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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ㅣ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이건 뭐지? 한참을 심각하다가 느닷없이 웃음이 터져나온다. 천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명치 끝이 아파오다가도 그들의 방어벽(?)같은 대화를 듣게 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런데 그 웃음 뒤끝이 허탈해지고 점점 깊어지는 먹먹함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작가는 마냥 심각한 상태로 이야기를 들려주기가 미안했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그렇게 웃을 수 있는 일도, 아니 아주 작아서 별것 아닌 것들속에서도 웃음을 찾아낼 수 있는거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말이야 바른 말이지 우리가 놓치는 작은 행복들이 얼마나 많은가. 찾아보려고도 하지 않은 채 방치해 둔 그 소소한 행복들은 또 어디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한번쯤은 되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천지와 만지를 통해 보여지는 가족의 울타리가 그다지 희미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었는데... 흐릿한 손바닥 위를 나르는 책표지의 나비 한마리가 애처롭다.
항상 이런 식이었지? 문제에 접근하다가도 머리 아파지겠다 싶으면, 불리해지겠다 싶으면, 안 되겠다 싶으면, 네 맘대로 말 뚝 끊고 끝냈지? (-106쪽)
그래, 우리는 어쩌면 그렇게 살았을 게다. 아니 그렇게 살고 있을 게다. 머리아프고 복잡해지는 그런 일에는 아예 다가서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하면서. 아직 아이니까, 하는 마음이 늘 앞서는 건지도 모르겠다. 니가 뭘 안다고? 살면 얼마나 살았다고?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중에 해서는 안될 말의 으뜸.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살지. 뭘 몰라서, 정말 오래살지 않아서 잘 알 것 같은, 나보다는 더 오래살았다고 하는 어른들에게 물으면 가차없이 날아오는 저런 말들이 꼬챙이처럼 그렇게 아이들을 찔렀을 게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었는데.. 어쩌면 그 시절의 일을 까맣게 잊고 살아가는지... 아니 사실 나의 경우는 그 시절을 기억하고 싶지 않았었다. 늘 도서실에서 말 그대로 콕 쳐박혀 살았던 나의 학창시절속에는 외롭다는 것조차도 사치였을테니까. 손을 내밀 때 잡아주어야 하는 잠시의 따스함조차도 잃어버린 채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그토록 쉬지 않고 달려가는 것인지...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사는 게 다 급했다. 아직 내일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금세 내일이었고, 벌써 어제였다. 새끼들한테 인생 전부를 건 엄마는 아니었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달려올 엄마가 있다는 믿음과 존재감은 주고 싶었다.(-163쪽)
정말 급해서 급한 삶은 얼만큼이나 될까? 쫓기듯 산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천지엄마와 화연엄마의 만남이 너무나도 아프게 다가왔다. 어찌보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만남처럼 보여지던 그 장면이 나는 너무도 안스러웠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란 말인가. 작가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려내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 게다. 그 두 아이의 엄마를 통해서 변명 아닌 변명을 들어야 하는 우리에게 당신도 이런 건 아니냐고 묻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오래전에 내가 경고했었잖아요. 그러니 당신 책임입니다. 그러면 아직 어린 내 새끼는 어쩌라구요? 서로의 마음을 숨긴채로 그것이 정당한 것인양 포장지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대화를 주고 받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왜 자기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것인지.. 왜 나의 뒷모습을 한번쯤 돌아보려 생각하지 않는지..
아시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다른 사람의 생을 OX 퀴즈처럼 안다와 모른다,로 결정지으면 안됩니다. (-213쪽)
누구나 다 그렇지. 자신만의 잣대를 들고다니며 그 잣대로 재기를 습관처럼 하고 살지. 하지만 남의 잣대에 내가 재여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감히 그렇게는 할 수 없을텐데.. 죽음을 생각하면서 다섯개의 실뭉치를 준비했던 천지의 그 마음, 봉인되어져야 했던 그 마음이 얼마나 서러웠을까? 가면서도 자기 자신을 용서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던 그 어린 심정을 우린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을 한다. 무서운 십대라고. 그러나 무엇이 무서운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단지 정해놓은 규칙에서 조금 벗어났다고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일인데 어른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그들을 몰아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 뜨끔하게 각인되어지던 순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먹먹함 뒤편으로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숨기고 싶고, 숨겨야만 하는 건 아닐까 싶었던 불편한 진실들앞에 당당히 서는 우리의 문학이 서서히 많아져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가 지나쳐왔던 시절이지만 살아가는 방식이 모두 달라졌다. 그런 시대에 사는 지금의 아이들을 이해한다는 건 약간의 무리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책을 훓어 본 아들녀석이 물었다. 엄마, 이 책은 어떤 책이예요? 이건 너같은 중학생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책을 읽으면 아들 마음 좀 알아 줄 수 있을까 싶어서.. 했더니 아들녀석이 베시시 웃으며, 아마 잘 안되실걸요? 한다. 왜? 뭐, 그런게 있다구요!.. 책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지나가는 아이들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놓치고 지나가는 자신의 마음 또한 잘 담아낸 듯 하다. 그런 마음조차도 자신의 틀에 맞추어 생각하려 드는 어른이라는 이름의 존재.. 내가 아프면 아이들도 아프다는 사실을 왜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인지.. 답은 하나였다. 무서운 어른들이 무서운 아이들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 책을 다 읽고나서 아들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요? .... 아니, 그냥... 아행행 ㅇㅅㅇ(요건 무표정을 뜻하는 말이란다) 엄마, 디게 뻘쭘하다! 히히히... 아들, 너도 이 책 좀 읽어볼래? OK!!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