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빈의 조선사 - 왕을 지켜낸 어머니 최숙빈, 그녀를 둘러싼 여섯 남녀의 이야기
이윤우 지음 / 가람기획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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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사다. 그 조선사중에서 숙종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숙종이라고 하면 우리의 기억속에 당연하다싶을 정도로 따라나오는 여인들이 있음이니 바로 장희빈과 인현왕후, 그리고 숙빈 최씨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녀들의 이야기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숙종의 이야기일까? 요즘 인기있는 드라마에서 다루고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숙빈 최씨에 관한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녀, 최숙빈의 이야기일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역사속에 단 몇줄에 불과하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이 작가는 어떻게 풀어내렸을까 하는 것이 궁금했었다. 그래서인지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어쩌면 뻔한 스토리일지도 모른다는 편견을 가슴에 안고 이 책을 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말하건데 이 책은 최숙빈의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어느정도의 사탕발림을 노린 제목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모든 조건을 따져 보았을 때 전혀 그럴수 없었던 여인들이 어느날부터인가 세상을 호령하며 살았던 경우가 있었다. 아다시피 조선은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출신쪽으로 자녀의 운명이 정해졌던 시대였다. 양반이었던 아버지보다 관비였던 어머니를 두었기에 미천한 신분이었던 정난정이 그랬다. 기생이었다가 그당시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윤원형의 첩이 되었고 끝내는 정경부인자리까지 올랐던 여인이다. 또한 광해군을 움직였던 김개시라는 여인이 있었고, 폭군 연산군을 품안에서 데리고 놀았다던 장녹수가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여자 장희빈이 있다. 장희빈 역시 출신성분이 좋지 않았음에도 자신만의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는 말이다. 어디 이 여인들 뿐일까? 알게 모르게 세상을 휘둘렀던 여인들은 많았을게다.

그렇다면  이 책속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여인들의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여인들의 조선사를 말하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여인들이 어떤 여인들이었는가를 한번 더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녀들은 그야말로 뛰어난 지략가였다. 세상을 읽을 줄 알았고, 제 주변을 정리할 줄 알았다는 말이다. 비록 나중에는 제 욕심이 지나쳐 좋지않은 결말을 불러오게 되었다해도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사는 잘못되어진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도 그럴것이 세상의 역사는 승리한 자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니 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상황에 맞게 썼다 지웠다를 반복해야 했다. 그렇긴 해도 너무나도 상식밖의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것 같아 가끔은 안타까울 때도 있다. 그것도 장희빈의 죽음처럼 여러갈래로 찢어져나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듯한 야사들이 많은 걸 보면 정말이지 너무하다 싶을 때가 많다. 그런 이야기들에 따르면 장희빈의 죽음은 그야말로 한편의 극이 아닐 수 없으니 하는 말이다. 

이 책은 여인들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 시절의 흐름을 담고 있다. 그 시절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여인들의 모습을 담담히 그려주고 있다. 그리하여 그녀들의 처세가 어떠했는가를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듯이. 운이라고도 할 수 있고 또한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신의 삶.. 그녀들은 한사람의 여인이었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 자신만의 삶을 살지는 못했던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우호적(?)인 글귀속에서 숙빈 최씨의 삶은 그 흐름에 역행하지 않는다.  숙빈 최씨가 삶의 모티브로 삼았던 것은 항상 조심하여라! 였다. 그녀가 그랬고 그녀의 아들 연잉군에게도 늘 그렇게 교육을 시켰다. 연잉군이 누구인가? 바로 영조다. 정조를 만들어냈고 가장 오래도록 왕위에 머물렀던 그 왕인 것이다. 그렇게 그녀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던 그 흐름을 이 책은 말해주고 싶어하는 듯 하다.

말도 안되는 한편의 소설을 만나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책을 펼쳤지만 나는 곧 이야기속으로 빠져들었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한 시대를 이끌어갔던 일곱사람의 흔적을 더듬으며 그 시대속에서 만날 수 있었던 숙종이라는 왕의 모습, 그리고 그 왕을 둘러싼 여인들의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는 조선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색다른 느낌을 전해주었다.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은 그들의 사료들.. 지자체를 행하다보니 이곳저곳에서 내노라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긴하다. 하지만 믿을만한 것은 그리 많지않은 듯 하다. 그런점들은 이 책에서도 잘 지적해주고 있다. 나는 사극보기가 두려울 때가 있다. 주변을 살펴보면 사극만큼은 아이와 함께 보려한다는 엄마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단순히 흥미위주의 이야깃거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아이들이 알까? 재미에만 치우친 역사가 우리 주변에는 정말 많은 듯 하다. 그런면에서 보면 이 책에 수록되어져있는 많은 예제들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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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책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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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의 재상이었던 이사의 주장으로 책을 불사르고 구멍을 파서 학자를 묻었다는 분서갱유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지나칠 수 없는 것은 모든 책을 불살랐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실용적인 책을 제외한 사상서적을 불태웠을 뿐이고 모든 학자가 아닌 유학자들을 묻었을 뿐이었다. 나름대로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가끔씩은 책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삶에 도움보다는 해가 되는 일도 있는 까닭이다. 책을 아주 멀리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자부하는 까닭에 이 책의 제목은 상당히 구미가 당겼다. 위험한 책.. 책이 위험하다고? 어째서? 아니 무슨 책이 위험하다는 거지? 사실 솔직하게 의견을 말하라고 한다면 모든 책이 다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아니다. 읽어서는 안되는 책도 있고, 읽지 말아야 하는 책도 있고, 읽지 못하게 막아야 할 책도 있다. 도대체 이런 책은 왜 나온거야?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은 책도 많이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닌 듯 하다.분별없이 책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책만이 오직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듯 의지하는 사람의 의존성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책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져서 끝내는 책으로 인해 자신을 망쳐가는 한 사람의 흔적을 쫓고 있음이다.

책 한 권을 버리기가 얻기보다 훨씬 힘겨운 때가 많다. 우리는 궁핍과 망각때문에 책들과 계약을 맺고 그것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난 삶에 대한 증인처럼 우리와  결속되어 있다. (-17쪽)  책에 대한 나의 열정을 보면서 남들이 말하기를 정말 책을 좋아하시는군요! 였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책을 좋아할까? 단연코 아닌 듯 하다.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궁핍과 망각때문에, 그리하여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난 삶에 대한 보이지않는 고리처럼 존재하는 것이 나를 찾아오는 책들에게 부여해주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에게 있어 책 한 권을 버린다는 건 정말이지 힘겨운 일이다. 빌려준다는 것 자체도 엄청 두려운 현실인데 더 말해 무엇할까.. 일종의 버팀목처럼 나를 견뎌주는 책이 고마울 뿐이다.

어쩌면 아실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 거의 진동이 감지되지 않을 정도로 철자들을 발음하곤 합니다. 책읽기란 완전한 침묵에 잠기는 일이 아니지요. 우리의 목소리가 언제나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0쪽)  공감한다. 다만 침묵속에서 책을 읽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나 역시도 책을 읽으며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다. 어찌보면 내 안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책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그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을 때가 있다. 어김없이 헤매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잇는 통로들을 이리저리 헤매다니고 있을 뿐이다. 어디에서든 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그래야 앞으로 나아가며 소리를 들을 수가 있는데... 내 안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그토록 힘겨운 일이라는 말일게다.

이 책속에서는 책을 사랑하여 모든 것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침내는 책으로 집을 지어 그 집안에서 생활하게 되는 그 남자. 너무나도 많은 책들이 있었지만 단 한 권의 책조차도 버리지 못했던 그 남자는 마침내 책을 벽돌 삼아 집을 지었다. 버릴 수 없었기에.. 그것은 정말로 버거운 집착이었지만 그는 그 집착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는 듯이.. 그리고 한때 사랑했던 여인으로부터 받았던 책을 돌려달라는 편지를 받고 모든 것은 끝난다. 그 한 권의 책을 찾아내기 위해 책으로 된 벽에 구멍을 뚫기 시작 했으니.. 그 책을 찾기 위해 그의 종이집은 사라져버렸고 그와 함께 그의 모습도 사라져버렸다. 누구도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책을 읽는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한 권, 두 권 늘어가는 책을 보면서, 점점 높아가는 책계단을 보면서 흐뭇함을 느낄 때가 더러 있기는 하다. 나는 정말 책을 사랑하는 것일까? 내가 정말 책을 좋아하기는 할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면 쉬고 싶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어김없이 책을 찾아 헤매는 나를 보면서 스스로 묻기도 했다. 이런게 중독이라는 걸까? 실제적으로도 책을 보지 않고 이삼일 건너뛰게 되면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한 두쪽만이라도 읽어야 그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으니 중독일거라고 자체적인 진단을 내려버렸다. 책에서도 말하고 있는 -참을 수 없는 것들을 모두 망각하는 은총-을 입지 못해 그러려니 한다. 내게 있어서 책은 일종의 도피처다. 그러면서 책은 나만의 연고다. 상처 난 곳에 살짝 발라주면 되는 그런 것... 그러니 아주 위험한 책이 아닐 수 없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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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없는 길 4 - 하늘가의 방랑객 길 없는 길 (여백) 4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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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왔다. 드디어 마지막 길..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지게 된 경위에 대해 그리고 가야산 해인사가 대장경의 원래 주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수천만개의 글자가 한결같이 고르고 정밀하여 마치도 한사람이 쓴 것 같다고, 서각 예술품으로서 가장 위대한 문화 유산중의 하나라고... 그리하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그런데 강화도에서 만들어진 이 대장경이 어째서 한양을 거쳐 가야산 해인사로 가게 되었던 것일까? 고려 현종 때 대각국사 의천이 만든 초조대장경이 몽고의 침략으로 불타 없어지자 다시 만든 것이라 한다. 그런데 나는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한다는 이 팔만대장경을 만들게 된 동기가 가히 의뭉스럽게 느껴진다. 몽고의 공격으로 나라는 황폐할 대로 황폐해져 백성들의 삶은 참담해졌는데도 강화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잘라 바닷물에 담그고 3년을 기다려 꺼내 켜고 말려 대패질을 하고 경문을 붓으로 쓰고 그것을 칼로 한 자 한 자 새겨나가고 있었다니..  싸워서 적을 물리치기보다는 대장경을 새겨 불력의 신통력으로 몽고군을 물러가게 할 수 있을거라는 그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란 말인지.. 몽고군의 침입을 불교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하는 뜻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장도감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하여 새긴 것이라는데 도대체 그 생각자체가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원래 강화도에 있었던 것이 한양을 거쳐 해인사로 옮겨지게 된 이유는 첫째, 해인사가 속대장경을 발간하였던 대각국사 의천과 인연이 깊었던 까닭이다. 해인사는 그가 한때 머물며 열반에 들 것을 꿈꾸었던 도솔천이라는 사실이고 둘째, 강화도가 왜구의 노략질 앞에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왜구들은 수전에도 능했지만 불교를 숭상하는 민족이었던 까닭에 이 대장경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였다고 한다. 셋째, 가야산이 신령한 곳이며 해인사가 교통이 불편한 심산유벽이어서 외적의 침입을 받지 못할 피난처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불교에 의해 흥하고 불교에 의해 멸망한 그 왕국 고려는 어디에 있는가. 그토록이나 신통한 불력을 의지하여 힘겨운 경판에 경문을 새겼던 그 나라는 어디로 갔는가 말이다. 말()이 말()을 이기고 문자()가 문자()를 이기는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양이다. 먹지않은 소쩍새가 '솥적다' 말을 하네... 한 구절의 말이 문득 가슴속에 깊은 앙금을 남긴다. 먹지않은 소쩍새가 '솥적다' 말을 하네... 항상 길이란 그러하지 아니한가.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하여 돌아가고 싶어도 온 길이 아까워 계속 나아가고 있을 뿐.. (-128쪽)  생각해보면 우리는 너무나도 커다란 우를 범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가 다시 불을 밝혀야 함에도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하다고 자꾸만 뒤돌아보며 뒤뚱거리는 것은 아닌지.. 온 길이 아까워 잘 못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않은 건 아닌지.. "어떤 것이 해탈(解脫)입니까?" - "누가 그대를 속박하였는가", "어떤 것이 정토(淨土)입니까?" - "누가 그대를 더럽혔는가", "어떤 것이 열반(涅槃)입니까?" - "누가 그대에게 생사(生死)를 주었는가" (-102쪽)  다시 생각해보아도 말과 글이 먼저가 아닌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불교를 이야기하며 더불어 기독교가 동행하였다는 것이다. 이 책을 쓰는 이가 카톨릭 신자였기에 가능했으리라.. 경허스님을 따라가 그를 암송할 때마다 사제들의 암송도 함께 들려주고 있으니 여러 이름과 여러 갈래를 가고는 있지만 종교라는 참의미가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겠다. 그것을 아주 작고 보잘것 없는 인간들이 저 좋은대로 갈라놓은 길 아닌 길이었음을 내가 알겠다. 後人..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이것을 남긴다.. 경허가 남긴 마지막 글을 보면서 경허를 뒤따르던 강 빈은 마침내 길을 찾았다. 일곱 알의 염주가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그리하여 그 자신이 그토록이나 알고 싶었던 것에서부터 놓여짐을 얻게 되었다. 그것도 해탈이라면 해탈일 것이다. 음란한 마음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과 잡된 생각이 없어질 것이니 이것을 일러 해탈(解脫)이라 한다 (-50쪽), 고 했으니...

경허라는 화두를 쫓아가는 강 빈의 힘겨운 뒷태를 쫓아 나 역시도 헉헉거리며 뒤따랐던 먼 여행길이었다. 불교라는 종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에 따라다녔던 그 길위에서 돌부리에 채여 상처가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게는 너무 뜻깊은 여행이었다.  왕족의 피가 흐른다던 아버지로부터 일곱 알의 염주를 받아 들었던 그 어린나이에서부터 이제는 불혹의 나이까지 와버렸으나 끝내 떨쳐버리지 못했던 그 알 수 없는 무거움..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단지 만공이라는 스님을 찾아갔다가 경허라는 화두를 내려받게 되었던 강 빈 교수.. 그에게 화두를 내려주었던 법명스님조차도 끝내는 그에게 말없는 이별을 고하고.. 허탈하게 돌아섰던 발걸음을 되돌려 그 무거웠던 일곱 알의 염주를 넘겨주고 돌아오던 강 빈의 가슴속은 후련했을까? 자신을 내려놓고, 아버지를 내려놓고, 또한 어머니를 내려놓았으니 그는 이제 가벼워졌을게다... /아이비생각 

"어떤 것이 해탈(解脫)입니까"  "누가 그대를 속박하였는가"
"어떤 것이 정토(淨土)입니까"  "누가 그대를 더럽혔는가"
"어떤 것이 열반(涅槃)입니까"  "누가 그대에게 생사(生死)를 주었는가"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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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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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의 장자, 효종의 형. 병자호란때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감. 십년 가까이 청나라의 심양관에 머물며 청나라와 조선의 창구역할을 함. 명나라가 청나라에게 망해가는 것을 보기도 했고 서양인 선교사를 통해 천주교를 알게 됨. 이후 여러 방면으로 많은 것을 보고 배워 조선으로 돌아왔으나 두 달만에 죽음.. 소현세자에 대한 것을 찾아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 말들. 이쯤에서 나는 항상 궁금했었다. 과연 아비로부터 버림을 받았던 것인지, 아니면 당쟁의 희생물이었는지. 이제와 그것을 어찌 알 수 있으랴. 제 아비에게 독살을 당했다는 후세의 의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역사속의 한사람. 소현세자가  청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아비가 아들을 의심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자신의 손자까지 모두 없애버릴 수 있었던 것이 아비 인조였을까?  "저하께서 적의 나라에 오래 계셔서 주먹을 쥐는 법을 배우셨습니다. 허면 칼 쓰고 활쏘는 법은 배우셨습니까? 군자는 마음의 길을 닦아 그 길로 성현의 도리에 이름입니다" (-151쪽)  청나라가 자신의 아들을 더 많이 믿는다는 이유로 아들을 미워했다기 보다는 망해가는 명나라를 철저하게 받들어 모셨던, 그리하여 망해버린 명나라와의 의리라는 부질없는 명분에 자신을 묶어버린 신하들에 의해서였을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대부들은 그렇게도 마음의 도를 잘 닦아 조선을 그모양 그 꼴로 만들었던 것인가?

그리한데, 임금은 나를 위해 울어주지 않으실 것인가. 정녕 울어주지 않으실 것인가.... (-161쪽)  하지만 이 책속에는 그 지긋지긋한 당파는 보이지 않는다. 그토록 분분했던 당쟁조차도 없었다. 그러니 이것은 조선의 이야기가 아닌 듯 하다. 병자호란을 겪어낸 왕이 이마를 땅에 짓찧으며 청의 황제 홍타이지에게 머리를 조아릴 때에도 실속없는 명분들은 바람처럼 그렇게 왕을 휘감았었다. 그 때에 볼모가 되어 청나라로 끌려갔지만 그는 기다림을 배워야 함을 알았다. 조선을 위해서. 조선을 사랑했으므로. 그리고 우리는 거기서 끝이었다. 청나라로 끌려갔던 세자가 많은 것을 보고 배워 시야가 넓어지고, 깊어진 소견으로 환국했다고만 말 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돌아왔으나 끝내는 죽어야만 했다고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책 <소현>은 거기서 끝내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세자로써 모든 것을 받아 내야만 했던 한 남자의 속깊은 아픔을 끄집어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간과했던 그 고독을 쓰다듬어주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심기원의 아들 석경과 회은군 이덕인의 딸 흔... 병자호란뒤에 최명길과 동조하면서 권력을 잡았던 이가 심기원이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어쩌다 볼모가 되어 떠나는 세자의 뒤를 따르게 되었는가. 끝내는 회은군을 추대하는 역모죄로 처형됨으로써 그의 아들까지도 목숨을 잃게 된다. 그 심석경이 세자에게 보여주었던 것은 진정한 충의였을까? 끝내는 역모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가두게 되는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죽어가야 했던 석경은 어쩌면 또하나의 세자였는지도 모르겠다. 조선 반가의 여인이었으나, 그것도 종실의 피를 받은 여인이었으나 전쟁의 화마에게 자신을 내어주고 끝내는 버리지 못한 육신을 끌어안은 채 죽고자 했으나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흔이라는 여인.. 뛰어난 미색으로 적국의 황제에게 받쳐졌으나 다시 그 황제의 신하에게 하사되어진, 그리하여 기쁠 흔자를 이름으로 얻게 되었던 그 여인을 향한 압박이 어쩌면 세자를 향한 칼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석경과 흔이 서로의 마음을 받았다. 외로웠기에 그랬을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적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국의 말을 배우고 충정이라는 거짓된 허울로 세자곁에 머물면서도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알았을 게다. 그 거짓된 충정을 의심할 수도, 믿을 수도 없었던 세자 또한 외로웠을 게다. 아우 봉림대군이 곁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서로에게 지워진 짐의 무게가 너무나도 달랐기에 그들은 하나같이 아팠고 고독했다. 기다려야 한다고, 기다리다보면 때가 올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그 마음은 적국인 청나라에 머물지도 못했고 제나라 조선속에도 있지 못했다. 통한이 무엇을 일컫는 글자였는지도 이제 알겠구나. 적들이 모든 것의 위에 선 이 때에 내가 비로소 그것을 안다. 허나, 잊지 않은 것 중의 가장 큰 것이 어찌 굴욕이겠느냐. 내가 저들이 어떻게 이겨 어떻게 여기에까지 이르렀는지를 잊지 않으리라. 잊지않음이 굴욕을 삼키는 길이 되더라도, 그리하리라 (- 327쪽)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나도 먹먹했다.  책 속으로 들어가 세자의 손을 잡아주고 싶으리만큼 먹먹했다. 왕재이기기에 앞서, 세자이기에 앞서 그도 한 남자였다는 것을 우리는 왜 모른척 해야 했던 것인지.. 책속에는 많은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잭속에는 또한 많은 대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흐름이 있을 뿐이다. 그 흐름을 따라 세자 소현을 봐달라고 그렇게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만이 있을뿐이다. 그 강물 따라 흘러가며 굽이치면 굽이치는대로, 쏟아져내리면 쏟아져내리는대로 그렇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던 한 남자를 바라보아야만 한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문득 김 훈의 <남한산성>이 생각났다.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성문을 빠져나갔던 서날쇠의 나라와 여기 <소현>속에서 노비였다 청의 역관이 되어 살아남았던 만상의 나라는 어디였을까? 그들에게 나라는 무엇을 해 주었을까?  그들의 가슴속에서도 조선이라는 나라는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명분아래 깔려 신음했던 것들이 참 많았다. 그 명분을 내려놓지 못한 채 제 한몸의 안위만을 생각해야 했던 벼슬아치들의 모습이 작금의 현실과 겹쳐지는 까닭은 또 왜인가?  전쟁보다도 정치를 알게 되었다던 적국의 장수 도르곤의 말이 세자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웠으리라. 흔하고 뻔한 조선사를 생각했다면 어디쯤에서부터 맥락을 잡아야 할지 난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저 조용히 끝까지 책장을 넘겨보기 바란다. 그 넘어가는 책장의 소리속에 소현세자의 숨소리가 들려올테니...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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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니치 코드
엔리케 호벤 지음, 유혜경 옮김 / 해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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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별.. 삼각형 두개를 서로 마주보게 겹쳐놓은 그림이다. '다윗왕의 방패'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다비드의 별이라고도 불리운다.  베들레햄의 별.. 아기 예수가 탄생할 때 동방박사 세 사람을 아기예수 있는 곳으로 인도해 주었다는 별이다.  느닷없이 무슨 말이냐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 느낌이 그렇게 생뚱맞았다는 말이다. 댄 브라운의 소설로 한동안 베스트셀레에 머물러 있던 다빈치코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체비례도의 모양으로 죽어있던 시체와 그의 배위에 그려져있던 별의 모양으로 시작되어지는 소설.. 하지만 흥미진진했다. 그만큼 빠져들게 만들었던 소설속의 배경들이 현실감있게 다가왔던 탓이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다빈치코드라는 말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는.. 단지 댄 브리운의 소설제목일 뿐이었다는.. 덕분에 피보나치수열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긴 했지만.. 그 때문일 것이다. 이 보이니치코드라는 말이 그다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현재 예일대 도서관에 소장돼 있다는 '보이니치 필사본'이 이 글의 배경이다. 미지의 문자로 이루어진 이 책이 수십년간 진위논란에 휩쌓여 학자들의 말속에 오르내렸다고 한다. 일종의 자연과학과 관련된 삽화들이 그려져 있다는 이 책은 1912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미국인 보이니치가 갖게 되어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수학자나 과학자등 다방변의 학자들이 그 책을 해독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이 책속에도 알 수 없는 그림들을 실례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해독하기 위해 애쓰는 세 사람의 발빠른 움직임이 있다. 소설의 구도는 당연히 종교적인 관념과 과학적인 관념이 서로 마주치게 되고 그 중간에 인간의 욕심이 서 있다. 카톨릭 수도원에서 학생들에게 물리학을 가르치는 젊은 수도사 엑토르가 종교계의 주자이고, 캠브리지 대학의 우주학자인 존이 과학계의 주자로 나선다. 거기에 철저하게 종교주의적인 어떤 자의 매수인으로 등장하는 멕시코 여성 후아나가 함께 동행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유다서' 와 같이 종교계의 뜨거운 감자로써 존재하는 것들이 꽤나 있는 모양이다. 물리학 박사이기도 하고 스페인의 천체물리학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지내고 있다는 저자의 이 작품이 팩션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이 책속의 내용 모두가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이라고 하니 하는 말이다. 그런데 관심분야를 그쪽으로 둔 사람이 아니라면 이야기속으로 빠져들기가 쉽지는 않을 듯 싶다. 결국은 아무것도 없는 채로 끝을 맺게 되는 이 이야기속으로 몰입해 들어간다는 것이  내게는 힘겨운 싸움이었다. 소설의 형식보다는 어떤 주제를 연구해서 제출한 리포트를 읽는 듯한 느낌이 너무나도 강했던 탓이다. '보이니치 필사본'이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아느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이런 것이니 한번 들려주겠노라고 말하는 것처럼 지루한 느낌이 강했다.

"Amazing!" 을 외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찌되었든 이 소설의 끝부분까지 무사히 와 주었으니 되었다,라는 안도감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 예일대 도서관에 잠들어 있는 보이니치 필사본.. 이제 그 비밀의 문이 열린다! - 책표지의 글이 얄밉기만 하다. 비밀의 문이 열렸다는 것이 어떤 뜻이었을까? 너무 달콤한 사탕발림에 넘어가버린 듯한 씁쓸함이라니.. 물리학, 천문학 전공자로서의 소신이 너무나도 강하게 베어있는 이 소설을 이해하려면 꽤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 같다. 15~16세기에 있었던 종교계와 과학계의 갈등을 다루었다고는 하지만 그 맥을 집어낸다는 것이 이 소설의 주맥락은 아닐 것 같다. 과학지식소설이라는 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나같은 문외한이 보더라도 책속에 존재하는 지식들을 통해 그 흐름이 이랬었구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으니. 반복되어지는 듯한 느낌때문에 조금은 지루했지만 말이다. 

책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이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사실들은 정말 많았다. 일상적으로는 가까이 다가가기 쉽지않은 분야들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음이다. 흥미로운 암호풀이를 생각하고 이 책을 만난 사람이라면 꽤나 야속했을 것 같다. 단순한 암호풀이의 흔적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되기에 하는 말이다. 보이니치 필사본의 이상한 그림들과 문자들.. 지금도 아무도 밝혀내지 못했던 알 수 없는 문자들을 그저 단순히 아랍문자에서 따온 장식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고 한다. 우리의 주인공들이 해독하는 모습과 함께 보여주었던 그 실례들이 어떤 한 부분만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그것을 유추해가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실제 사건과 인물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저자의 말속에서,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과 그 친구들도 모두 가공의 인물이 아니었다는 말에서 저자의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책속에서 언급되었던  '보이니치 리스트' 라는 동호회도 인터넷에 실제로 존재한다고 한다. '보이니치 필사본'이란 신비로운 책에 대한 저자의 관심도 또한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천문학을 연구했던 많은 사람들의 일생이 주가 되었던 이 소설은 허구의 형식보다는 실제적인 역사에 더많은 비중을 준 듯 하다.  화자인 엑토르 신부의 제자 시몬이라는 학생이 떠오른다. 그칠 줄 모르는 호기심.. 바로 모든 것의 시작은 아닐런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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