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갈등 - 갈등 해결을 위한 소통의 인간관계 기술
양광모 지음 / 청년정신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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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래전 어느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들었던 한마디가 오래도록 나를 따라녔던 적이 있었다. 그 한마디로 인하여 나의 주변과 나의 현실을 다시한번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었으니 말 한마디의 위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그 말은 참 간단했다."지금 당신이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사람들과 만나고 계십니까?"  옛말도 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피부로 느끼고 생활로 느낄 수 있었던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친구를 사귐에 있어 두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깊고 좁게 사귀는 것이고, 하나는 넓고 얕게 사귀는 것이다. 전자는 많은 사람을 사귀지는 않으나 깊이 사귈 수 있으니 왠만한 것들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관계일 것이기에 진정으로 나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 관계가 원만하지 않을 시의 후유증은 대단할거라는 생각은 든다. 그런 반면에 후자는 많은 사람을 사귈 수 있어 좋기는 하겠다. 마당발로 통하는 사람을 가만히 보면 관계를 유지하는 사귐성 하나만큼은 끝내준다. 하지만 정작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진정으로 찾아나설 사람이 없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아이러니겠지만 어느 쪽을 정답이라고 손들어줄 수 만도 없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모든 것은 갈등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그 갈등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앞서 말한 두가지 방법중 모두 깊이 들여다보면 이해와 갈등이라는 속살을 감추고 있는 듯 하다. 갈등은 서로간의 이해가 부족한데서부터 오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습관처럼 써먹는 말 중 하나가 배려와 관심이다. 그 배려와 관심은 분명 갈고리같은 갈등마져도 충분히 덮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처럼 습관이 되지 않는 것 또한 배려와 관심이 아닐까 싶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보기,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번만 바라볼 수 있다면... 하지만 결코 쉬운 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탓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제목처럼 갈등과 이별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해보자고 책을 읽는 것일테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 또한 나의 몫이니 모든 것은 나로부터 비롯되어진다는 말을 다시한번 새겨보게 된다.

갈등을 피해가는 것과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다르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갈등을 피해가는 것은 단지 유보시켜놓았을 뿐 언제고 다시 불거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니  왠만하면 피해가기보다는 해결하는 쪽이 더 나을 듯 싶다. Chapter 02 에서 나 자신을 한번 체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게 되었다. 갈등의 원인과 대처방법에 대한 이야기인데 다행인지 나의 지수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딱 중간쯤이다. 이런저런 체크리스트를 통해 본 나의 성향은 무난하다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언제고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단계도 될테니 좀 더 신경쓸 일이기도 하다.  '갈등은 리더십 게임이다' 라는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꼽게 보지 말고 곱게 보자, 가슴에 담아두지 말자, 눈치가 빨라야 하고 내 머리속에 지우개 하나씩은 필수적으로 지니고 있음으로 용서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랑할 시간도 부족하다 등등등... 많다.  그런데 결국 이기는 게임이다. 이기기 위한 방법인데 그 방법이 나를 통하는 것이니 참 좋기는 하다. 나의 생각, 나의 말, 나의 행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책속에 이런 말이 있다. "나소너소우소" 와 "나다너다우다"... 전자는 "나는 소중하다, 너도 소중하다. 우리는 모두 소중하다"는 말이고, 후자는 "나는 다르다, 너도 다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는 말이다. 얼핏 보면 무슨 말장난같기도 한데 가만히 새겨보니 그 뜻이 참 멋지다. 너와 나는 모두 소중하고, 너와 내가 다르니 그 다름을 인정해 줄 때 갈등은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 나만 소중하고 나와 다르면 틀린 것이라는 아집에서 벗어나야만 그토록 찾아헤매는 따스함이 우리곁에 오지 않을까? 얼마전 언론지상에서 크게 말이 나왔던 '봉은사 땅밟기'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런 일부의 사람들 때문에 함께 동급으로 치부될 수 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깊은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나  "나소너소우소" 와 "나다너다우다" 를 외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정말 살 맛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책 속에 재미난 이야기가 있었다. 여러번을 생각해보아도 미소를 짓게 되었던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도 한다. 어떤 젊은이가 버스를 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버스가 출발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던 젊은이가 "아저씨, 이 똥차 언제 출발합니까?" 하고 물으니 기사님 대답하시길, "아, 똥이 차야 출발을 하지요!" 였다. 그러고도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버스는 출발을 했다. 버스에서 내릴 때 젊은이가 말했다. "아저씨, 평생 버스나 운전하세요!"  기사님 다시 대답하시길, "손님은 평생 버스나 타고 다니세요!" 했다는... 법정스님 말씀중에 우리는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말보다 해서 후회하는 말이 더 많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함으로써 손해보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이야기속의 젊은이가 자신의 말 한마디로 똥이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가 실천해야 할 목록은 이것이다.  첫째,따뜻한 말을 할 것. 둘째, 상처 주는 말을 하지 말 것.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 있다고 했다. 말 한마디로 후회하게 되는 일은 더더욱 만들지 말아야겠다. 첫째,따뜻한 말을 할 것. 둘째, 상처 주는 말을 하지 말 것... 그러니 꼭 명심할 것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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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돌
문영심 지음 / 가즈토이(God'sToy)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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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때 문학을 꿈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왠만한 사람이라면, 책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주 잠깐동안이라 할지라도 문학을, 아니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꿈을 가져보았으리라 여겨진다. 가끔씩 읽은 시 한구절이나 문장 한구절을 읽으면서, 혹은 기대에 못미친듯한 느낌을 받는 경우였다해도 나도 이쯤은... 하는 생각, 한번쯤은 가져보지 않았을까 싶다. 나 역시도 그랬다. 학창시절 내내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하여 나도 이렇게 멋진 글 한번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 많았다. 정말... 많았다...  등단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가 내게는 정말 황홀한 것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보는 문학에의 꿈.. 하지만 성공하는 길은 멀기만 하다. 매년 무슨무슨 문예 당선작이라고 발표될 때마다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지만 역시 그들의  힘겨운 시간속에서 잉태되었던 작품이었다는 거다.  그 한편의 당선작을 품에 안기 위하여 그들은 정말이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인내를 감당해야만 했을까? 
 
 "우리는 우리가 문학을 선택했다기보다는 문학이 우리를 선택했다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스쳐지나던 이 한구절의 문장은 왠지 좀 씁쓸한 뉘앙스를 풍겼다. 흔히 하는 말중에서 돈이 사람을 따라야지, 사람이 돈을 따라다니면 백날을 버둥거려도 부자가 못된다, 는 말이 떠올랐다. 결국 그것이었는가?  누군가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그를 위하여 끝도 없이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말이었을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씁쓸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이라는 상징성을 부여한 채 그녀에게 다가왔던 위안의 순간이 어쩌면 그녀에게는 다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었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자신을 채찍질하고 싶을 때마다 다시한번 움켜쥐게 되는 부적같은 그런 것... 무언가에 대한 막연한 믿음, 그런 것...

문학의 거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이름을 들이대면서 내게 다가왔던 이 소설은 사실 그다지 기대했던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글을 읽어가면서 속도감이 따라붙었다. 그리고 내내 그 속도를 따라가기가 벅찼다. 자전적인 냄새를 폴폴 풍기면서도 보통 사람이라면 숨기고 싶어할 것 같은 저 깊은 속내까지 드러내기를 꺼려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아픈 속내를 스스로 감싸안아줄 줄 아는 아량마져도 보여주고 있었던 거다. 책속에서 잠시 언급되었던 말처럼 문제아로 남기보다는 문제적 인간이 되기를 바랬던 것이 바로 그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가볍게 시작했으나 무겁게 들고 읽어야 했던 책이기도 했다. 그만큼 누군가의 속살과 마주할 때 느껴지는 중압감은 대단하다.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것이 단지 '소설'이기만 했다 하여도 누구나에게 있을 법한, 아니 한번쯤은 있었음직한 그런 일들에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 좋았다. 

그녀 곁에 머물러 주었던 친구들의 모습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표현되어지던 그녀 자신은 아니었을까? 그랬기에 행복하기도 했고, 불행하기도 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을 접으면서 많은 생각이 머리속을 채운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서 즐거운 일을 찾으라는 말도 떠오른다. 신은 모두에게 완벽하게 주지 않는다, 하나를 주면 또다른 하나를 가져가 버리고 만다. 그만큼의 격정이 필요하고 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리라 한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꿈꾸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해서 즐거운 일을 하면서 또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행복하지 않을까? 한사람의 세월, 꿈을 버리지 못한 그 오랜 시간을 반추해보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굳이 문학을 꿈꾸는 이들에게 바친다,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해 낼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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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어른이 읽는 동화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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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에 어른들만의 동화를 만난다. 책꽂이에서 조용한 시선으로 가끔씩은 나를 불러주는 동화.. 그냥 동화가 아니라 생각하는 동화라거나 어른이 읽는 동화라고 하면 뭔가 더 있을 것만 같은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이기도 하지만 그 짧은 이야기가 담아내는 커다란 의미에 눌려 읽기를 멈춰야 할 때도 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글쓴이의 이름만 다를뿐이지 번복되어지는 내용이 많다는 거다. 대체적으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묻고 있다. 뻔한 답인줄 알면서도 우리는 왜 그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인지... 가끔씩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혹은 무엇을 잃었는지 뒤돌아볼 일이다. 자신의 시간에 대해 되새김질 할 만한 여유 한조각쯤 가져볼 일이다. 어쩌면 그런 여유 한조각 얻어볼까하여 이렇게 짧은 이야기를 만나러 가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무엇이 필요할까?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것도 역시 사랑이다,라고 말한다.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길래 사람들은 입만 열면 사랑을 말할까? 사랑에 웃고 운다는 흔한 말도 많다. 사랑에 목숨건다는 말도 많다. 도대체 그 사랑이 무엇이길래 우리의 삶속에서 그토록이나 강한 느낌을 전해주는 것일까?  참 어렵다. 아직 살아야 할 날은 많겠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쉬워보이는 일들이 더 어렵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멀리 있는 것보다는 가까이 있는 것들이 더 소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찾아헤매는 존재 또한 우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왜 그런건지.... 지금의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잃어버린 채 앞만 보고 달려가는지 이런 책을 읽으면서 한번쯤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어울림'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책속의 작은 이야기들이 보여주는 그림속에서 그 '어울림'이라는 말을 찾아내게 되고, 또다시 나는 묻게 된다. 너는 얼만큼이나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렸느냐고.. 너는 얼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주며 살았느냐고.. 어김없이 등장하는 테마는 '함께 한다'는 것이다.  그 흔한 사랑도 함께 하지 않는 한 곁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너를 인정함으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너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나만의 존재의식에 밀려다니며 그 흔한 사랑을 찾아 헤매이는 것은 아닌지... 몸은 하나였지만 머리가 둘 달린 '기파조'는 머리가 둘이었던 까닭에 서로 다른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가슴은 하나인데 생각이 둘이라서 그렇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에 비해 '비목어'는 어떤가? 눈이 하나뿐인 이 물고기는 짝을 만나야만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었다. 상대방의 눈동자에 내 모습이 맑게 비친다면, 이라는 전제조건을 달았지만 그것은 분명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이었다. 짝을 이루어 서로의 몸을 의지하고 서로의 눈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자기 자신을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았던 바위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사람들의 말소리를 알아듣게 되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돌을 없애버릴까? 아냐, 가끔씩 앉아 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에이, 밭을 가는데 귀찮기만 하잖아... 결국 바위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평화롭게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산 아래 마을의 골목 모퉁이에 쳐박혀버린 바위를 처음 찾아온 것은 개였고, 그 다음으로 아이들이었다. 그들이 한 짓은 겨우 오줌이나 똥을 누고 가는 것이었다. 더러워지기 시작한 자신의 몸과 함께 불안의 늪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점점 더 천덕꾸러기가 되어가던 바위에게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은 너무나 큰 괴로움을 안겨주었다. 어느날 무심코 지나가던 큰스님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큰스님에 의해 바위는 원래 살았던 산 중턱의 맞은편 쪽에 새로 짓는 산사의 대웅전을 받치는 주춧돌이 되었다. 그리고 몇 백년동안 그곳에서 살았다. 무거운 지붕을 받치고 있었지만 조금도 무겁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존재의 기쁨으로 다가왔던 까닭이다.  <추춧돌>이라는 이야기의 내용이다. 짧은 이야기지만 너무나도 많은 울림을 갖고 있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짚어볼 수도 있는 이야기다.

'함께 함'으로써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사랑일까? '어울림'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사랑일까?  어른을 위한 동화를 읽으며 또한번 생각거리를 찾아낸다. 역시 답은 늘 같다. 그러면서도 우리에게 매번 전해받는 느낌이 다르다. 그것이 생각하는 동화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살면서 날마다 던지는 화두, '사랑'.. 알 수 없는 그 무엇.. 그러나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그 무엇.. 곁에 두고서도 늘 찾아헤매는 그 무엇.. 가까이 있음에도 늘 멀리에 있을거라고 막연하게 생각되어지는 그 무엇.. 그 무엇이 바로 '사랑'일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당신도 그 사랑 하나쯤 가슴에 품어보라고...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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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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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흩

나렸다. 싸락눈이었다.... 

이런 문장, 사실 내게는 좀 생소하다. 

다들, 먹고살아야 할 사람들이다. 별일 없이

별탈없이, 먹고산다면 나로선 그만이다..

역시 반복되는 이런 문장들, 처음엔 뭐지? 했었다. 도대체 무슨 효과를 노리는거야? 했다.
한참을 읽었으면서도 어떤때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한참을 읽었으면서도 어떤때는 짜증이 밀려오기도 한다. sied A를 다 읽고 결국에는 작가의 말을 찾아간다. 가능한 객관적이라 볼 수 있는 사실들만 말하고 싶다,던 그의 말을 읽는다. 어느정도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 또 어느정도는 이해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문득 신문에서 본 듯한 말이 떠오른다. 문제적 작가...  문제적 작가라는 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을 해내는 사람이라는 말을 찾아낸다. 어쩌면 자기안으로의 여행일거라는 말도... 그러면서 다시 읽어본 작가의 말은, 특색있다. 작가의 말조차도 자기자신에게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지구영웅전설』, 『카스테라』, 『핑퐁』,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까지 그가 쓴 작품은 꽤나 많았다. 그리고 그 작품의 이름들을 익히 들어본 바지만 나는 사실 박민규라는 작가의 글을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다. 아니 읽어보고 싶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말일게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는 말을 보면서 박민규라는 작가에게는 어느정도의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알아보니 상도 참 많이 받았다. 한국소설의 새로운 흐름을 대표하는 아이콘... 잘 모르겠만 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현실적이라는 말을 떠올린 건 사실이다. 현실을 직시하는 글..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그의 몇몇 작품속에서 풍기는 환타지적인 분위기를 감당해내기엔 내가 너무 역부족이었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속에 불편한 진실은 많다. 까발려지기보다는 숨겨야 더 아름답게 보여지는 것들도 참 많다. (아니 그렇게해야 아름다운거라고 생각하는것이겠지만..) 하지만 언젠가는 그것들이 참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할 때가 온다. 반드시... 그럴 때 우리의 기분은 어떨까? 감추고 싶었던 치부를 드러냈을 때의 기분과 똑같지 않을까?  수없이 출판계를 떠도는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현실직시라는 말을 떠올리곤 했었다.  피해가려 하지 않고 그 문제들을 담담히 글로써 엮어내는 타국의 글쟁이들이 부럽기까지 했던 적도 있었다. 우리는 왜 안될까? 하면서... 하지만 이미 우리에게도 그런 글을 쓰는 작가는 충분히 있었다. 단지 우리가 불편해 했을 뿐. 박민규라는 작가의 글을 처음으로 대하면서 가슴 한쪽 저 깊은 곳에서부터의 울림도 느껴보았다. 그럴 수 있어서 좋았다. 조금은 황당한 기분을 맛보아야 했던 글도 있었지만 말이다. 가면을 쓴 표지의 인물은 그일까? 그였을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은유적인 표현으로 다가설 수도 있을 우리의 모습일수도 있겠다고...

누군가에게 선물로 쓰여졌다는 글들은 마치도 내가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이 든다. 소싯적의 꿈과 현실의 좌절은 같이 가는 평행선처럼 그려진다. 그 꿈들이 현실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우는 몇 퍼센트나 될까? <근처>라는 제목을 달고 가장 먼저 내게 물어왔던 것은 그것이었다. 이제는 발등의 불로 떨어져내린 노인들의 삶은 차마 버릴 수 없는 우리의 십자가일런지도 모를 일이다. <누런 강 배 한 척>이나 <낮잠>을 통해 보여주던 노인들의 현실은 정말 참담했다.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살인을 하는 <루디>는 이 세상 어디에서나 마주칠 것 같은 존재였다. 그만큼 우리는 인간성을 상실해가고 있는 거라고... 상당히 도발적인 느낌을 전해주었던 그의 글들이 이상한 여운을 남긴다. 읽다가 다시 읽고,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다시 앞으로 되돌아가 있기를 몇 번.. 거대한 이미지로 공중에 떠 있던 <아스피린>의 존재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구급약은 아니었을지.. <비치보이스>나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속에서 묘하게 일그러진 청춘과 그 청춘들이 일궈냈던 가정이라는 테두리의 한 집단과 마주쳐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외면하고 싶었을 우리의 현실.. 슬그머니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던 순간들이 많지 않았나 싶다. 모르겠다고 내팽개져버렸던 것들에게 슬며시 다시 다가가는 그런 느낌들은 생소하면서도 꽤나 스릴있었다.

무언지 모를 새로운 경험을 한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 작가의 글을 다시 읽고 싶다는 욕심은 생기지 않는다. 나의 역부족을 인정하기에... 그러면서도 기존의 작품 중 한 두편 정도는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것은 왜일까?  처음 접해본 그의 글들은 생소함과 낯설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상당한 흡입력을 가진 게 분명한 듯 하다. 그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다음작품에 대한 목마름이 꽤나 심각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니 그들의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그는 열심히 글을 쓸게 분명하다. 작가의 말에서처럼. 책을 내면서 약력이며 추천사, 또 해설같은 것을 모두 걷어낸 것이 나와도, 그와도 무관한 일들이기 때문이라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열심히 쓰는 일 뿐일테니 말이다. 앞으로도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을 그의 글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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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그 천년의 이야기 - 상식으로 꼭 알아야
김동훈 지음 / 삼양미디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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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도대체 그 건축이라는 게 무엇일까? 그저 바라보기에 멋지고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주목할만한 꺼리가 된다. 그 건물을 어떻게 지었는지, 어느 시대에 지었는지, 지붕은 어떤 구조를 하고 있는지, 장식은 또 어떤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단순히 생긴것만을 보지 말라고. 그 건축물이 안고 있는 시대와 역사를 함께 봐야 한다고. 그리고 그것을 설계하고 만든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살았었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굳이 세계로 눈을 돌리지 않아도 국내의 건축물중에서 시대를 읽어낼 수 있는 건물은 많다. 거기다가 제가각 다른 형식을 띠고 있는 모습도 볼 수가 있다.  건축용어도 사실은 어렵다. 낯선 낱말들을 풀어 헤쳐놓고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아무리 설명해봐야 잘 들리지도 않는다는 게 솔직한 말일 게다.  답사를 시작하면서 듣게 되었던 우진각 지붕이니 팔작지붕이니, 다포식이니 주심포양식이니 했을 때의 생소함을 떠올린다. 살펴보자고 들면 끝도없는 것이 또한 건축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그렇게 복잡한 건축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건축물들을 보여주면서. 건축이 발달하게 되는 요인과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혹은 지역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었던 건축물의 변화무쌍함을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예루살렘 성전을 보여주면서 고대 건축물을 읽으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건축을 통해 고전 건축이 시작되었다고 말해주기도 한다. 사진으로 보여주는 수도원이나 교회를 통한 중세 기독교 건축은 실로 웅장하게 느껴진다. 그 중에서도 뾰족한 첨탑 두개가 위용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샤르트르 대성당은 정말 끝내준다. 두개의 첨탑이 서로 다른 시기에 세워졌기에 같은 건물에 붙어 있으면서도 다른 모양을 갖게 되었다는 것도 그렇지만 데 왕의 문을 장악하고 있는 조각들은 정말 압권이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조각 작품 하나마다 다른 동작과 표정들이 정교하게 세겨져있어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흔히 들어왔던 바로크와 로코코 건축양식이 바로 그 뒤를 잇는다. 로코코는 프랑스 귀족 사회의 생활을 미화하기 위한 장식같은 것에 대하여 쓰인 말이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개인적인 생활위주의 소규모 공간을 창출하는 건축이 되었고, 카톨릭 교회의 부흥과 절대 왕권을 옹호하기 위해 발달했던 바로크 양식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풍긴다는데 베르사이유 궁전을 보면 정말 여성적이라는 생각이 들까?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곳의 장식들은 정말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마리 앙뜨와네트를 위해 완성했다는 프티트리아농은 한번쯤 가보고 싶다. 작은 농촌마을로 만들어진 그곳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에 위안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러시아의 크렘린궁이나  붉은 광장의 성바실리성당의 양파모양 지붕은 마치 동화속 나라를 여행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갖게 해준다. 책장을 넘기다가 체코의 성요한 순례성당을 보는 순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별 모양의 예배당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을 보면서 나는 우리 역사속의 궁궐을 떠올렸다. 지금은 회랑의 존재조차 의심할 정도로 찾기 힘든 우리궁궐의 모습...  옛기록을 찾아보면 회랑으로 연결지어진 모습을 볼 수 있기는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른 건축물들에서 회랑으로 이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작은 홈들을 찾아보기 바란다. 순교자 성요한 네모무키의 무덤위에 세워졌다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성요한 네모무키를 하늘로 인도한다는 천사들의 무리 조각이 환상적이다. 성당을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는 5개의 작은 예배당이 서로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한편의 스릴러물이나 추리극을 잉태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웃어보기도 한다.

18C 말에 이르러 겉으로 치장된 모습보다는 절대적인 순수미를 추구하였다는 근현대 건축물의 시기가 왔다. 그런데 그들이 눈을 돌린 것은 공교롭게도 고대 그리스로마 건축물이었다. 그렇게 해서 '신고전주의 건축'이 생겨났고, 일정한 양식에 구애받지않고 모든 양식을 절충한 '절충주의 건축'이 유행하기도 했다. 19C 말에는 산업혁명이 가져다 준 새로운 재료들로 에펠탑과 같이 철근 구조를 이용한 건축양식을 만들어내기도 했고, 자연형태에서 표현을 얻고자 했다던 '아루누보건축'은 아이러니하게도 철과 유리를 재료로 이용했다. 콘크리트를 실험적으로 이용했다는 암스테르담 방어선은 현재까지도 완전한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주변환경과 어울려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라고 하지만 이 멋진 세계문화유산도 지구온난화가 계속 진행된다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곳이라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일전에 읽었던 <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라는 책에서 가우디라는 건축가의 이름과 그의 작품을 보았던 기억이 생생한지라 그의 이름을 보게 되니 반갑기까지 하다. 초현실적이고 신비로운 특징을 담고 있다는 구엘 공원은 안토니오 가우디의 생애 최대의 작품이라고 한다. 빛의 저택이라고도 한다는 구엘 저택은 사진만 보아도 정말 멋지고 황홀하다. 가우디의 건축에서만 볼 수 있다는 우물같은 안뜰에서 올려다 본 하늘은 우리 전통가옥의 안뜰에서 올려다 본 하늘과 닮았다.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자연의 숨결을 거스르지 않고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공통점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그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짧았다. 다음장에서 펼쳐지는 바우하우스는 왠지 좀 낯설게 다가왔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적인 것들이 투영된 듯 한 느낌을 준다. 왠지 정이 가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말이다.

그렇다면 동양의 건축은 어떨까? 동아시아의 건축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서양건축, 이슬람건축과 함께 세계3대 건축의 하나로 인정받는만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는 중국 건축. 당연히 우리도 그 영향을 받았음이다. 궁궐이나 사찰 건축, 능묘건축을 보더라도 중국색깔이 짙게 베인 것을 어쩔 수가 없으니 하는 말이다. 바깥쪽으로 살짝 치켜올라 갔든 그냥 내려왔든 처마가 주는 아름다움은 내게 있어 두고두고 생각하게 하는 매력을 느끼게 한다. 음양사상을 담았다는 사찰건축이 주는 안정감은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며, 영혼불멸의 사상으로 인해 발달하게 된 능묘문화 역시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걸작임에 분명하다. 중국의 영향을 받았던 까닭에 한국, 중국, 일본 세나라의 건축물은 외형적으로 보면 비슷하기는 하다. 하지만 각각의 독특한 멋을 찾아낸다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게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으면서도 저마다의 특징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중국보다 더 크고 웅장했다는 고구려의 유적이 남아있지 않음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처마를 받쳐주는 공포와 단청의 화려함은 스쳐지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했다는 말에 백번 공감한다. 그런데 똑같이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인도나 동남아시아의 사찰 건축물은 우리와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주종교로써 오래 지탱하지 못한 채 힌두교와 이슬람교에게 밀려났다는 이유가 있기는해도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이나 자바섬의 보로부두르불교사원, 미얀마의 아난다 사원의 건축양식을 보면 정말 특이한 느낌을 전해받는다. 알함브라 궁전이나 타지마할 역시 이슬람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눈이 호강했다!! 잉카도시 마추픽추도 보았고 또다른 피라미드가 있는 마야문명의 욱스말도 보았다. 세계문화유산은 전세계 151개국이 보유하고 있는 911점에 이른다. 그 중에서 그토록이나 아름답다는 건축문화를 돌아 보았으니 언제 또 이렇게 눈이 호강을 할 수 있을까? 몸과 마음도 함께 호강할 수 있는 그 순간을 그려본다. 세계문화유산을 살펴보면 문화유산이 704점, 자연유산이 180점, 복합유산이 27점이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는 문화유산이 9점으로 석굴암과 불국사, 종묘, 해인사 장경판전, 수원화성, 창덕궁, 경주역사유적지구, 고창화순강화 고인돌유적, 조선왕릉,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이며, 제주 화산섬및 용암동굴이 자연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한번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진다고해서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문화유산을 지속적으로 잘 관리하고 보존해야만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한번 등록된 문화유산이 취소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과제로 남는다. 그러자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외형만 슬쩍 보고 지나치지 말고 그 문화유산들이 안고 있는 내면을 볼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풀리지않는 현재의 문제에 대한 답은 역사속에 있다던 극작가 신봉승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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