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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불류 시불류 - 이외수의 비상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0년 4월
평점 :
우리가 사는 이 공간속에 지금 수많은 문자가 떠다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문자를 날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수도없이 전화를 때립니다. 연방 쌍시옷자를 넣어가며 말을 합니다. 그래야 소통이 가능한 모양입니다. 언제부터였는지 우리는 곁에 있는 것들에 대한 무관심이 예의라도 되는양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낯선 언어들도 모자라 이제는 날선 언어들까지 날아다니는 아이들의 세계와 그저 바쁘기만한 시간의 소용돌이만이 존재하는 어른들의 세계는 도무지 만날 수 없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대화가 필요하다고 노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괜찮아 잘 될거야 라는 노래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외계인이 되는 지금의 이 세상에는 너도 없고 우리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오직 나만을 위해서 모든 것이 존재해야만 하는 시간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마도 서글펐던 모양입니다. 그런 세상을 바라보며 끄적거렸을 이외수라는 사람을 생각해보니 살풋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는 묻고 싶어집니다. 당신은 어느 세계에 살고 있는지요?
혹시 이외수님의 그림책 <사부님 싸부님>을 읽어보셨는지요? 하얀 점 싸부님과 까만 점 제자가 물 속에서 나누는 문답이 일품입니다. 그 문답속에서 희망을 찾고 싶어했던 글쓴이의 마음이 전해져 와 멍한 찰나를 경험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물길속으로 다시 들어간 느낌이 드는 것은 역시 희망을 말하고 싶어한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이외수의 메모장을 훔쳐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던 <흐린세상 건너기>라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지금 이 책처럼 생각날 때마다 혹은 무언가 떠오를때마다 끄적거린 노트처럼 보였던 작품이었는데 그 때는 정말이지 책읽기가 즐겁지 않았더랬습니다. 그런데 같은 방식으로 쓰인 이 책은 왠지 거부감이 일지 않습니다. 많이 유(柔)해졌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만큼 세월이 흐른 것이겠지요. 글쓴이도 글을 읽는 나도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는 걸 인정해야겠지요.
세월은 그냥 흐르는 게 아닐겝니다. 그의 작품속에서 흐르는 시간과 여유와 포용을 보게 됩니다. 받아들임을 읽게 됩니다. 우리가 모른 척하고 있거나 잃어버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들이 아닐까 싶어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책 속에 몇 번 등장하는 코끼리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돼지를 보고 어떤 놈이 네 코를 싹뚝 잘라 갔느냐고 물으며 정말로 세상은 눈뜨고 코베어 먹히는 세상이라고 말하는 코끼리, 피노키오가 코끼리 코를 보면서 나보다 더 거짓말을 많이 하는 놈도 있구나 했다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게 또 세상비꼬기구나 싶어 씁쓸하기도 합니다. 세상이 꼬여도 한참 꼬인 것이겠지요. 그런데 또한번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이외수님의 글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삐뚤어진 그의 문장들이 짧지만 깊게 꽃히는 걸 보면서 아무리 비틀어지고 속된 현실이라 할지라도 비켜가지 않는 그의 성정이 느껴지는 까닭입니다.
우아하게 보여지기 위해 애쓰기 보다는 더 망가지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그리하여 내 안의 무언가를 끄집어내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 듯도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말하지요. '보아라, 나도 이러니 너도 이렇게 살아라..' 이 세상은 버텨내야 하는 것일까요? 문득 '살아진다'와 '살아졌다'는 표현을 쓰고 있던 싯구 한소절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모두가 버텨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글쓴이처럼 그렇게 벌레와 꽃과 나비와 나무와 이야기 나누며 버텨내는 세상이라면 왠지 괜찮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속에서 만날 수 있는 풀 한포기, 꽃 한송이, 그 꽃 위에 날아와 앉은 나비 한마리가 정말 좋아보입니다. 아 참, 알고 계셨나요? 책을 읽으면서 코 끝을 간지르는 향기가 있었다는 걸. 책을 읽는 내내 그 향기가 내 앞에서 흐물거렸지요. 책갈피처럼 책 사이에 꽃혀있던 향기나는 종이 하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향기가 나를 몽롱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인공향 알러지가 있거든요. 그래서 내내 불편했는데 그래도 그냥 놔두었습니다. 그 향기가 얼마나 갈까 싶어서... 미련한가요? 하지만 그 향기를 전해주고자 했던 마음을 차마 내칠 수 없었던 것도 이유라면 이유입니다. 만들어지는 향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글쓴이의 말처럼 터치폰 앞에서 다이얼 돌리는 소리입니까? 그렇다면 나도 그분처럼 기도해보렵니다. "하느님, 제 마음속에도 DEL키를 달아주세요. 터치 한번으로 말끔하게 마음을 비우고 싶으니까요" (-71쪽)
그 짧은 글줄에도 웃다가 심각해지다가 때로는 가슴을 졸이기도 하다가... 이런 게 글쓴이의 매력일 겝니다. 짧은 글줄로도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 그것이 문자의 위대함일 겝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필끝에 묻어나는 향기까지 보태어주네요. 작은 것들, 그 분의 말처럼 당신이 알지 못한다고 모두가 잡초는 아닌 것들의 얼굴이 방긋 웃고 있는 걸 보면서 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이왕이면 이름도 알고 싶어 손 끝이 바빠집니다. (책의 뒷쪽에 그것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웃음. 그래 너였구나, 너의 이름이 그거였구나.. 반갑고 기쁘니 그것이 평온이라는 말입니다. 이 책속에 깃든 삽화가 정말 황홀했습니다. 풀 한포기, 꽃 한송이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이쁘고 고마운지요... 글을 위해 그림이 있는 것인지 그림을 위해 글이 있는 것인지 그것을 따지지 않아도, 있어서 좋은 단지 있어서 좋은 것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을 읽으며 내가 나에게 묻습니다. 이 세상의 인간은 딱 두가지 유형밖에 없다는데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혹시 나쁜놈이라 줄긋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밤하늘에 별이 하나씩 돋아난다고 한다면 나 때문에 생긴 별은 모두 몇 개나 될까? 날개도 없는데 어쩜 힘하나 안들이고 그토록 우아하게 날 수 있느냐고 묻는 파리에게 먼지처럼 대답할 수있는지? 그 먼지가 이렇게 대답했다지요? 다 버리고 점 하나로 남으면 된다고.. 나는 바로 앞에 있어도 천 리나 떨어져 있는 느낌을 주는 사람일까? 아니면 천 리나 떨어져 있어도 바로 앞에 있는 것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일까? 막상 물어도 대답을 하지 못하니 참 서글퍼집니다. 국어사전에서 대추라는 단어를 찾아보았다던 글쓴이의 말에서 해답을 찾게 됩니다. 대추나무에서 열리는 열매가 대추이고 대추가 열리는 나무가 대추나무라는 말.. 건조했다,던 글쓴이의 말에 공감하게 됩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실체는 아닐런지요. 하지만 나도 갖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글쓴이가 만들었다던 그 감성사전을...
이 외수님의 글은 묘하게도 나의 감성을 건드립니다. 글을 쓰는 형식이 나의 정서와는 맞지않는데도 자꾸만 그의 글을 찾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끄적거린 것 같은 글인데도 함부로 대할 수 없으니 그것이 그의 마력(?)인가도 생각하게 됩니다. 며느리배꼽, 깽깽이풀, 산부추, 작살나무, 범부채, 여뀌, 마타리, 자주달개비, 산비장이... 우리 곁에 가까이 있어 늘 보고 지내면서도 이름을 몰라 불러주지 못했던 것들. 이 책을 통해 이름을 불러줄 수 있게 되어 좋았습니다. 예쁜 꽃들만 그것의 존재의미는 아니겠지요. 그것들이 안고 있는 시간을 함께 볼 수 있어 더더욱 좋았습니다. 꽃만 기억하기보다는 그것이 시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고마웠습니다. 글쓴이의 말처럼 내가 흐르지 않으면 시간도 흐르지 않을까요? 그러면서도 그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네요. 시계가 깨진다고 시간까지 깨지는 것은 아니라고... 남는 여운이 깊은 책이었습니다. /아이비생각
당신이 모르는 야생식물은 모두 잡초로 분류되나요. (-45쪽)
라인선에 줄금이 겹쳤네 - 이 문장에는 같은 의미의 단어가 몇 개나 겹쳐 있을까요. (-105쪽)
이것 봐, 방금 니가 씨팔이라고 말하는 순간, 별 하나가 깨져서 땅바닥으로 곤두박칠쳤다니까. (-143쪽)
다섯 살 먹은 옆집 꼬마가 장래 직업을 아파트 경비원으로 선택한 이유 - 날마다 짜장면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1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