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 치타가 달려간다 - 2009 제3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0
박선희 지음 / 비룡소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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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원치 않는 일을 하며 십대를 살아가기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니까... 이런 말에 공감하지 않는 십대가 몇명이나 될까? 나는 아들에게 가끔 이렇게 묻곤 한다. 너 엄마랑 얘기하면 답답하니? 자주는 아니고 가끔은 그래요..라고 말하는 아들녀석에게 이렇게 묻는 것은 아마도 나름대로는 소통하고 싶은 욕심이 앞서는 탓일게다. 어른들과 통하였느냐,고 묻는다면 대체적으로 꽉 막힌 벽이옵니다, 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요즘 아이들이 미쳐 날뛰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건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귀를 찢는듯한 그 소음속에서도 아이들은 제각각 나름대로는 음악을 느끼고, 때리고 부수는 게임의 법칙속에도 나름대로의 룰은 있다고 아이들은 말한다. 어찌보면 우리가 어른이 되기 위해 치러야 했던 성년식과 너무도 다르기에 용납되어지지 못하는 행동일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자라왔던 시절과 지금의 아이들이 살아가는 시절이 다르다는 것은 인정해야만 한다. 단 한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어른들은 몰라요, 라거나 어른들은 다 그래, 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었으니까.

성장소설이라는 것은 솔직하게 말해 똑같은 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단지 이름만 바뀔 뿐.  제목이 참 신선하게 다가왔던 책이었다. 파랑치타라는 말 자체가 전해주는 느낌이 약간은 신선했다고나 할까?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파랑치타가 안고 있는 의미가 의외로 컸다. 주인공 강호가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의 이름이 파랑치타였고, 우리의 아이들이 답답한 현실속에서 찾아낸 하나의 출구로 작용했던 밴드부의 이름이 또한 달리는 파랑치타였다. 발산하지 못하는 십대다움을 쨍쨍거리는 기타와 두두두두둥 쨍 하는 드럼과 심벌즈를 통해 표현해주고 싶어하는 작가의 안타까움이 충분히 실려있던 이름이 아닌가도 싶다. 무조건 빗나가기 보다는 나름대로의 이유와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달랐다. 마음속에 하나씩의 멘토를 설정해 두었다는 것도 멋지게 다가왔다. 무조건적인 반항과 어른들을 향한 결사적인 항전(?)을 그리기 보다는 타협의 여지를 보여주고자 했던 우리의 주인공들이 멋지게 첫 공연을 끝냈을때 나도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아니 이미 박수를 치고 있었다. 벽에 그림처럼 붙어있던 부모들이 조금씩 몸을 흔들기 시작했던 것처럼.

파랑치타를 읽으면서 완득이를 생각했다는 건 무리가 아닐 것이다. 완득이의 옆에 머물던 선생 똥주처럼 강호 패거리 옆에는 김세욱 선생이 있었고, 행복을 말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했던 완득이의 가정생활처럼 우리의 강호에게도 힘겨운 삶이 있었다. 말해 무엇할까? 어제, 세번째 엄마가 집에 들어왔다- 로 시작되어지는 첫문장이 이미 너무도 많은 것을 대변해주고 있으니... 그렇게 틀에 박힌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파랑치타를 타고 달려가는 이 소설속의 캐릭터들은 살아 있었다. 십대다움을 한껏 발산하고 있었다.  시민운동가로 살아가면서 학교를 자퇴하고자 하는 딸아이의 진로를 과감하게 수용해주는 이경의 부모를 보면서 우리의 교육현실을 모른체 할 수는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우리아이를 지금의 학교시스템에 맡기고 싶어하지 않았던 부모중 하나다. 대안학교에 대한 정보를 찾아 헤맸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이렇게도 못하고 저렇게도 못한 채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혀 그 뜻을 접어야 했지만 지금도 미련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의 학교시스템에서 내 아이를 벗어나게 해 주고 싶다.

지독한 현실을 인정하며 동생 강이에 대한 사랑만큼은 잃지않는 강호의 무던함이 나는 좋았다. 제 나름대로의 인생여정을 받아들이며 산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닐테니 말이다.  또한 없어서 편하게 느껴지는 아버지의 존재를 불쌍하게 바라보았던 강이의 시선속에는 요즘의 십대들 심정이 담겨있는 것 같아 마음 한쪽이 시렸다. 엘리트 만들기의 희생양이 되었던 형과는 달리 엄마의 의지보다는 자신의 의지쪽으로 가닥을 잡았던 도윤의 용기도 괜찮았다. 학교는 그대로인데 너희만 상처를 받을 뿐이라던 김세욱 선생의 말처럼 아이들에게 보여지는 세상은 딱 그만큼이다. 아이적의 반항은 그저 반항일 뿐이다. 한순간 스쳐지나는 바람일 뿐이다. 그러나 그런 바람들이 모여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자양분이 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이, 시간이, 세월이 우리를 그저 아이라는 틀속에만 가둬두지 않을테니 말이다. 그 아이들이 훗날 어른이 되어 다시 아이들을 본다면 어허, 나도 그때는 그랬었다 이놈들아! 이렇게 말할 것임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랬듯이... 나는 생각한다. 한 아이의 엄마로써. 한순간의 치기였다고, 그러니 가끔씩은 아이들의 십대다움을 인정하고 안아주어야 한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의 아이들이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다고. 몇몇의 소수를 보고 다수를 평가하는 잘못된 잣대를 이제는 버려야 한다고...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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