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 신분을 뛰어넘은 조선 최대의 스캔들
이수광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아, 우리시대적에는 어디 신랑 얼굴이나 제대로 볼 수 있었남? 결혼식 다 끝내고 신방 차리고 나서야 신랑 얼굴을 볼 수 있었지. 사주단자 오가고 어디사는 뉘집 도령이라드라 하는 말만 들었지 언감생심 결혼전에 신랑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건 생각도 못할 일이었어." 우리의 할머니들께서 종종 하시는 말씀이다. 결혼을 하는 당사자들은 자신의 신랑 신부가 될 사람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부모님의 말씀대로 혼례를 치루고 첫날밤이 되어서야 얼굴을 볼 수 있었다는 말은 여러번을 들어도 어떻게 그럴수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만다. 멀쩡한 남자를 절름발이라고 소문을 냈더니 아가씨가 자기 대신 몸종을 새신부로 꾸며서 시집을 보냈는데 알고보니 맘씨고운 신부를 얻고 싶어 신랑이 꾸며댄 말이었다는 간혹 회자되어지는 이야기처럼 남자의 경우는 여자와 달라 어느정도는 여자를 선택할 수도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장옷을 쓰고 행여나 남자와 눈길이라도 마주칠까봐 전전긍긍하던 여자들에게는 그야말로 꿈같은 아니 꿈조차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다는 건 지금을 사는 여자들에게는 과히 기분좋은 이야기만은 아닌듯 하다.

이 책속에서 만나지는 남녀상열시사는 그야말로 여러방면에서 치고들어갔다. 감히 떠벌릴수조차 없는 왕가의 이야기나 양반네들의 숨겨진 사생활속에서 찾아지는 스캔들등은 보는 나로 하여금 실소를 머금게 만들었다. 그러면 그렇지 사람사는 거야 어디나 똑같다, 하는 생각도 불러온다. 훗날에 세종대왕으로 추앙받는 충녕대군을 위하여 왕위를 양보했다던 양녕대군의 이야기가 사랑이 미쳐 폐세자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차라리 인간적으로 보였다.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하여 끝내는 폐세자가 되어야 했던 양녕대군의 사랑은 권력에 의지한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진정 한남자로써의 사랑이었는지를 되묻게 하지만 말이다. 궁궐속에서 일어나는 동성애이야기야 많이 들었던지라 그리 새삼스러운 것도 없었다. 오직 왕이란 존재 하나만을 바라보는 그 수많은 시선들이 얼키고 설키다보면 어딘가에서부터 엉켜드는 건 당연지사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기생과 사대부의 사랑이야기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였다. 단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새로운 사례들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고개를 주억거리게 했다. 자신의 노비를 사랑하여 끝내는 부부의 연을 맺었으나 허울좋은 양반네들의 질시로 인하여 끝내는 둘다 목숨을 버려야 했던 가이와 부금의 이야기는 가슴이 아팠다. 유난스럽도록 겉치레만을 따졌던 조선시대의 유교적인 관습이 너무도 짜증스러웠다. 그런가하면 자신이 직접 남편될 사람을 골라 재가를 한 여인의 이야기는 통쾌하다.

시부모를 섬기지 않으면 내쫓고, 아들을 못 낳으면 내쫓고, 음란하면 내쫓고, 질투하면 내쫓고, 나쁜 병이 있으면 내쫓고, 말이 많으면 내쫓고, 도둑질하면 내쫓을 수 있다던 칠거지악이란 말을 듣다보면 어찌 저럴수가 있나 싶기도 하다. 물론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저런 말이 생겨날 수도 있겠거니 하다가도 여자란 존재가 얼마나 하찮게 여겨졌으면, 하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한다. 하기사 혼인을 하는 당사자의  맘과 당사자의 뜻은 거기에 없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싶기도 하다. 여자는 정말 바보같이 살았다.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다는 말보다는 차라리 일부종사를 거부한채 자신의 인생길을 자신이 만들어갔다던 여인네들의 이야기나 윤리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를 선택했다던 여인네들의 이야기가 듣기에 더 좋은 까닭은 무엇이란 말인가.. 거드름이나 피우며 허세만을 부리던 옛시절의 남자들 모습은 정말이지 상상하기도 싫어진다.

영조시대에 경상도 산음현에서 일곱살 먹은 여자아이가 사내아이를 낳았다는 보고를 하여 조정을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암행어사를 보내고 조사를 해 본 결과 그것이 사실이었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서로 접해있던 안음과 산음이란 두고을의 이름이 안의와 산청으로 고쳐져 지금까지 내려온다는 이야기는 재미있기도 하다. 음란하다는 뜻이 들어있었던것도 아니었는데.. 그런가 하면 삼의당 김씨와 남편 하립의 사랑이야기는 지금 시대에서조차 귀감이 될만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신혼첫날밤부터 서로를 향한 사랑의 시를 주고 받았다던 그들에게도 물론 힘겨운 시절이 있었다. 가난하였기에 자신의 머리를 팔아 남편의 과거길에 노자를 만들었다던 삼의당 김씨. 결국 과거에 몇번을 낙방하였지만 그들은 낙향을 하여 새로운 삶을 이어가게 된다. 그야말로 전원생활로 접어들었으니 그들의 시심과 사랑이야 더욱 더 깊어졌을 것이다. 양반이었음에도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다는 것을 서글퍼하지 않고 농사를 지으며 사랑으로 함께 했던 그들의 삶이 참 아름답게 보여진다.

많은 사랑이야기를 읽었다. 원칙적으로 이혼이 허락되지 못했던 조선시대에는 정이 없어도 그냥 살아야 했다.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평생을 살아간다는 건 그야말로 생지옥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 와중에서도 남자들에게만큼은 어느정도 자유로운 세상이 허락되어져 아내외의 다른 여자들을 첩이라는 이름으로 들여놓기도 하였지만 여자는 죽은듯이 그렇게 살아야 했던 시절이었다. 이 책속에는 천국같은 사랑이야기도 있지만 지옥같은 사랑이야기가 더 많다. 조선이라는 시대에는 왕과 양반네들만 살았던 것이 아니었기에 숨겨진 백성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던 작가의 말처럼 조선시대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더더욱이나 여인들을 배경으로 보여졌던 이야기들이었기에 많이 바뀌어진 지금의 세상을 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