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전 : 악몽일기
박승예 글.그림 / 책나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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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책은... 솔직하게 말해 좀 당혹스럽다. 책표지의 그림은 무한한 소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엔 충분했다. 악몽일기라는 제목조차도 '꿈'이라는 낱말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을 거부할 수 없게 했다. 그림에세이... 그림과 글이 서로 어우러져 우리에게 전해주는 그 무엇을 찾아내는 것.. 꽤나 난감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그야말로 무의식의 존재에 대한 기록들이라니... 이 책에 호기심을 느낀 것은 단순히 책표지의 그림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실 나에게 꿈이라는 것, 그리고 악몽이라는 것은 그다지 먼 존재가 아닌 까닭이다. 꿈 좀 꾸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다보니 꿈이라는 소재가 궁금했던 거다. 내노라하는 사람들의 거창한 꿈이론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나에게 어떤 이들은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아서 그리도 꿈에 시달리느냐고 하고, 어떤 이는 그냥 머릿속을 비우면 잠을 잘 잘수가 있다고도 한다.  그런데 생각없이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나 역시도 내가 나를 다스리지 못해 꿈에 끌려다닌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왠지 부끄럽기도 했지만 어쩌겠는가 말이다. 보다못해 <수면의 기술>이라는 책을 선물해 주던 지인은 지금도 가끔 요즘은 어때? 라고 물어온다.

양 한마리, 양 두마리, 양 세마리.... 100,99,98,97, 100부터 거꾸로 숫자세기... 잠이 올 때까지 책읽기(하지만 이 방법은 절대 안된다. 나는 책만 읽으면 오던 잠도 달아나는 판이니)..  해 볼 건 다 해봤지만 여전히 해결책을 찾지는 못했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이 잠이 올 때까지 자연스럽게 기다리기다. 어쩌면 이 책을 구원의 심정으로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똑같은 꿈을 꾸면서 거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되어있지는 않을까 하는... 그 혹시나 하는 마음을 이제는 접어야겠지만 무의식의 존재라는 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저자가 말하는 무의식의 양면성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내 안에 자라고 있는 작은 아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 있지만 이건 그 의미와는 별개인 듯 하다. 현실과 꿈은 정말로 그 반대의 현상일까? 무의식적으로 내 감정을 지배하고 있는 것들이 꿈으로 표현되어지는 것일까?  악몽 자체를 두려움과 불완전함이라던 저자의 말에 어느정도는 공감을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엔 불완전함이 아니라 불안함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림에세이 인지라 그림 반, 글 반이다. 그런데 그림이 주는 느낌은 너무 강렬하다. 꿈의 재해석쯤으로 보고 싶은데 그 꿈, 악몽이라는 것이 그토록이나 강렬하게 우리를 잡아채는 모양이다. 자연스러운 상상이라기보다는 무언가 보이지 않는 틀에 얽매인 상상같다는 생각을 한다. 정석에서 살짝 비틀어놓은 그런 느낌 말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라고 나는 혼자서 생각한다. 꿈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의 비틀린 현실일 것이라고... 내가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는 나의 꿈조차도 현실속에서 무언가에게 쫓기듯하는 내 생활의 일부일 것이다. 좋은 뜻의 꿈이라고 하면 일단 돼지꿈? 용꿈? 똥꿈? 대체적으로 복권에 당첨되었다거나 하는 사람들의 말을 빌어보자면 그렇다는 거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인 꿈해석도 다양하다. 그만큼 우리의 주체적인 생각이 더 중요하다는 말일게다. 그러니 어쩌면 꿈조차도 내가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데 잘 모르겠다.

이 책을 내면서 작가의 말이나 누군가의 해설을 어느 한쪽에 첨부했더라면 어땠을까? 지극히 주관적인 관념의 세계를 아무런 장치도 없이 들여다 본다는 것은 그다지 상쾌한 일은 못된다. 그래서인지 내게는 그리 많은 것을 던져주지 못한 듯 하다. 내 안에 살고 있는 또다른 괴물의 존재라는 말보다도 공생의 방법을 모색하면서 불안과 불만의 삶을 극복하려 하려고 합니다.거울 속에 비친 모습과 거울 밖의 실제 모습에서 또 다른 기준의 욕망을 발견 (책소개글에서).. 이라는 말은 가슴에 와 닿는다.  악몽이었지만 꿈에 대한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로 무언가를 극복하려 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이겨내기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어쩌면 내어주고는 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은 아닐까? 비워야 한다는 것, 비운다는 것의 의미가 강하게 다가왔던 시간이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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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의 꿈, 세상을 바꾸다 -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부처님의 생애
백승권 지음, 김규현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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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일러 부처라 일컫기에 그저 부처님이라고만 알고 있는 존재.. 석가모니란 말이 단순한 하나의 명사가 아니라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는 뜻이 담긴 말이라는 것을 생각해본 이가 얼마나 있을까 싶다. 보통의 사찰에서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전각을 일러 '대웅전'이라 하는데 '대웅()' 은 고대 인도의 '마하비라' 를 한역한 말로 이는 곧 '위대한 영웅'을 모시는 집이라는 뜻도 된다. 대웅보전이라고도 한다. 항상 사찰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 우연한 기회에 찾게 되었던 사찰의 벽화는 나에게 상당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었다. 팔상성도를 그린 벽화를 둘러보면서 대충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지만 십우도를 그려놓았던 벽화는 정말이지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림의 뜻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렇게 불교는 탱화로부터 시작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일상적으로 불교적인 행사나 의미를 보면 우리가 무속이라고 말하는 것과 많이 겹쳐지는 부분이 있는 듯 하다. 그때문인지 불교를 아직도 미신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더러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아주 오래전부터 불교의 나라였다.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에는 국교로 정해져 나라의 운명을 점치기도 했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태어나게 된 배경만 보더라도 우리에게 불교의 의미가 얼마나 컸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 억불숭유정책으로 불교를 탄압하기도 했지만 국난이 일어났을 때마다 불교에 의지했던 것은 뜬금없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의 유적이나 유물등은 불교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불교라는 종교는 그다지 가깝지 않았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왠만한 사찰들이 모두 산속에 자리하고 있다보니 민중불교라고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가까이 하기에는 쉽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고 나부터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운 불교용어들에 대한 낯섬이 불교와 친해질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금의 종교를 바라보건데 온전히 종교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 하여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아들에게 읽기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다.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 사람들에게 읽히는 성경과는 달리 사람들 사이에 파고들지 못하는 불경의 아쉬움때문이기도 했고 불교라는 종교가 어떤 것이며 무엇을 추구하는 종교인지를 먼저 알게 해 주고 싶었던 까닭이기도 했다. 니편 내편을 가르며 이야기하기보다는 다방면으로 생각할 줄 아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비판하기보다는 비교하여 판단할 수 있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었다고나 할까?  그냥 무심히 '부처'라고만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해 좀 더 알게 해 준다면, 그리고 이름뿐인 무형의 신이라는 것보다는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나 많은 고행을 겪으며 진리를 찾아 떠났던 수행의 과정을 알게 해주고도 싶었다. 일종의 위인전을 대하듯이...

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나서  주어진 편한 삶을 마다한 채 진리를 찾아 떠나게 되는 과정이 쉽게 표현되어져 있다. 동문 밖에서 늙음(老)을, 남문 밖에서 병듬(病)을, 서문 밖에서는 죽음(死)을, 북문 밖에서는 승려를 보고, 마침내 출가할 뜻을 굳히게 되는 '사문유관'의 과정도 잘 풀이되어져 있다. '왜?' 라는 물음을 갖게 되는 '사문유관'을 통해 싯다르타가 품었음직한 생각을 아이의 입장에서 유추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다음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설파했다는 팔정도와 연기법(인연법)을 보면서 그 뜻을 하나하나 헤아려가며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시간이 어디 있을가?  일반적으로 많이 볼 수 있는 탑과 부도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흥미로워하지 않을까? 쉽게 풀이되어진 석가모니의 생애였다.  부록으로 덧붙여진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불교상식' 편은 어렵지않게 다가와 좋았다. 석가모니 부처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설하였으며 이 부처가 됨을 성불(成佛)이라 한다는 말과 함께 그 뜻을 다시한번 새겨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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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나무여행 - 나무를 찾아가는 여행 52 주말이 기다려지는 여행
고규홍 글.사진 / 터치아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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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생각만으로도 설게게 하는 말이다. 어떤 주제로 길을 떠나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떠나는 여행도 있다. 흔히 여행을 일러 '나를 찾기 위한 길 떠남'이라는 말을 하곤 하지만 거기에 기다려주는 이가 있다면 더 좋을게다. 그 기다림의 존재가 나무라면 어떨까? 이 책은 바로 그 나무가 나를 기다려주는 여행을 보여주고 있다. 상큼할까? 나무를 만나러가는 여행길이니 상큼할 것이다. 나무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랐던 곳이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었다. 그러다가 내소사 전나무숲길이 되었고  그 다음엔 주산지의 나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담양의 메타세콰이어길이다. 그 길은 광고덕을 톡톡히 보았던 길이기도 하다. 길마다 색다른 맛이 있었지만 나무길은 뭐니뭐니 해도 마음을 평화롭게 다독여준다는 것이다. 이름없는 나무라 할지라도 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함께 어울어지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닐까? 우리가 잃어버린 채 혹은 외면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끊임없이 갈구하는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 평온함일 것이다. 우리의 오만과 이기심으로 인하여 점점 사라져가거나 변형되어지는 자연의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 한 켠에 차가운 바람이 한줄기 지나간다.

옛날 우리네 정서를 만들어주었던 풍경속에는 빠짐없이 나무가 있었다. 마을어귀에 우뚝 서서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들.. 간혹 울긋불긋한 띠를 두르고 있었던 탓에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낯설음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그 나무를 보면서 이곳이 마을의 시작점이구나 했었던 적도 많았었다. 생뚱맞게 논두렁 어디쯤에 자리한 괴목들을 보면서 사라졌거나 이전한 마을의 모습을 생각한다는 건 그다지 이상하지 않다. 그만큼 나무는 우리에게 정신적인 의지의 대상이 되어주기도 했다. 마을입구에 지키고 서서 들고 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넓은 그늘을 만들어 장기나 바둑을 두는 일상의 여유를 선물해주기도 했던 나무..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있네~~ 라는 노래를 불렀던 나 어릴적의 추억만큼 지금은 미루나무를 본다는 것이 쉽진 않은 듯 하다. 그 뾰족하게 키가 큰 미루나무를 여행길에 만나기라도 하면 얼마나 반가운지.. 보통은 미류나무라고 불리웠던 것 같은데 그것이 미국에서 들어온 버드나무라는 뜻에서 미류(美柳)라고 한다는 말을 듣고는 아차! 했다.

나무에 얽힌 전설이나 사랑이야기는 많다. '삽목전설'이라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전설을 안고 있는 나무중에서 은행나무가 참 많은 것 같다. 마의태자가 꽂아두었다던 지팡이에서 잎이 나왔다는 용문사 은행나무가 그렇고 큰 스님이 우물가에 꽂아둔 지팡이가 자랐다는 반계리의 은행나무가 그렇다. 운문사의 처진소나무 역시 스님의 지팡이에서 잎이 나왔다고 하니 얼마나 기막힌 이야기인지.. 그 삽목설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이 책의 색다른 맛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 속리산을 찾아가는 길에 만났던 정이품송을 기억한다. 왕이 지나갈 때 가지를 들어올려 벼슬까지 하게 되었다던 정이품송의 전설을 들으며 얼마나 신기하게 바라보았던지... 단지 전설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가도 정이품송의 가지를 보면 정말 그랬을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은 옛못습을 많이 잃어버린 그 소나무가 결혼을 해서 정이품송의 기풍을 닮은 부인송이 있다고 하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언젠가 배롱나무를 두고 옥신각신했던 적이 있었다. 무슨 나무냐고 묻던 친구에게 백일홍나무라고 하니 백일홍은 나무가 아니라고 우겨대던 친구.. 우리가 알고 있는 작은 식물 백일홍도 있지만 그 작은 꽃과 다른 나무라해서 백일홍나무라고 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기어코 확인을 해 보았던 친구는 지금도 배롱나무를 보면 베시시 웃는다. 나무의 이름이 붙여지게 된 이유를 알게 되면 우리네 정서를 한번쯤 짚어보게 된다. 나무의 생김새만 보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짐작케 한다는 층층나무, 쥐똥나무, 팔손이나무, 박태기나무,화살나무등도 재미있지만  그 특징을 따라 붙여진 이름도 괘나 재미있다. 호랑이 등긁개로 쓰여서 호랑가시나무, 물을 푸르게 한다고 물푸레나무, 불 속에 던져넣으면 꽝꽝소리가 난다고 꽝꽝나무, 자작자작 하는 소리가 난다고 자작나무, 가지를 꺾을 때 딱 소리가 나는 닥나무, 댕강소리가 나는 댕강나무등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않는 나무도 있다는 것을 이제사 알게 된다. 지금은 많이 알고 있는 아까시나무를 아카시아나무라고 불렀던 것도 그렇고 후박나무라고 부르는 나무가 사실은 일본목련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토종 후박나무와는 엄연히 다른 나무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무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기엔 만만찮을 거라는 생각이다.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어디 나무만을 보자고 떠나는 여행길이 쉽겠는가 말이다. 그러한 까닭인지 이 책속에는 그 나무를 배경으로 생겨났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세세하게 적혀있다. 그리고 그 주변의 유적지나 관광지를 함께 소개해 주고 있다. 나무와 함께 들러볼 수 있는 여러곳을 소개해주면서도 그곳에서 또다른 맛으로 만날 수 있는 나무를 빼놓지 않았다. 유적지 탐방을 자주하다보면 고택을 만나기가 쉽다. 고택에 멋진 정원이 있고 그 정원에는 연못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연못의 중심부에는 어김없이 작은 섬 하나 떠있는데 그 섬의 주인은 커다란 나무 한그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옛날 사람들은 연못을 음의 기운이라 여겼고 그 음의 기운을 다스린다는 의미로 연못의 중간에 공간을 만들어 나무 한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우암 송시열이 후학을 양성했다던 남간정사가 떠오른다. 우암사적공원안의 고택인데 냇물의 흐름을 그대로 살려둔 채 그 위로 집을 지었다는 남간정사의 앞에도 연못과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가 왕버들이었다는 것을 지금에야 알게 된다. 나도 참 무심하다...

나무... 가는 곳마다 나무는 많다. 하지만 나무를 알지 못하니 잘생기고 멋진 나무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유명세를 치르는 나무만을 알아보았을 뿐이다. 이 책을 보면서 모르고 지나친 나무가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가기 어려운 여행길에서 만난 나무들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어쩌면 너무 흔한 것이기에 관심두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찌되었든 이 책을 통해서 나무에 관한 경이로움이 느껴져 새삼스럽기도 하고 자주 갔으나 알아보지 못했던 사자산 법흥사의 밤나무와 청령포에서 어린 단종의 아픔을 보고 들었다던 관음송에게 미안해지기도 한다. 책장을 덮으면서 한번쯤은 찾아가고 보고 싶은 나무들을 떠올린다. 세그루의 멋진 소나무가 대표하는 마을이라 하여 三松里라 불리운다는 곳의 왕소나무가 궁금하고, '3750-00248 석송령石松靈'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해마다 토지세를 납부한다는 반송이 궁금하다. 석송령이 만들어내는 그늘이 무려 324평이나 된다고하니 그 그늘 아래서 잠시의 쉼을 얻어보는 것을 상상해보니 꽤나 멋지다. 그런가하면 줄기를 뻗어올린 뒤 일제히 가지를 낮춰 바닥으로 늘어뜨리고 있다는 청도 운문사의 처진소나무를 통해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배워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 아닐까 싶다.

은행나무, 느티나무, 뽕나무, 소나무, 참나무, 향나무, 전나무, 이팝나무... 나무도 참 많다. 그 많은 나무들을 공부할 수 있어 좋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나무의 특징과 재미있는 이름들, 어원, 나무의 생김새를 보여주고 설명해주는 '나무바로알기'는 독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이기도 했지만 이 책이 나에게 전해주는 보너스였다. 소나무만 하더라도 반송,육송,적송,유송,곰솔등 분류되어진 이름이 많다. 보통 해송이라 부르는 것이 곰솔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아울러 함께 찾아 갈 수 있는 유적지들을 소개해 준 것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유익한 정보였다. 꽃을 배우고 나무를 배우는 일, 자연을 배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예부터 우리의 일상속에서 함께 살아왔던 소나무 이야기로 마무리를 해본다. 소나무는 순 우리말로 '솔나무', '소오리나무'라고 부른다. 모두가 '솔'을 어원으로 한다. 여기서 '솔'은 '으뜸'을 뜻하는 우리말 '수리'에서 변성한 것으로, '나무 중의 으뜸 되는 나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한자로는 '송松'을 쓴다. (215쪽).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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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의 머리일까?
차무진 지음 / 끌레마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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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사실과 허구를 아우르는 팩션이라는 게 흥미로웠다. 추리소설 내지는 환타지? 이렇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가슴속에 뭉클하게 올라오던 무언가가 있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이 자꾸만 치고 올라오려 했다. 그것을 눌러내리기를 몇 번, 나는 결국 한숨을 후우, 내뱉으며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 당신들은 당신들의 조상이 기록한 문서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민족이오"라는 말 앞에서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단지 한 편의 소설속에 쓰여진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이긴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공감한다. 당연히 그럴수밖에 없을 것이다. 책에서도 대화중에 나오는 말이긴 하지만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 중 어느쪽에 더 신빙성이 있을까?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역사를 단순히 기록이라고 말하는 시대는 아닌 것 같아 하는 말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삼국사기>보다는 <삼국유사>쪽에 더 무게를 두고 싶은 것이 나의 심정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어떤 사고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관점은 달라지는 것이 맞는 말일테니..

어찌되었든 이 책은 정말 흥미롭다.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상당히 강하다. 고전을 빌미로 엉켜드는 모든 사건들은 다시 고전을 통해 풀려진다. 실은 엉키게 한 자가 풀어야 한다는 이치다. 그런데 그 전개방식이 기가 막히다. 책을 읽는 내내 도저히 참아낼 수 없었던 궁금증 하나를 풀어보기 위해 검색해보기를 몇 번, 실력이 없는 탓인지 제대로 찾아내질 못했다. 이 책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김유신 묘 진위사건..  1968년 이병도라는 사람이 조선일보에 기재해서 세상에 논란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너무 오래된 일인 까닭인지 제대로 찾아지지가 않았다.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로써 한국의 역사와 사상, 문화에 관해  실증적·객관적 방법을 중시하는 실증사학(實證史學)을 추구하여 한국근대사학이 성립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평가된다는 말과 함께 소개되어진 그의 책들도 엄청났다. 1968년에는 정말 사건사고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 유명한 전태일이라는 이름과 김신조 청와대 피습사건이라는 말들이 1968년이라는 시대속에서 보인다.

역사적 진실속에서 잉태되어지는 끔찍한 예고살인의 형식은 호흡을 가다듬게 만들기도 한다. 먼 미래였을 지금의 시대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손의 입을 빌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하는 조상들의 서글픔.. 일제 강점기를 다룬 이야기였기에 가능했을까? 엉켜있는 씨줄 날줄의 끝은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반전의 매력이 최고조를 이루게 되는 마지막 부분은 그야말로 끝내준다. 처음부터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화자의 존재.. 우리의 역사를 파헤져가는 시선이 우리가 아니라 일본인이라는 점은 아이러니였다. 왜 우리가 아니라 일본인이어야만 했을까? 왜 우리는 그저 방관자로써만 존재하는가? 그렇지만 사실이 그랬을테니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을 하며 쫓아가는 나의 마음은 내내 불안했다. 결국 그거였구나, 싶었던 대목을 앞에두고서 나는 부끄러웠다. 내 상상을 비웃기라도 하는 양 치고 달리는 저자의 상상력은 감탄스럽기까지 했다.

사건의 추이를 유추해가며 쫓아가다보면 어느새 숨을 헐떡이게 된다. 그리고 오싹하는 공포를 함께 느끼게 된다. 책 속에서 살아 숨쉬는 듯한 그 분위기가 나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까닭이다. 머리만 발견된 미이라의 움직임이라거나 머리잘린 시체를 표현하는 그 문장들이 이채롭다.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고전과의 싸움.. <삼국유사>에, <삼국사기>에 저런 내용도 있었구나 싶어 안목을 넓히지 못하는 나를 탓해보기도 한다. 우리의 신화와 설화가 적절하게 잘 조화를 이루어내며 곳곳에 숨겨놓은 지뢰와 같은 복선들.. 몇 번씩 그 지뢰를 밟아 터뜨리며 내 몸이 망가질 때쯤 대한민국 사람이기에 느껴야 하는 부끄러움을 저자는 내 앞에 떡하니 남겨놓는다. 감정적인 것을 내세우기보다는 이성적인 사고와 관점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라고... 나치의 그 잔혹한 유대인 학살 현장속에서 <쉰들러 리스트>가 있었듯이 우리의 민족정신과 문화를 말살시키려 했던 일제 강점기속에서도 학자로써의 양심을 내세워 우리문화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일단 읽기 시작하면 그 다음장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강하게 흐르는 물살처럼 그렇게 빠져드는 나를 보게 된다. 무작위로 도굴되는 우리의 유적들. 전문지식도 없는 사람에 의해 도굴된 우리의 문화유산들은 총독부로 들어갔고 들어간 문화재는 다시 경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일본은 우리의 문화만 말살시켰던 게 아니었다. 산맥의 혈을 막아 우리의 기를 꺾어야 한다고 쇠말뚝까지 박았다. 지금도 찾아내지 못한 쇠말뚝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는데... 일본인 겐지의 말이 떠오른다. -의식은 항상 현실에 있지않고 노래나 그림따위에만 담겨 있는 것 같아 서글프다-던 말... -정작 필요할 때는 현실에서 도망가버린다-던 말... 참으로 서글픈 말이 아닐수가 없다. 어쩌면 우리들은 사물의 본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물로 인해 얽힌 인간의 의지만이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던 그의 말은 작금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울림이 담겨 있는 듯하다.

고전을 바탕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라서 혹자는 따분하거나 재미없다고 말 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이 책속에서 찾아낸 메세지는 정말 많았다. 우리가 잊고 사는 우리의 역사에 대한 인식.. 우리가 잊고 사는 우리문화에 대한 인식.. 우리의 역사속에 지금의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정답이 들어있다던 어느 유명인사의 말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너무 홀대하고 있다고... 현실속에 난무하는 문제에 대한  정답과 해답이 들어있다던  그 역사, 이제는 우리가 제대로 껴안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저 기록일뿐인 역사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우리의 역사가 되어야하기에... 한 편의 소설이 주는 감동은 컸다. 멋진 작품이었다. 10년 이상 온라인 게임을 만들었다는 저자.. 러시아 여인의 몸매에 변형된 일본식 갑옷을 입은 정체불명의 북유럽 요정들이 우리 젊은이 문화의 현실임에 소심한 울분이 터졌다는 저자는 우리 이야기를 하며 놀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의 것으로 이야기판을 벌이는 스토리텔러로 살고자 한다던 저자에게 진정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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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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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이 책의 부제다. 아우슈비츠가 유대인을 집단으로 학살했던 수용소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400만 명의 목숨을 빼앗았던 비극의 현장이 바로 그곳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생지옥을 만나게 된다는 곳. 유대인 학살을 이야기할 때마다 인용되어지는 굴뚝의 연기. 그 소각로나 카펫을 짜기 위해 머리카락을 모아두었다는, 그리고 고문실등 그야말로 광기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는 곳이 지금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는 것을 나는 지금에야 알게 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치에게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란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찾아가던 여행프로에서 그 때 당시 희생되었던 사람들의 두개골만 모아놓았던 위령탑이 떠오른다. 너무나 많아서 누가 누구인지를 가려낼 수 없어 그렇게 한곳에 모아 두었다고 하는데 그 탑의 이름이 영혼의 눈물이었다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숙연해지던 참배객들의 표정이 생각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폴란드가 그 곳을 보존하기로 결정한 것은 정말 뜻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바로 그 현장에서 살아남았다는 사람의 기록이다. 뒷부분의 부록을 읽다보면 그가 겪었던 일들을 전해야 한다는 의식만으로 버텨냈다는 말이 있다. 이 얼마나 냉혹하고 잔인한 현실인지...

공동샤워실... 이곳이 바로 위장된 가스실이었고 그곳에서 약한 사람이나 노인들, 어린아이들이 죽어갔다.  나치의 인종법에 의해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희생양이었다. 금니를 뽑아 금괴로 만들었다거나 머리카락을 모아서 카펫을 짰다거나 하는 것들은 이 책속에서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열차에 올랐던 사람들. 그들은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배설물과 함께 먹고 자고 한다는 것이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단지 화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수용소에서의 마지막을 남들보다 나은 생활속에서 지냈지만 그가 보고 겪었던 일들을 말이나 글로 전해듣는 우리가 얼만큼이나 공감할 수 있을런지... "몇 개?" "650개"... 나치는 그들을 그렇게 불렀다. 어떻게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릴 수 있을까? 묻고 있는 그 심정은 오죽할까 싶기도 했다. 싸구려 상품들처럼 무자비하게 포개진 채 무를 향한, 아래쪽을 향한, 바닥을 향한 여행을 했다던 저자의 말은 상상할 수조차 없을 것 같다.

여행중에 그리고 그 후에도 끝도없는 절망의 나락에서 우리를 건져낸 것은 바로 이런 불편함, 구타, 추위, 갈증이었다. 살려는 의지나 의식적인 체념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서로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아니 서로를 바라보며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마음을 다졌을 것이다. 시간이 한방울씩 흐른다!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 더딘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게 해 주었던 버팀목은 무엇이 되었든 정말이지 단단했고 끈질겼다.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누구를 탓해서도 안되는 거라고.. 옆 침대의 젊은이가 가스실로 가야하는 운명에 처했다고 해도 자신이 선발되지 않은 것에 대해 신께 감사하는 노인을 원망해서도 안된다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 이름은 174517.. 텅 빈 인간...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이기에 그렇게 잔인할 수도 있고, 인간이기에 그 잔인함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거라고.. 그래서 한번 더 생각해보면 이것이 인간이냐고 묻고 있는 주체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인간임을 느끼게 하는 잔인하고 오래된 고통, 기억... 그 기억은 이미 오래전에 곁을 떠나가버린 지난 시절들이다. 뒤돌아보면 안타깝기만 한 그런 기억들이 그들을 버티게 해 주었던 것이 아니었다. 당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오직 한가지 신념으로 살아남았다는 그의 말은 정말이지 기가 막히다.  그런 기억들이 육체를 혹사시키고 배고픔에 주린 배를 쓸어내리고 곪아가는 상처의 아픔이 지독할수록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혹독한 현실을 견뎌내야만 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런 기억은 오히려 사치였을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인간을 파괴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쉬운 일도, 간단한 일도 절대 아니지만 독일인, 당신들은 그 일에 성공했다고...

부록 1 - 독자들에게 답하다부록 2 - 프리모 레비 연보 를 읽으면서 쓸쓸하게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던 그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그 커다란 사건의 배경이나 그일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에 대한 이해를 돕기에는 충분했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흘러 지나가버린 기억들에 대해 묻는 이 시대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질문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 힘겨운 고통을 견뎌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열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얼마나 먹먹해지던지... 그에게는 그 열흘이라는 시간이 백년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해서 살아남은 이들중에서 나중에 서로 만남을 가진 이도 있지만 아픈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며 만남을 원치 않았던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럴 것이다. 아픈 기억은 잊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일테니... 영화 <쉰들러 리스트>나 <인생은 아름다워>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제2차 세계대전이야기..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혹은 머물러 있는 시대에 따라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는 것은 삶의 아이러니일까?  '이것이 인간인가' 라고 묻는 저자의 아픔속에서도 '인간'임을 인정했던 사람들도 있었음을 떠올린다. 그래서 아직은 우리에게 조금의 따스함이 남아있을 수 있는거라고...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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