동물이 아니고 무엇이랴 싶었다. 눈이 있으나 보고 싶지 않았을 의사의 아내가 더 참담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내가 들어가서 그녀의 팔에 매달린 것들을 떼어내주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일곱사람과 함께 하며 일곱사람의 희망으로 남아준다. 굳이 여기서 일곱사람이라고 말을 하는 것은 어쩌면 그녀 자신에게도 그녀의 눈은 희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까닭이다.

자기 자신을 잃지 마시오, 자기 자신이 사라지도록 내버려두지 마시오...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의 집에 찾아갔을 때 그곳에 머물러 있던 작가는 이렇게 말했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이 사람으로써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책을 읽던 도중에 나는 그만 손에서 책을 내려놓고 싶었다. 너무나 묵직하고 답답한 알 수 없는 무엇이 계속해서 나를 짓눌러대고 있는 것 같은 느낌때문이었다.  내 목소리가 바로 나요.. 라고 말하던 사람의 가슴속은 어떠했을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저 하얀세상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는다는 건 또 얼마나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가?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의 일곱사람 모두는 나 외의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던 것 같다. 가슴속에 기억해 두었던 관계의 사슬을 끊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랬기에 마지막까지 사람다움을 잃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직이 있어야지, 인간의 몸 역시 조직된 체계야, 몸도 조직되어 있어야 살 수 있지, 죽음이란 조직 해체의 결과일 뿐이야.  눈먼 사람들의 사회가 어떻게 조직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겠어요. 스스로를 조직해야지, 자신을 조직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눈을 갖기 시작하는 거야.... 각 거리마다, 각 지역마다 각 건물마다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 의사가 말했을 때 나는 문득 인간이란 것은 틀에 묶여진채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모양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떤 규칙과 룰이 없다면 제멋대로일 뿐인,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하나일 뿐인 존재, 그것이 바로 인간이 아닐까 싶었다. 스스로를 조직해야 한다는 말을 앞에 두고서 나는 둔중한 무엇인가로 한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구나, 세상의 조직이라는 것도 결국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지는 것을... 죽음보다도 눈이 멀것을 걱정하던 의사의 아내는 아마도 희망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를일이다.

다른 사람들과 사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거지... 한시간, 하루를 살면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이해와 배려의 깊이는 얼만큼이나 될까? 또한 이해와 배려를 받는만큼 나는 그들을 이해하고 배려해주고 있는가? 이해하고 배려해주지 못한다면, 이해하려는 마음이나 배려해 주고 싶어하는 마음의 깊이는 얼마나 되겠는가 말이다. 책속에서 만나졌던 화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과 잃어버리면 안되는 것들이 아닐까 싶었다. 너무나도 무겁게 다가왔던 그 느낌들이 아마도 그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지금 내가 잊고 사는 것은 무엇이며  잃어버린채 살아가고 있는 것들은 또 무엇인가?  나 자신을 되짚어 하나둘 헤아려 보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마침내 그들에게서 하얀 장막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을까? 하나 둘씩 장막이 벗겨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주인공들은 그냥 그렇게 당분간은 살아가자고 말한다. 어쩌면 또다른 두려움일런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함께였다는 것을 떠난다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눈멀었던 시간속에서 존재했던 그들의 일상과  다시 눈을 뜨게 된 시간속에서 그들에게 다시 찾아온 일상의 모든 것들은 과연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눈을 뜨는 공간속에서 의사와 그의 아내가 하는 문답이 참으로 아팠다. 야성으로 변하지 않았던 눈물을 핥아주는 개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이미 눈 멀어버린 세상속에서 찾아낸 한사람의 눈동자속에서 그 개는 생각했었다. 굳이 시체더미와 쓰레기더미속에서 헤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눈이 멀었던 세상과 다시 눈을 뜨게 된 세상속에서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검은 색안경의 여자의 마음속에 담겨져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사랑이라는 피상적인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사랑도 때때로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므로...그것조차 사람의 일이므로...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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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pix 2007-08-13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섭기도 하고, 가슴 아프기도 하고, 섬뜩한 작품이었습니다. 사람의 본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들고 사람이 사람이게 하는 것,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유대. 사랑. 등등.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 소설이었죠. 리뷰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