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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내게 다가왔던 느낌은 너무도 강렬했다.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이끌기 시작했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눈을 뜬 후의 세상은 어떨까? 아니, 다시 눈을 뜬 그들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 궁금했다. 일곱명의 주인공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아줄까?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던 유혹앞에서 나는 단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눈뜬 자들의 도시>를 펼쳐 들었다. 변화되지 못하는 그들의 삶, 아니 변화되지 못하게 막아서는 거대한 힘의 원천이 알 수 없는 근원지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때가 늘 오기 마련이라는 안개같은 말처럼 우리는 너무 많이 알아서 혹은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착각을 하는 까닭에 변화라는 그 말자체만으로도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주인공들에게 다가서지 못했던 변화의 흔적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우익정당 팔 퍼센트, 중도정당 팔 퍼센트, 좌익정당 일 퍼센트, 기권 없음, 무효표 없음, 백지투표 팔십삼 퍼센트...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참관인들은 기다렸다. 그래도 의무를 져버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비는 그쳤지만 몇명의 투표권자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은 투표하러 오지 않았다. 일주일 후 다시 투표를 해야한다는 발표를 하고 다시 온 그날의 풍경... 길게 늘어선 줄.. 그러나 결과는 백지투표 팔십삼 퍼센트.. 그들은 기권을 한 것도 아니었고 무효표를 만든 것도 아니었다. 아주 지극히 정당한 국민의 의무를 했을 뿐이었다. 무엇이 그들에게 백지투표를 하게 만들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들조차도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었던 까닭에..
희망은 소금같은 거야, 영양분은 안 들어 있지만, 그래도 빵에 맛을 내주거든..
눈먼 자들의 도시를 탈출하여 다시 눈뜬 자들의 도시속에서 살아가기를 사년.. 하지만 그들은 잊지 못했다. 아니 잊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도 정당화시켜 줄 수 없었던 정부가 문제였다. 그들은 암묵적으로 서로 약속을 했다. 그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자고. 그 문제만큼은 절대로 수면위로 떠올라서는 안되는거라고..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들에게 있어서 그토록 커다란 의미를 지녔던 일의 의미가 왜 아무런 것도 아닌 것으로 둔갑을 해야 했던 것일까? 어쩌면 그들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치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에게 있어서는 차마 다가갈 수 없고 만질 수 없었던 뜨거운 감자였는지도 모를일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사람들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왜? 무엇때문에 그들이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밀어냈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아마 말하지 않은 희망 하나쯤 가슴속에 품고 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금같은 희망을,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잊고 싶은 사람은 당신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라고 외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철저하게 버림받았던 우리들이라고..
우리는 진실을 말할 때도 계속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할 대도 계속 진실을 말한다고요.. 진실을 말하면서도 거짓을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의 가슴이 먼저 알일이다. 차라리 거짓을 말하면서 그 안에 진실을 숨기고 있는 것이 나을런지도 모르겠다. 눈먼 도시에 살던 그들이 처음 조직이란 것을 이야기했을 때만해도 굳이 조직의 힘에 대한 인정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눈뜬 도시에서는 결국 조직이란 힘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조직의 힘... 두개의 덩어리, 두개의 조직.. 정부와 백지투표를 했던 알 수 없는 힘의 존재. 힘겨운 싸움은 시작되었지만, 그 고통은 고스란히 그들의 몫으로 되돌아 올 테지만 그들 중 아무도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건드려서 아픈 상처는 차라리 곪아 터지는 것이 나은 것일까?
눈이 보지 못하는 것은 가슴도 슬퍼하지 않는 법이거든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정부는 그들을 떠나기로 한다. 눈이 멀기 시작하면서부터 버림을 받았던 우리의 주인공들이 또한번의 버림을 받는 순간이다. 도망가는 순간까지도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까 하여 가로등의 불빛을 내리는 거대한 힘의 존재.. 하지만 불은 밝혀진다. 떠나는 그들을 위로라도 하듯이. 그들이 완전하게 떠나갔을 때 다시 꺼지는 불빛과 흐릿해져버린 가로등의 불빛이 하나의 장면이 되어 내게로 오버랩되어져 왔다. 두마음의 밝기처럼 그렇게... 떠나보낸 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떠나간 자들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변명을... 이렇게 떠나게 된것은 모두가 너희들의 잘못이라고, 너희들이 잘못했다고 용서를 빈다면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고... 그리고 그들은 떠나왔던 곳을 향해 화살을 날리기 시작한다. 누구라도 좋으니 그 화살을 맞은 사람은 비명을 질러야 하는 거라고, 이렇게 아프니 다시 돌아와 나를 치료해 달라고 말해야 한다고.. 뜬금없는 욕심을 부린다. 누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도무지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하는 힘의 조직에 대해 나는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다. 누가 그들에게 저토록이나 처절한 옹졸함을 허락했는가 묻고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나는 책을 다 찢어버리고 싶었다. 아주 가루가 되도록. 어쩌면 지극히 정상적인 그들의 태도가 나를 너무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백지투표라는 말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작금의 우리 시대가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해.. 언론들은 떠들어대고 있다. 이것은 명백한 탄압이라고. 세계 어느나라를 보더라도 이런 경우는 없다고.. 요즘 신문의 정치면을 보자면 늘 싸움이다. 정권과 언론의 싸움질.. 나는 기자들에게 달려가 이렇게 외쳐주고 싶었다. 취재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다른 것은 몰라도 그 잘난 정치인들의 일상적인 면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하게 보이콧을 해버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들의 입에서 혹은 생활속에서 나오는 것들중에 정말 사소한 것들조차도 응대해주지 말고 우리는 우리끼리만 이야기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울며불며 매달리지 말고 아예 하나부터 열까지를 다 모른척해버리면 되는거 아니냐고.. 그리고는 태연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라고.. 이런 생각을 했었던 내게 이 책은 무서움이란 단어를 들려주었다. 참, 무섭다... 백지투표라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은 생각같아서.. 무관심이란 말처럼 무서운 게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 평생 지킬 협정에 서명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렇게 자문할 날이 온다, 누가 여기에 나 대신 서명을 했는가.. 우리의 주인공 안과 의사 부인.. 모두가 눈이 멀었을 때 홀로 눈뜬 자였기에 그 많은 고통과 혼란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했던 우리의 주인공.. 그 주인공을 향해 날아오던 돌멩이는 누가 던진 것이란 말인가. 희생양이란 말 한마디로 정의를 내리기에는 너무도 아팠다. 거대한 힘의 조직속에서 그 힘의 원리대로 살아왔던 한 남자는 우리의 주인공에게 올가미를 씌우려 했지만 결국 잔잔하게 울리던 진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게 된다. 그건 아니라고.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거라고. 끝까지 우리의 주인공을 향한 마음을 닫지 않았던 그에게 나는 고마움을 느꼈다.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던 우리의 주인공과 그 한남자의 넋을 위로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중에 들려온 또한번의 총성... 눈물을 핥아주던 개도 사라졌다. 그들은 어쩌면 다시 눈이 멀었을 게다. 아니 차라리 눈먼채로 살아가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쉬운일인지도 모를일이다.
그들은 네라고 하면서 동시에 아니오라고 한다.
그들은 누구였을까? 그들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가장 먼저 눈이 멀었던 남자는 백지투표의 의미가 안고 있었던 모든 진실을 왜곡해야 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어쩌면 그의 모습이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사년이라는 긴 공백을 아무것도 아니라는듯이 그렇게 치부해버렸던 거대한 힘의 조직을 이끈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갈데없이 치졸하고 옹졸했던 그들의 모습 또한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눈먼 도시에서 홀로 눈을 뜬채로 아파해야 했던 것은 아마도 우리의 희망이 아니었을까? 소금같은 희망... 우리가 늘 찾아 헤매이던 그 소금과도 같은 희망은 어쩌면 이미 우리 가슴속에 들어와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보고자 하지 않은 것일 뿐, 단지 우리는 그것의 뿌리가 나한사람의 가슴속에서만 돋아나게 해달라고 빌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버리는 자와 버림을 받는 자는 하나일 것이다. 단지 아주 단순한 언어로 구분해 놓았을 뿐. 우리는 지금, 아니 지금의 나는 눈을 뜨고 살아가는 중일까? 눈을 감고 살아가는 중일까? 알 수..... 없다. 알지 못하면 보지 못한다는 말 한마디가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